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지분 (1) (141/250)


지분 (1)
2022.04.21.


“뭐 하는 거야. 대체.”

갑작스런 건물 파손에 당황한 주민성은 곧장 위희린에게 외쳤다.

“이봐요! 지금 뭐 하세요! 건물이 부서졌다구요!”

위희린은 여전히 묵묵부답.

주민성으로선 혼란스러울 따름이었다.

시야를 가득 메우는 메시지도 이에 한몫했다.

“아오. 대체 뭐야.”

메시지는 겹쳐 있었다.

특히 포식자의 허기와 관련된 메시지는 제대로 확인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다른 글씨에 잠겨 있었다.

가장 선명한 메시지는 이러했다.

[세입자가 머무는 건물이 파손됩니다.]

[세입자에 의한 파손입니다.]

[해당 세입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합니다.]

[해당 세입자의 차원 이동 권한을 임시 차단합니다.]

“하. 이런 경우는 처음인데.”

빈틈없이 빽빽한 메시지도 아니고 겹치는 메시지였다.

주민성에게도 이렇게까지 강조되는 수준이라면 위희린 또한 다르지 않을 터였다.

“…….”

가공할 정도의 집중력이었다.

위희린은 그럼에도 꿈쩍하지 않는다.

심지어 접근조차 불가능했다.

그녀의 주변으로 매서운 폭풍이 불어닥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 폭풍이 빌딩을 파괴한 주범이리라.

“취, 취익.”

즈민성에게도 별도의 메시지가 떠올랐는지 허공을 바라보며 당황하는 모습이었다.

“참나.”

결국은 폭풍이 멎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쯧. 흥이 깨졌군.”

화가 나서 견디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해당 세입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합니다.]

이 메시지 덕분에 주민성은 인내할 수 있었다.

“뭘 받으려나……. 될 수 있으면 먹을 수 있는 게 좋을 텐데. 인형설삼보다 훨씬 심플한 걸로.”

주민성은 인벤토리에서 인형설삼을 꺼내 만지작거리며 폭풍이 멎기를 기다렸다.

* * *

폴란드 크라쿠프의 분위기 있는 허름한 술집.

아무런 음악도 없는 적막한 실내엔 말끔한 차림의 남자가 무표정하게 앉아 있었다.

신우빈이었다.

“3. 2. 1.”

달칵.

화려한 순금 시계 옆의 작은 버튼이 눌리고, 곧이어 비서가 달려왔다.

“비석이 반응하고 있습니다. 도련님. 이번 테스트도 성공입니다.”

“……좋아.”

신우빈은 그대로 술집을 나섰다.

“크워…….”

동시에, 끔찍한 수의 좀비들이 신우빈과 비서에게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곳은 도시 전체를 아우르는 초대형 규모의 게이트였다.

파직!

“이쪽입니다. 도련님.”

그럼에도 걱정은 없었다.

치열한 경쟁 끝에 스카우트한 외국인 직원 파벨이 함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신우빈이 직접 발품을 팔아 설득할 정도로 가치있는 능력자였다.

“신호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입니다.”

“귀찮게 됐군.”

한때는 지옥이었고, 한때는 유명한 관광명소였다.

지금은 언데드 몬스터와 어우러져 처음보다 더욱 끔찍한 명성을 자랑하는 장소가 된 곳이기도 했다.

“가지.”

“예.”

신우빈은 느긋하게 차량에 탑승했다.

앞을 막아서는 몬스터는 없었다.

정확히 접근하기 직전의 위치에서 죽어있었다.

“이런 사기 같은 능력을 또 보게 될 줄이야…….”

“예?”

“아아. 아무것도 아니야.”

파벨의 너무나도 터무니없는 능력에 자신도 모르게 한국어로 말해버린 탓이었다.

“한국어도 빨리 배워야겠군요.”

“괜찮아. 담당 직원이 곧 배정될 테니까.”

파벨은 주민성과 마찬가지로 특이한 능력자였다.

같은 계열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규격 외라는 기준이라면.

분석가라는 능력명부터가 남달랐고, FF급이라는 등급 또한 남달랐다.

등급 따위는 이제 와선 참고할 가치도 없었다.

이미 주민성이라는 사기적인 표본이 존재했으니까.

“아직도 꿈만 같습니다. 협회에 들어가는 것보다 훨씬 다행이라고 생각하고요.”

“당연한 말을. 장담컨대, 우리만큼 돌연변이 등급을 대우해주는 회사는 없을 거다.”

파벨에 대해서 알게 된 건, 신우빈이 인천 게이트를 떠날 당시였다.

-도련님. 특이한 외국인 능력자가 밀입국했다는 정보입니다. 협회 측의 도움을 받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유럽 내부에선 전설적인 주식 투자자로도 유명한 인물입니다. 정 회장 성향 상, 돈이 되는 사람에 해당합니다.

-작은 도련님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파벨이라는 폴란드인 능력자를 스카우트하려는 모양입니다.

-회장님께서 한 외국인을 찾고 있습니다. 앞서 말한 인물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매일 은밀하게 쏟아지는 수많은 정보들.

처음엔 신회장과 협회, 심지어 동생까지 노리는 인물이었기에 관심이 갔다.

유럽이라는 차기 행선지와도 동선이 겹쳤다.

-파벨의 등급이 확인되었습니다. 주민성의 사례 때문인지 협회에서도 예외적인 방침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신우빈은 협회에서 포섭하려는 파벨을 중간에 낚아채는 데 성공했다.

주민성이라는 불운한 능력자에 대한 설명, 그리고 협회의 실체를 설명하는 것으로도 간단했다.

노력에 비해 거둔 성과는 어마어마했다.

파벨은 투자하면 할수록 큰 효과를 볼 수 있는 능력자였다.

철컥! 철컥!

신성의 특제 트랩이 연이어 발동했다.

동시에, 좀비들의 발목이 순식간에 절단됐다.

전부 파벨이 설치한 것들이다.

조금의 낭비도 없이, 정확히 좀비들의 머릿수만큼 설치된 트랩이었다.

“예상대로 분석가 등급이 16회 상승했습니다.”

“좋군.”

파벨은 몬스터의 출현도, 자신의 성장마저도 전부 예측할 수 있었다.

본연의 능력인 분석에 따른 결과였다.

“곧 수용소에 도착합니다.”

“드디어 마지막 테스트가 남았군.”

신우빈의 업무는 스카우트만이 아니었다.

요즘 전 세계적으로 이슈되는 기묘한 비석.

그리고 파벨의 도움으로 완성 단계에 도달한 비석 분석 장치가 완성을 앞두고 있었다.

이는 협회의 언론 통제에 크게 한 방 먹일 수 있는 카드가 될 예정이었다.

‘이 정도 성과라면 주민성 그 괴팍한 놈도 어쩔 수 없을 테지. 이것으로 녀석은 우리 소속이다.’

주민성은 어느새 신우빈의 최우선 타겟이 되어 있었다.

신성이 가진 투자력이라면 주민성은 파벨보다도 더욱 어마어마한 성장을 보일 수 있으리라.

그리고 그의 성장은 곧 신성의 성장을 뜻했다.

동시에, 절대적인 실적과도 일맥상통했다.

“어서 일 마치고 한국에 돌아가 김치찌개를 먹고 싶습니다.”

“김치찌개도 좋지만, 한국은 그 외에도 재미있는 것들이 굉장히 많아. 골때리는 능력자도 있고. 기대하라고.”

아우슈비츠의 침울한 분위기를 털어내기 위한 대화였다.

* * *

“이게 뭐냐고요.”

“…….”

천마 위희린과 주민성은 근처 폐건물에서 독대를 하고 있었다.

당연 주도권은 주민성에게 있었다.

“다 부서졌잖아요. 어쩔 거예요.”

“…….”

“제 자식같은 건물들이라고요.”

“……정말 소중한 건물이 맞긴 한가? 자네는 지금 웃고 있다만?”

“…….”

주민성의 입가는 쉴 새 없이 씰룩이고 있었다.

전혀 슬퍼 보이지 않는 표정이다.

“아 몰라요. 아무튼 손해야 손해.”

“후우. 그래. 하여튼 건물을 파손한 것은 내 잘못이 맞으니…….”

원래의 세계였다면 수천, 수만의 교도들에게 축하를 받을 일이었다.

그동안 막혀 있던 벽을 부수고, 더욱 강한 경지에 도달했으니까.

때문에 건물의 손실 따위는 신경 쓸 수준에도 포함되지 않는다.

하지만 여기서는 달랐다.

“무슨 명상을 건물이 부서질 정도로 해요? 남의 집이라는 자각이 있기나 한 겁니까?”

“끄응……. 내 분명 배상하겠다 했거늘.”

“당장 들어오는 게 없잖아요.”

“내 당장은 상황이 여의치 않다…….”

위희린도 나름의 고충을 안고 있었다.

[이용중인 건물을 파손했습니다.]

[건물 파손에 대한 손해를 배상해야 합니다.]

[차원 이동 권한이 임시 차단됩니다.]

여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었으나.

[배상금은 기존 납부액의 오십 배입니다.]

[배상엔 비슷한 가치의 물건도 허용됩니다.]

이 부분이 너무나도 불합리했다.

‘인형설삼을 어디서 또 구한단 말인가!’

인형설삼은 세상 전체를 뒤져도 열 뿌리 모으기조차 힘든, 극도로 귀한 약재였다.

그럼에도 배상에 필요한 인형설삼은 무려 오십 뿌리.

심지어 차원 이동까지 봉인되어 위희린은 오도가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내 대신 일을 해 주마. 천하의 그 누구도 본좌를 부리지 못하느니라. 이는 둘도 없는 특권이지.”

“오호.”

어느 세상이나 마물은 존재했다.

특히 인간이 사는 차원은 언제나 치열한 전장이었고.

“이곳에서도 많은 마물들이 느껴지는구나. 본좌라면 전부 토벌해 줄 수도 있지. 어떤가?”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전부라는 말은 농담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이를 뒷받침할 힘도 가졌다.

방금의 운기조식을 통한 성과였다.

‘무형지독을 해독해낸 걸로 모자라 새로운 경지까지 도달했다. 과할 정도의 보상이라곤 생각하나, 은원은 확실히 갚아주는게 좋겠지.’

위희린의 생각과 달리 주민성의 표정은 한없이 심각해졌다.

“설마 몬스터를 말하는 겁니까?”

“그래.”

오히려 화가 난 듯한 표정이다.

“고객님은 제게 얼마나 더 손해를 끼치실 생각인가요……. 여기 있는 몬스터들 전부 제 부하들인데요.”

“……뭐?”

위희린은 경악했다.

여태 알고 있는 사람중 몬스터를 부리는 인간은 오로지 혈마 뿐이었기 때문이다.

주민성의 곁에 있는 초강자 오크는 물론 논외였다.

몬스터도 일정 경지를 초월하게 되면 독립적인 사고가 가능하니까.

이는 강자로서의 예우였다.

“……그대는 혈마술도 익혔는가?”

“그런 건 모르겠고요. 몬스터 사냥은 저도 할 수 있으니까 패스. 다른 배상을 원합니다.”

“크윽…….”

그동안 모은 영약은 전부 차원 너머에 있었다.

심지어 경매장에 등록한 거라곤 수련의 석실 하나뿐.

이는 수십년째 팔리지 않는 악성 재고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인형설삼급의 영약 수천 개도 구매할 수 있는 막대한 가치를 지닌 건물이었기에 타산이 맞지 않는다.

“……후우. 살다 보니 별꼴을 다 보는군. 좋다. 뭐든 시켜라. 노동을 통해 갚도록 하지.”

“그 말. 후회하지 않으시죠?”

“그 어떤 재앙도 본좌 앞에선 티끌에 불과하다.”

“오호라.”

주민성은 지금도 쉴 새 없이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었다.

‘이 사람은 실험체 이상의 카드가 될 수 있겠지. 일단 강하기도 하고.’

가뜩이나 인력이 부족한 게이트였기에 위희린은 너무나 유용한 존재였다.

심지어 송몽룡이나 봉춘향처럼 나이의 제약이 있는 것도 아니고, 김 대위처럼 수하를 이끌지도 않으며 성아영이나 임진석처럼 협회와 얽혀있는 인물도 아니었다.

‘자유로운 사업 구상이 가능해!’

인천 게이트는 외부인들에게 오픈할 예정이었기에 온갖 사업 구상이 떠올랐다.

그리고 주민성은 뇌리속에 떠오른 단어를 그대로 내뱉었다.

“……천마 투어.”

“…….”

파격적인 네이밍에 주변은 그대로 정적에 휩싸였다.

충격에서 간신히 벗어난 위희린이 말했다.

“……내가 지금 뭘 듣고 있는거지?”

“천마 투어로 정했습니다.”

“본좌 앞에서 천마라는 호칭을…….”

주민성은 신나는 표정으로 설명을 시작했다.

“천마 위희린 씨. 고객님은 당분간 알바 좀 해 주셔야겠습니다. 관광 가이드 겸 치안 요원으로.”

“……알아듣게 설명하거라.”

지금 이 순간에도 근처 공터엔 오크 마을이 형성되고 있었다.

오래전부터 유지되어 온 오크 양식의 건물이었기에 건물 등급은 당연히 고대 등급.

발만 들이면 소유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제부터 위희린 씨는 오크 마을의 안내역을 담당하실 겁니다. 각종 체험학습을 통한 오크 문화 체험. 그리고 오크풍 호텔 숙박까지.”

“…….”

상당히 모험적인 사업이었다.

그럼에도 메리트는 존재한다.

세상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체험이니까.

여기에 주민성은 한 가지 작전을 더 숨겼다.

‘최대한 생생한 오크 문화를 체험시켜주다 보면 반드시 분쟁이 일어난다.’

오크는 인간 기준으로 상당히 거친 생태를 자랑했다.

따라서 인간이 적응하기엔 수많은 트러블을 동반할 가능성도 컸다.

‘거기서 듣지도 보지도 못한 강력한 능력자의 출현. 온갖 길드들의 관심도 받을 수 있겠지.’

관심이 커지면 커질수록 강력한 능력자들이 몰려들 터였다.

그런 능력자들까지 전부 제압해내는 무소속 능력자는 사람들을 더욱 열광시킬 것이고.

“……어렵구나. 하여튼 알겠다. 저쪽으로 가면 되나?”

“예. 따라오십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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