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능 확실하구만 (2)
(130/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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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능 확실하구만 (2)
2022.04.10.
주민성은 이런 입자 절단기에 지옥참마도라는 기괴한 이름을 지어 줬다.
왜인지 잘 어울린다는 생각과 함께.
위이이잉!
“이젠 맨땅에도 소유권을 주장할 때가 됐지.”
입자 절단기가 솟아오른 지표면을 향했다.
콰과과곽!
소음이 제법 크긴 했지만, 효과는 최고였다.
이쯤이면 임진석의 절단 능력 하위 호환이라고 해도 될 정도.
[바위가 수납됩니다.]
[화석이 수납됩니다.]
[모래가 수납됩니다.]
……
잘려진 내용물들이 인벤토리에 끊임없이 수납되기 시작했다.
전부 건물 잔해의 대체품이었다.
“재생해라. 대지여.”
쿠구구구……!
대사는 요란했지만, 실제론 한 걸음 움직였을 뿐이었다.
그저 땅이 솟아나는 현상을 이용했던 것.
“오케이. 바위는 바로 써도 되겠군.”
원하는 분량의 땅을 잘라낸 주민성은 인벤토리를 컨트롤해 균열로 옮겼다.
그리고 나지막하게 말했다.
“메테오.”
슈욱! 슈우욱!
인벤토리에서 돌덩이가 쏟아졌다.
모양이라면 입자 절단기를 통해 원하는 대로 맞출 수 있었기에 기존 건물 잔해들과도 거의 흡사했다.
곧이어 은은한 충돌음이 울려 퍼졌다.
쿠웅! 쿵!
[건물주 등급이 상승합니다.]
[건물주 등급이 상승합니다.]
[건물주 등급이 상승합니다.]
……
등급 상승을 알리는 메시지도 함께였다.
균열 너머의 몬스터들이 죽었음을 알리는 증거이기도 했다.
“확실히 고블린들하곤 비교도 할 수 없는 수준이란 말이지.”
등급 상승에 감탄한 주민성은 메시지를 살피며 추가된 부가효과를 수첩에 정리했다.
“대부분 기존 효과 강화인가.”
슈우! 슈우우!
2차로 떨궈낸 바윗덩어리 덕분에 다시금 건물주 등급 상승 메시지가 이어졌지만, 이전보다는 덜했다.
이 위치엔 이미 죽은 몬스터들이 있었을 테니까.
그럼에도 이런 행동을 반복한 이유는 이러했다.
“한 종류의 몬스터만 있는 건 아닌가.”
바위 추락마저 견뎌내는 몬스터의 존재를 파악하기 위함이었다.
다른 몬스터를 쿠션 삼아 피해를 막아내기엔 터무니없이 강력한 공격이었기에 답이 확실하게 나오는 계산이었다.
“단단한 놈. 혹은 빈자리를 곧장 메꿀 정도로 많은 개체 수.”
물론 후자보단 전자가 유력했다.
후자가 성립하려면 1차 공격과 비슷한 분량의 메시지가 떠올랐어야 할 테니까.
“역시 바위 낙하 한 번에 죽지 않는 몬스터 쪽이겠지.”
위잉! 위잉!
불순물이 많은 맨땅을 절단해서일까.
입자 절단기의 출력이 눈에 띄게 하락했다.
“벌써 충전할 시간인가. 쯧. 소유물 복제 후보로도 올려둬야겠군.”
입자 절단기가 완전히 충전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12시간.
물론 이 정보는 제품 설명서에 적힌 내용.
사용 환경과 입자 절단기의 급격한 과부하까지 고려한다면 넉넉잡아 24시간 정도는 생각해야 했다.
“6개 정도까진 복제해야 로테이션으로 작업을 할 수 있겠어.”
그렇게 생각을 마치자 봉춘향의 능력이 새삼 대단해 보였다.
봉춘향의 분신 능력이라면 입자 절단기를 쥔 채로 분신만 늘리면 그만이었을 테니까.
[입자 절단기가 수납됩니다.]
하지만 미친 듯이 부러워 할 것도 아니었다.
애초에 건물주 능력이 없었다면 분신이고 등급 상승이고 모두 성립하지 않았을 일이다.
“괜히 야외에서 충전하는 것보단 선아 씨 있을 때 같이 하는 게 낫겠어.”
능력자용 장비에 해박한 최선아라면 충전기 고장 걱정 없이 깔끔한 처리가 가능할 터였다.
그 순간, 이상한 메시지가 떠올랐다.
[인벤토리 내부의 소유물 위치가 변경됩니다.]
[인벤토리 내부의 소유물 위치가 변경됩니다.]
“음?”
주민성은 걸음을 멈추고 메시지를 노려봤다.
“…….”
처음 떠오르는 메시지였음에도 짚이는 바는 있었다.
단연 장 박사였다.
“연구와 관련 없는 물건에 손은 대지 말라고 했을 텐데. 벌서 성과를 보이겠다는 건가. 그보다 무슨 물건에 손대는지 알 수는 없나?”
주민성은 눈을 감고 집중을 끌어 올렸다.
전부 탐색하기엔 과부하가 걸릴 수 있었기에 장 박사가 손댔을 것으로 추정되는 물품부터 확인했다.
“뭐지. 라면은 그대론데.”
사라진 물건 하나 없이 전부 멀쩡했다.
심지어 마석조차도.
“메시지는 둘. 변경된 물건도 둘일 텐데.”
다음 대상은 가장 최근에 수납한 물건들이었다.
후보군은 모래, 화석 등을 비롯한 채집물과 입자 절단기였다.
“어?”
이번 물건들 역시 멀쩡했다.
다만, 입자 절단기에서 기묘한 위화감이 느껴졌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감각이군.”
이럴 땐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 최고였다.
여차하면 물건을 재수납할 때 수첩을 한 장 찢어 장 박사에게 경고를 남기는 것도 가능할 테고.
그렇게 주민성은 입자 절단기를 다시 꺼냈다.
-충전 상태: 100%
“어라?”
황당하게도 입자 절단기의 충전이 끝나 있었다.
위화감의 정체이기도 했다.
“이게 갑자기 충전된다고?”
주민성은 작업하지 않은 지역으로 이동해 입자 절단기를 다시금 가동했다.
위이이이잉!
과정은 이전과 같았다.
바위는 떨구고, 나머지 채집물은 인벤토리에 수납했다.
[건물주 등급이 상승합니다.]
[건물주 등급이 상승합니다.]
……
여기까지도 같은 패턴이었다.
보유 건물들의 가격이 상승하고, 더욱 좋은 부가 효과가 적용되는 패턴이다.
다만 전과는 다른 한 가지 차이가 있었다.
바로 새로운 메시지였다.
[적대 개체 10000마리를 토벌했습니다.]
[절대 을의 보유 개체 한도가 상승합니다.]
[절대 을은 두 개의 개체만 보유 가능합니다.]
“100마리도 아니고, 1000마리도 아니고.”
토벌 보상은 10000부터 시작이었다.
능력을 각성한 이후 잡은 몬스터의 개체수가 10000마리를 넘겼다는 소리이기도 했다.
“최하급 마석으로 쳐도 1억인가. 정말 징그럽게도 많이 잡았군.”
게임 레벨에 비유한다면 지금의 주민성은 상당한 고레벨이라고 볼 수 있었다.
물론 시작이 FFF급이었기에 효율이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그보다……. 내가 여태 잡은 몬스터는 많아 봐야 2천쯤일 텐데.”
그 말은 곧, 균열 아래의 몬스터가 8000마리 이상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미쳤군.”
현대 인류도 개척해내지 못한 구역인 균열은 게이트와 스케일 자체가 달랐다.
애초에 균열 아래에 몬스터가 서식하고 있다는 사실조차도 다른 사람들은 모를 가능성이 컸다.
대부분의 능력자는 파티를 구상해 효율적으로 마석만 채취하는 방식을 고수하고 있을 테니까.
“점점 욕심나는데.”
선구자라는 타이틀은 필요 없었다.
그보단 더욱 많이 건물주 등급을 상승시켜 극한을 맛보고 싶었다.
학교를 점령했을 당시 아주 잠깐 맛봤던 절대력을 써보고 싶었다.
“겨우 이 작은 구역 하나 섬멸했을 뿐이야. 여기서 만약 균열 전체의 몬스터를 쓸어 담는다면…….”
위잉! 위이이잉!
다시금 입자 절단기가 큰 소음을 일으켰다.
이는 배터리가 거의 소모될 때까지 반복됐다.
-충전 상태: 1%
그럼에도 주민성의 입가엔 미소가 가득했다.
“일해라. 장 박사.”
[입자 절단기가 수납됩니다.]
[인벤토리 내부의 소유물 위치가 변경됩니다.]
[인벤토리 내부의 소유물 위치가 변경됩니다.]
[인벤토리 내부의 소유물 위치가 변경됩니다.]
같은 과정을 반복했을 뿐이었지만, 작은 변화가 추가됐다.
“절단기, 그리고 충전기의 위치가 바뀌었을 텐데. 여기서 하나를 더 손댄다고?”
위치가 변경된 소유물이 하나 늘었기 때문이다.
“흐음.”
주민성은 차분하게 입자 절단기를 다시 꺼냈다.
-충전 상태: 100%
여기까진 예상대로.
시간이 멈춰 있는 인벤토리와 그 공간을 자유롭게 활보하는 장 박사의 영혼이 만들어낸 시너지는 훌륭했다.
“충전은 제대로 했고.”
툭.
입자 절단기에서 작은 종이 하나가 떨어졌다.
여분으로 챙겨 뒀던 포스트잇이었다.
-거래하자. 주민성. 너에게도 좋은 거래다.
입자 절단기를 충전시켜 줄 테니 거래하자는 아주 단순명료한 내용이었다.
“이런 거래라면 괜찮긴 해. 겉보기엔.”
적대자가 아닌 협력자 포지션의 장 박사는 상당히 유능할 터였다.
하지만, 거래는 필요 없었다.
“날 바보 취급하는군.”
새로운 인벤토리 활용법을 익혔기 때문이다.
전부 장 박사 덕분이었지만, 이는 소멸을 미뤄 주는 대가만으로도 충분했다.
“계기가 되어 준 건 고마우니 조금만 친절하게 알려 줘 볼까.”
위이이이잉!
주민성은 다시금 입자 절단기를 가동해 다시 균열의 몬스터를 사냥했다.
-충전 상태: 1%
예전이라면 입자 절단기를 수납할 차례였지만, 여기서 새로운 과정 하나가 추가됐다.
바로 인벤토리 안에 있는 다른 물건을 꺼내는 것이다.
“읏차.”
꺼내진 물건은 충전기.
크기나 무게가 상당해 조심스럽게 다뤄야 했다.
물론 지금의 근력이라면 안전하게 바닥에 내려놓을 수도 있었다.
“뭐야. 어렵지도 않네?”
충전 방식도 간단했다.
거치대에 입자 절단기를 올리는 것만으로도 끝이었다.
“충전기는 전력이나 마석 에너지 택일형이고.”
여기서부터 관건이었다.
마석을 흡수하는 체질 때문에 선택지가 전력뿐이었기 때문이다.
철컥!
“기본값은 전력이고. 배터리는 두 칸이니까 두, 세 번까진 더 가능하겠어.”
입자 절단기 완충까지 최대 3회.
그 안에 장 박사를 길들이는 것이 지금의 목표였다.
-절단기 충전 완료까지 15분 남았습니다.
“이걸 인벤토리에 넣었다가 빼면 굳이 15분이나 기다릴 필요가 없다 이거지.”
장 박사에겐 주민성을 방해할 권한이 없었다.
거스르면 소멸이라는 결과뿐이니까.
[입자 절단기가 수납됩니다.]
[충전기가 수납됩니다.]
주민성은 묵묵히 허공을 응시했다.
이제 장 박사가 답을 내놓아야 할 때.
[인벤토리 내부의 소유물 위치가 변경됩니다.]
메시지 하나.
이것이 아마 장 박사의 대답일 터였다.
메시지를 확인한 주민성은 다시 입자 절단기를 꺼냈다.
-충전 상태: 100%
“좋았어.”
대기한 시간은 1분 남짓.
15분이 생략되는 순간이었다.
“이제 알겠지. 굳이 남의 도움 없이도 충전이 가능하다는 걸.”
툭.
입자 절단기에 붙어 있던 포스트잇이 떨어졌다.
-개자식.
장 박사의 대답이었다.
“풋. 한 방 먹은 느낌이지?”
이미 갑을 관계는 완성되어 있었다.
게다가 이젠 절대 을도 하나 늘릴 수 있는 상황.
주민성은 절대 갑으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굳혀 가는 단계였다.
“이제 어떻게 할 건지. 좋은 카드를 꺼내 보라고.”
주민성은 포스트잇을 주워 문구를 추가했다.
-전력 다 쓰면 마석으로 충전할 것. 거부 시 소멸.
위이이이잉!
작업이 재개됐다.
지금의 속도라면 균열 몬스터 10만 마리 토벌도 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목표는 절대 을 한도 2회 추가.
“여기서 한 시간. 아니지, 30분쯤 사냥하면 되려나?”
쿠르르르!
자리는 언제나 있었다.
한 걸음만 걸어도 땅이 솟아나니까.
쿵! 쿵!
-충전 상태: 100%
충전도 수월했다.
장 박사는 주민성을 만족시킬 카드가 마련되기 전까진 순순히 요구에 따를 것으로 보인다.
위이잉! 위잉!
그렇게 한창 작업하던 순간.
멀리서 익숙한 존재감이 느껴졌다.
[입자 절단기가 수납됩니다.]
주민성은 곧장 소리를 죽인 채 존재감이 느껴지는 방향을 바라봤다.
“저쪽은 게이트가 아닐 텐데?”
주민성의 발길이 닿지 않은 바다였다.
게이트가 아니라는 뜻이기도 했다.
곧이어 존재감이 형체를 드러냈다.
“……선호?”
존재감의 정체는 해상 요새였다.
“아, 해상 요새는 균열을 건널 수 있었지.”
주민성이 만들어내는 균열은 땅을 솟게 만들고 바다조차도 밀어내는 특이한 속성이었다.
하지만 해상 요새는 달랐다.
균열이건 뭐건 건널 수 있었다.
“어?”
해상 요새는 여전히 바다 위에 떠 있었다.
“어어?”
자세히 보니 조금 이상했다.
“어어어?”
정확히는 바다가 끌려오는 게 맞았다.
“이대로 오면…….”
띠리리!
주민성의 휴대폰이 울렸다.
발신인은 최선호.
“선호야. 무슨 일이야?”
-형! 대박이에요! 일단 그쪽으로 갈게요!
“너 해상 요새에 있는 건 맞지? 아니면 침몰시키려고.”
-아, 안 돼요! 저 타고 있어요!
“그래.”
통화를 간단히 마친 주민성은 해상 요새를 계속해서 바라봤다.
쿠우우우……!
해상 요새의 이동과 함께 바닷물이 균열 아래로 쏟아졌다.
“어? 저러면 몬스터가…….”
쏴아아아!
곧이어 메시지가 떠올랐다.
[건물주 최선호가 경험을 이전합니다.]
[건물주 등급이 884회 상승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