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 그 이상의 것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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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 그 이상의 것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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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 그 이상의 것들 (3)
2022.04.14.
차원 경매장은 건물 탐색과 비슷한 방식이었다.
이럴땐 정확히 원하는 물건을 떠올려야했다.
‘크라노돈 고기.’
[차원 경매장에서 크라노돈 고기를 조회합니다.]
아직까진 방심할 수 없었다.
건물 탐색도 비슷한 방식으로 실패한 적이 있었으니까.
[해당 물품은 품절되었습니다.]
“풋.”
예상했던 결과였기에 타격은 없었다.
기대치를 높게 잡았던 능력도 아니었으니까.
메시지를 보며 피식 웃은 주민성은 다음 검색어를 연상했다.
‘고기.’
[차원 경매장에서 고기를 조회합니다.]
[총 2734983건의 물품이 조회됩니다.]
[확인하시겠습니까?]
“아니. 거절. 취소.”
[물품 조회를 취소합니다.]
“무조건 탈진이다.”
인벤토리 전체 물품 조회조차도 과부하를 동반하는데, 물품 조회라고 안전할 리 없었다.
“그래도 다행이군. 고기는 구할 수 있겠어.”
물품 수량은 넘쳐났다.
혹은, 고기를 등록해 둔 누군가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경지이거나.
“우선은 항목부터 줄여야겠군.”
잠시 고민한 주민성은 다시금 경매장 능력을 사용해 검색어를 연상했다.
‘구이용 고기.’
[총 2647373건의 물품이 조회됩니다.]
[확인하시겠습니까?]
미묘하게 수량이 줄어들었다.
애초에 구울 수 없는 고기가 존재한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
주민성은 취소 대신 다른 의견을 떠올렸다.
“결과 내 검색 기능은 없나?”
사용자가 많은 검색엔진이라면 당연히 있는 기능이다.
규격 자체를 넘어서는 메시지라면 분명 가능할 터.
“예를 들면 인간이 먹을 수 있는 고기라든가.”
[총 2647373건의 물품 중 인간이 먹을 수 있는 고기를 조회합니다.]
성공이었다.
메시지는 다음 문장을 띄웠다.
[총 89724건의 물품이 조회됩니다.]
상당히 큰 성과였다.
다른 차원과 얽혀 있는 고기답게 인간이 먹을 수 없는 고기는 생각보다 적었다.
물론 검색량 기준이었지만.
경매장 공략법에 제법 감을 잡은 주민성은 자신 있게 말을 이어갔다.
“인간이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고기.”
[총 2663건의 물품이 조회됩니다.]
“200도 이내에서도 구워지는 고기.”
[총 947건의 물품이 조회됩니다.]
한 번 혹은 두 번의 추가 검색이면 충분한 수준이었다.
이제부턴 침착하고 꼼꼼하게 공략할 타이밍.
“고기를 구워 먹음으로 신체 혹은 정신에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고기. 단, 돼지고기 수준이라면 상관없는 걸로.”
애초에 구워 먹는 고기였다.
과하게 태우거나, 덜 익히거나 해서 생기는 문제는 너무나도 당연했기에 하한선이 필요했다.
이렇게 퇴로를 차단한 상태로 검색을 마치자 다음 메시지가 떠올랐다.
[총 115건의 물품이 조회됩니다.]
드디어 100품목 근처까지 도달했다.
하지만 검색해야 할 내용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kg당 5만 원 이하로 구매할 수 있는 고기.”
화폐 단위는 지구 기준이었으니 원화일 터.
가성비보단 직접 구워보고 맛을 볼 생각이었기에 가격대는 조금 높게 잡은 주문이었다.
[총 3건의 물품이 조회됩니다.]
[확인하시겠습니까?]
고작 세 종류의 고기만이 요구 조건을 충족시킨 상황.
하지만 이 결과는 최고라 할 수 있었다.
기존 옵션에 가격만 조정해서 선택지를 늘릴 수 있을 테니까.
“확인.”
곧이어 다음 메시지가 나타났다.
[조건에 부합하는 물품입니다.]
[팔크라스 고기: kg당 49800원]
[구매 가능 수량: 9429]
[낙인 지네 고기: kg당 3200원]
[구매 가능 수량: 68000000]
[블루 알바트로 고기: kg당 43000원]
[구매 가능 수량: 0]
[구매 대기: 792]
전부 모르는 고기였다.
심지어 한 종류는 품절이었다.
따라서 선택지는 두 종류.
다만, 지네 고기만큼은 본능적인 거부감이 느껴졌다.
맛이야 보장되겠지만.
결국 남은 선택지는 하나뿐이었다.
“팔크라스 고기.”
스슷.
처음 보는 인벤토리가 주민성의 곁에 떠올랐다.
안내 메시지와 함께.
[팔크라스 고기가 판매 대기 중입니다.]
[경매용 인벤토리에 화폐를 입금해 주십시오.]
“이런 방식이군.”
처음이었음에도 익숙한 풍경.
이는 이용료를 납부받을 때의 과정과 흡사했다.
단지 경매용 인벤토리가 중개를 대신할 뿐.
“일단 10만 원만 넣어볼까.”
10만 원으로는 팔크라스 고기 2kg을 구매할 수 있었다.
여기서 궁금한 점은 거스름돈을 어떻게 계산하느냐.
“후우. 조금 걱정이긴 하지만.”
거스름돈인 400원이 되돌아오는 경우가 특히 우려됐다.
돌아오는 금액은 다른 화폐도 아닌, 원화일 테니까.
메시지 너머 누군가의 존재가 확정되는 순간일 테니까.
[10만 원이 납부되었습니다.]
[금액에 맞는 분량의 고기가 계산됩니다.]
[팔크라스 고기 2kg를 구매합니다.]
[잔액은 환불되지 않으며 경매장 마일리지로 적립됩니다.]
[400원 상당의 경매장 마일리지가 적립됩니다.]
[경매장 마일리지는 화폐 대용으로 사용 가능합니다.]
“참나.”
조금은 다행이랄까, 거스름돈이 돌아오는 일은 없었다.
메시지에 대한 의구심은 더욱 커졌지만.
[팔크라스 고기가 수납됩니다.]
여기서 더 웃긴 건, 물건이 차원 너머에 있음에도 배송에 걸리는 시간이 전혀 없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구매한 고기는 인벤토리에 자동 수납되는 방식이었다.
“서비스 한번 끝내주는군. 그보다 내가 놓친 건 없을까.””
차원 경매장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하는 능력이었다.
따라서 지금은 검색 과정을 복기할 차례.
“고기는 확실하게 구울 수 있어. 다만.”
마음에 걸리는 옵션이 하나 있었다.
고기를 구워 먹음으로 신체 혹은 정신에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는 옵션이었다.
“고기를 굽지 않았을 경우 생기는 문제에 대해 고려하지 않았군.”
즉, 생고기 상태의 고기가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었다.
게다가 팔크라스 고기는 저가 품목중에 두 번째를 차지하는 고기.
분명 단점이 존재할 터였다.
“지금의 신체라면 죽진 않겠지.”
주민성은 인벤토리에 수납되었던 팔크라스 고기를 꺼내기에 앞서 만반의 준비를 시작했다.
“장갑, 방독면, 진공박스. 또 뭐가 필요하려나.”
인벤토리에 들어 있던 온갖 물품들이 쏟아졌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감싸는 텐트의 설치까지.
“이 정도면 되겠지. 몸뚱이는 나름 튼튼하니.”
인벤토리가 텐트를 향해 천천히 움직였다.
정확히 고기가 떨어지는 지점을 조준한 주민성은 조심스레 팔크라스 고기를 꺼냈다.
툭.
고기와 함께 쪽지 한 장이 떨어졌다.
-범상치 않은 고기군. 무슨 고기지? 라면 육수용?
고기는 장 박사의 호기심을 제대로 일으킨 모양이다.
주민성은 그대로 쪽지를 무시하고 진공박스를 관창했다.
“딱히 변화는 없군.”
박스가 부식되거나, 폭발하거나, 맹독을 뿜어내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빛깔도 좋고.”
부담스러운 비주얼의 고기는 아니었다.
아름다운 선홍색을 뽐내는 고기였다.
게다가 도축까지 끝난 상태로 경매장에 올려진 물품이었는지 딱히 손을 댈 구석도 보이지 않았다.
“바로 구워 봐도 되겠군.”
주민성은 빠르게 버너와 불판 세팅을 끝마쳤다.
[진공박스가 수납됩니다.]
마무리로 진공박스 수납까지.
고깃덩이가 자연스럽게 불판에 안착했다.
“일단은 기본 맛이 중요하니까.”
밑간이라든지 추가적인 작업은 전부 생략했다.
지금은 고기 본연의 맛이 중요하니까.
“위험성을 생각하면 레어가 맞는데……. 일단은 미디엄 레어부터 테스트해 봐야겠군.”
당연하게도 주민성은 고기에 박식하지 않았다.
여태껏 돈만 모아온 사람에게 스테이크는 너무나 큰 사치였기에.
크라노돈 고기도 버너가 하라는 대로 구웠을 뿐이었다.
다만, 이번만큼은 테스트인데다 판매용으로 쓸 고기였기에 일부러 덜 익혀 맛을 볼 생각이었다.
삐빅. 삑삑.
미디엄 레어 세팅이 끝나고, 본격적인 고기 굽기가 시작됐다.
치이이!
-조리가 완료되었습니다.
팔크라스 고기는 크라노돈 고기와 달리 조리 시간이 짧은 편이었다.
물론 기준이 크라노돈 고기라서 그렇지, 돼지고기나 소고기에 비해선 익히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
“후우.”
주민성은 그대로 화상 방지용 목장갑을 끼고 고깃덩이를 집었다.
크기도 크기인데다 직접 쥐어 뜯어먹으면 더욱 맛있을 것 같은 본능에 따른 결과였다.
“제발 맛있길.”
그리고 대망의 첫 한입.
주민성은 한껏 입을 벌려 고깃덩이를 물어뜯었다.
“……!”
한우와는 전혀 다른 질감.
확실히 뜯는 맛이 있는 고기였다.
“으음!”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한 육즙이 입안에 퍼졌다.
심지어 특별한 밑간도 되어 있지 않았는데, 은은한 짠맛도 함께 느껴진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씹는 맛이 너무 좋아 삼키기조차 아까운 수준이었다.
주민성은 뜯겨진 고기 단면을 보며 전율하고 있었다.
‘저 동네 육식 동물들은 대체 얼마나 호강하고 사는 걸까.’
대성공이었다.
이 고기는 단순히 구우면 맛있는 고기의 경지를 뛰어넘어 반드시 구워 먹어야 하는 위치에 도달해 있었다.
‘한 입만 먹어도 이 정도라니.’
주민성은 다음 한 입을 위해 고기를 삼켰다.
그 순간.
[포식자의 허기가 발동됩니다.]
[피식자의 힘을 일부 포식합니다.]
[위협을 감지하는 감각이 발달합니다.]
[소화 완료까지 남은 시간 5분.]
한동안 잠잠하던 포식자의 허기가 발동되었음을 알리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와. 보너스까지.”
이 정도면 맛이 없어도 먹어야만 하는 고기였다.
하지만 주민성은 소화 완료 대기 시간 따위 신경 쓰지 않았다.
고기는 앞으로도 계속 구매할 수 있었으니까.
결정적으로 고기 맛이 워낙 빼어나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는 표현이 더 가까웠다.
“으음.”
주민성은 정신없이 고기를 먹어 치웠다.
그 와중에 소화도 이뤄졌는지 두 번의 메시지가 더 떠올랐다.
[하체 근력이 발달합니다.]
[식물과 관련된 미각이 발달합니다.]
“와. 잘 먹었다.”
팔크라스 고기 1kg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럼에도 아쉬움은 없었다.
더욱 큰 희망만이 가득했다.
“그냥 구워도 이 정도면…….”
고기를 구워 먹는 방법은 무궁무진했다.
심지어 곁들여 먹는 재료, 조리에 쓰이는 재료도 너무나도 많았다.
그만큼 다양한 맛을 즐길 수 있을 터였다.
“태어나길 잘했어…….”
살아있음에 감사하게 되는 맛이었다.
이전에 먹었던 크라노돈 고기도 맛있었지만, 팔크라스 고기는 또 다른 감동이 있었다.
“이건 무조건 팔린다.”
폭풍처럼 몰려든 감동을 추스른 주민성은 팔크라스 고기 500만 원어치를 추가로 구매했다.
그리고 곧장 고상수가 머무는 텐트로 돌아갔다.
“그래. 일단은 소수정예로 가자고. 5명이면 돼.”
고상수는 통화에 한창이었다.
이전에 말했던 직원들은 섭외하는 모양이다.
통화가 마무리되고, 주민성은 빠르게 용건부터 말했다.
“고기. 한 번만 더 드시면 안 될까요?”
“……그, 그건 좀.”
“이번에는 완전 다릅니다. 판매용 고기거든요.”
“음? 벌써 고기를 구하셨다고요?”
당연하게도 고상수는 미심쩍은 표정으로 답할 수밖에 없었다.
불과 한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이럴 땐 실물을 보여 주는 쪽이 빠르다.
“여기요.”
“맙소사…….”
이번엔 인벤토리에서 요란하게 꺼내지 않고, 정상적으로 지퍼백에 담아 둔 상태였다.
“상당히 신선해 보이는 고기군요. 핏물도 나오지 않고.”
고상수는 주민성이 건넨 파크라스 고기를 이리저리 살피며 신기해하고 있었다.
“대체 무슨 고기죠? 이런 질감은 처음인데. 꺼내서 만져 봐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죠.”
고상수에겐 주민성보다 훨씬 많은 고기를 섭렵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럼에도 알 수 없는 고기였기에 내심 승부욕이 발동한 모양.
“상당히 희귀한 고기를 구하셨군요. 소나 돼지는 당연히 아니고. 말이나 곰도 아닌데……. 끄응…….”
당연히 답은 나오지 않는다.
대신, 자신의 사업적 견해를 꺼냈다.
“이런 고기라면 무조건 됩니다. 대신 원가가 상당히 세 보이는데……. 그에 맞는 고급화 전략이 필요하겠군요.”
“그런가요?”
“예. 단순히 구워 먹기엔 아까울 정도의 퀄리티입니다. 전문가를 따로 초빙해야할 수준이에요.”
고상수는 팔크라스 고기를 매우 높이 평가했다.
“원가는 얼마입니까? 하루에 얼마만큼 유통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겠습니다.”
주민성은 상쾌한 미소로 답했다.
“kg당 5만 원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