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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나는 비밀 (3) (127/250)


드러나는 비밀 (3)
2022.04.07.


“구어억! 구억!”

“…….”

덩어리가 내는 소리였다.

꾸드득.

잠시 기다리자, 덩어리는 사람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그어어……. 이런 미친 자식을 봤나!”

주민성은 황당함에 임진석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죽어서도 정신 못 차린 놈이다. 베어낼 수밖에.”

그제야 상황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장 박사의 영혼은 임진석에게 절단되었다는 사실을.

‘메시지나 이용료 청구를 잘라낼 때부터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이쯤 되면 자르지 못하는 게 없다고 봐야 했다.

“진짜 사기 능력이군.”

“……너만 할까? 게다가 내 능력은 협회장님께 통하지 않는다.”

“…….”

여기서 더한 사기 능력자는 물론 협회장 정혁수.

세계 최강이라는 타이틀에 걸맞은 위엄이었다.

“그보다, 이놈 다시 합체하네?”

“영체의 특징이지. 고등급 게이트 중엔 영혼체 몬스터도 제법 존재한다. 나와는 상성이 나쁘지. 순식간에 형태를 되돌리니까.”

“흐음.”

임진석에게도 나름의 약점은 있는 모양.

그보다 문제는 다시 형체를 갖춘 장 박사였다.

“주민성! 주민성인가! 저 미친놈 좀 말려 봐!”

“내가 왜?”

주민성은 근처에 있는 아령을 휘둘렀다.

후웅.

역시 물리적인 공격은 영혼에겐 통하지 않았다.

“그래! 이게 정상이지! 지금의 나라면 무적이어야 하는데!”

“흠.”

“이봐! 주민성! 나와 손을 잡자! 뭐든 도와주지! 그러니 저 싸이코부터 어떻게 해 봐!”

주민성은 그 말을 고스란히 임진석에게 전달했다.

천적이 바로 옆에 존재하는데 굳이 직접 나설 필요까진 없었으니까.

“영혼도 고통은 느낄 수 있다. 물론 특수한 공격에 한해. 안대를 넘겨라 주민성. 내가 직접 손봐 주지.”

“이, 이런 미친!”

그 말을 들은 장 박사가 순식간에 주민성에게 달려들었다.

안대를 빼앗기 위함이었다.

슥.

“윽!”

때릴 수가 없을 뿐.

주민성의 반사신경은 고작 장 박사의 영혼에게 따라잡힐 수준이 아니었다.

“……크윽!”

“어허. 어딜 산 사람이 말하는 도중에.”

장 박사의 영혼은 확실히 묘했다.

다른 영혼과 달리 물리적인 간섭이 확실하게 가능했다.

이는 텐트에서 잠든 실험체와 비슷한 특징이기도 했다.

“저 안대만 없다면……!”

확실히 콰트리취의 안대는 영혼을 볼 수 있게 해 주는 귀중한 물건.

그렇다고 안대가 있어야만 장 박사를 인지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존재감이 워낙에 뚜렷했으니까.

오히려 성아영의 보이지 않는 공격보다 훨씬 선명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이봐. 박사. 거래는 좋아하나?”

“……주민성. 놈은…….”

“나는 박사에게 말하고 있어.”

“…….”

장 박사는 환희에 가득 찬 표정이었다.

“거래! 아주 좋지! 뭘 원하지?”

거래는 서로에게 필요한 것이 있을 때만 성사되는 법.

장 박사는 안대를 원했지만, 주민성에게 필요한 것은 아직 알 수 없는 상태였다.

“일단 혼합 마석에 대해 듣고 싶군.”

“……흐흐. 역시 다른 실험체들까지 제압해낸 건가.”

“그래.”

장 박사는 임진석의 눈치를 몇 번 보고는 설명을 시작했다.

“혼합 마석은 단순한 몬스터의 부산물이 아니다. 100번을 정련하면 하나 겨우 나올까 말까 한 보물이나 다름없지.”

“대충 희소하다는 건 알겠고. 용도, 효과, 가공 방법에 대해 간략히 설명하도록.”

“……날강도 같은 녀석.”

“날강도짓은 네가 했고.”

애초에 게이트는 주민성의 집이나 다름 없었다.

굳이 따지자면 장 박사가 한 짓은 주거 침입에 기타 등등 죄목을 붙여도 모자랄 정도.

“……용도는 실험체의 통제 및 강화. 효과는 통제력 강화 및 새로운 능력 부여다.”

확실히 장 박사는 가진 두뇌를 제대로 활용해 주민성도 알아듣기 쉽게 설명했다.

“능력 부여?”

“그래! 몬스터도 혼합 마석만 있다면 능력자와 마찬가지로 능력을 쓸 수 있지!”

왜인지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가공 방법을 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후후. 가공 방법도 알고 싶나?”

“…….”

“혼합 마석 정련법만 알게 돼도 너는 평생 써도 늘어나기만 하는 돈방석에서 살 수 있겠지. 크흐흐. 거래는 이것으로 하는 게 어떻겠나?”

장 박사는 한 가지 착각을 하고 있었다.

주민성이 혼합 마석을 양산해내 직접 사용할 거라고.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혼합 마석이 위협이 된다면 연구소를 통째로 엎을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뭔가 착각하는 모양이군. 장 박사.”

“……뭐?”

“거래 대상은 당신의 두 번째 목숨이거든.”

직접적인 공격은 할 수 없었지만, 장 박사를 지금보다 훨씬 고통스럽게 만드는 방법이라면 있었다.

물론 장 박사도 겪어 본 능력이기도 했고.

“나는 영혼을 자유롭게 재배치할 수 있거든. 죽으면 나아질 거라고 기대한 내 잘못이었어. 심해 밑바닥, 아니면 당신이 죽은 균열 속으로 다시 보내줄 수도 있지.”

“…….”

“원래는 여기 있는 다른 영혼들한테 트레이닝이나 받게 하려고 했는데. 왜 말을 안들어서 임진석한테 트레이닝을 시켜?”

“……그, 그런 거래였나!”

장 박사는 당혹스런 표정을 짓고 있었다.

주민성이 말하는 균열 속이나 심해 밑바닥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암흑 공간이나 다름 없을 테니까.

장 박사의 지식욕도 탐구심도 아무것도 충족시킬 수 없는 끔찍한 공간이었다.

“어떻게든 여기에라도 붙어 있고 싶으면 협조해.”

“…….”

“그러게 왜 남의 집에 찾아와서 행패야?”

“게이트가 어째서 네놈의 집이냐!”

주민성은 말없이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자치권을 주장할 수 있는 문서였다.

하단에는 협회장의 승인 도장이 선명하다.

“내 집 맞아.”

“…….”

“이곳은 내 여가 시설.”

“…….”

“바깥은 우리 집 마당.”

“…….”

생각 없이 들이마시는 공기조차도 게이트 내부에 속한다면 주민성의 것이었다.

즉, 책상의 선만 넘어도 다 내 거라는 유치한 사고방식이 나름 현실적으로 진화한 형태였다.

“이제 좀 미안하지?”

“그 사실을 지금 알았다 해도 나는 죽었는데…….”

“응. 자업자득.”

“…….”

장 박사는 허탈하게 웃기 시작했다.

“……그 애비에 그 자식인가.”

“……갑자기 패드립?”

그 순간, 장 박사가 발작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크거걱!”

“뭐, 뭐야?”

“크흐! 이마저도 계약이었나! 크하하하! 죽어서도 계약인가!”

“아니 혼자 뭐 하는데!”

파지지직!

장 박사의 주변에 스파크가 튀기 시작했다.

이는 임진석도 함께 알아차렸다.

“주민성! 피해라!”

“뭐?”

“협회 1급 계약이다! 반경 50미터는 전부 소멸할 거다!”

“…….”

장 박사의 영혼은 더욱 세차게 펄떡이기 시작했다.

영혼의 펄떡임이라 해도 좋을 정도.

동시에 주민성의 뇌리에 기상천외한 생각이 떠올랐다.

‘인벤토리에 넣으면 괜찮지 않을까?’

인벤토리에 들어가는 물건은 절대 썩지 않았다.

물건의 시간이 멈춘다고 봐도 될 정도로.

게다가 장 박사는 인벤토리 안에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생명체와도 거리가 멀었다.

‘해 보자!’

어차피 시간은 거의 주어지지 않은 상황.

주민성은 곧장 생각을 실천에 옮겼다.

그것도 여태 써먹지 않았던 방법으로.

‘영혼 재배치. 텐트 99.’

주민성이 지목한 텐트는 두 자릿수 번호.

나름의 초반부 컬렉션이었기에 직접 사용하진 않고 소장만 하는 용도였다.

그리고 99번 텐트는 인벤토리 안에 있었다.

[폭주하는 고대의 영혼이 확인되었습니다.]

[영혼이 재배치됩니다.]

팟!

이전의 메시지에서 ‘폭주하는’이란 단어가 추가되었을 뿐.

내용은 비슷했다.

“이게 무슨…….”

“…….”

임진석의 목소리는 흐릿했다.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발 인벤토리 물건들이 소멸되지 않기를!’

이렇게 까지 하는 데엔 다 이유가 있었다.

주변을 소멸시키기 직전의 장 박사의 영혼이 가진 메리트는 무시할 수 없었으니까.

‘성공만 한다면 최강의 무기를 얻는 셈이니까!’

장 박사의 가치는 순식간에 바뀌었다.

소유한 건물이라면 어디든 보낼 수 있는 원격 폭탄으로.

그것도 소멸급 화력을 가진.

‘제발 멀쩡해라! 제발!’

인벤토리의 비밀이라든가 개인 정보가 노출되는 것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도박만 성공하면 장 박사는 그대로 인벤토리에 귀속될 터였다.

“…….”

그렇게 1분이 지나고.

“…….”

2분이 지나서야 주민성이 입을 열었다.

“……임진석.”

“……대체 뭘 한 거지?”

“그 협회 계약인가 뭔가. 언제 발동해?”

“…….”

잠시간의 침묵.

임진석이 힘겹게 말했다.

“진작 발동됐을 테지.”

“오케이.”

주민성은 눈을 감고 인벤토리 내용물들을 하나하나 되짚었다.

상당히 머리에 무리가 가는 행동이었지만, 중요한 무기가 생겼으니만큼 반드시 거쳐야 하는 작업이었다.

‘있다.’

가장 먼저 확인한 물건은 99번 텐트.

건물에 깃드는 영혼 특성상 텐트의 무사가 곧 장 박사의 무사이기도 했다.

‘소멸된 물건도 없군.’

인벤토리는 멀쩡했다.

즉, 진행 중이던 소멸 계약이 멈췄다는 소리.

어마어마한 소멸 병기를 얻게 되는 순간이었다.

“임진석.”

“뭐냐. 자꾸 네 할 말만 하고.”

“협회장이 소멸에 휘말리게 되면 어떻게 될까?”

“…….”

껄끄러운 질문이어서일까.

임진석의 눈썹이 찌푸려졌다.

“계약은 절대적이다. 협회장님도 피할 수 없을…….”

이용료 청구와 계약으로 얽혀 있는 이상 주민성의 질문은 모두 진지하게 받아졌다.

그렇게 잠시 고민하던 임진석이 말을 이어 갔다.

“후우. 그래도 협회장님이다. 계약으로 발생한 소멸조차 통하지 않을 가능성은 있지. 내 능력도 협회장님을 알기 전까지는 뭐든 통한다고 생각했었으니…….”

“그런가…….”

소멸 폭탄이라고 임시로 이름을 붙인 장 박사의 영혼은 협회장을 타겟으로 했던 급조 카드였다.

정혁수라는 인간은 주거침입이든 뭐든 일단 전 지구를 통틀어 슈퍼갑이라는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괴물이었으니까.

‘소멸조차 통하지 않을 가능성이라.’

주민성은 다시금 계획을 수정했다.

소멸 폭탄은 협회장을 상대로나 불확실한 카드였지, 그 외의 모든 대상이라면 조커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었으니까.

또한, 어마어마한 무기를 손에 넣음으로써 보상 심리도 나름 충족되었으니 지금의 결과는 상당한 쾌거라고 할 수 있었다.

“그보다 왜 갑자기 계약이 발동된 거야? 장 박사 똑똑한 사람 아냐? 연구원보다 못한 짓을 하네.”

“나는 대화를 듣지 못했다. 안대를 착용해야만 듣는 게 가능한 모양이더군.”

“그래?”

그러고 보니 장 박사와의 목소리는 머릿속에 들어오는 감각이긴 했었다.

주민성은 장 박사와의 대화를 다시금 되씹어보며 고민했다.

‘장 박사가 마지막으로 했던 말이라면…….’

-그 애비에 그 자식인가.

이 말이 단순한 패드립이 아니었다면.

실제로 주민성의 부모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면.

‘내 부모님과 관련된 계약을 했었다고?’

주민성조차 모르는 부모님의 존재.

정혁수와 장 박사가 그들에 대해 알고 있다면 계약도 말이 될 수는 있었다.

“돌아버리겠군.”

“돌지 말고 말해라 주민성. 대체 무슨 대화로 계약 페널티가 발생했지? 소멸은 최악의 페널티였다. 계약 당사자라면 당연히 위험 조항에 인지했을 테고.”

“후우.”

주민성은 미간을 꾹꾹 누르며 임진석에게 물었다.

“너는 내 부모님에 대해서 알아?”

“고아라는 사실밖에 모른다.”

“…….”

물론 이런 사실조차 정상은 아니었다.

개인 정보였으니까.

하지만 협회 기준에선 지금의 대답이 정상이기도 했다.

주민성조차 모르는 실제 부모에 대해서 안다는 것은 어느 상식에 빗대어도 정상이 아니었으니까.

“장 박사. 그리고 협회장. 이들은 내 부모님에 대해서 알고 있는 눈치야.”

“……흐음.”

주민성조차 모르는 과거의 이야기.

분명 부모님에 대해선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대체 어떤 사람들이길래 이런 거대 집단과 엮여야 하는지도 묻고 싶었다.

‘나의 능력과도 관련이 있는 걸까.’

일반인 시절부터 은밀하게 유지되어 왔던 블랙리스트와도 연관이 있을 터였다.

“협회는 도무지 정을 붙일 수가 없군.”

“그 점은 동감한다. 그보다, 장 박사는 어떻게 했는지 말하지 않았다. 주민성.”

“아. 장 박사 말이지.”

주민성은 악의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슈뢰딩거의 장 박사라고 하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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