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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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분 (2)
2022.04.22.
“취이익!”
“취익!”
위희린과 도착한 오크 구역은 평소 볼 수 없었던 활기가 가득했다.
“더욱 화려하게 세워라! 취이!”
“취! 깃발을 높이 들어올려라!”
위엄을 나타내기 위함인지, 이전에 못보던 장식들도 가득했다.
심지어 재료들은 어떠한가.
오크라는 이미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소재들뿐이었다.
“그 가난하던 녀석들이 벌써 이렇게…….”
가슴이 웅장해지는 광경이었다.
반면, 위희린의 표정은 점점 벌레 씹은 것처럼 바뀌었지만.
더불어 만물소통을 위해 텐트까지 함께 뒤집어쓰고 있는 상황이었다.
“설마 본좌를 이런 곳에서 머물게 할 생각은…….”
위희린의 위상은 180도 바뀐 상황이었다.
고객에서 테러범이 되었으니까.
물론 천마라는 어마어마한 초강자라는 포지션도 고려했기에 최악의 대우까진 아니었다.
“저래 보여도 쓰던 호텔보다 나을걸요?”
고대 등급 건물에는 건물 특유의 특성이 추가로 존재했기에 조금 다른 시각으로 보자면 더욱 좋은 혜택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잠조차 편히 잘 수 없어 보인다만.”
“음? 그럴 리가 없는데…….”
“이렇게 본좌를 경계하는 마물들이 많은데도 말이냐?”
“오잉.”
그러고 보니 오크들에겐 한 가지 공통점이 존재했다.
대놓고 내색은 하지 않지만, 하나같이 위희린을 경계하고 있었던 것이다.
“문파의 수장급은 될법한 마물들이 이리도 많다니…….”
위희린의 시선은 즈쉬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문파의 수장이 정확히 뭘 의미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강한 상대를 의식하고 있다는 건 주민성도 쉽게 알 수 있었다.
‘확실히 어마어마하게 성장하긴 했군.’
상대의 강함은 이제 주민성도 느낄 수 있었다.
지금의 즈쉬는 게이트 2인자인 제르취조차 승기를 장담하지 못할 정도로 강해져 있었다.
“취익.”
곧이어 즈쉬가 접근해 오기 시작했다.
그러자 위희린의 품에서 검 한 자루가 나타났다.
무기에 대한 안목이 없어도 어마어마하게 예리해 보이는 검이었다.
‘뭐지? 인벤토리가 아닌데? 무기는 언제 숨겼대?’
위희린의 경계에도 불구하고 즈쉬는 아무렇지 않은 듯 걸어왔다.
“멈춰라.”
“멈춰야하는 건 희린 씨고요.”
“…….”
주민성은 즈쉬의 접근 이유를 알고 있었다.
들고 있는 투박한 나무 컵에서 익숙한 향기가 느껴졌으니까.
“꿀물이야?”
“취익. 벌꿀주입니다. 그것도 아주 정제된.”
잔은 총 둘.
즈쉬는 대범하게도 위희린에게까지 벌꿀주를 넘겼다.
“마물과 소통하는 인간이라니.”
즈쉬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위희린도 이쯤이면 알아차렸을 터였다.
꿀물이라는 단어와 그에 맞는 행동이 일치했으니까.
“대충 환영한다는 뜻이겠죠. 뭐. 한잔하세요.”
“……흐음.”
술에 대한 거부감은 없는지 위희린은 벌꿀주를 그대로 들이켰다.
“……말도 안 되게 좋군.”
“당연하죠. 고대 땅벌 집에서 채취한 꿀이거든요.”
주민성 역시 벌꿀주에 만족했다.
[포식자의 허기가 발동됩니다.]
[녹아내린 건물을 섭취합니다.]
[절대자의 손길이 닿은 건물입니다.]
[포식자의 허기의 효과가 다섯 배 증가합니다.]
[피식 대상의 힘을 크게 흡수합니다.]
[마력 흡수 능력이 부여됩니다.]
[상대의 마력을 흡수할 수 있습니다.]
상당히 좋은 판정의 포식자의 허기에도 불구하고, 끝을 보일 줄 모르는 보상 덕분이었다.
‘확실히 하위 차원에서 얻은 능력은 다르단 말이지.’
이것이야말로 오크의 성장 동력이었으리라.
새로운 지배 종에 걸맞은 능력이기도 했고.
“이쪽은 위희린 씨. 그리고 이쪽은 즈쉬.”
주민성은 벌꿀주 덕분에 풀린 분위기를 이용해 서로를 소개했다.
“호칭은 알아서들 정하시고, 이제부터 할 일은 뭐냐면…….”
설명은 상당히 간략했다.
애초에 위희린은 설명하는 역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대충 손짓으로 하나하나 짚어주면 됩니다.”
바디 랭귀지.
언어장벽을 극복하는 방법 중 하나였다.
말이 통하지 않아 생기는 오해는 오히려 주민성이 바라던 바였고.
그렇게 대략적인 설명 과정은 간단하게 끝났다.
“……그렇군. 나름의 재미는 있을 듯하구나. 이제 가봐라.”
왜인지 위희린은 투쟁심이 끓어오른 모양이다.
대상은 물론 즈쉬.
물론 오크들이 불편해하면 직접 중재라도 할 생각이었다.
“취익. 모처럼 보는 괴물이군요.”
위희린은 오크들에게도 괴물 그 자체로 보였던 모양.
이들 또한 투쟁심이라면 어디서 빠지지 않는 종족이었다.
“그래. 다치지 말고 살살 놀아.”
“취익.”
“희린 씨도 별일 있으면 아까 봤던 집사한테 말해요.”
“그래.”
마지막으로 주민성은 세입자들이 임시로 지낼 텐트를 지급했다.
졸지에 호텔을 잃은 즈민성의 표정이 상당히 시무룩해 보였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후로도 바쁘게 움직였다.
성아영에게 업무 인수인계는 물론, 안산과 인천 양쪽의 현황까지 전부 파악해야 했다.
실험체 쪽은 특히 더 중요했고.
그렇게 주민성은 다음 작전을 위한 준비에 착수했다.
* * *
그로부터 며칠이 지났다.
김정남은 승급 심사를 마치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안산 게이트에 도착했다.
목적지는 단연 편의점과 헬스장.
“키히히!”
김정남은 여느 때처럼 편의점 닭가슴살을 구매하는 루틴에 충실했다.
하지만 이전과는 다른 점이 한 가지 있었다.
“이게 관장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던…….”
“맞아. 바깥에선 구할 수 없는 닭가슴살이지.”
“오오.”
평소 게이트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인물의 존재였다.
“일단 먹어 봐.”
김정남은 S급 승급에 성공하자마자 제자를 받았다.
헬스장에서 평소부터 눈여겨보던 회원 중 한 명이었다.
그것도 일반인.
“어때. 호영아?”
“으으음! 식감부터가 확실히 달라요!”
“그렇지?”
유호영.
갓 스무 살의 눈부신 재능을 가진 일반인이었다.
당연하게도 근처의 유명 길드에서도 눈독을 들이는 것은 기본.
하지만 유호영은 상당히 진중하고 의리 깊은 타입으로, 돈보단 사람과의 인연을 중시했다.
“크으! 역시 관장님!”
“녀석.”
그런 친구였기에 김정남은 승급을 마치자마자 유호영을 섭외했다.
능력 각성도 얼마든 지원해 줄 용의가 있었다.
일반인인 유호영을 굳이 무리해서 게이트에 데려온 이유는 간단했다.
능력자로서의 메리트를 알려주기 위해서였다.
“어때. 호영아. 능력자만 되면 이 게이트에도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어.”
“하하……. 운동이라면 지금도 충분히 할 수 있잖아요? 다음 달이면 재형이도 각성 비용 달성이니 한 달만 참을게요.”
“끄응……. 한 달도 긴데…….”
“조금만 더 참을게요. 관장님.”
유호영에겐 어릴 적부터 함께 자라 온 친구 네 명이 있었다.
태어난 시간은 다르지만, 각성만큼은 동시에 하자는 약속을 한 상태이기도 했다.
이름하야 요구르트 결의.
“재형이가 마지막이에요.”
이들의 10대 시절 벌이 방법은 다양했다.
길드 건물 청소 아르바이트부터 짐꾼, 청소년 주식까지 저마다의 재능에 맞는 업종에 뛰어들어 돈을 모아온 것이다.
“참 제자 받기 힘들구만. 흐흐.”
유호영은 머쓱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아무리 봐도 신기한 편의점이었다.
짐꾼으로도 일한 적이 있어 게이트 초행도 아니었기에 더욱 그랬다.
“이 고블린 점원도 그렇고, 여기 엄청난 능력자분이 계신가 봐요. 규모도 엄청나고.”
“그렇지. 내 소속도 여기야.”
“어? 관장님이 길드장 아니에요?”
“응.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네. 근데 만족하고 있어.”“혹시……. 나쁜 집단은 아니죠?”
유호영은 근처의 능력자를 경계하고 있었다.
대상은 자기 몸집만 한 총기를 매고 있는 여자아이였다.
물론 이 아이의 정체는 봉춘향.
정확히는 분신이었지만, 유호영은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나쁜 집단은 무슨. 오히려 이 세상에 과분하신 분이지.”
“그런가요? 근데 관장님 이제 S급이잖아요. 관장님이 오셨는데 딱히 맞이하러 오는 분도 없고……. 조금 섭섭해요.”
타당한 이야기였다.
당장 짐꾼으로 갔던 길드만 해도 그랬다.
그곳의 S급 능력자가 받는 대우는 어마어마했으니까.
물론 짐꾼으로 들어간 유호영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유호영은 자신이 받던 대우가 왜 좋았는지도 잘 모르고 있었다.
“오히려 사람들과 부딪히지 않는다는 게 더 좋다는 사실을 너도 언젠간 알겠지. 그리고 여기는 건물들 효과가 장난 아니거든.”
“건물이요?”
“응.”
편의점에 도착하기까지, 이곳엔 수많은 건물들이 있었다.
폐건물뿐만이 아니었다.
새로 지어지는 건물도 존재했다.
“건물이 효과가 있어요? 건물은 그냥 건물 아닌가.”
“여긴 달라.”
김정남의 표정이 변했다.
흡사 광신도에 가까운 표정이었다.
“과, 관장님?”
“후우. 처음부터 전부 설명해 주고 싶지만, 능력자가 아니라 어쩔 수가 없구나. 참아야지. 으으.”
“그 정도예요?”
당장이라도 능력자가 되어 호기심을 해결하고 싶었지만, 유호영은 친구들과의 의리를 지켰다.
“……한 달만 지나면 저도 알 수 있겠죠?”
“당연하지.”
다음으로 도착한 장소는 헬스장이었다.
김정남이 입이 마르도록 칭찬하던 장소이기도 했다.
“오. 진짜 2020년대 기구들이네요?”
“그치?”
“상태도 완전 멀쩡하고……. 대박. 써 봐도 돼요?”
“그럼! 당연하지!”
유호영은 곧바로 옷을 갈아입고 설레는 기분으로 몸을 풀며 운동 순서를 짰다.
“일단 상체부터 3세트 조지고…….”
“아, 호영아.”
“네?”
“너 3대 몇이었지?”
“저번 달이 아마 630이었죠?”
3대 630.
갓 스무 살이라기엔 너무나도 터무니없는 기록이었다.
“이번 기회에 기록 한번 깨자. 일단 한 바퀴 싹 돌고 와.”
“네……? 3대 측정하기 전에요?”
“응.”
김정남의 말대로라면 힘이 빠져 평소의 기록도 내지 못할 터였다.
그럼에도 김정남의 표정엔 확신이 있었다.
“해, 해 볼게요.”
끼릭.
유호영은 벤치프레스로 이동해 무게를 평소보다 조금 낮췄다.
“아냐. 호영아. 평소 무게로.”
“아……. 넵.”
호칭은 관장이었지만, 공식적으로 유호영은 김정남의 직속 제자가 된 상황이었다.
거절해서 좋을 일이 하나 없는 것이다.
그렇게 유호영은 평소에 들던 무게인 170kg을 설정했다.
“후우.”
그리고 1세트.
철컹!
“어?”
김정남의 입가엔 미소가 가득했다.
“어때?”
유호영은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는 듯, 벤치프레스와 김정남을 번갈아보며 황당해하고 있었다.
“자, 잠깐만요! 관장님! 한 번만 더 들어볼게요!”
“얼마든지.”
유호영은 1세트로 모자라 5세트를 반복했다.
그럼에도 팔은 멀쩡했다.
아니, 오히려 더 좋아진 느낌이었다.
“마, 말도 안 돼……. 관장님! 이거 뭐예요? 어떻게 된 거죠?”
“후후.”
김정남은 그저 웃어 보일 뿐이었다.
그리고 넌지시 말했다.
“아, 능력자가 아니라서 말해 주기가 곤란하네.”
“…….”
이것이 김정남의 속셈이었다.
그 말을 끝으로 김정남 역시 운동을 시작했다.
“근육은 계속 성장하는데 지치질 않으니 원. 쇠질 할 맛 나는구만.”
철컹!
유호영은 아직 들어올릴 수 없는 압도적인 무게의 향연!
본연의 신체 강화 능력도 사용하지 않았기에 더욱 경이적인 광경이었다.
이는 한 시간째 반복됐다.
“……관장님.”
유호영은 뭔가 결심한 표정이었다.
김정남 역시 이를 눈치챘는지 입가엔 미소가 지워지질 않는다.
“각성……. 바로 할게요. 친구들도 다 설득해볼게요. 재철이한테는 돈 조금만 빌려주실 수 있어요?”
평소의 유호영이 내릴 수 없는 결론이었다.
그만큼 이곳은 유혹적인 장소였다.
“제자 부탁인데 당연히 들어줘야지. 빌려줄 것도 없다. 그냥 내줄테니까 친구들 다 데려와.”
“저, 정말요?”
“그래. 대신, 지부는 내가 정할 건데 괜찮지?”
“그건 상관없어요! 정말 내 주시는 거예요?”
“그럼! 춘향 씨. 계십니까?”
김정남은 헬스장 바깥을 향해 외치고 있었다.
“어? 저 아이는…….”
그리고 곧이어 이전에 봤던 여자아이가 들어왔다.
“예. 말씀하십시오.”
“각성. 예정대로 내일 합시다.”
“알겠습니다. 대장님께도 그렇게 전달하겠습니다.”
봉춘향이 다시 물러나고, 유호영은 황당한 표정으로 자동문을 바라볼 뿐이었다.
“저 아이. 능력자 아니었어요?”
“아냐. 너랑 같이 각성할 일반인 중 한 명이지.”
오늘은 전부터 꾸준히 준비하던 작전 하루 전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