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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 그 이상의 것들 (2) (133/250)


상상 그 이상의 것들 (2)
2022.04.13.


시무룩.

지금 중년 남자의 표정을 표현한다면 정확히 어울리는 단어였다.

“……원하는 게 무엇입니까. 눈치 그만 주십시오. 소화도 안 될 것 같습니다.”

고작 캠핑용으로 짐작조차 가지 않는 가격의 버너를 사용하는 사람이다.

저번 경매 때는 눈에 띄지 않았으나, 그 역시도 준비가 부족했을 뿐.

자금력이라면 얼마든지 있는 상대였다.

“맛은 괜찮았습니까?”

“예. 처음 한 입은 정말 최고였지요.”

눈치가 빠른 만큼 입맛 떨어지는 속도 또한 어마어마한 사람이었다.

그 눈치로 부를 쌓아 왔을 테고.

따라서 주민성의 대답은 더더욱 눈치를 주는 것.

“맛있어질 때까지 구워야겠군요.”

“야! 그럴거면 나한테! 읍읍!”

성아영의 입을 막은 주민성은 다시금 불판에 고기를 올렸다.

“아아. 이제 괜찮습니다. 정말로.”

“……좋습니다.”

최선호에게 집게를 넘긴 주민성은 남자와 함께 근처 폐건물로 자리를 옮겼다.

“이제 말씀하시지요.”

“네.”

인천 게이트는 주민성만의 등급제로 돌아가는 게이트였다.

그리고 다이아 등급인 성아영은 이곳의 갑.

누구보다 빠르게 성아영에게 접촉하는 이 남자라면 분명 윗 등급을 노리고 있을 터.

“캠핑 말고, 다른 쪽은 관심 없으신지요.”

“어떤 쪽 말입니까?”

“예를 들면 장사라든가요.”

인천 게이트에는 부자들의 입맛에 맞는 여러 건물이 들어서고 있었다.

다만, 건물 외견만 다를 뿐이고 요양 목적이 대부분이라는 것이 문제였다.

“이곳에도 제대로 사람이 살 수 있는 구역을 형성하고 싶습니다. 인력도 필요하고요.”

주민성이 보유 중인 게이트는 여러 문제를 안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큰 문제는 인력과 관련된 문제였다.

밑도 끝도 없이 늘어나는 몬스터 개체 수에 반해, 사람 수는 지극히도 한정되어 있었으니까.

“제가 보낸 사람들은 보셨죠?”

“아……. 감독관님들 말씀이십니까?”

이미 판자촌 능력자들의 명칭은 감독관이 되어 버린 모양.

그렇다면 얘기는 더욱 잘 통할 터.

“보셨다시피 인력 상황이 좋지가 않아요. 그래서 사람이 더 필요합니다.”

신뢰 관계 형성은 간단하다.

단순 약속이 아닌 능력이 중간에 개입할 테니까.

물론 임진석처럼 규격 외의 능력으로 이용료 청구를 벗어날 가능성을 계산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게이트의 가치가 커질 거라는 확신에 따른 계산이었다.

“투자를 원한다는 말씀이시군요.”

“정확합니다.”

물론 돈 계산은 확실히 할 예정이었다.

입자 절단기와 최선호의 도움으로 더욱 강화된 부가효과를 금전적 가치로 치환할 계획이었으니까.

“음…….”

신도시 계획은 이전에도 말해 뒀기에 많은 설명은 필요하지 않았다.

이 남자가 계산하는 부분은 신도시에서 자신이 개입하고, 얼마나 이득을 볼 수 있을지에 관해서였다.

“필요 없다면 다른 분들을 알아보죠.”

“앗.”

당연히 생각할 시간은 주지 않는다.

사회적 경험이든 사업적 경험이든 불리한 쪽은 주민성이었으니까.

“자,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아뇨. 기다리기엔 제가 바빠서요.”

“끄응. 일단 하겠습니다.”

그렇게 끄집어낸 긍정적인 답변.

“그 대답. 물릴 수 없습니다. 아시죠?”

“예……. 그것도 그렇고 요즘 흉흉한 뉴스가 많아서 고민하던 참이었습니다.”

그의 고민은 주민성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부분이었다.

“뉴스요?”

“예. 비석들이야 말할 것도 없이 계속 발견되고 있고, 요즘 들어 유독 해외 소식들이 유독 뜸해지고 있습니다.”

“그게 왜요?”

“그래선 안 되는 상황이거든요. 해외발 주식들이 순차적으로 폭락하고 있습니다. 특히 아프리카 쪽은 아예 소식이 끊겼고요.”

능력자의 시선과 사업가의 시선은 과연 달랐다.

“이 정도의 문제라면 보도되고도 남았어야 합니다. 하지만 감감무소식이죠. 제가 성아영 씨에게 접근한 이유도 이런 문제 때문이었습니다.”

“아아.”

협회라면 확실히 다를 터였다.

검열을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하는 조직이었으니까.

핵심 인물만 포섭해도 진짜배기 정보를 알아낼 수 있으리라.

역시 이 세상에 목적 없는 호의는 없었다.

“여기까지 말하신다는 것은 그쪽도 제게 바라는 것이 있어서겠군요.”

“아아. 소개가 너무 늦었습니다. 고상수라고 합니다. 부천에서 작게나마 사업을 하고 있지요. 편하게 불러주십시오.”

작게나마라고 표현하긴 했지만, 성아영이 옆에 있는 것을 허락했을 정도라면 분명 인지도가 상당한 인물일 터였다.

“예. 고 사장님이군요. 말씀하세요.”

탐색은 어느 정도 끝났다.

이해관계는 제법 부합한다.

주민성도 자신의 능력을 일부 보였고, 그 역시 접근 목적에 대해 오픈했으니까.

“처음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곳을 온갖 혜택들이 가득한 도시로 바꾸겠다고.”

“예. 그랬었죠.”

“믿지 않았습니다. 아마 그곳에 있던 사람들 대부분은 혹했겠지만 말이죠. 등급 때문에.”

고상수는 투자를 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투자를 하지 않은 케이스였다.

정확히 기본 이용료만 내고 기본 혜택만 받아가자는 주의.

손해는 거의 없는 선택이었다.

추가적인 이득도 없었겠지만.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세상이 변하고 있습니다. 이곳에 체류하는 사람들도 서서히 깨닫겠지요.”

고상수는 진지한 표정으로 눈을 마주쳐왔다.

“투자. 지금이라도 하고 싶습니다. 어릴 적부터 온갖 사업은 다 해 봤습니다.”

“투자만으로 괜찮습니까?”

“…….”

여태까지의 표정이 비즈니스용이었다면, 지금의 고상수에겐 뜨거운 열의가 느껴졌다.

“맡겨 주시면 더더욱 좋습니다. 종목 가리지 않고 전부 가능합니다.”

“음.”

계속해서 부자들의 돈만 축낼 수도 없는 일.

마침 주민성에게도 추가 자금이 필요하던 참이었다.

‘슬슬 고객들을 늘릴 때긴 하지. 이대로면 너무 많은 땅이 놀아.’

넓은 인천 게이트 안에서도 거주 구역은 지극히 한정되어 있었다.

게다가 건물에서 발생하는 수익보단, 능력에 의존하는 수익이 대부분이었기에 이대로 완공이 끝난다 하더라도 일반적인 도시와는 거리가 상당히 멀다고 할 수 있었다.

‘숙박 도시만으론 부족해.’

이 도시엔 콘텐츠가 필요했다.

그것도 돈을 꾸준히 벌어들일 수 있는.

그리고 능력만으로도 특화시킬 수 있는.

“종목. 상관없다고 하셨죠?”

우선적으로 떠올린 사업은 유흥업이었다.

단기간 수익만 본다면 최고라 할 수 있었으니까.

도박장이라면 고상수의 실력으로도 쉽게 유치 가능할 터였다.

“……불법적인 사업도 가능은 합니다. 이 부분에 있어선 대책도 충분히 마련해 주셔야 하고요.”

게이트 자치권이 있었기에 법은 문제없다.

다만. 주민성의 입장이었을 뿐.

‘소비자들이 수용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고민해 보자. 그리고 무슨 난리가 나든 기능하는 도시가 되어야 해.’

주민성은 자신의 새로운 대표 능력이라 할 수 있는 초월 건물을 떠올렸다.

‘편의점과 헬스장. 조금 더 양보한다면 학교까지.’

이것만으로도 식량과 생필품 문제가 해결되는 상황이었다.

헬스를 통한 건강 증진까지도 가능하다.

덕분에 김정남 같은 사람에겐 천국과도 같은 장소이기도 했다.

‘헬스 중독자들만 만족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지.’

그리고 인천 같은 경우엔 상류층이 대부분이었고, 일부 환자들과 휴양이 필요한 이들에게 크게 각광받는 상태였다.

‘역시 이용 계층이 너무 한정되어 있군.’

수용 범위 확대.

지금으로선 이 부분이 가장 중요했다.

“고 사장님.”

“예.”

해결사는 바로 눈앞에 있었다.

“거부감 없이 많은 사람을 만족시킬 수 있는 아이템은 뭐가 있을까요.”

“음……. 왕도를 말씀하시는 것이라면……. 아까 구운 고기가 해당하는군요.”

“아.”

답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삼겹살, 치킨, 떡볶이, 김치찌개 등 한국인이라면 거부할 수 없는 음식들이 너무나 많았다.

“고깃집이라면 얼마든 차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곳만의 차별점이 필요합니다. 게이트까지 와서 먹어야 할 이유 말이지요.”

“흐흐.”

“…음?”

주민성의 입꼬리가 치솟기 시작했다.

플러스 표식이 네 개나 박힌 금빛 한우에 비견될 만한 고기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으흐흐. 게이트까지 찾아오게 만들 만한 고기라면 존재하지. 확실히.”

“저, 저기요?”

주민성만이 아는 고기의 정체는 크라노돈 고기였다.

“아. 잠깐.”

“예?”

하지만 문제가 또 하나 있었다.

하위 차원에서 획득한 식량은 가르취와 차크취가 전부 먹어치웠기 때문이다.

“젠장할.”

“지, 진정하십시오…….”

“아.”

뒤늦게 고상수를 알아차린 주민성은 가볍게 목례하고 자리에 앉았다.

“고 사장님. 고깃집으로 합시다.”

“좋습니다. 고기 수준은…….”

“당연히 최상입니다.”

“S급 이상의 목장부터 섭외해야겠군요.”

“아뇨.”

주민성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는 고상수를 제지했다.

“일단 고깃집 세팅만 해 주세요. 고기라면 어떻게든 구해 볼 테니.”

“아……. 설마…….”

고상수의 표정엔 불안감이 가득했다.

“예. 그 설마입니다.”

주민성은 이해하지 못했지만.

“안 됩니다! 오크 고기는 안 돼요! 먹으면 죽을지도 모릅니다! 그보다 근육이 많아 육질 자체가!”

“……예? 오크요?”

“……오크 고기. 아니었습니까?”

착각해도 단단히 해버린 모양이다.

“아닌데요.”

“으잉.”

“아니라구요.”

“예…….”

왜인지 미심쩍은 표정이 사라지지 않았지만, 고상수는 선뜻 주민성의 제안을 승낙했다.

“말씀드리지만. 건축계약은 협회의 승인 없이 진행할 생각입니다. 괜찮으실지요?”

“예. 처음부터 그럴 계획이었습니다. 그보다 고기의 질은 정말 확실한지요…….”

“최대한 좋은 고기로 찾아 보겠습니다. 그리고 정 안되면 치킨집으로 종목을 바꿔도 되고요.”

보험으론 고블린이 튀겨내는 편의점 치킨이 있었다.

요즘은 맛볼 수 없는 과거의 치킨이라면 분명 중년의 추억을 자극하는 맛이 될 터였다.

‘좋아. 최소한 중년층은 사로잡을 수 있어. 전국 헬스인이라면 환장할 닭가슴살도 있고.’

안전 종목까지 확보한 상황.

이젠 새로운 사업주에게 당근을 하나 건넬 차례였다.

“이번 사업. 성공만 하면 지위만큼은 확실하게 보장해드립니다.”

“음…….”

고상수는 주민성이 멋대로 만들어낸 등급에 큰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당장의 형편일 뿐.

2차 대격변이라는 미래가 정해진 이상, 인천 게이트라는 새로운 피난처는 반드시 떡상할 예정이었다.

“제안이 맘에 안 드시나요? 나중에 후회하실 텐데.”

그리고 핵심.

나중이라는 단어를 언급함으로 정보력의 우위는 주민성에게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시켰다.

“아닙니다. 여기까지 추진된 이상, 무조건 해야죠. 이 사업 성공시키면……. 부디 잘 봐 주시길 바랍니다.”

“물론입니다. 능력은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까요.”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둘은 악수하며 신뢰를 다졌다.

덤으로 추가 서비스까지.

“이용료 청구.”

“앗.”

“놀라지 마세요. 보셨으면서.”

고상수는 경매에 입찰하지 않아 장기 이용자가 아닌 상태였다.

“이 폐건물은 선물이 되겠군요. 텐트 대신 써도 됩니다. 효과는 같으니까.”

“오오. 그렇군요. 돈 받으십시오.”

“넵.”

그렇게 30번의 이용료 청구를 마친 주민성은 추가 이용료를 받아내고 나서야 상쾌한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그럼 바로 사업에 착수하겠습니다. 직원도 부를 계획인데 괜찮을는지요?”

애초에 고상수가 주민성에게 손해를 끼칠 생각으로 다른 이들을 게이트에 불러왔다면, 건물 이용자라는 권한이 반발할 수밖에 없을 터.

“얼마든지요.”

따라서 제안엔 큰 문제가 없었다.

“후우.”

고상수가 자리를 떠나고, 홀로 남은 주민성은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기로 마음먹었다.

“최상급 고기만 남았군.”

여기서 하위 차원으로 이동해 크라노돈을 사냥하는 것은 하책 중에 하책이었다.

주민성에겐 새로 얻은 능력이 있었으니까.

“일단은 차원 단위로 스케일이 커졌으니까.”

이젠 집중력을 끌어올릴 시간.

“뭐든지 있겠지.”

주민성은 그대로 눈을 감고 말했다.

“차원 경매장.”

가벼운 현기증이 일어나며 메시지가 떠올랐다.

[차원 경매장 권한을 사용합니다.]

[등록된 물품을 조회해 물건의 구매가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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