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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격변 (1)
2022.04.25.


주민성은 차분하게 주변 상황을 파악했다.

“아슬아슬했네.”

위험한 상황이었다.

특히 건물 이용자였던 협회원의 사망이 치명적이었다.

[텐트 790 이용자가 사망했습니다.]

[텐트 588 이용자가 사망했습니다.]

[건물 이용료가 영구적으로 하락합니다.]

[건물 이용료가 영구적으로 하락합니다.]



언제나 만능일 거라 생각했던 이용료 청구는 나름의 책임이 전제되는 능력이었다.

이대로 인천 지부의 협회원들을 잃어버리면 앞으로의 행보에 치명타가 될 정도였으니까.

“다들 뒤로 빠지세요.”

“아, 네!”

건물 용도변경중인 최선호에겐 미안하지만, 지금으로선 소유권을 가져오는 게 최선이었다.

손쉽게 부가효과를 누릴 수 있음에도 배려하는 건 멍청한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전투 지역도 건물 내부였기에 이는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까다로워 보이는 존재군.”

리치의 혼잣말이었다.

“가라. 분노하는 망자들이여.”

리치의 손짓 한 번에 모든 언데드들의 이목이 주민성에게 쏠렸다.

“거기 딱 가만히 있어라. 죽일 놈들이여.”

이것이 주민성의 대답이었다.

“무, 무슨! 필멸자가 죽음의 언어를!”

“미안하지만 너랑은 그다지 할 말이 없네. 거기 가만히 있어라. 빚 청산해야 하니까.”

콰아아앙!

주민성의 막차기가 작렬했다.

그다지 효율적인 동작은 아니었지만, 마석 이식을 통해 부여된 근력이 사기였다.

발차기를 맞은 좀비가 건물까지 뚫고 저 멀리 날아갈 정도였으니까.

빠가각!

뒤이어 옆구리를 노리고 들어온 스켈레톤의 머리통이 손날치기 한 방에 날아갔다.

그리고 머리 없는 스켈레톤의 척추뼈를 뽑아들었다.

“소재 괜찮네.”

주민성은 척추뼈를 들고 리치에게 당당히 겨누며 말했다.

“3종 서비스 들어간다.”

눈앞의 리치에겐 갚아야 할 빚이 너무나도 많았다.

어이없이 희생당한 협회원들의 몫, 오랜 기간 준비해온 각성과 신사업을 방해한 몫.

마지막으로 떨어진 집값의 몫이었다.

물론 가중 처벌도 고려 대상이다.

주민성은 아예 리치를 심문해 입은 손해의 다섯 배 이상을 돌려줄 심산이었다.

“내구도 강화.”

스켈레톤의 척추뼈에 텐트천이 감겼다.

이것으로 절대 부러지지 않는 무기가 완성됐다.

빠악!

콰직!

당연하게도 스켈레톤이나 좀비 같은 하위 언데드 몬스터의 공격은 맞아주기조차 어려운 수준.

설령 맞는다 하더라도 주민성의 몸에는 흠집조차 나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것이 강화된 언데드라도.

“저, 저걸 혼자서…….”

어느새 문 앞까지 물러난 일행들이 경악했다.

무려 게이트가 생겨나고, 보스급 몬스터까지 발생한 위험 사태였다.

하지만 조금의 위험도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몬스터들이 안쓰러워 보일 정도로 수준 차이는 명확했다.

“너무 많군.”

주민성은 그대로 텐트가 감긴 척추뼈를 리치에게 있는 힘껏 던졌다.

결과는 명중.

척추뼈는 그대로 리치의 갈비뼈 사이에 박혔다.

“크흐흐! 이런 평범한 공격 따위!”

물론 효과는 없다.

하지만 주민성이 노린 것은 다음이었다.

“전부 엎드려요. 텐트까지 뒤집어쓰면 더 좋구요.”

“아? 네!”

사람들을 확인한 주민성은 걸리적거리는 몬스터들을 튕겨내며 주섬주섬 텐트를 덧입었다.

그리고 리치에게 말했다.

“건물 폭발. 텐트 904.”

콰과과과광!

소형 핵탄두라도 떨어진 것 같은 굉음이었다.

그 여파로 온갖 설비들이 건물까지 뚫고 튀어나갈 정도.

그 와중에 쓸려나간 몬스터는 덤이었다.

“크흐흐흐! 제법이구나! 하지만 이 정도로는……!”

여전히 리치만큼은 멀쩡했다.

하지만 이것은 잡다한 몬스터를 치우기 위한 수단일 뿐.

주민성의 연계 공격은 지금부터였다.

“이제 서비스 하나 끝났다.”

주민성의 손에는 거대한 말통 두 개가 들려있었다.

하나같이 물이 가득 찬 말통이었다.

당연하게도 리치는 이 물건들의 정체를 모른다.

“제법이다만 여기까지다. 제 발로 죽으러 들어오다니!”

리치는 자신이 유리하다고만 생각하는 모양이다.

오히려 빈틈까지 대놓고 노출하며 공격해오기 시작했다.

쉬익!

쾅!

확실히 거리가 좁아지니 리치가 쏘아내는 불덩이를 피해지기는 조금 더 어려워진 상태.

머리카락 끝부분이 순식간에 그을릴 정도로 매서운 불덩이였다.

“어쩌냐. 피해 버렸네.”

다음은 주민성의 차례.

주민성은 오른손의 말통을 휘둘러 리치의 두개골에 박혀있는 보석을 향해 내리꽂았다.

콰직!

말통은 그대로 박살났다.

당연하게도 리치는 피해를 느끼지 못한다.

“겨우 이 정도……!”

물론 물리적인 공격에 한정해서.

“응. 이 정도.”

“크가가가아아아아!”

말통 안에 들어있던 물은 수돗물이었다.

단지 건물 부가효과를 거쳐 미친 순도를 자랑하는 정화수로 바뀌었을 뿐.

그리고 이 정화수는 언데드를 상대로 무식할 정도의 효과를 자랑했다.

“성수 별거 있냐? 깨끗하면 장땡이지?”

“그아아아아아!”

이것이 리치에게 먹이는 첫 유효타였다.

“아직 하나 더 남았다.”

쾅!

주민성은 그대로 리치를 걷어차 쓰러뜨리는 데 성공했다.

갈비뼈 사이에 박힌 스켈레톤 척추뼈는 리치를 도망가지 못하게 만드는 말뚝 역할이었다.

곧이어 왼손에 있던 말통마저 척추뼈에 꽂혔다.

콰득!

이것으로 나머지 말통에 있던 정화수까지 리치에게 쏟아졌다.

“그가가가가가!”

“여기까진 서비스였고요.”

주민성은 다시금 인벤토리를 조작해 다른 물건을 꺼냈다.

이번엔 대야였다.

“두 개 깨먹었으면 많이 해 먹었지. 이제 절약 좀 하자.”

이젠 당연한 수순이다.

대야에도 정화수가 가득했다.

촤아아아!

인간이 생활하는 데 있어 물은 너무나도 중요하다.

특히 야외 생활을 한다면 더더욱.

그리고 주민성은 복구시킨 학교의 물탱크에서 꾸준히 물을 받아 인벤토리에 쟁여 둔 상태였다.

“그그극!”

리치는 완벽하게 무력화됐다.

대야를 시작으로 욕조, 간이 샤워시설까지 계속해서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촤아아!

빈 대야는 곧장 김정남에게 건네졌다.

“대야에 물 좀 받아주시겠어요?”

“아? 네!”

비록 이곳이 게이트가 되었다곤 하나, 지하수도 시설은 정상적으로 기능하는 상태였다.

물이라면 얼마든지 충당할 수 있었다.

“물 다 받으셨으면 텐트로 포장해서 주세요.”

“아, 알겠습니다.”

“다른 분들도 도와주세요.”

협회 건물이 물바다가 되어버린 탓에 더 이상 언데드 몬스터는 접근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새로이 튀어나온 몬스터는 나타나는 족족 소멸해버렸고.

그렇게 작업은 점점 수월해져갔다.

“그가가가가! 그만! 그만!”

“아직 두 번째 서비스 중입니다. 고객님.”

[텐트 855가 수납됩니다.]

[텐트 267이 수납됩니다.]

다음 공정은 더더욱 간단하다.

텐트로 포장된 대야를 인벤토리에 넣기만 해도 알아서 숙성되니까.

인벤토리의 시간적 괴리 덕분에 그 효율은 수백 배 이상이었다.

“자. 다음 대야 왔습니다. 고객님.”

“그만해애애애애! 그아아아!”

촤아아!

촤아!

이곳에선 S급 능력자도, 일반인도 구분할 필요가 없었다.

전부 대야를 나르는 서포터 역할이면 충분했다.

이렇게 협회 건물은 황당하리만큼 빠른 속도로 평화를 되찾아가기 시작했다.

“후우. 수고하셨습니다.”

그리고 간이 샤워 시설의 설치가 끝났다.

심지어 이젠 자동으로 정화수가 분사된다.

쏴아아아아!

“여기 물탱크에 물만 꼬박꼬박 넣어 주시면 됩니다.”

한창 대야를 나르는 와중에도 김정남의 입은 여전히 다물어지지 않았다.

“리치를 이렇게 쉽게 제압하는 모습은 처음 봤습니다. 레이드까지 각오했는데…….”

“언데드라 다행이었죠.”

언데드 대책은 주민성의 노후 준비 중 하나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한때는 현찰박치기로 성수를 사들여 편하게 마석을 모으려고 했었던 시절도 있었으니까.

“언데드는 오래 볼 생각이었거든요.”

노후 대책은 건물 부가효과 덕분에 훨씬 구체화되어 있었다.

쏴아아아!

“나중에는 더 큰 샤워기를 구할 생각이에요. 물이 흡수되지 않는 바닥재도 설치하고, 수도시설까지 설치하면 물도 절약할 수 있을 테죠.”

“…….”

주민성의 스케일에 이곳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말을 잃었다.

그리고 방금의 모든 대화는 만물소통을 통해 리치에게도 친절하게 번역됐다.

“항복! 항복한다! 모든 권리를 포기하겠다! 그아아아!”

“아직 세 번째 서비스 남았는데…….”

리치의 항복 선언과 함께 메시지가 떠올랐다.

[아크리치 크렌베인이 권리를 포기했습니다.]

[인천 동부의 지배권이 양도되었습니다.]

[해당 지역은 인천 게이트에 통합됩니다.]

[지배의 비석이 귀속됩니다.]

[보유중인 지배의 비석: 1]

“오잉.”

메시지가 끝남과 동시에, 근처에도 압도적인 에너지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쿠구구……!

즈민성 때도, 위희린 때도 봤었던 차원문이었다.

리치 역시 이를 인식했는지 필사적으로 팔을 뻗어대고 있었다.

“아. 도망가시려고?”

“그아아아! 권리는 포기했다! 이제 그만해라!”

상식적으로 생각한다면 리치의 말이 맞았다.

항복도 했고, 권리도 포기했으니까.

하지만 이건 내기도 아니었고, 격투기도 아니었다.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침공 전쟁이나 다름없었다.

“누구 맘대로? 너 아직 마석도 안 뱉었고 죽지도 않았잖아.”

지금도 정화수는 계속해서 쏟아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리치는 지긋지긋할 정도로 죽지 않고 고통받고 있었다.

“거기다 보스 몬스터면 유물까지 뱉어야지.”

리치가 건물주였으면 모를까, 주민성이 양보할 건 조금도 없었다.

심지어 발을 딛는 모든 곳이 주민성의 게이트로 바뀌었기 때문에 굳이 이런 방법을 통해 게이트를 양도받을 필요도 없었다.

“계산이 안 맞네요. 고객님.”

“그가가! 네놈은 악마냐! 악마가 어째서 우리에게!”

“와. 선 넘네.”

이상하리만큼 몬스터들은 주민성에게 사람 대우를 하지 않았다.

오크에 이어 이젠 악마였다.

“이렇게 뼈 마디마디까지 씻겨주는 악마도 있냐?”

물론 리치의 뼈는 정화수가 닿는 족족 부식되고 있었다.

“그가가가!”

“더 이상 대화할 필요까지도 없겠지. 읏차.”

이젠 대형 욕조의 차례였다.

주민성은 리치를 손수 들어 정화수가 가득 담긴 욕조에 리치를 옮겨 넣었다.

“그르륵!”

마무리는 내구도를 강화시킨 텐트 포장.

이것으로 리치는 욕조를 영원히 벗어날 수 없게 됐다.

“이대론 애매해. 물도 오염될 수 있으니까 한 겹 더.”

말로만 한 겹이었을 뿐.

주민성은 텐트를 다섯 겹은 더 씌우고 나서야 만족했다.

“후우.”

건물 부가효과 중 하나인 소음 차단효과가 적용됐다.

이젠 리치의 비명마저도 들리지 않는다.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

하나같이 미친놈이라도 본 것 같은 표정이다.

“아.”

생각해 보니 이해 못 할 정도는 아니었다.

몬스터와 대화를 나누며 온갖 괴팍한 짓을 저지르는 게 정상적으로 보일 리가 없었으니까.

오히려 리치가 짠하게 보일정도로 주민성의 활약은 충격적이었다.

“오해하지 마세요. 몬스터랑 대화할 수 있는 능력이 있거든요.”

“아…….”

과정이 어떻든, 이들은 모두 아군이나 마찬가지였다.

그것도 목숨까지 건.

이런 사람들을 위해 조금의 설명 정도는 서로간의 신뢰를 더욱 돈독히 할 수 있는 수단이었다.

“조금만 쉬겠습니다. 다들 움직일 준비해 주세요.”

이에 한 협회원이 답했다.

“곧 다른 지부의 능력자들이 올 텐데 괜찮습니까?”

“못 올걸요.”

주민성은 휴대폰 뉴스를 켜 사람들에게 내밀었다.

-각 지역 대피소 위치는, 하단의 자막을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겠습니다. 2차 대격변이 발생했습니다. 국민 여러분께선…….

끔찍한 침묵이 감돌았다.

사태는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심각했으니까.

그렇게 앵커의 리딩이 한차례 끝나고, 그제야 하나 둘 힘겹게 입을 열기 시작했다.

“맙소사…….”

“……진짜 대격변이라고?”

요약하면, 세계 어느 곳을 가도 게이트로 변하지 않은 장소가 없고, 최대한 근처의 능력자들과 협력해 알아서 살아남고 버티라는 내용이었다.

“협회도 신경 쓸 여력 없을 겁니다. 전 세계가 패닉 상태라서. 이제 우리는 우리대로 살아남아야 해요.”

협회원들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우, 우리 가족들은!”

“아아……. 우리 지호…….”

주민성은 뒤이어 인벤토리에서 서류 한 장을 꺼냈다.

한때, 신나게 경매를 진행하고 이용료 청구를 하며 받아 뒀던 서류였다.

“여기 다들 집 주소 적으셨더라고요. 가깝길래 구출 팀도 진작 파견해 뒀습니다.”

분위기는 순식간에 반전됐다.

“멀리서 출퇴근하는 분은 아무도 안 계셔서 다행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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