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세입자 (2) (138/250)


세입자 (2)
2022.04.18.


“세입자 하나. 1분 후에 도착한대.”

“어? 갑자기? 누가 오는 거야? 인간? 오크?”

“오크.”

3번 세입자는 오크였다.

코멘트가 상당히 심플하고 직관적이었기에 부담 없는 손님이라 할 수 있었다.

“힝. 고기 먹고 싶은데.”

“괜찮아. 같이 먹지 뭐.”

“오크랑 먹기 싫은데…….”

주민성은 그런 성아영을 무시하고 세입자가 나타날 위치부터 추적했다.

우웅.

건물 내부에서 미세한 진동음이 느껴졌다.

“건물 안에서 나타날 모양이야. 바로 움직이자. 절대 약한 오크 아니니까 방심하진 말고.”

“아, 알았어.”

그제야 성아영의 표정도 진지하게 돌아왔다.

무려 차원 경매장 능력을 쓸 수 있는 오크였다.

주민성이야 협회장 때문에 함부로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라지만, 그 오크는 평범하게 차원 내에서 어마어마한 힘을 휘두르고 있었을 가능성이 컸다.

콰콰콰!

“윽! 무슨 압박감이!”

차원문은 빌딩1층 로비에 형성되어 있었다.

“야! 주민성! 이 정도면 보스 몬스터 아냐?”

“맞을걸?”

자신은 있었다.

오크들에겐 왜인지 아주 좋은 이미지로 보이고 있고, 녀석들의 언어도 알아들을 수 있었으니까.

최소한 해만 끼치지 않는다면, 좋은 대우를 돌려받을 터였다.

쿵.

육중한 발걸음 소리.

어마어마한 위압감도 함께였다.

“취익.”

쿵!

녀석이 말했다.

“맛있는……. 고기…….”

“뭐, 뭐라는 거야?”

“쉿.”

주민성은 그대로 성아영의 입을 막으며 오크가 제대로 모습을 드러내길 기다렸다.

곧이어 팔이 튀어나오고, 듬직한 몸뚱이가 드러났다.

“…….”

주민성은 그대로 말을 잃었다.

오크의 어마어마한 비주얼 때문이었다.

“취익. 맛있는 고기집.”

오크의 온몸엔 문신이 가득했다.

전부 자신의 능력을 강화하는 문신일 터였다.

하지만 가득한 것이 문신만이 아니었다.

오크는 살집도 가득했다.

출렁.

뱃살부터 팔뚝, 다리에 덜렁이는 살덩이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300kg는 가볍게 넘는 수준이었다.

새삼 황무지 마을의 가녀린 오크들이 불쌍해 보일 정도.

옆구리에 끼고 있는 금빛 클러치백도 반짝반짝 빛이 났다.

‘부자다. 그것도 떼부자 오크.’

먼저 입을 연 것은 오크였다.

“취익. 선불이군.”

이용료와 관련된 메시지가 떠오른 걸까.

오크는 금빛 클러치백에서 금덩이를 꺼냈다.

그리고 경매 인벤토리에 금덩이를 집어넣었다.

‘오크의 화폐인가? 저 물건이 인벤토리로 들어오겠군.’

뒤이어 주민성에게도 메시지가 떠올랐다.

[땅굴 벌의 강화 벌집(로얄)이 수납됩니다.]

[땅굴 벌의 강화 벌집(로얄)이 수납됩니다.]

[땅굴 벌의 강화 벌집(로얄)이 수납됩니다.]



“음?”

땅굴 벌의 벌집.

주민성이 모를 수가 없는 이름이었다.

왜인지 이전보다 더 강화되고 로얄이라는 옵션까지 추가되었지만.

“취익. 이제 고기를 내놔라. 주인장.”

“…….”

검증 방법은 간단하다.

벌집을 먹고, 떠오르는 메시지를 확인하면 되니까.

[10분간 여왕벌의 권능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어디서든 해당 건물 세입자를 호출할 수 있습니다.]

빼도 박도 못할 정답이 나타났다.

이 오크는 황무지 마을의 오크였다.

“취익! 주인장! 내 말 안들…….”“…….”

오크 역시 주민성을 알아본 모양.

육중한 몸뚱이가 뒷걸음을 치기 시작했다.

“취, 취익? 어째서?”

물론 거리는 벌어지지 않았다.

주민성이 그만큼 앞장섰으니까.

“어이. 문신돼지.”

“취, 취익!”

“나 알지?”

“…….”

오크는 필사적으로 주민성의 시선을 피했다.

아무리 묵비권을 행사한다 한들, 녀석이 누구인지 알아볼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다.

“어디 보자……. 스취랑 즈쉬 집이 어디였더라.”

주민성은 건물 명단을 정리해둔 수첩을 꺼냈다.

“기, 기다려라! 취익! 나 안다! 황무지의 전설 주민성!”

“야. 뭐야? 방금 오크가 주민성이라고 했어!”

성아영도 주민성이라는 단어는 알아들은 모양.

“아시는구나?”

“취익!”

문신돼지 오크는 주민성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직속 수하인 스취와 즈쉬도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정황은 더더욱 확실해진다.

“여왕벌의 권능. 양봉소. 즈쉬.”

한때 여왕벌의 권능을 통해 가르취와 차크취를 호출했던 경험이 있었다.

따라서 권능 사용엔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취익?”

한 오크가 추가로 나타났다.

호출 대상은 분명 즈쉬였거늘, 지금 나타난 오크 또한 어마어마하게 살이 찐 오크였다.

“취익! 대, 대장!”

“즈쉬니?”

“맞다! 췩!”

“쟤 누군지 알아?”

“취익?”

즈쉬의 시선이 문신돼지를 향했다.

“취익! 엄마?”

“…….”

놀랍게도 문신돼지는 즈쉬의 자식이었다.

확실히 하위 차원의 시간은 이곳보다 빠르게 흐르는 모양이다.

“취익. 즈민성. 네가 왜 여기 있지? 부락 통합도 얼마 안 남았을 텐데?”

“나 없어도 간단하다! 취익!”

“취익. 분명 중요한 일이라고 했거늘.”

“맛있는 고기집이었다! 취이! 벌꿀은 이제 질린다! 취!”

“질릴 때까지 혼나야겠구나. 취익. 대장님 앞이다. 나중에 보자꾸나.”

여기서 흘려들을 수 없는 단어가 있었다.

“들었어? 방금 또 주민성이라고 했어.”

“아니야. 즈민성이야.”

왜인지 문신돼지의 이름은 즈민성이었다.

“그보다 대장! 살아 있었다! 취익!”

“그보다 즈쉬. 쟤 이름이 왜 즈민성인지 설명해 줄래?”

“별거 아니다! 잘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위대한 전설의 이름을 지어줬을 뿐이니까!”

“…….”

즈쉬는 빌딩 내부를 두리번거리며 신기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취익. 그보다 여기는 뭐 하는 곳인가. 대장? 노예 수용소인가?”

“…….”

어째서인지 즈쉬의 눈은 한없이 높아져 있었다.

그 가난하던 오크가 이런 호텔급 시설을 보고 노예 수용소라고 평가할 정도였다.

“저 오크가 뭐래? 빨리 알려줘! 궁금하단……!”

주민성은 성아영의 입을 테이프로 봉인했다.

그리고 즈쉬를 바라봤다.

출렁.

즈쉬의 모습도 이전 같지 않았다.

그 비쩍 마른 즈쉬의 모습은 사라지고, 이젠 살이 뒤룩뒤룩 찐 육중한 체형을 자랑하고 있었다.

심지어 입고 있는 옷은 현대인의 시선으로 봐도 어마어마하게 비싸 보였다.

“그 옷. 혹시 고대의 옷감으로 만들었니?”

“취익! 그렇다! 대장! 전부 대장 덕분이다!”

“고대의 물품은 분명 축적해 두라고 했을 텐데?”

“당연하다! 지금도 잘 모으고 있다! 취! 이미 거대한 창고가 가득 차서 마을에 둘 곳이 없다! 이러면 써야 한다!”

즈쉬의 말은 사실일 터였다.

이 오크 또한 이용료 청구 대상이었으니까.

창고가 넘칠 정도로 고대의 물품들이 쌓여있다는 말.

그리고 마을에 둘 곳이 없어 재료를 썼다는 말 모두 진실일 터였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황무지 마을의 오크들이 기특했다.

솔직히 반갑다는 감정이 생긴 것은 주민성에게도 의외였다.

“대체 황무지 마을에 무슨 일이 생긴 거야? 아, 일단 고기나 먹으면서 얘기하자.”

“취익! 고기!”

주민성은 성아영을 어깨에 걸친 후, 오크들을 바비큐장으로 인솔했다.

“대장! 갑자기 사라져서 너무 슬펐다! 지금은 반갑다! 취익! 여기도 신기한 곳이다!”

즈쉬는 바비큐장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신기해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즈민성이라는 오크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인 상태.

‘저래도 차원 경매장을 쓸 수 있을 정도의 강자라 이거지.’

주민성은 불판에 고기를 올리며 즈쉬에게 물었다.

“즈쉬. 차원 경매장 알아?”

“취익! 알고 있다! 30년 전에 생겼으니까!”

어마어마한 사실이 밝혀지는 순간.

“황무지 오크들 전부한테?”

“취익! 아니다! 나와 스취의 혈육들에게만 생겼다!”

“……그래?”

즈쉬, 스취.

그리고 차크취와 가르취.

이들의 공통점은 한 가지.

지휘력의 영향을 받는 직속 수하였다.

“참나. 그쪽은 대체 어떻게 돼먹은 동네야?”

“나와 스취는 10년간 대장을 찾아 헤맸다! 대륙 전부를 통합해도 대장은 보이지 않았다! 슬펐다! 취익!”

“……잠깐.”

흘려들을 수 없는 말이 계속해서 튀어나왔다.

“대륙을 통합해? 고작 황무지 마을이?”

“취익! 지금은 황무지 크라노돈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심지어 세력명도 황무지 마을이 아닌 황무지 크라노돈이란다.

“얼씨구? 많이 컸네?”

“그렇다! 취익! 이제 오크보다 강한 세력은 없다!”

“…….”

근데 저 말이 사실인 모양이다.

그 말은 곧, 하위 차원 전체를 오크가 장악해 버렸다는 뜻이다.

“그러면 물어보자. 태양의 순례지. 이젠 알겠지?”

“당연하다! 취익! 태양의 순례지는 15년 전에 스취가 봉인했다! 하지만 괜찮다! 그곳에 있던 모든 순례자는 귀가 터져 죽어 버렸으니까!”

“어어?”

“어쩔 수 없었다! 그곳에선 끔찍한 괴성이 계속해서 들려온다! 성소의 의미가 사라졌다! 취이!”

주민성이 태양의 순례지에 한 거라곤 공룡들의 영혼 재배치뿐.

효과는 상상하던 것보다 훨씬 엄청났던 모양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아리송한 비밀들도 밝혀졌다.

‘그러면 몬스터 웨이브때 튀어나온 귀머거리 사이클롭스랑 시체들은…….’

비석을 만져 일으킨 몬스터 웨이브.

거기서 나타난 몬스터들이 전부 태양의 순례지 소속이라는 뜻이었다.

“참나. 이게 그렇게 되나?”

이유라면 그럴싸했다.

비석을 만진 사람은 다름 아닌 주민성이었으니까.

그곳의 이용료를 전부 쓸어 담은 인간이 웨이브 비석을 만졌으니 태양의 순례지로 연결될 수밖에 없던 것이다.

“고기 탄다! 취익!”

즈쉬 품에서 벌집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반대쪽 손에선 불길이 일었다.

화륵!

벌집은 순식간에 녹아 즈쉬의 손에 코팅됐다.

그리고 어마어마한 손놀림이 이어졌다.

휘릭! 휙휙!

화르르!

“이렇게 하면 고기가 훨씬 맛있어진다! 취익!”

즈쉬는 맨손으로 고기를 굽고 있었다.

성아영도 저 모습에 놀랐는지 버둥거림이 더욱 커졌다.

“엄마! 나도…….”

빠악!

“취익!”

고기 굽기와 자식 교육을 동시에 실천하는 즈쉬였다.

“취익! 이제 먹어도 된다!”

“…….”

접시에 올려진 반들반들한 고기 두 점.

주민성은 성아영을 내려놓고 테이프를 떼어 줬다.

“……주민성 나쁜 놈.”

“역시 대장은 자비롭다! 저런 살집 없고 못생긴 부하까지 챙겨준다!”

어째서인지 즈쉬는 성아영을 보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한때는 나도 저렇게 가난하던 시절이 있었지. 취익.”

평생 부족함 없이 살았던 성아영이 이 말을 알아듣는다면 큰 사고가 났겠지만, 이 사실은 오직 주민성만이 알고 있었다.

“……나 고기 먹는다?”

“응.”

주민성도 고기를 입에 넣었다.

지금의 고기는 벌꿀이 코팅된 고기.

즉, 포식자의 허기가 발동된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포식자의 허기가 발동됩니다.]

[특이하게 가공된 건물을 섭취합니다.]

[절대자의 손길이 닿은 건물입니다.]

[포식자의 허기의 효과가 다섯 배 증가합니다.]

[피식 대상의 힘을 일부 흡수합니다.]

[피식 대상 땅굴 벌집의 기능성이 부여됩니다.]

[여왕벌의 자질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지휘력이 폭발적으로 상승합니다.]

“으으음! 주민성! 이거 고기 맞아? 미쳤는데?”

“……대박.”

숙성이고 뭐고, 즈쉬가 구운 고기가 최고였다.

아니, 거의 사기적인 수준이었다.

맛도 맛이었지만, 부여되는 효과가 엄청났기 때문이다.

‘그보다 여왕벌의 자질은 또 뭐야?’

답은 성아영에게 들을 수 있었다.

“뭐야. 주민성. 능력 안 쓰고 먹으면 안 돼?”

“어? 무슨 헛소리야.”

“여왕벌의 자질은 뭐야. 또 놀리는 거야?”

“…….”

왜인지 여왕벌의 자질은 성아영에게 부여됐다.

포식자의 허기가 없었음에도.

주민성은 조심히 빈 수첩을 내밀었다.

“적어. 뭐라고 써 있는지.”

“……아씨. 진짜 곱게 넘어가는 경우가 없어.”

성아영이 쓴 내용은 이러했다.

[여왕벌의 자질을 충족했습니다.]

[하수인 지정 권한이 부여됩니다.]

[하수인을 지정할 수 있습니다.]

[하수인 강화 권한이 부여됩니다.]

[하수인을 강화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여왕의 출현으로 여왕벌의 적대를 받습니다.]

“하수인은 또 뭔데. 이상한 장난 치지 마라.”

“……참나. 앞으로 양봉소는 피해 다녀라.”

“내가 그런 곳을 왜…….”

왜인지 성아영의 말이 멈췄다.

“……뭐야. 이거 진짜 능력이야?”

뭔가 깨달은 걸까.

성아영이 음흉한 표정으로 주민성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헛짓하면 맞는다.”

“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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