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세입자 (1) (137/250)


세입자 (1)
2022.04.17.


이 능력은 차원 경매장과는 다른 수준이었다.

어마어마한 탈력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오.”

다행히 메시지가 계속해서 선택을 강요하지 않았기에 조금의 여유는 있었다.

곧이어 함께 21개의 건물 항목이 떠올랐다.

[마왕성 지하 4층 스위트룸 1세대]

[칼릭스 제국 황실 마법진 1세대]

[수련의 석실 1세대]

[최후의 고목 1세대]

[참회하는 저주 뇌옥 1세대]

……

하나같이 아리송한 리스트뿐이었다.

마왕성이라느니 제국 황실이라느니 판타지 소설에서나 볼법한 이름이 상당히 눈에 띄었다.

“저렇게 건물을 등록한 사람들이 나처럼 세입자 모집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겠군.”

마왕 관련자, 황실 관련자, 그리고 의미조차 알 수 없는 건물의 주인들.

하나같이 범상치 않은 상대였다.

그리고 최하단엔 주민성이 등록한 건물이 나타나 있었다.

[대한민국 인천 게이트 빌딩 2세대]

“오. 내 거만 2세대네.”

능력명이 건물주라서 그럴까.

조금의 메리트는 있는 모양이다.

건물만 좀 더 컸으면 몇 세대든 더 받을 수 있었으니 한계치는 더 높다고도 할 수 있었으니까.

“상세 항목도 조금 볼까.”

주민성은 21개 항목 중 그나마 안전해 보이는 건물 이름에 집중했다.

[수련의 석실 1세대]

[매매 587억]

[본좌가 150년 간 폐관 수련하던 석실이다.]

[새로운 전설을 쓰고 싶은 자.]

[천하제일을 원하는 자.]

[본좌의 진전을 이어가고 싶은 자.]

[전부 가능하다.]

[도전하라.]

[참고로 고금 제일은 본좌다.]

“…….”

주민성은 잠시 말을 잃었다.

너무나 황당무계한 코멘트였기 때문이다.

“……번역 제대로 된 거 맞지?”

그보다 매매는 조금 특이했다.

1일 이용료만 청구할 수 있는 주민성과 달리 수련의 석실은 아예 건물을 통째로 넘기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제자한테 587억을 받아내겠다는 심보는 뭐람. 조금 유치해 보이는 사람이네.”

주민성은 빠르게 수련의 석실을 기억에서 지워 버렸다.

그리고 다른 건물을 살피기로 마음먹었다.

특히 매매와 관련된 부분에 관해선 표본이 더 필요했다.

[마왕성 지하 4층 스위트룸 1세대]

마왕성이라는 단어만 제외한다면 가장 현실과 가깝고 쾌적해 보이는 이름이었다.

“스위트룸 가격은 어떠려나.”

[무료]

[입주 시 10만 원 증정]

이번엔 매매란 단어가 없었다.

오히려 입주 시 10만 원을 준단다.

“음? 돈을 준다고?”

너무나 황당한 조건이라 상세 정보를 안 볼 수가 없었다.

[♚♚마왕☆성♚♚]

[마왕군 가입시$$전원 파괴 권능☜☜무기100%증정※]

[♜지옥 임프♜무료 증정¥]

[§§하수인§§★++노예★획득 기회@@@]

[★즉시 입주 가능★]

“…….”

이번엔 한참 동안 말을 잃었다.

제정신이 아닌 것 같은 아찔한 코멘트였다.

심지어 특수문자는 번역이 제대로 된 건지 절로 의심될 정도.

“미친놈이다…….”

아무튼, 세입자 모집을 하는 이들에겐 저마다의 목적이 있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었다.

[대한민국 인천 게이트 빌딩 2세대]

[일세 97만 원]

[각종 병이 치료되는 건물]

[치료 효과 뛰어남]

[맛있는 구운 고기 1kg 하루 1회 서비스]

[집사 자유롭게 이용 가능]

[마석 정산 서비스]

[머무는 동안 정화수 무한 제공]

[인간이나 오크 우대]

그에 반해 주민성이 남긴 코멘트는 너무나도 친절하고 파격적이었다.

가격 경쟁력도 나름 괜찮았다.

마왕성 같은 괴상한 사례만 제외한다면.

“잘하면 인기 많을지도…….”

그 순간, 새로운 메시지가 연달아 떠올랐다.

“어?”

추가로 다른 건물을 살피지 않았기에 더욱 놀라웠다.

[입주 신청 1건이 들어왔습니다.]

[입주 신청 1건이 들어왔습니다.]

[입주 신청 1건이 들어왔습니다.]

……

“버, 벌써?”

등록한 지 몇 분 지나지 않았음에도 문의 폭주.

물론 시간대가 다르게 흐르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이렇게 하면 되나? 입주 신청 확인.”

정답이었다.

입주 신청자의 간단한 프로필들이 떠올랐다.

[입주 신청자 명단을 표시합니다.]

[입주 신청 번호: 1]

[종족: 인간]

[입주 사유: 부상 치료]

[코멘트: 없음]

[입주 신청 번호: 2]

[종족: 인간]

[입주 사유: 생존]

[코멘트: 누구냐 넌. 인천은 3년 전에 소멸했을 텐데.]

[입주 신청 번호: 3]

[종족: 오크]

[입주 사유: 고기]

[코멘트: 맛있는 고기!]

……

메시지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이대로라면 머지않아 탈진 위기가 찾아올 터였다.

“……입주 신청 확인 취소.”

털썩!

주민성은 다시금 바닥과 진한 스킨쉽을 나눴다.

그리고 멍한 표정으로 방금의 메시지를 상기했다.

“2번은 대체 뭐지…….”

[코멘트: 누구냐 넌. 인천은 3년 전에 소멸했을 텐데.]

섬뜩한 코멘트였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복잡한 문제가 될 터였고, 거짓이라면 미친놈과 엮일 가능성이 커진다는 뜻이었으니까.

반면, 코멘트가 없는 1번과 다소 명랑해 보이는 3번도 쉽게 생각할 수가 없었다.

적어도 차원 경매장 능력을 가지고 있는 이들일 테니까.

“꺼림칙하군.”

원래대로라면 선착순이 맞았다.

1번과 2번을 모집해야 했다.

둘 다 인간이기도 했으니 우대 사항에도 포함된다.

하지만 코멘트가 계속해서 주민성의 고민을 유발했다.

“아오. 1번처럼 코멘트만 없었으면 색안경이라도 끼지 않았을 텐데.”

고작 한 줄뿐인 문장이었지만, 상대에 대한 탐색 없이 자기 할 말만 내뱉는 점도 결격 사유였다.

이는 물론 3번과도 일치한다.

하지만 상대 입장을 고려한다면, 같은 인간을 상대로 한다면 좀 더 조심스러운 코멘트를 남겼어야 했다.

따라서 결론.

“위험한 놈이다. 탈락.”

이번에 입주시킬 대상은 1번과 3번으로 확정됐다.

주민성은 다시금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입주 신청 확인 단계로 돌아왔다.

그리고 빠르게 말했다.

“입주 신청자 1번, 3번 승인.”

[입주 신청자 1번, 3번이 승인되었습니다.]

[입주자는 24시간 이내에 입주를 마쳐야 합니다.]

[시간 초과 시 위약금 30%가 수납됩니다.]

“이런 구조였군.”

능력은 자동으로 해제됐다.

이젠 입주자들을 기다리기만 하면 될 뿐.

“오늘은 인천에서 자야겠군.”

주민성은 최선아와 봉춘향, 최선호에게 연락해 각기 다른 임무를 전달했다.

자기 구역 잘 지키고, 입주자가 방문할 빌딩 구역 주변에 접근하지 말라는 경고도 함께였다.

“보험으론 성아영이 괜찮겠지.”

이미 임진석과 팀을 이룬 것으로 이용료 청구의 위력은 제대로 체험했던바.

성아영이라고 못할 것은 없었다.

적어도 입주자보단 안전한 상대였으니까.

“따라올래. 끌려갈래.”

“뭐?”

“귀가 안 들리면 끌고 가는 걸로.”

“꺅!”

주민성은 그대로 성아영을 들어 올려 어깨에 걸쳤다.

말할수록 피곤해지는 상대에겐 이런 방법이 특효였다.

“아니! 어디 가는데! 알려줘야 가지!”

“난 선택권을 준 적이 없는데?”

“박력 미쳤다……. 라고 할 것 같아? 미친 거 아냐? 어?”

주민성은 성아영을 내려놓지 않고 설명을 이어갔다.

“모르는 사람들이 이사 올 예정이야. 같이 좀 신경 써 줘.”

“그럼 그렇게 말을 해야지!”

“말하고 있는데?”

“아오!”

그제야 성아영의 힘이 빠졌다.

매달리는 것에도 나름 적응한 모양이다.

“근데 뭐 하는 사람들이래?”

“몰라. 입주자는 총 둘. 한 명은 인간이고, 하나는 오크야.”

“……또 오크? 오크 싫은데.”

“거부권 없는데.”

“아오.”

물론 어느 정도의 긴장감은 심어 줘야 했다.

“만만한 상대는 아냐. 둘 다. 나랑 비슷한 능력을 가졌거든.”

“……진짜?”

차원 경매장 능력을 갖춘 입주자와 차원 경매장에 세입자 모집 능력이 추가로 있는 차이였다.

이 부분에는 성아영도 상당한 흥미를 느끼고 있었다.

“좋아. 제대로 확인해 줄게.”

“방심하진 말고. 솔직히 나도 조금 걱정이니까.”

겁난다고 능력 자체를 봉인시킬 수는 없었다.

써먹을 수 있는 건 전부 써야할 입장이었으니까.

“일단 인간 쪽은 부상 치료 목적으로 입주할 거야. 괜히 시비 걸지 말고.”

“……흥.”

“그리고 오크 쪽은 고기가 목적이야.”

“너는 돈이 목적이고?”

“돈이 목적이면 여기 있는 사람들만 계속 굴렸겠지.”

주민성의 목적은 입주자들이 게이트에 매료되는 것.

정확히는 건물에 매료되어 자신이 있던 차원으로 돌아가지 않는 것이다.

전부 성공한다면 대격변에도 큰 도움이 되는데다 올바른 건물주로서의 성장 발판도 마련할 수 있을 터였다.

“여기가 마음에 들게끔 해야 해.”

“……장난하세요? 여기 게이트인데요. 게이트를 마음에 들어 하는 사람이 세상에…….”

성아영의 잔소리는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적어도 인천 게이트에 있는 모든 이용자들은 이곳에서의 휴양을 즐기고 있었으니까.

심지어 성아영도 적응이 상당 부분 끝난 단계였다.

“최소한 너 빼고 다 마음에 들어 할걸? 다이아 등급 줘. 집 줘. 통근도 시켜 줘. 호위 오크도 줘. 편의점도 공짜야. 뭘 더 바라?”

“아, 아니! 불만이 있는 건 아니고!”

“그럼 뭔데?”

“아, 됐어! 몰라! 알아서 해!”

“그래.”

그렇게 둘은 빌딩으로 돌아왔다.

“입주한다는 집이 여기야?”

“응.”

“뭐야. 완전 좋은데?”

성아영은 그대로 성큼성큼 걸어가 건물 내부를 살폈다.

“야! 주민성!”

“뭐.”

“침대 뭔데! 좋은 침대잖아! 왜 좋은 건데!”

성아영은 그대로 침대에 몸을 던졌다.

“매트리스 좋은 거 줬잖아.”

“매트리스보다 이게 더 좋잖아! 나 다이아라며!”

“손님은 왕이야.”

“…….”

세입자는 이용료 청구 대상자와는 엄연히 달랐다.

이용료 청구도 하지 않은 상태였으며, 괜히 허튼 짓을 했다간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손님용이야. 나와.”

“힝.”

“힝 같은 소리 하네. 아무튼 나와. 고기 냄새 밸라.”

“너무해.”

“그러다 손님한테 맞지 말고.”

최소 동급 이상.

이것이 세입자의 예상 전투력이었다.

심지어 차원 경매장의 활용 면에선 무조건 뛰어난 상대였다.

분명 주민성도 모르는 활용법도 존재할 터였다.

“고기 냄새 많이 나?”

“응. 너도. 나도.”

“샤워하고 올까?”

“그것도 손님용이라고요. 이불 정리하시고 나오세요.”

“니예…….”

주민성이 성아영에게 존댓말을 한다는 것은 다음이 없다는 뜻이었다.

“그 테이프는 다시 집어넣지?”

“자꾸 사고 치면 입 막을 거야.”

“너 자꾸 누나한테 함부로 하는데 말이야.”

쭈우욱.

“아, 알았다고! 나간다! 나가!”

그렇게 밖으로 나온 두 사람은 임시 숙소로 쓸 텐트, 그리고 고기를 구워 주기 위한 바비큐장을 설치했다.

“휴! 이 정도면 됐어?”

“제법이네.”

의외로 성아영은 손재주가 좋은 편이었다.

주민성이 잡아내지 못하는 디테일까지 잡아낼 정도로.

“이제 인테리어 한다?”

“응?”

“이 건물. 호텔처럼 쓰려는 거 아냐?”

“맞지.”

“근데 이 꼴로 그냥 손님 받으려고?”

“응.”

성아영은 어이가 없다는 듯 주민성을 바라봤다.

“후우. 보고 있어. 누나가 호텔 좀 꽤나 다녀봤으니까.”

“아, 맞다. 너 간부였지.”

“…….”

100% 삐진 표정이었다.

입을 삐죽 내민 성아영은 말없이 빌딩에 들어가 가구들을 다시 배치하기 시작했다.

확실히 SS급이라 그런지 제법 무거워 보이는 가구도 쉽게 쉽게 나르는 모습이었다.

“화장대는 왜?”

“너는 잘 때 거울 보고자니?”

“거울이 화장실에만 있어서…….”

“…….”

잔소리는 그 이후로도 한참동안 이어졌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느덧 저녁 시간.

“다 됐어. 화장실이 마음에 안 들지만, 이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니까.”

“땡큐.”

주민성은 순수히 감탄했다.

누가 봐도 꾸미는 수준이 달랐기 때문이다.

이젠 정말 호텔 객실이라고 봐도 될 정도였다.

“선심 썼다. 이번에 새로 팔려는 고기 있는데, 다이아 등급이니까 한번 먹여 준다.”

“고기? 삼겹살은 아까 많이 먹었는데.”

“에헤이. 차원이 다른 고기야.”

팔크라스 고기는 성아영이 객실을 꾸미는 사이에 추가로 구매해둔 상태였다.

“봐. 다르지?”

“와아……. 마블링 봐…….”

“잠깐만.”

그 순간, 메시지가 떠올랐다.

[3번 입주 신청자가 차원 이동을 시작합니다.]

[도착까지 남은 시간: 1분.]

1654885863213.jpg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