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러나는 비밀 (4)
(128/250)
드러나는 비밀 (4)
(128/250)
드러나는 비밀 (4)
2022.04.08.
“그래. 슈뢰딩거의 장 박사.”
장 박사의 보관이 성공하게 되면서 그의 처지는 영원한 시한부가 확정되었다.
꺼내면 소멸하고, 꺼내지 않으면 영원히 소멸하지 않는 기묘한 상황이 된 것이다.
“또 터무니없는 소리를…….”
“……그 터무니없는 소리도 사실이겠지만.”
“정답. 장 박사와의 소통은 다른 방법으로 취해야겠어.”
“안대로도 안 되는 건가?”
“응. 계약 페널티는 예상 밖이었으니까.”
“후우. 모르겠다. 장 박사는 이제 네가 알아서 해라.”
임진석은 허공을 응시했다.
그리고 안대를 쓰고 있는 주민성은 시선의 의미를 알고 있었다.
바라보고 있는 대상은 헬스장의 영혼들이 있는 자리였으니까.
“저 사람들도 네가 죽였나?”
“무슨 험악한 소릴. 대격변 당시의 사람들이다.”
굳이 숨길 이유도 없었다.
어차피 헬스장을 빠져나가지도 못하는 영혼들이라 악용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정말 밑도 끝도 없는 능력이야…….”
“그래도 부러울 정돈 아니잖아?”
“아니. 부럽다. 솔직히.”
“…….”
뭐든 잘라 버릴 수 있는 최강의 전투 능력인 절단 능력과 누구든 제압할 수 있는 최면 능력.
협회장에 한정해 통하지 않는 능력이었지만, 누가 봐도 SS급 그 이상으로 평가할 만한 능력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임진석은 주민성의 능력을 부러워하고 있었다.
“부러워하지 마라. 속 쓰리니까.”
“내가 콩이의 주인이었다면 더 좋았을 것을.”
“……아. 그게 부러웠구만.”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권리니까.”
그저 남의 떡이 커 보였을 뿐이었다.
“그건 그렇고, 여기 영혼들은 왜?”
“아. 장 박사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다.”
“여기 사람……. 아니, 영혼들이?”
“그래.”
“맙소사.”
장 박사가 아무리 기괴한 능력을 써 왔다지만 그것은 본연의 것이 아니었다.
제 나름의 과학이 이뤄낸 결과물이었다.
단순 피지컬이라면 단연 헬스장의 영혼들이 위였다.
“저기 찌그러진 영혼도 장 박사 짓?”
“맞다.”
어깨 한쪽이 일그러진 영혼이었다.
임진석이 절단 능력을 남발해 생긴 피해자가 아니었던 것.
‘영혼에도 간섭할 수 있다는 소리군.’
인벤토리에 담아 두긴 했지만, 장 박사는 여전히 위험한 자였다.
실제로 일부 지역을 소멸시킬 수 있는 소형 핵탄두나 마찬가지였기에.
아직 지켜야 할 대상은 남아있었다.
바로 인벤토리 안의 물건들이었다.
‘지속적인 관리까지 필요한 무기라.’
주민성은 곧장 김 대위에게 휴대폰을 빌려 자신의 휴대폰에 전화를 걸었다.
그것도 영상 통화로.
“이번에는 또 무슨…….”
임진석 역시 주민성의 기행엔 큰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다만 그뿐.
“훠이. 훠이.”
“…….”
“가라. 가서 밥이나 먹어.”
“……흠.”
지금부턴 보안이 중요했기에 임진석을 물렸다.
여태껏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인벤토리 내부를 촬영할 계획이었으니까.
[휴대폰이 수납됩니다.]
그렇게 휴대폰이 인벤토리에 들어가고.
주민성은 말을 잃었다.
통화가 끊어졌기 때문이다.
“…….”
인벤토리 내부에서 통화 신호가 잡힐 리가 없었다.
정말 당연한 이치.
“……내 정신 좀 봐.”
주민성은 다른 방법을 고민했다.
그리고 다시 휴대폰을 꺼냈다.
“녹화는 되겠지.”
모든 과정은 실패가 아니었다.
성공을 위한 시행착오일 뿐.
[휴대폰이 수납됩니다.]
물론 지금의 수납 역시도 성공을 장담할 수 없었다.
휴대폰이 인벤토리에 수납되기만 할 뿐, 원하는 지점을 촬영할 수는 없었으니까.
물론 여기서 인벤토리에 들어가 본 최선아의 도움을 받는 방법도 존재는 한다.
상대가 장 박사이니만큼 위험해서 그렇지.
“일단 내부 촬영만 성공하면 돼. 장 박사도 인벤토리에서 일어나는 변화쯤은 알아차릴 수도 있고.”
최선의 결과는 장 박사의 협력.
알아서 처신 잘하는 결과만 나타난다면 기꺼이 휴대폰을 들고 주민성의 협조에 응하리라.
“59, 60.”
1분이 경과했다.
셈을 마친 주민성은 다시 휴대폰을 꺼내 녹화 중이던 영상을 저장했다.
“어디 보자.”
왜인지 영상 파일의 용량은 상당히 작았다.
그 말은 곧.
“아오.”
녹화 중이던 영상도 인벤토리 내부에선 멈춰 버린다는 뜻이었다.
-치지직!
정확히 영상 녹화 버튼을 누르고 화면이 새까맣게 점멸했다가 곧장 주민성에 의해 녹화가 종료된 영상이었다.
“거참 신기한 공간일세.”
인벤토리는 생명체가 활동할 수는 있는 공간이되 시간은 멈춰있는 기묘한 상태라고 봐야했다.
하지만 그런 사실이 낯설지만은 않았다.
“하위 차원도 아니고.”
하위 차원 역시 비슷한 사례였다.
주민성이 그곳에 있는 동안 이 게이트의 시간은 멈춰있었으니까.
그 과정에선 송몽룡과 신성 측 사람들의 개입과 노력이 뒤따랐었다.
“역시 도움을 받아야겠군.”
이곳은 주민성 혼자 사는 게이트가 아니었다.
많은 동료들이 함께였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도움 될 사람이라면.”
바로 봉춘향이었다.
말도 안 되는 분신 운용부터 각종 지휘, 몬스터 포섭부터 사소한 그림 제안에도 사진이라는 확실한 답을 내놓는 봉춘향이라면 지금의 상황을 타파할 수 있을 터였다.
“부르셨습니까?”
“응.”
주민성은 자신의 상황, 그리고 장 박사에 대해 간략히 설명했다.
“여, 영혼 말씀이십니까?”
“응.”
물론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았기에 설명은 난해하기 짝이 없었다.
“그렇다면 분신을 그 인벤토리라는 곳에 투입시키면 되겠습니다.”
명쾌한 답이었다.
분신이라면 아무리 큰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최악의 결과 자체가 발생하지 않을 테니까.
“역시 봉춘갓.”
“이, 이상한 별명입니다. 그보다 급한 상황 아닙니까? 바로 임무에 투입하겠습니다.”
“그래 줄래?”
“예.”
봉춘향은 그 자리에서 곧장 분신 하나를 생성했다.
“고도로 집중해야 할 필요가 있으니 다른 분신은 잠시 회수하겠습니다.”
“응. 부탁할게.”
곧이어 또 다른 봉춘향이 곁에서 나타났다.
“후우. 이제 문제없습니다.”
“오케이. 이거 받아.”
주민성은 봉춘향에게 콰트리취의 안대를 건넸다.
“이걸 써야 장 박사가 보일 테니까.”
“안대를 착용하고 분신 능력을 사용할 걸 그랬습니다.”
분신 능력은 일시적인 소유물 복제와도 비슷했기에 안대 또한 복사되었을 터.
엉뚱한 부분에서 허술한 주민성과는 달리 봉춘향의 시야는 남달랐다.
“……죄송.”
“아닙니다. 워낙 바쁘시니 이런 부분은 제가 챙겼어야 합니다.”
“……봉춘갓.”
“……바로 임무 투입하겠습니다.”
“응.”
주민성은 봉춘향에게 텐트를 건넸다.
“이번엔 수납을 할 예정이니 돌돌 감으면 안 되고 확실하게 텐트 내부로 들어가는 게 좋아.”
“예.”
텐트에 비해 상당히 아담한 체구였기에 과정은 금방이었다.
“공간이 남는군요.”
“괜찮아. 충분해.”
“알겠습니다. 이제 작전 시작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오케이.”
[텐트 754가 수납됩니다.]
텐트가 수납되고, 주민성은 긴장된 표정으로 곁에 있는 봉춘향을 바라봤다.
“어때?”
“심각하게 어둡습니다. 우선 소지하고 있는 비상 조명을 켜도록 하겠습니다. 아, 조명 장치. 발견했습니다.”
인벤토리 안에 들어있는 조명 장치를 발견한 모양이다.
“특이한 공간입니다. 무풍지대인 것으로 보아 실내 같은 느낌이 있습니다.”
“실내라.”
확실히 관찰력이 뛰어나서인지 최선아와는 감각과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었다.
“각종 가구들이 진열되어 있습니다. 아직 장 박사는 보이지 않습니다. 경계하며 이동하겠습니다.”
“응.”
아마도 조명 장치와 함께 신성 백화점에서 구매했던 가구들이 있는 공간으로 추정된다.
‘수납 시기별로 물건들이 정리되는 건가?’
봉춘향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살짝 뒷걸음질 치는 것으로 보아 뭔가와 마주친 모양.
“장 박사야?”
“아, 아닙니다. 체감 상 이동 거리는 500미터쯤. 마석과 미세 먼지입니다.”
“응?”
겨우 몇 초였다.
그럼에도 봉춘향이 이동한 거리는 500미터.
확실히 인벤토리와 바깥의 시간은 흐름 자체가 달랐다.
“춘향아. 잠시만. 뭔가 이상한 건 인지하고 있지?”
“……물론입니다. 지금 당장이라도 100미터 단위를 초 단위로 보고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최대한 천천히 움직여. 어차피 장 박사의 시간은 멈춰있으니까. 네가 소화할 수 있을 정도로 행동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배려 감사합니다. 대장님.”
여기서 주민성이라고 할 일이 없는 건 아니었다.
봉춘향이 집중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줄 필요가 있었다.
“자.”
보온병에 담긴 십전대보탕을 시작으로 건강에 좋은 식품들이 순서대로 튀어나왔다.
“어! 대장님! 잠시!”
“응?”
“식품 위치를 알아냈습니다! 확실히 느꼈습니다!”
“그게 느껴진다고?”
“예! 인벤토리의 특징 같습니다!”
쪼르륵.
주민성은 잠자코 십전대보탕을 컵에 따라내며 보고를 기다렸다.
“대장님. 식품 중에서 아무거나 더 꺼내 주실 수 있습니까?”
“그래. 일단 마시면서 해.”
“감사합니다.”
주민성이 물건을 고르는 사이, 봉춘향은 조심스레 십전대보탕을 마셨다.
호록.
“브에에에…….”
“건강한 맛이지?”
“……흐흠. 그런 것 같습니다…….”
십전대보탕은 입맛에 맞지 않는 모양이다.
이럴 땐 달달한 군것질거리가 최고였다.
봉춘향의 요청에도 부합하고.
“자, 큐빅 초콜릿.”
“으음! 찾았습니다!”
맛과 목적 전부를 충족시키는 순간이었다.
“지금의 감각을 기억하겠습니다. 그리고…….”
봉춘향의 표정이 돌연 심각해졌다.
“식품 창고 발견! 장 박사로 추정되는 인물, 아니 영혼과 조우했습니다! 공격 태세는 보이지 않습니다! 대장님의 요구 사항을 전달했습니다!”
브리핑이 쉴 새 없이 이어졌다.
“일단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아, 새로운 요구 사항을 제시해 오는데 어떻게 할까요?”
“아니. 잠시만. 너무 빨라.”
인벤토리와 게이트의 시간적 괴리는 쉽사리 수습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선 따로 강조가 필요했다.
“시간차에 대해서도 설명했습니다. 상당히 흥미 있는 눈치입니다.”
이 역시도 알아서 해냈다.
아주 잘.
“…….”
“……앗. 대장님.”
갑자기 봉춘향이 주민성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그……. 라면 말입니다.”
“응? 라면?”
라면이라면 평소에도 워낙 즐기기에 인벤토리엔 종류별 라면이 얼마든지 있었다.
“라면을 먹겠대?”
“아닙니다……. 그게 아니고…….”
“뭔데?”
“그 학교 창고에 있는 라면 말입니다.”
봉춘향이 언급한 라면은 특별한 라면이었다.
오로지 전성기의 상태로 복구된 학교 창고에서만 구할 수 있는.
초월한 편의점에도 없는 라면이기도 했다.
“죽어도 보는 눈은 있구만. 그 라면이 왜?”
“아…….”
봉춘향의 표정엔 여전히 당혹감이 가득했다.
“자기가 개발해서 만든 라면이라는데……. 어떻게 구했냐고 출처를 물어 옵니다.”
“잉? 그럴 사람이 아닐 텐데.”
사람과 몬스터를 상대로 무지막지한 실험을 해대는, 인간이길 포기한 인물이 바로 장 박사였다.
반면, 학교의 라면은 극도로 소비자 친화적이었다.
장 박사의 이미지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었기에 지금의 사실은 주민성조차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유통기한에 맞지 않는 라면의 상태에 장 박사도 당황한 상태입니다. 제 판단으론, 상당한 협상 카드가 될 것 같습니다.”
“아니, 이미 죽은 사람이잖아? 라면으로 뭘 하겠다고?”
헬스장으로 재배치된 순간에도 끊임없이 수상한 짓을 반복하던 장 박사였다.
그런 인물의 제안은 당연히 수상할 수밖에.
“일단 거절해. 그리고 경고해. 처지를 알려줘야지.”
“예.”
봉춘향이 눈을 감고 집중을 끌어올렸다.
그리고 잠시 후.
“……만만치 않습니다. 소멸하는 한이 있더라도 라면은 포기할 수 없다고 합니다.”
“장난하나. 그럴 거면 살아있을 때 잘하든가.”
“그, 그게…….”
잠시 눈치를 살피던 봉춘향이 힘겹게 말했다.
“그 라면 말입니다…….”
“응.”
“미완성품이라고 합니다. 당시 닥쳤던 여러 가지 상황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출시했다며…….”
“그 맛이 완성된 맛이 아니라고?”
믿어지지 않았지만, 봉춘향의 말이 길어질수록 장 박사의 증언은 생동감이 더해졌다.
당시의 상황, 라면의 특징, 주요 유통처 같은 사소한 정보들이 줄줄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벤토리 내부에서 주어진 무한한 시간과 조금의 협조라면 궁극의 맛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