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 그 이상의 것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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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 그 이상의 것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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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 그 이상의 것들 (1)
2022.04.12.
주민성은 최선호의 안내를 받으며 해상 요새에 올랐다.
짧은 기간이었음에도 요새 내부엔 상당한 변화가 일어나 있었다.
“인테리어가 많이 변했네?”
“네. 건물주 등급이 오르면서 구현할 수 있는 것들이 늘어났거든요.”
“와…….”
눈에 보이지 않는 부가효과와 달리 최선호의 능력은 아주 직관적이었다.
특히 근 미래적인 설비들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지이잉.
“자동문까지…….”
“형 능력에 비해선 소소하죠.”
확실히 자동문에 뚜렷한 효과는 없었다.
그뿐이라면 부가 효과가 상위 능력일 터.
문제는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꿀렁꿀렁.
요새 바깥에서부터 빼꼼 튀어나온 파이프.
이 파이프는 무언가 확실한 효과가 있어 보였다.
“건물주 등급 상승 500회차였나? 그때부터 추가된 옵션이에요.”
“저게 뭔데?”
“추출기요. 정확한 용도는 모르겠는데, 일단은 몬스터 부산물 수집 용도로 쓸 계획이에요.”
“설마 균열 아래의 몬스터?”
“네.”
균열의 깊이는 말로 설명이 불가능할 정도.
그 말은 곧 파이프의 길이도 균열의 깊이만큼 길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아. 고철 같은 파이프 재료라면 충분해요. 인천 게이트 폐건물에 있는 잡동사니들을 요새로 옮기기만 하면 알아서 재가공되거든요.”
“와…….”
건물 잔해와 고철.
둘 다 멀쩡한 재료는 아니었지만, FFF급답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소모품이었다.
‘잔해에 대해서도 더 연구를 해 봐야겠군.’
건물 잔해의 사용처는 기본적으로 공격용이었다.
텐트포처럼 새로운 활용 방법도 만들어냈지만, 이 역시도 포탄에 쓰였으니 근본은 바뀌지 않는다.
이번에 배운 점은 가공을 통한 새로운 가능성의 발견이었다.
‘분발해야겠군.’
주민성은 최선호가 안내해 주는 방으로 향했다.
“부산물들은 저 방 대형 욕조에 쌓여요. 냄새가 역할 수도 있으니 조심하셔야…….”
“잠깐.”
“네? 왜요?”
주민성에겐 굳이 몬스터 부산물의 역한 냄새를 맡을 이유가 없었다.
해결 방안도 존재했고.
“너 아직 인벤토리 없지?”
“네…….”
“몬스터의 정체도 모르고?”
“아직은요…….”
“좋아. 기다려 봐.”
주민성은 방문에 손을 뻗어 인벤토리를 꺼냈다.
‘생각해 보니 액체를 수납한 적은 없었지.’
끝 모를 미세먼지도, 온갖 잡동사니도 전부 수납해 왔지만 주민성의 인벤토리는 용기에 담기지 않은 액체를 수납한 이력이 없었다.
게다가 최선호는 임시 서비스로 능력을 받았기에 소유권도 문제되지 않는다.
‘좋아. 해 보자.’
육안으로 보이진 않았지만, 감각으로 알 수 있었다.
인벤토리는 부산물이 쌓이는 방 안에 떠올라 있었다.
‘욕조 내부의 액체 전부 수납.’
메시지가 빠르게 떠올랐다.
[맹독충(애벌레) 체액이 수납됩니다.]
[맹독충(애벌레) 체액이 수납됩니다.]
[모래가 수납됩니다.]
[맹독충(번데기) 체액이 수납됩니다.]
[오염수가 수납됩니다.]
[오염수가 수납됩니다.]
……
‘오염수!’
주민성은 곧장 수납을 멈췄다.
인벤토리의 구조는 게임 속의 그것과 달리 별도의 공간 안에 차곡차곡 쌓이는 형태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소량이라면 괜찮겠지.’
그렇다고 인벤토리 내부의 물건들이 멋대로 오염되진 않을 터였다.
아직 검증되지 않은 정보가 워낙 많긴 해도 영혼의 소멸조차도 막을 수 있는 공간이었으니까.
‘여튼 성과는 있어. 그거면 돼.’
처음 고블린 꽃을 확인했을 당시와 달리 물음표는 떠오르지 않았다.
존재가 확실하게 증명된 개체인 모양.
추가로 인벤토리의 액체 수납 여부도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알아냈다. 선호야.”
“네?”
“균열 아래에 있는 몬스터의 정체.”
“아, 아직 분석은 시작도 안 했는데요?”
“인벤토리를 썼지.”
“오오.”
맹독충.
적어도 그동안 공부했던 몬스터 중엔 없던 이름이었다.
하지만 직관적인 개체명은 놈의 위험도를 잘 나타냈다.
“맹독충이라는 이름은 들어봤어?”
“……아뇨. 처음 들었어요. 곤충형 몬스터예요?”
“아마도. 일단 수납된 녀석들은 애벌레와 번데기였고.”
쉽게 사냥 가능한 성장하지 않은 몬스터.
하지만 방심할 수 없었다.
최선호는 오히려 더욱 심각해진 모양이다.
“형. 번데기는 비어 있었어요?”
“아니. 체액이 흡수된 거로 봐선 비어 있진 않았어.”
“휴. 조금은 다행이네요. 맹독충에도 대비해야 할 것 같아요. 그 깊은 균열 속에서도 멀쩡히 살아남는 녀석이고.”
성충이 된 맹독충은 아직 접해 보지 않은 상황.
하지만 F급 몬스터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등급 상승을 안겨 주는 것으로 보아 절대 약하지 않은 놈이리라.
‘나는 몰라도 다른 사람들은 맹독에 쉽게 노출될 가능성이 커.’
주민성에겐 건물이라는 압도적인 공기 정화 수단이 존재했다.
텐트의 잠재적인 값어치가 더욱 상승하는 순간이었다.
“대비해야겠네.”
“네. 능력도 부지런히 써야겠어요. 사용하면 할수록 사용처도 다양해지는 능력이니.”
“그래. 이제 좀 어디 가서 쉬자. 문 열 필요는 없어졌으니까.”
“넵. 이쪽으로 오세요.”
주민성은 최선호를 따라 이전의 사령관실로 향했다.
능력이 성장해서인지 인테리어적인 부분이 크게 개선된 모습이었다.
“앉으세요. 부가효과는 없어도 푹신해서 좋아요.”
사령관실에는 고급스러운 외형의 회색 소파가 있었다.
“소파네? 폐건물에 이런 것도 있었어?”
“하하…….”
왜인지 최선호는 주민성의 시선을 피했다.
“와. 밍크 극세사인가? 감촉 죽이네.”
“하하하…….”
소파에선 오래된 가구 특유의 냄새가 나지 않았다.
상당히 상태가 좋아 몇십만 원쯤은 손쉽게 받아낼 수 있을 정도로.
“뭐야뭐야. 이것도 능력이야?”
“네. 용도를 변경해서 만들 수 있어요.”
“소파를? 다른 가구도 되겠네?”
“네. 마실 거라도 가져올게요.”
“응.”
호기심이 생긴 주민성은 최선호 몰래 인벤토리를 소파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아주 미세한 수납.
[먼지(용도변경)가 수납됩니다.]
“아앗…….”
그냥 먼지라면 수납이 잘못되었음을 의심할 수도 있었겠지만, 용도가 변경된 먼지라면 확실하다.
소파의 정체는 먼지였다.
“잠재력이 어마어마한 능력이군.”
순수한 평가였다.
어차피 이물질은 마음먹을 때 얼마든 걸러낼 수 있었으니까.
때문에 주민성은 자본이 들지 않는 최선호의 능력에 주목했다.
“바닷물도 얼마든 끌어당길 수 있는 요새. 먼지만으로도 물건을 창조해내는 능력이라.”
그려오던 그림에 구체적인 색체가 입혀지기 시작했다.
“대박이다.”
물론 지금도 먹고사는 데 지장은 없었다.
인벤토리와 건물 보급 덕분에 의식주 모두를 충족한 상태였다.
하지만 삶을 더욱 쾌적하게 바꿀 수 있다면.
비용 없이 삶을 개선하는 방법이 존재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자재비용 절감……. 원가 절감…….”
그렇게 자기 생각을 중얼거리는 사이, 최선호가 돌아왔다.
“형. 여기 커피…….”
“아, 땡큐.”
커피는 인력소의 것보단 조금 더 고급스러운 믹스커피였다.
“인천에서 캠핑하는 사람들한테 받았어요. 왜인지 잘 봐달라며 이것저것 주더라구요.”
“캠핑하는 사람들?”
“네. 아예 캠핑 구역이 따로 설정됐거든요. 공사 현장에서 거리도 제법 되고.”
“……호오.”
캠핑이라면 주민성도 이수길을 따라 제법 다녀봤다.
하지만 여태 상류층과는 마주친 적이 없었다.
그들에겐 그들만을 공간이 따로 존재했으니까.
-아이고. 다음부턴 여기도 못 오겠구만.
-왜요? 자리 많은데?
-대단한 사람들이라도 놀러 온 모양이야. 저리 많은 능력자가 직접 작업할 정도면.
과거의 기억을 떠올린 주민성은 씁쓸한 표정으로 커피를 홀짝였다.
‘이 기회에 제대로 봐야겠군. 얼마나 대단한 캠핑을 하는지.’
그렇게 해상 요새는 바닷길을 개척해 가며 인천에 도착했다.
“취익! 로드께서 오셨다!”
“취이익!”
이곳의 경비는 여느 때와 같이 오크였다.
인원수가 상대적으로 부족한 판자촌 능력자들은 같은 사람들을 관리하는 것으로도 빠듯했으니까.
“이제 다크울프로 갈아타야겠어요. 지상이동은 상대적으로 너무 요란하다 보니.”
“그렇긴 하지. 내려가자.”
“네. 형.”
주민성은 의아함을 느끼고 있었다.
카르파크의 기척 때문이었다.
‘왜 안 내려오지?’
카르파크의 존재감은 여전히 해상 요새에 머물러 있었다.
“선호야. 카르파크는 안에서 뭐 해?”
“요새 운전법을 배우고 있어요.”
“응?”
황당하게도 카르파크에겐 현대화가 진행 중이었다.
그것도 운전 교습이라는.
“해상 요새는 수동 운전도 가능하거든요. 괜찮은 장소에 주차하고 내려올 거예요.”
“…….”
“그보다 오크가 운전을 한다는 게…….”
“조종실을 소개해 줬는데 핸들에 상당히 관심 있어 하는 눈치였거든요. 그래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한번 맡겨봤더니 그대로 재미를 붙였어요.”
최선호의 기행을 말릴 이유는 전혀 없었다.
오히려 응원했다.
카르파크가 제대로 운전을 숙달하게 된다면 최선호에게도 최초 메시지가 떠오를 테니까.
‘선호는 알아서 잘 크네. 걱정 안 해도 되겠어.’
쿠르르르!
수동 조작이 시작되었는지 요새에서 요란한 소리가 발생했다.
“카르파크의 기척이 느껴진다! 취익!”
“취! 위대해졌다! 거대해졌다! 강해졌다!”
다른 오크들 역시 카르파크의 존재감을 알아차렸는지 저마다의 찬사를 보내고 있었다.
“알다가도 모를 종족들이군.”
“으으. 빨리 지나가요. 형.”
오크들의 박력에 기가 죽었는지 최선호는 다크울프를 재촉했다.
말을 알아듣지 못하니 그저 괴성을 질러대는 것으로만 보일 터.
당연한 행동이었다.
“성아영은 됐으니까 캠핑장부터 가자.”
“네. 이쪽이에요.”
성아영은 주민성에게만 괴짜 같은 행동을 보일 뿐.
일단은 알아서 잘하는 축에 속하는 인물이었다.
“…….”
“어? 왔어?”
주민성의 바람과는 달리 성아영은 캠핑장에 있었다.
긴장감이라고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공간이었다.
“오오! 이쪽으로 오십시오!”
성아영의 곁엔 상당히 부자로 보이는 중년 남자가 함께였다.
주민성은 이들을 무시하며 성아영에게 말을 건넸다.
“공사 현장은?”
“문제없어. 네가 감독관들 따로 보냈잖아?”
“당신이 여기 있는 게 문제인데요.”
“너무해. 흑.”
상류층의 캠핑이라 해서 조금은 기대했는데 이수길과 다녔던 캠핑과 큰 차이는 없었다.
캠핑용품들의 가격이 좀 더 비싼 정도였다.
“역시 좋은 물건은 단번에 알아보시는군요.”
남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주민성에게 말을 걸어 왔다.
보고 있던 물건은 유리로 되어 있는 특이하게 생긴 버너.
“이집트의 만년 모래라고 들어 보셨습니까? 그 모래를 가공해서 만든 유리라고 합니다. 보통 유리와는 달리 아름다운 투명도를 자랑하죠.”
“흐음.”
버너라면 주민성에게도 있다.
아주 고품질의 마석 버너가.
“고기 조금만 구워 볼게요?”
“예에! 얼마든지!”
주민성은 근처에 있던 삼겹살을 꺼내 불판에 올렸다.
척.
아무런 안내음도 없었다.
하지만 캠핑의 특수성을 본다면 이해 못할 수준은 아니었다.
안내음이 없는 대신 버너를 직접 조작함으로 나름의 손맛을 추구할 수 있을 테니까.
치이익!
고기는 빠르게 구워졌다.
평소였다면 최선호나 성아영에게 한 점 건네도 무방할 타이밍.
‘위화감.’
하지만 주민성은 말없이 고기만을 노려볼 뿐이었다.
치이이이!
“…….”
“이제 드셔도 될 것 같습니다!”
“……먼저 드시죠.”
“오오. 감사합니다.”
중년인은 주민성이 건넨 고기를 거리낌 없이 입에 넣었다.
“으음! 역시 맛있군요!”
“그러십니까?”
“예! 쌈 하나 싸 드려도 되겠습니까? 유기농 채소들로 챙겨 왔습죠!”
명백한 거부 감각.
전과 달리 예민해진 감각은 지금도 고기에 위험 신호를 보냈다.
“안 먹어? 내가 먹을래 그럼.”
성아영이 고기를 향해 젓가락을 뻗었다.
하지만 그 행동은 곧장 제지당했다.
“아, 왜!”
주민성은 고기를 인벤토리에 수납했다.
주변의 시선이 신경 쓰이기도 했지만, 감각은 이 행동이 정답임을 주장하고 있었다.
[돼지고기(중독됨)가 수납됩니다.]
의문이 해결되는 순간이었다.
고기는 처음부터 정상이 아니었던 것.
“아저씨. 고기에 독이 들었다네요?”
“그럴 리가 없는데?”
그럼에도 남자는 당황하지 않았다.
갑작스레 무표정해진 모습으로 섬뜩하게 주민성에게 답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