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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입자 (4) (140/250)


세입자 (4)
2022.04.20.


1번 세입자는 3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미녀였다.

상식적으로 입기 꺼려지는 특이한 복장도 상당히 눈에 띈다.

‘다른 차원 사람인가?’

상대의 말투가 조금 이상하지만, 만물소통 덕분에 대화는 문제없다.

“어서 오세요.”

“……음?”

말이 통해서일까.

눈앞의 여자는 굉장히 부끄러워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혼잣말로 뱉었을 ‘본좌가 왔느니라’ 하는 소리를 알아들었다는 게 민망했을 터였다.

“시, 신기한 주술이군.”

만물소통도 단번에 알아보는 게 확실히 범상치 않은 상대였다.

“별거 아닙니다. 그보다 부상 치료가 목적이셨죠? 납부 끝내 주세요. 방으로 안내해 드릴게요.”

“그, 그래…….”

여자는 품에서 뭔가를 꺼내 경매장 인벤토리에 넣었다.

아마도 그쪽에서 사용하는 화폐이리라.

[인형설삼이 수납됩니다.]

메시지는 고작 한 줄뿐이었다.

‘이게 끝? 벌집도 꽤 많이 수납하던데, 비싼 물건인가?’

주민성의 의아함에도 아랑곳 않고 여자가 말했다.

“천하에도 몇 없는 영약이니라. 이 정도면 자유롭게 머물러도 문제없겠지.”

인형설삼이라는 화폐는 가치가 어마어마한 모양.

주민성은 좀 더 자세한 견적을 잡아보기 위해 질문했다.

“얼마쯤 머무르실 예정이세요?”

그러자 눈앞의 여자가 섬뜩한 표정으로 답했다.

아무렇지 않게 무식한 살기를 뿌려대는 게 가관이다.

“한 달 주겠다.”

“네?”

“한 달 안에 부상이 치료되지 않을 경우, 본좌의 시간을 빼앗은 대가로 주인장의 목숨을 받도록 하지.”

갑자기 죽인단다.

물론, 부상이 치료되지 않았을 경우.

덕분에 상대의 성격이 괴팍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대응책이라면 존재한다.

“아, 이곳의 주인은 제 옆에 있는 여자입니다. 저는 그냥 소통 담당이거든요.”

성아영이라면 얼마든지 팔아도 괜찮았다.

무슨 능력인지 아직도 밝혀내지 못했지만, 성아영은 죽지 않는 능력자였기 때문이다.

“저 여자. 중국어가 조금 이상해. 못 알아듣겠어.”

그런 성아영을 바라보는 여자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본좌를 능멸하지 마라. 네놈이나 곁의 마물이라면 모를까. 저 아이는 하늘의 경지에 도달하지도 못했거늘.”

“……그냥 기분 전환용 농담이었습니다.”

단번에 들켰다.

눈앞의 여자는 이곳의 강자가 주민성과 즈민성임을 진작 알아차린 상태였다.

‘저쪽 동네에서 차원 경매장을 하늘의 경지라고 하는 건가?’

주민성은 생각을 정리하며, 1번 세입자를 위해 마련한 방문을 열었다.

“이 방입니다. 편히 쉬시고, 식사 필요할 때 불러 주세요.”

상대가 아무리 적대적이라 한들, 주민성에겐 자신이 있었다.

팔크라스 고기를 먹고도 감동하지 않을 사람은 없었으니까.

‘일단 쉬게 내버려두고, 바비큐장에서 제대로 홀려보자.’

그런데 문제가 한 가지 있었다.

이 특이한 세입자는 방에 들어가지도 않고 주민성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의원은 어디 있지? 본좌의 병은 방에서 쉰다고 낫는 수준이 아니다.”

“이 건물이 의원인데요…….”

“…….”

“조금 착각하신 모양이에요. 손님. 저는 건물을 강화시키는 능력자거든요. 평범한 건물과는 다를 겁니다. 일단 쉬십쇼.”

그럼에도 1번 세입자는 얼굴을 찡그리며 주민성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정말 끔찍한 접대로다. 인형설삼이 아까워지기 시작했어…….”

“그럼 차라도 드릴까요?”

세입자의 적대는 곤란했다.

상대가 아직 진상으로 밝혀지지 않은 이상, 서비스를 추가할 필요가 있었다.

“차……. 좋다. 본좌의 입맛은 아주 까다롭느니라. 어디 한번 만족시켜 보거라.”

“네. 그러니 제발 들어가 주세요.”

“…….”

예민한 손님이었다.

때문에 주민성은 성아영과 즈민성에게 손짓해 둘을 로비로 돌려보냈다.

‘마실 건 뭐가 좋으려나.’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십전대보탕이었다.

몸에도 좋고, 맛도 나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상대의 수준이 문제였다.

‘인형설삼이면 분명 삼의 한 종류일 텐데. 어설픈 약재는 오히려 기분을 거스를 가능성이 커.’

자연히 후보는 커피와 콜라가 남게 됐다.

그중에서도 건강에 좀 더 좋은 쪽은 커피.

‘커피로 하자.’

주민성은 그대로 커피를 타기 시작했다.

물론 단순한 커피를 대접할 생각은 없었다.

“혹시 단 거 좋아하세요?”

“……싫어하지 않는다.”

따끈한 커피에 로얄이 붙은 하위차원표 땅굴벌꿀을 첨가시켰다.

이렇게 만들면 쓴맛이 거슬리지도 않을 테고, 단맛으로 손님의 기분을 더욱 풀어 줄 수 있으리라.

“여기요.”

1번 세입자는 커피의 향을 맡으며 눈썹을 치켜올렸다.

나쁘지 않은 반응이다.

“……흐음. 서역의 차로군. 인형설삼만큼은 아니더라도 제법 귀한 물품이지. 일단 여기까진 합격.”

향은 제법 만족스러운 모양.

다음은 맛이었다.

“……!”

1번 세입자는 커피 맛에 크게 감탄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다른 곳도 아닌 신성 백화점에서 파는 비싼 정제 커피였으니까.

‘한 통에 수십만 원짜린데.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을 테지.’

주민성은 만족한 표정으로 세입자의 반응을 즐겼다.

“맛. 나쁘지 않죠?”

“크, 크흠! 중요한 것은 부상 치료이니!”

“압니다. 이렇게 커피나 즐기면서 쉬다 보면 나을 거예요.”

“본좌는 감기에 걸린 것이 아니야!”

커피 덕분에 경계심이 무너진 걸까.

1번 세입자의 반응은 점점 부드러워지고 있었다.

“……이 정도면 같은 하늘의 경지로서 자격은 충분하다. 본좌는 위희린이라 한다. 뭐, 내가 있던 세상에선 천마로 더욱 알려졌지만.”

“그렇군요. 천마 씨? 희린 씨? 뭐라고 부르면 될까요.”

“처, 천마 씨? 희린 씨이?”

왜인지 천마 위희린은 주민성의 호칭 정리에 경악했다.

“왜요?”

“천마라는 호칭을 본좌 앞에서 뱉고 살아남은 자는 무림 맹주뿐. 그 외엔 전부 나에게 죽었다.”

“아, 금지 단어 같은 건가……. 그럼 희린 씨라고 할게요.”

“…….”

위희린의 표정은 변화무쌍했다.

그렇게 3분여쯤 지났을까.

마지막은 체념에 가까운 납득의 표정이었다.

“후우. 내가 이해하지. 다른 세상이니까…….”

“그렇죠.”

“……희린 씨라 불러도 좋다.”

“네. 저는 주민성이라고 합니다.”

“의외로 평범하군. 별호는 없는가?”

“없는데요.”

위희린은 무언가 거창하고 요란한 세상에서 살고 있었던 모양이다.

“특이한 세상이로고…….”

“근데 뭐 하나만 물어봐도 됩니까?”

“음?”

위희린의 목적은 부상치료.

하지만 그녀는 주민성이 보기엔 너무도 멀쩡했다.

“어디가 아파서 오셨어요? 엄청 괜찮아 보이는데.”

“훗. 겉보기엔 그럴 테지.”

뭔가 중2병스러운 대답이었다.

‘설마……. 진짜 중2병은 아니겠지.’

왜인지 쎄한 느낌이 들긴 했다.

물론 강함은 사실이다.

3번 세입자로 방문했던 즈민성도 무지막지하게 강할 터였다.

하지만, 정신 상태가 멀쩡하다는 보장이 없었다.

‘그 문신 돼지도 즈쉬 말 안 듣고 딴짓 하다 여기까지 온 것 같은데.’

심지어 1번과 3번.

극도의 앞 순번이었다.

이는 차원 경매장을 실시간으로 보고 있어야만 예약할 수 있는 순번이기도 했다.

“눈빛에 의심이 가득하구나. 주민성.”

“앗…….”

나름 표정 관리엔 자신 있는 주민성이었지만, 위희린의 눈에는 전부 보이는 모양이다.

“……본좌는 무형지독에 중독된 상태다.”

“무형지독? 독 말씀하시는 거죠?”

“…….”

“혹시 뱀에 물리셨어요? 아, 몬스터겠구나.”

“…….”

위희린의 표정은 경악을 넘어선 무언가였다.

거의 해탈의 경지에 가까웠다.

“……무형지독은 만독불침조차도 막지 못하는 지독한 독이다. 마물 따위가 만들어내는 독이 아니란 말이다…….”

“몬스터가 아니면 뭐예요?”

“…….”

위희린에게서 살기가 피어올랐다.

‘젠장. 엄청 예민한 손님이군.’

주민성은 어쩔 수 없이 커피 한 잔을 추가로 접대했다.

“일단 화 푸세요. 모르는 세상이잖아요? 제가 어떻게 다 압니까? 우린 상식이 틀려요. 이렇게 사람 회복시키는 건물 봤어요?”

차분하게 진정시키는 대답이었지만, 그 안엔 혹시라도 존재할 다른 차원의 건물주를 겨냥한 질문이 숨어있었다.

“……후우. 그래. 확실히 이런 건물은 처음이지. 이해하마.”

“감사합니다.”

몸 상태가 회복됨이 느껴지는 걸까.

위희린은 점차 주민성의 페이스에 말려들기 시작했다.

더불어, 그녀 또한 다른 건물주의 존재를 확인하지 못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그리고 조금 긴 설명이 이어졌다.

“……그리하여 이곳까지 당도하게 되었느니라.”

요약하자면 이러했다.

그녀가 있던 차원엔 협회처럼 무림맹이라는 거대 세력이 존재하며, 이들과 적대관계라고 한다.

이유는 알려주지 않았다.

그리고 모종의 이유로 무림맹의 계략에 말려들어 무형지독에 중독되었다는 이야기였다.

그 무형지독이라는 맹독은 오로지 위희린만을 위한 무림맹의 필살기였고.

“그렇군요.”

“이대로라면 1년도 버티지 못하겠지.”

그런 와중에도 위희린은 커피를 계속해서 들이키며 목을 축이고 있었다.

맛이 상당히 마음에 드는 모양.

“후우. 이제 슬슬 운기해도 될 정도의 몸 상태가 돌아왔구나. 이런 말도 안 되는 건물이 존재할 줄이야.”

위희린은 자세를 고쳐 잡으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나중에 부를 터이니 나가 보거라.”

축객령이었다.

뭔가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모양이다.

“예. 그럼 나중에 봬요.”

이용료는 이미 과할 정도로 받은 상태.

더불어 상대의 화도 가라앉혔으니 지금으로선 최고의 성과를 냈다고 볼 수 있었다.

빌딩 밖에선 성아영과 즈민성의 어색한 대치가 한창이었다.

위희린 피셜이지만, 즈민성은 성아영보다 압도적인 전투력을 갖췄다는 게 검증된 상황이다.

그럼에도 즈민성은 성아영에게 압도당하고 있었다.

“그냥 보기만 한다니까?”

“취익! 이건 내 거다!”

즈민성은 필사적으로 금빛 클러치백을 끌어안았다.

물론 클러치백의 정체는 벌집.

여왕벌과 관련된 이상한 능력을 얻은 성아영은 본능적으로 벌집을 탐내고 있었다.

“아오! 말은 안 통하고, 힘은 더럽게 세고!”

“취익! 나쁜 인간이다!”

오크의 서열은 엄격했다.

이는 주민성도 잘 알고 있었다.

‘족보가 이렇게 되네.’

즈민성은 성아영보다 낮은 배분에 해당했다.

즈민성은 주민성의 부하인 즈쉬의 자식이고, 성아영은 주민성의 동료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용료 청구에 지휘력이라는 간접적인 영향력까지 발휘되는 상황.

이런 상황엔 개입이 필요했다.

오크의 말을 알아듣는 사람은 주민성뿐이니까.

“문신 돼지. 그거 줘 봐.”

“취, 취익! 내, 내 이름은 즈민성!”

“어허.”

즈민성이라는 이름의 유래, 신화의 창시자, 황무지의 전설 등등 주민성에게 붙은 수식어는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그만큼 오크는 찬란한 역사를 써내려가고 있었다.

즈민성도 자신의 이름에 큰 자부심을 가졌던 상황.

하지만 원조가 눈앞에 실존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취익! 환상이 깨지기 시작한다!”

“그래. 이 벌집은 환상 같은 거다. 애초에 그 집에서 나오는 벌과 관련된 모든 것들이 내꺼야.”

“태, 태어날 때부터 우리 집은 양봉소였다! 취!”

“응. 너가 태어나기 전에 소유권이 나한테 있었어.”

현실을 깨달은 즈민성은 결국 벌집을 상납했다.

주민성 역시 이 벌집엔 상당한 흥미가 있었다.

벌집이라기엔 너무나 영롱한 빛깔을 자랑했기 때문이다.

‘효과. 어마어마하겠지.’

포식자의 허기는 발동하면 할수록 이득이기만 했다.

분명 허기라는 단어가 굶주림을 상징하는 의미였음에도 불구하고.

“뭐야. 나 대신 받아 준 거야? 고마워! 주민성!”

“응?”

“그 클러치백. 나 주려고 뺏은 거 아냐?”

“설마요.”

“아, 선 긋지 마라.”

“선 긋즈 므르.”

주민성은 벌집을 그대로 입에 넣었다.

“야! 차라리 고기를 먹어!”

게이트에 있는 식구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해서 강해지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대장이란 사람이 자기 계발을 하지 않는 것은 어불성설.

주어진 시간은 최대한 활용해 줘야 했다.

[포식자의 허기가 발동합니다.]

[특이하게 가공된 건물을 섭취합니다.]

[절대자의 손길이 닿은 건물입니다.]

[포식자의 허기의 효과가 다섯 배 증가합니다.]

[피식 대상의 힘을 일부 흡수합니다.]

언제 봐도 특이한 메시지였다.

벌집이 건물로 취급되는 것도 신기하고, 이것을 피식자로 판정한 것도 신기했다.

‘이번에는 무슨 능력이려나.’

느긋한 표정으로 다음 메시지를 읽어내려 가던 순간, 빌딩에서 어마어마한 에너지가 감지됐다.

장 박사의 실험체가 뿜어대는 살기보다 훨씬 강렬하며, 이질적인 기운이었다.

쿠르르르르!

그와 동시에 빌딩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이후, 정좌 자세로 눈을 감고 있는 천마 위희린이 둥실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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