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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능 확실하구만 (1) (129/250)


성능 확실하구만 (1)
2022.04.09.


“……어이가 없네.”

장 박사의 제안은 분명 달콤했다.

라면의 맛 향상은 삶의 질에도 분명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거기에 더해 부가적인 수입도 창출해낼 수 있었다.

하지만 거슬리는 점 한가지가 존재한다.

“조건을 달아? 내가 달아도 모자랄 마당에?”

“그렇게 전달하면 되겠습니까?”

“응. 협조는 장 박사가 나한테 해야지.”

봉춘향은 눈을 감고 집중을 끌어 올렸다.

그리고 잠시 후.

“조금 대화가 길어졌습니다. 대장님. 협조한답니다.”

아직 몇 초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인벤토리 내부에서의 시간은 별개였기에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수준.

“좋군. 안에서 아무것도 건드리지 못하게 했지?”

“예.”

“또 다른 특이사항은?”

“소멸을 멈췄다는 사실에 상당히 놀란 기색이었습니다. 인벤토리……. 이 공간에도 상당한 흥미를 느끼고는 있으나 그 부분에 대해선 아무것도 건들지 말 것을 당부했기에 조바심을 내고 있습니다.”

“그렇단 말이지.”

다행히 지금의 장 박사에겐 상식이 통하고 있었다.

물론 전부 믿을 수는 없었지만, 봉춘향을 믿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보다 라면 맛은 어떻게 끌어올린다는 걸까?”

“인벤토리 내부에 새로운 공정을 만들 수 있다고 합니다. 물리적인 제약이 상당히 완화되었다면서 여러 전문 용어를 사용했기에 전부 알아들을 수는 없었습니다. 죄송합니다.”

“흐음.”

“그 때문인지 장 박사는 여전히 대장님께 대화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대화라.”

지금 시점에서 장 박사와 대화하는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바로 주민성이 직접 인벤토리에 들어가는 것.

‘아직 검증되지 않은 부분이 너무 많은데.’

인벤토리에 들어가는 법은 간단했다.

텐트에 들어간 다음, 텐트를 수납하는 방법이었다.

문제는 그 이후.

‘나올 수 있다는 보장이 없어.’

그때부턴 오로지 일방통행이 되기 때문이다.

설령 인벤토리 안에서 인벤토리를 꺼낸다 해도 문제였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고립되는 결과가 나타난다.

“대화를 어떻게 하자는 건데?”

박사의 영혼을 바깥으로 재배치하는 것은 당사자 본인도 짐작하고 있을 터였다.

무조건 소멸이니까.

게다가 대화는 오로지 안대를 써야만 가능하니 녹화 및 녹음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주민성의 생각이었다.

“제가 전달하면 됩니다.”

“그야 알지만…….”

“대장님은 절 믿으셔야 합니다.”

“봉 선생님…….”

“이, 이상한 호칭은 생략해 주면 좋겠습니다.”

대리인.

방법은 이것 뿐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새로운 의견이 제시되어왔다.

“대장님. 장 박사가 방법은 있다고 하는데……. 실험체를 통하면 가능하다고 합니다.”

“실험체? 누구?”

“40호나 기생형 실험체라면 가능하다고 합니다. 직접 봤으니 알 거라며…….”

40호는 텐트에서 자고 있는 실험체, 그리고 기생형 실험체라면 거대 문어를 뜻한다.

“노우. 위험한 방법은 전부 기각이야.”

“저도 동감하는 바입니다. 장 박사를 통제할 방법이 필요합니다.”

“통제라면…….”

장 박사에게 확실한 천적이라면 존재했다.

이전이라면 모르겠지만, 영혼이 된 지금이라면 아주 확실한 카드가.

“임진석이라면 가능하겠지.”

“……그 사람입니까.”

“응. 근데 임진석도 찝찝해. 대화가 하고 싶으면 결과부터 보이라지. 내가 왜 끌려다녀야해?”

“맞습니다. 장 박사는 대장님의 위대함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

봉춘향의 기습 극찬에 정신이 아찔해졌지만, 주민성은 평정심을 필사적으로 되찾았다.

“아무튼, 장 박사의 제안은 보류야. 물론 최소한의 배려 정도는 해 줄 수 있지만.”

적어도 콩이처럼 인벤토리 안의 마석을 축낸다거나 하진 않을 거라는 계산이었다.

‘라면과 관련된 식자재 소모 정도는 괜찮아. 최하급 마석 하나만으로도 여러 개를 충당할 수도 있고. 여차하면 건물 보급 능력도 있다.’

관심사는 어디까지나 라면일 테니까.

“장 박사에게 전해 줘. 건드려도 되는 물건은 어디까지나 라면과 관련된 식품에 한정해서. 결과물부터 보이면 그때부터 얘기하지.”

“그렇게 전달하겠습니다.”

대답은 금방이었다.

“승낙했습니다. 부족한 재료는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알아서 잘해야지 뭐.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괜히 이상한 재료 조달했다가 괴팍한 실험이라도 하면 곤란해. 있는 재료만으로도 성과를 보여야 인정할 수 있어.”

애초에 영혼을 수납한 목적은 정해져 있었다.

지역 일부를 소멸시킬 수 있는 주민성 나름의 히든 카드였다.

장 박사가 성과를 보이건 말건 변치 않는 사실이기도 했다.

“승낙했습니다.”

“수고했어. 이제 텐트 회수할게?”

“……대장님?”

“응?”

봉춘향은 의아한 표정이었다.

“그러면 연락책이 사라지지 않습니까?”

“아, 그 문제였구나. 괜찮아. 일정 주기를 두고 방문하면 되니까. 그때 부탁해도 되고 급하면 장 박사가 알아서 신호를 보내겠지. 물건을 다르게 바꾼다든지.”

“그렇지만 돌발상황에 대응하려면…….”

“그래도 안 돼. 능력이 생겼으면 더더욱 휴식을 신경 써야지.”

“아……. 확실히 그 말도 맞습니다. 감사합니다.”

봉춘향이 아무리 천재라지만 여중생 정도의 아이였다.

장 박사와 오랜 시간 같이 두는 것은 용납할 수 없었다.

게다가 이젠 총기까지 지급해 전투원으로도 활약할 수 있다는 이유도 한몫했다.

분신을 통해 총기까지 일시적으로 복사해 남들보다 몇 배의 효율을 엘리트 전투원이었으니까.

따라서 휴식은 더더욱 중요해진 상황이었다.

“라면은 부차적인 부분이기도 하고. 애초에 지금도 맛있잖아? 기대야 한다만……. 없어도 그만이지.”

“그래도 궁극의 맛은…….”

의외로 식탐은 주민성보단 봉춘향이 더했다.

궁극의 라면에 상당한 호기심을 느끼는 모양이다.

“라면에 관심 있어?”

“……그렇습니다. 궁극의 맛을 자랑하는 라면이라면 분명 전투원들의 사기에도 큰 영향을 끼칠 것으로 생각합니다.”

“봉 선생님……. 거기까지 내다보셨습니까.”

“하, 하지 마십시오! 대장님!”

봉춘향이 이렇게까지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것은 상당히 보기 힘든 장면이었다.

송몽룡을 비롯한 판자촌 능력자 팀에겐 칼 같지만 주민성에겐 그렇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이렇게까지 하는데 협조를 안 할 이유는 없지. 내일부터 아침마다 나한테 분신 보낼래? 대신 많은 시간은 안돼. 최대 1시간까지야.”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응. 나보단 똑똑한 네가 기술을 익히는 게 낫지. 습득력도 확실히 차이날 테고.”

“과찬이십니다. 대장님이야말로…….”

“노우.”

주민성은 재빠르게 봉춘향의 극찬을 막아냈다.

“나 능력자 하기 전엔 노가다밖에 안 했어. 평범 그 자체지.”

“……대장님이 평범하다면 이 세상은 잘못되었습니다. 바로잡아야 합니다.”

“윽.”

하지만 후속타는 예상치도 못했던바.

이럴 때는 대화 주제부터 빠르게 전환해야 했다.

“다음엔 혼합 마석에 대해 들어볼게.”

“아, 그 부분은 확실히 어중간하게 끝났었습니다.”

장 박사의 협회 1급 계약이 멋대로 발동해 제대로 듣지 못한 이야기였다.

물론 어떤 물건인지는 대략적으로 들었기에 급한 내용은 아니었다.

게다가 봉춘향을 거치지 않고 장 박사와 단둘이 대화를 나눌 방법도 모색해야했다.

‘나의 부모님.’

장 박사에겐 주민성의 부모와 관련된 정보가 있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정보이기도 했고, 즐겁고 희망찬 이야기도 아닐 터였기에 봉춘향은 제외해야 했다.

“그래도 혼합 마석이 어떤 목적으로 쓰이는지는 알았으니 급하진 않아. 대신, 물건은 절대 협회의 손에 넘어가면 안 돼. 알지?”

“물론입니다. 혼합 마석은 제가 책임지고 사수하겠습니다.”

당부를 마친 주민성은 봉춘향의 분신과 안대를 회수하고 자리를 정리했다.

“그럼 저는 학교로 가 보겠습니다.”

“응. 수고하고.”

실험체 습격과 관련된 수습은 이미 판자촌 능력자들이 끝냈기에 직접 할 일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대신 실험체와 관련된 부분, 그리고 경비실의 수습과 장 박사에 대해선 상당한 설명이 필요했다.

“대략적으로나마 들었습니다. 허나 그 정도일 줄은…….”

“그래서 경비실에도 추가 인력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가능할까요?”

“당연히 해야지요. 인원이 너무 분산되어 조금 불안하지만…….”

이번엔 인력 문제였다.

판자촌 능력자는 수십으로 게이트 등급에 비해 상당히 많은 인원이라 할 수 있었으나, 이곳에서 발생하는 사건과 사고들에 비해선 적은 인원이었기 때문이다.

“호위 서비스 몬스터들을 대동하는건 아직 무리겠죠?”

“그렇습니다. 때문에 이 소장님은 경비실 근처에 임시 건물을 세우는게 어떻냐 하시더군요.”

“아, 그렇죠. 머지않아 건설업자분들도 올 테니까.”

폐허 도시 내부의 건축이라면 뭐든 가능하다.

업자를 통하든, 주민성이나 최선호가 멋대로 짓든.

하지만 경비실은 외부인들의 시선이 닿는 장소였기에 개성있는 건물은 삼가야 했다.

“임시 경비실이라고 해야겠네요. 용도는 몬스터의 은폐고요.”

“맞습니다. 여차하면 몬스터를 물려야 할 경우도 있으니 지하 통로 개조까지 필요합니다. 상당한 비용이 들어갈테죠.”

“돈이라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효율적이기만 하면 돼요.”

“예. 그럼 내일 아침 회의 주요 안건으로 올리겠습니다.”

“넵.”

김 대위와의 대화는 이 정도로 끝.

상황도 거의 수습되었기에 주민성은 기존 일정이었던 인천행을 준비했다.

인천의 관리는 게이트 생활에 있어 자금을 융통할 수 있는 유일한 창구였기에 중요도가 남달랐다.

물론 자리를 비운 동안 주민성을 대신해 줄 사람은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잘 다녀와요. 민성 씨.”

“선뜻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아 씨.”

“당연히 해야 할 일인걸요.”

이번에 새로 제압한 실험체들의 임시 감독은 최선아의 몫이었다.

몬스터를 다루는 실력만큼은 주민성보다도 뛰어났기에 그녀보다 나은 적임자는 없었다.

“균열 쪽도 확실히 부탁드릴게요.”

“물론이죠! 협회 간부들과의 전투로 고블린들을 꽤 잃긴 했지만, 지금도 5000마리쯤은 충분히 다룰 수 있어요.”

“…….”

최선아의 위상은 적임자의 수준을 넘어서서 고블린들이 추앙하는 성녀급에 가까웠다.

만물 소통 능력조차 없이 이뤄낸 성과였기에 이쯤이면 고블린을 다루는 능력이 있다고 믿을 수 있을 정도였다.

“할 수 있지? 블렁아?”

“키엑!”

어쩌면 크룩스의 안목이 잘못되었을지도 모른다.

최선아야말로 누구보다도 고블린 로드와 어울렸다.

물론 외모야 논외였다.

그리고 인천으로 가는 바닷길.

한창 달려야 할 고속도로와도 같은 장소였지만 주민성은 제자리에서 멈춰서서 균열 아래를 바라보고 있었다.

“건물주 등급을 본격적으로 올릴 때야.”

균열 아래엔 주민성이 모르는 몬스터가 살고 있었다.

그 사실은 이전에 건물 잔해를 떨어트려 본 것으로 증명된 사실이었다.

“실험체를 다루려면 반드시.”

건물주 등급 상승은 각종 부가효과가 추가되거나 강화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가장 중요한 절대 을의 소유 한도를 늘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했다.

쿠르르르!

균열 방향으로 걸음을 옮기자 지형이 다시금 뒤바뀌기 시작했다.

대부분 바위로 이뤄진 지형이었음에도 상식을 벗어난 현상이 발생한다.

“아주 좋아.”

너무나도 단단해 보이는 지표면은 주민성을 만족시켰다.

이유는 간단하다.

“건물 잔해 대신으로.”

잔해탑을 세우는 과정 때문에 인벤토리엔 건물 잔해가 생각보다 많지 않은 상태.

그리고 균열 아래로 추락시키는 건물 잔해는 회수 또한 불가했다.

아무리 건물주 등급 상승이 가치 있다 한들, 이런 상황에서 건물 잔해를 소모하는 것은 비효율적이었다.

“잔해는 앞으로도 쓰임새가 너무나 많을 테니까.”

여기서 바위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건물 재료로 활용하기엔 수많은 가공 작업이 필요하기에 활용도가 상대적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드디어 이걸 쓸 시간인가.”

인벤토리가 곁을 맴돌기 시작했다.

흥을 돋우기 위한 고의적인 연출이었다.

“울어라. 지옥참마도.”

위이이이잉!

인벤토리에서 꺼낸 물건은 이전에 무료로 구매했던 입자 절단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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