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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의 차이 (1) (135/250)


맛의 차이 (1)
2022.04.15.


“……5만 원이요? kg당?”

원가가 너무 비싸서일까.

고상수는 벙찐 표정으로 주민성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돼지랑 비교하시면 안 되는데……. kg당 5만 원이긴 해도 저만 구할 수 있는 고기거든요.”

주민성의 견해는 그럴듯했다.

설령 차원 경매장 능력을 가진 누군가가 있다 하더라도 정확히 팔크라스 고기를 검색해내는 건 둘째 문제니까.

“아뇨. 비싸지 않습니다. 오히려 너무 싸서 문제인데?”

“네?”

“이 정도의 퀄리티로 kg당 5만원이라니. 말이 안 됩니다.”

“제 능력이 좀 말이 안 되긴 하죠.”

“……능력입니까? 그게?”

“네.”

어쩌겠는가.

실제로 능력이 그러한걸.

건물주라는 기괴한 능력도 능력이었지만, 주민성의 성장 방향도 기괴했다.

당장 최선호의 사례만 봐도 그랬다.

오히려 건물주답게 성장하고 있는 것은 최선호였다.

‘내가 SSS급이었다면 이 능력은 훨씬 친절했겠지.’

주민성의 성장 방향은 날것 그 자체였다.

“아무튼 kg당 5만 원 맞습니다. 아무나 구할 수 있는 고기도 아니고, 한정 수량이에요. 품절되면 다른 고기도 구해 봐야겠죠.”

“허어…….”

몇 번 본 적도 없는 사이에 차원 경매장 능력을 통해 구했다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

아무튼 거짓말까진 아니었으니 나름의 진실성도 갖춘 상태였다.

“단지 순수하게 놀랐을 뿐입니다. 어마어마한 이동 수단을 가지고 계시군요.”

뭔가 고상수가 오해를 한 것 같지만, 장사에 지장이 생길 정도는 아니었다.

자연스럽게 넘길 수 있다면 주민성으로서도 만족할 수 있는 성과였고.

“호, 혹시 구워 봐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죠.”

고상수같은 부자라고 고기를 구울 줄 모르는 건 아니었다.

물론 전속 요리사를 두고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적어도 캠핑을 즐기는 사람이었기에.

“후우. 떨리는군요. 마음 같아선 제대로 숙성시켜서 구워 보고 싶지만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숙성 가능한데요.”

“일단 해보……. 네?”

“숙성. 가능하다고요.”

“…….”

주민성에겐 자신이 있었다.

방법을 모를 뿐이지, 시간이 필요한 작업이라면 대부분 가능했다.

“아, 아뇨. 준비물이 필요합니다. 고기를 싸맬 진공랩이라든가….”

“있어요. 대체품.”

“…….”

고상수의 표정에서 은은한 고집이 느껴졌다.

숙성은 절대 만만하지 않다는.

“정확한 온도가 유지되는 공간도 있어야…….”

“그것도 가능해요.”

“…….”

당연히 주민성도 만만치 않았다.

기술을 바로 눈앞에서 배울 기회였기에.

“……못 해도 20일은 필요합니다. 절대 만만하지 않아요.”

“20일이요? 더 단축시킬 수도 있는데요.”

“…….”

외부의 해로운 것들을 막아주는 데다 온도가 유지되는 건물 부가효과, 그리고 숙성 시간을 비약적으로 단축시킬 수 있는 인벤토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관련 지식까지 어느 정도 섭렵했을 장 박사의 서포트도 가능했다.

‘육수용 고기만 조금 양보하면 장 박사도 도와주겠지.’

이런 많은 요소들이 합쳐져 주민성에게 무한한 자신감을 선사하고 있었던 것이다.

“…….”

“숙성. 해 주세요.”

고상수의 패배였다.

그것도 압도적인.

“……하아. 알겠습니다. 저라고 그렇게 대단한 숙련자까지는 아니지만, 일단 1kg만 작업해 보겠습니다.”

“네.”

“일단 시작은 진공 포장입니다. 고기에 공기가 침투하면 안 되는 상태로 만들어야 하죠.”

“여기요.”

주민성은 인벤토리에서 꺼낸 진공 박스를 내밀었다.

“크흠. 이런 것도 가지고 계셨군요.”

“당연하죠.”

“…….”

주민성 기준에서야 당연했겠지만, 생판 남의 입장에선 말하면 뭐든 튀어나오는 만능 상자라도 보는 심정일 터였다.

꾸드득.

고기를 넣은 후에도 혹시 몰라 진공 박스 내부의 공기를 다시금 빼냈다.

이것으로 첫 작업은 순식간에 클리어.

“다음은 저온 숙성입니다. 다만, 고기가 얼어선 안 되고요.”

“그렇군요.”

주민성은 진공박스를 그대로 텐트 천으로 감쌌다.

덩치가 조금 커졌을 뿐, 큰 변화는 보이지 않는다.

“……저기요?”

“아, 잠시만요. 저온이라면…….”

애석하게도 휴대용 냉장고는 없는 물품이었다.

대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기 위한 휴대용 얼음이 있었다.

‘굳이 텐트 천을 감쌀 필요도 없겠어.’

주민성은 진공 박스를 싸맸던 텐트 천을 풀어헤쳤다.

그리고 진공 박스 내부에 얼음을 쏟아냈다.

“어어? 이러면 얼음이 녹으면서 고기의 품질이 저하됩니다!”

“안 녹아요.”

“…….”

고상수의 말은 점점 줄어들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주민성이 하는 행동들 하나하나가 상식선에서 해결되지 않는 것들이었으니까.

“온도가 유지되는 능력이라.”

“……맙소사.”

건물 부가효과 중 하나인 온도 조절기능은 외부의 온도에 영향을 받지 않지만, 내부의 온도 변화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주민성이 노리는 건 이 부분이었다.

‘정 안되면 학교 들르는 거고.’

게다가 판자촌 식구들 중 창고를 관리하는 일부 능력자들에겐 빙결 능력자도 있었다.

따라서 얼음이 녹지 않는 환경 조성은 어지간한 변수가 있더라도 무조건 가능하다고 봐야 했다.

“읏차. 완성.”

다소 투박한 숙성 텐트가 완성됐다.

그 안에 진공박스만 넣어두면 끝.

하지만 고상수에겐 아니었다.

“자, 잠깐만요.”

“네?”

“온도가 유지되는 능력이라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얼음이 녹지 않을 온도가 유지된다는 소리인데, 그러면 고기가 숙성되는 온도보다 더 낮게 되어 버려요.”

“그래요?”

새로운 정보였다.

이러면 과정에 변동을 줘야 했다.

“으음.”

언젠가 정화수를 담아 둘 만한 대야를 구매한 적이 있었다.

이 대야를 활용하는 방법이었다.

“이렇게는 어때요?”

주민성은 대야에 물을 채우기 시작했다.

빼냈던 얼음은 숙성 텐트에 놓아두고.

“음? 워터에이징입니까?”

“네?”

뭔가 전문적인 숙성 기술로 추정되는 단어였다.

“아, 아닙니다. 계속 해 보세요. 이 방법은 괜찮을 것 같습니다.”

왜인지 고상수에겐 합격점이었던 모양.

주민성은 작업을 재개했다.

“읏차.”

1단계로 텐트에 얼음을 넣어 온도를 낮췄다.

얼음으로 인해 온도가 떨어진 텐트.

2단계로 물을 받아 둔 대야가 들어갔다.

마지막으로 고기가 담긴 진공 박스가 대야에 들어간다.

이렇게 한다면 얼음도 녹지 않고, 물도 얼지 않는 애매한 저온을 완성시킬 수 있다.

일단은 가설이었지만.

“잠시만 지켜볼게요.”

“아, 넵.”

주민성은 텐트 내부의 얼음을 관찰했다.

얼음은 녹고 있었다.

“……저기. 얼음 녹는데요?”

“……크흠.”

건물 부가효과는 앞선 건물주 등급 상승으로 인해 이전보다 훨씬 위력이 강해진 상태였다.

즉, 기존의 상온이 유지되어 얼음이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수준이었던 것.

“그냥 얼음물 쓰죠.”

“……예? 그러면 온도 변화가…….”

주민성에겐 또 다른 카드가 있었다.

앞선 과정들을 전부 무시할 수 있는 사기적인 능력이 기도 했다.

바로 인벤토리였다.

촤르르르!

녹기 시작하던 얼음들이 그대로 대야에 쏟아졌다.

“정말로 얼음물을 쓰실 생각입니까? 당장은 괜찮아도 나중이 문제일 텐데.”

“해 보죠. 최적의 수단을 찾는 과정일 뿐이니.”

[대야를 수납합니다.]

[진공 박스를 수납합니다.]

“음?”

“일단 5분만 쉴게요.”

이미 입자 절단기 충전을 통해 인벤토리의 효율을 대략적으로 파악한 상태였다.

5분 정도면 숙성도 상당히 진행될 터.

[인벤토리 내부의 소유물 위치가 변경됩니다.]

[인벤토리 내부의 소유물 위치가 변경됩니다.]

……

그리고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장 박사의 움직임을 알리는 메시지도 떠올랐다.

“……5분 됐습니다.”

“네.”

주민성은 수납했던 대야와 진공박스를 꺼냈다.

“어때요. 얼음 안 녹죠?”

“……정말이군요. 허어. 이런 신기한 능력이라니.”

그리고 대망의 고기 개봉 시간.

“열겠습니다.”

“네.”

박스가 개봉되기 직전.

툭.

쪽지 한 개가 떨어졌다.

예상대로 장 박사의 쪽지다.

주민성은 아무렇지 않게 쪽지를 줍고 고상수에게 말했다.

“일단 고기부터 봐주세요. 저는 어떤지 잘 모르니까.”

“아, 알겠습니다.”

쪽지의 내용은 이러했다.

-이번엔 나의 승리다. 주민성. 이 공간은 모든 것이 멈춰 있는 공간. 평범한 방법으론 고기를 빠르게 숙성시킬 수 없지. 아니면 평범하게 긴 시간 동안 기다려야 할 테고. 고기 숙성에 무려 480시간을 투자했다. 비법을 알고 싶다면 육수용 고기를…….

이번에도 거래 제안이었기에 전부 읽지 않았다.

대신, 한 가지 알게 된 사실이 있었다.

단순히 수납만 해선 고기를 숙성시킬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시간은 빨리 가되, 수납품의 모든 것들은 멈춰 있다 이건가.’

즉, 인벤토리 내부는 얼음도 녹지 않고 숙성도 되지 않는 공간이라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장 박사의 소멸이 멈춘 사례가 존재했다.

‘결국 자기만의 비법으로 숙성을 끝냈다는 거군.’

뒤이어 고상수가 감탄사가 들려왔다.

“저, 정말로 숙성이 됐다고?”

“크흠.”

“엄청난 능력입니다! 대체 어떻게 한 거지? 20일쯤은 지난 것 같은 상태인데?”

실제로 장 박사는 고기의 숙성을 성공시킨 모양.

물론 공짜는 싫었는지 육수용 고기를 받겠다는 의지 또한 역력해 보였지만.

“숙성 상태가 좋은가 보네요.”

“예……. 단순 워터에이징 수준이 아닙니다. 별도의 공법이 들어간 모양인데……. 허어……. 저로선 정확한 평가를 내릴 수 없어요. 진짜배기 전문가가 확인하지 않는 한.”

“그 정도예요?”

“예……. 고기를 이 정도로 숙성시키는 능력이라니. 허허…….”

주민성은 장 박사의 평가를 조금 상향시켰다.

게다가 이렇게 뛰어난 성과를 보인다면, 거래 제안도 긍정적으로 봐주는 게 맞았다.

어차피 kg당 5만 원짜리 고기이기도 했으니까.

“바로 구워도 될까요?”

“앗. 넵. 여기 버너요.”

주민성은 고상수에게 마석 버너를 건넸다.

“호오. 좋은 물건을 가지고 계셨군요. 그러면 기본 밑간만 마치고 구워 보겠습니다.”

“네.”

“크으. 떨린다!”

고상수는 평소와는 다른 아주 높은 텐션을 보이고 있었다.

그만큼 숙성 수준이 대단한 걸까.

치이이이!

주민성과는 다른 굽기 방식이었다.

중간 중간 자신이 머무는 텐트에 들러 각종 재료들까지 챙겨오고 있었다.

그중 눈에 띄는 것은 상당히 고급스러운 버터.

“음? 기름에 기름이면 느끼하지 않나요?”

“절대 아닙니다. 오히려 훨씬 풍부한 맛을 끌어낼 수 있지요.”

“오호.”

역시 제대로 먹어본 사람은 달라도 달랐다.

단순히 재료만 추가해 구워만 왔던 주민성과 달리 고상수의 방식은 상당한 전문성이 느껴졌다.

흥이 나는지 부탁하지도 않는 설명도 함께였다.

“겉 부분을 먼저 빠르게 익혀 줘야 해요. 육즙을 가둬야 하거든요.”

“오호라.”

주민성은 그저 고상수의 흥이나 받아주며 노하우만 배워 가면 그만이었다.

“여기서 추가로 소금을 넣어주고요.”

튀겨지듯 구워지는 소리.

그리고 고소한 버터향이 식욕을 다시금 자극했다.

“곁들일 채소는 지금.”

정말로 캠핑을 즐기러 왔던 모양인지 고상수가 챙겨온 짐은 생각보다 훨씬 다양했다.

그렇게 조리 과정을 지켜보던 중, 고기가 꺼내졌다.

“여기 접시요.”

“오. 감사합니다.”

주민성은 그런 고상수를 보조했다.

이 기회에 플레이팅까지 배워 두면 좋을 테니까.

“여기서 잠시 레스팅.”

“……네? 고기 안 썰고요?”

“예. 이렇게 잠시 쉬게 해주면 육질이 훨씬 좋아집니다.”

“오호.”

고상수에게 배울 점은 너무나도 많았다.

고기 스승으로 모시고 싶을 만큼.

“선생님…….”

“아이고. 과찬이십니다. 진짜배기 전문가들은 더해요. 더해.”

“그 정도예요?”

“예. 이렇게 된 김에, 제가 아는 전문가 한 명도 섭외해보겠습니다. 그 역시도 이 고기에 반할 겁니다.”

“오오오.”

아예 고기 전문가까지 불러 준단다.

역시 사회적 위치까지 겸비한 부자들은 달랐다.

그렇게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고기가 구워지는 과정을 관찰하다보니 어느새 시식 시간이 다가왔다.

“후우. 떨리는군요.”

접시에 예쁘게 수놓인 고기는 보기만 해도 맛있어 보였다.

아니, 실제로 맛있는 고기니까 무조건 맛있을 터였다.

이전에 구웠던 것보다 훨씬.

“감사합니다. 덕분에 이런 고기도 접해 보는군요.”

“에이. 제가 더 감사하죠. 그럼 잘 먹겠습니다.”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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