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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나는 비밀 (1) (125/250)


드러나는 비밀 (1)
2022.04.05.


“죽었는데 헬스장이라. 정신 오염 능력에라도 당했나?”

“마스크나 해. 그러다 큰일 난다.”

“…….”

임진석으로선 미칠 노릇이었다.

상대가 정신 오염 상태라면 마땅히 고쳐 줘야 하거늘 그럴 수도 없다는 현실이 아득했다.

심지어 계약에 이용료 청구라는 기괴한 구속 시스템으로 옭아맸으니.

“그리고 난 멀쩡해.”

“…….”

“진짜라니까?”

“……그것도 능력인가.”

“응.”

주민성은 임진석에게 손짓하며 뒤로 물렸다.

40호, 장 박사, 게이트 수습부터 희생당한 경비원들의 장례까지.

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가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정 회장이 더 바쁠 거라는 사실.

“에휴. 이제 가 봐.”

“…….”

볼일이 끝났으니 임진석은 방해였다.

특히 만물 소통으로 몬스터와 대화를 나누는 모습만큼은 다른 이들에게 절대 보이고 싶지 않은 것 중 한 가지.

“헬스장이라고 했나?”

“어.”

주민성은 임진석에게 안대를 던졌다.

임진석에겐 볼일 다 봤으니 보내려는 심산이었다.

“헬스장 가서 써 봐.”

“……유물?”

“아마도?”

콰트리취의 안대는 지구에서 유통되는 유물은 아니었지만 나름의 특별한 성능이 있는 물건이었다.

유물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저 실험체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위험하다.”

“장 박사도 위험하다고 했었지.”

“…….”

위험하다는 것들을 싸그리 제압해 버린 주민성이었기에 임진석이 할 말은 없었다.

그저 황당한 표정으로 안대를 들고 돌아가는 수밖에.

“알아서 해라. 나는 그럼 다른 실험체를 전담하지.”

“그쪽도 끝났대.”

“……응?”

임진석은 허탈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하여튼 이번 일은 거의 끝이야. 도와줘서 땡큐.”

“……이렇게 쉽게 막아냈다고?”

당연한 주장이었다.

SS급 최상위 능력자라면 어느 전장이든 활약하는 것이 당연지사.

하지만 임진석은 이번 전장에선 겉돌기만 하고 주민성의 보조 노릇이나 하고 있었다.

심지어 자신이 참여하지 않은 전장도 알아서 순식간에 정리되고 있는 상황.

“……경비실엔 임시적인 조치뿐이었다. 내가…….”

“그쪽에도 사람 갈 거야. 전문가가 나서는게 낫지.”

협회의 눈길을 피해 이곳저곳 도망쳐 가며 산전수전 다겪은 판자촌 능력자들이다.

심지어 교육 과정을 통해 노하우까지 제대로 공유되고 있었다.

그들이 뛰어난 것은 당연하다.

“……간다.”

“응.”

임진석의 뒷모습은 상당히 쓸쓸해 보였다.

“삐졌네.”

이러나저러나 지금 중요한 대상은 실험체.

실험체를 바로 앞에 두고 임진석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 자체로도 남들이 보기엔 기겁할 일이었다.

“읏차.”

주민성은 텐트 공사를 시작했다.

이번엔 안전거리를 확보해야 하는 만큼 여러 개의 텐트를 덧댈 필요가 있었다.

“…….”

실험체는 여전히 온갖 꽃에 중독된 상태.

작업에 지장은 없었다.

“됐다.”

그렇게 텐트가 완성되고.

실험체의 말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줘.”

“…….”

“……쉬게 해 줘. 죽여 줘.”

“…….”

실험체는 괴로워하고 있었다.

주민성을 죽이려 했던 것도 그저 쉬고 싶기 때문이었다.

“그럼 공격하질 말든가.”

“…….”

실험체 또한 말이 통함을 알아챘는지 눈을 마주쳐오기 시작했다.

“……내 말이 들려?”

“어. 들리니까 제발 가만히 있어라.”

“…….”

주민성은 인벤토리를 꺼내 미세먼지와 꺼냈던 꽃 일부를 수납했다.

“공격하지 마.”

“…….”

잠시간의 대치.

절대 을이라는 수단을 쓸 수 없는 이상은 실험체의 자유의지가 중요했다.

“그러면 나도 공격 안 해.”

“…….”

생각보다 실험체는 주민성의 말에 순순히 응했다.

장 박사의 통제에서 벗어나 미쳐 날뛸 것도 대비했었지만 의외였다.

“그래. 이렇게만 하면 서로 이득이야.”

물론 최고의 이득은 실험체의 포섭.

주민성은 천천히 실험체를 달래기 시작했다.

“원하는 거 있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싶다.”

“…….”

이번 실험체는 크룩스와는 상당히 다른 성향이었다.

목적도 불분명하고 그저 가만히 있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러면 거기서 가만히 있을래?”

“그래도 돼?”

“응.”

주민성은 긴장한 표정으로 실험체를 지켜봤다.

스슷.

실험체가 회복을 시작했다.

왜인지 반투명한 실험체는 완전히 회복하면 투명해질 것 같은 묘한 이질감도 느껴졌다.

‘방심하지 말자.’

실험체의 기습 공격에도 대비했다.

애초에 눈앞의 실험체는 아군도 아니었으니까.

“……몸이 이상하다.”

“기분 탓 아냐?”

주민성이 회수하지 않은 꽃은 고블린 꽃.

실험체를 아군으로도, 적으로도 정의하기 힘들 때는 재우는 방법이 최고였기 때문이다.

“쉬어. 여기서만.”

“그래……. 너는 좋은 인간이군.”

“그러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당장은 이것이 실험체의 욕망이었다.

물론 파고들면 크룩스의 정보료 사례처럼 자세한 내막이 드러나겠지만.

스슷.

실험체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투명해졌다.

사라진 것이 아님은 확실했다.

실험체의 존재감은 보이지 않음에도 아주 뚜렷하다.

‘됐다.’

주민성은 텐트에서 뒷걸음질 치며 물러났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라.’

실험체의 목적이 분명하면 포섭을 위한 행동이라도 하겠지만, 아무것도 하기 싫은 경우는 예상외였다.

‘이 정도면 반절의 수확인가.’

지금의 주민성 위상은 이도 저도 아닌 상대.

게다가 고블린 꽃의 효력도 뚜렷하니 최소한 적에서 벗어난 것만큼은 확실하다.

‘문제는 여기를 어떻게 감추느냐인데.’

실험체를 쉬게 해주는 것과는 별개로 장소 자체가 문제였다.

이곳은 경비실과 너무도 가까웠다.

고민을 이어가려는 찰나, 곧이어 봉춘향과 송몽룡, 판자촌 능력자가 주민성을 찾아왔다.

“대장님!”

“쉿. 쉿.”

“…잘 못 들었습니다?”

텐트엔 당연히 ‘실험체가 자고 있어요’라는 스티커를 붙일 수 없었다.

따라서 당연하게도 봉춘향은 수상하게 생긴 조잡한 대형 텐트를 의심했다.

“…적입니까?”

“아직 몰라. 일단 재우긴 했지만. 그보다 마스크.”

“앗. 넵.”

건물 부가효과가 공기 순환필터 역할도 해주고 있었지만 고블린 꽃은 워낙 효력이 강력했다.

괜히 함부로 숨을 쉬었다간 수면향에 취할 가능성이 있었다.

“지금도 분신?”

“…….”

“춘향아?”

봉춘향은 왜인지 대답이 늦었다.

“아, 분신은 지금 사태를 수습 중입니다. 아무래도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잠시…….”

지금의 봉춘향은 본체였다.

잠시 생기는 침묵은 분신 조정이 원인이리라.

“바쁠 텐데 무리했네.”

“대장님 일이 가장 중요하기에…….”

그리고 송몽룡이 입을 열었다.

“민성이 형. 안에 아무것도 없는데요…….”

그새 능력을 사용해 텐트 안을 들여다본 모양.

실험체는 완벽히 투명해진 상태였다.

“음? 아무것도 안 느껴져?”

“네…….”

실험체의 존재감은 주민성 정도로 감각이 발달해야만 느낄 수 있다는 정보도 얻어냈다.

“투명한 실험체야.”

착한 사람에게만 보이는 실험체도 아닌 주민성의 말이었으니 송몽룡은 금세 납득했다.

“자고 있어. 일단 말도 안 되게 강한 녀석이니까 자극하지 마.”

“앗. 넵.”

“그보다…….”

방문자들을 확인한 주민성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애초에 판자촌 능력자들의 지원은 경비실 수습 차 부른 지원이었기 때문이다.

“시체는 봐도 괜찮지?”

“괜찮아요. 처음도 아니고.”

“춘향이도?”

“네.”

다행히 어느 정도 면역은 있는 상태였다.

그래도 주민성은 최소한의 역할은 하기 위해 경비실 인솔을 담당했다.

“일단 침입자는 장 박사란 사람이야. 협회장이 몰래 운영하는 연구소장? 비슷한 건가 봐.”

“협회…….”

“다 죽인 걸로 봐선 협회 사람이라고 하기에도 뭣하지.”

“……이런.”

말을 마친 주민성은 천천히 경비실 문을 열었다.

“…….”

생각보다 끔찍한 광경은 없었다.

오히려 기괴하리만큼 정돈된 상태였다.

‘임진석이 금방 돌아온 이유가 있었군.’

경비실 구석엔 죽은 경비원들이 모여 있었다.

장 박사의 살인 방법은 생각보다 깔끔했는지 혈흔이나 파괴 흔적은 없었다.

“잠깐만.”

주민성이 먼저 조심스레 손을 뻗었다.

“허.”

안이 비어 있는 것 같은 이상한 촉감이었다.

그리고 조심스레 시체를 들어 올렸다.

“…….”

실제로 시체들은 내부가 텅 비어 있었다.

껍데기만 남긴 것처럼.

‘거대 문어가 한 건가?’

덕분에 자연스레 추측할 수 있었다.

장 박사가 가장 많이 사용한 공격 수단은 촉수를 이용한 공격이었으니까.

‘내부부터 파먹는 몬스터라.’

새삼 제대로 된 공격을 허용하지 않은 임진석이나 자기 자신이 대견할 지경이었다.

역시 상대적이라서 그렇지 거대 문어는 아무나 감당할 수 있는 몬스터가 아니었다.

“대장님. 신성에는 제가 연락할까요?”

“음. 아냐. 내가 직접 신우빈한테 연락하는 게 맞지. 대신 다음 교대자분들한테 상황 설명 잘해 드려.”

“알겠습니다. 그때까진 저희가 경비도 대신…….”

“아, 경비는 성인이.”

미성년자라고 무작정 협회 소속으로 경비를 설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차라리 길드에서 키우면 키웠지.

“앗. 넵.”

“이목에 띄지 않는 게 중요하니까 최대한 인상이 흐릿한 쪽이 좋아.”

말을 마치며 주민성은 봉춘향과 동행한 판자촌 능력자를 바라봤다.

인상도 존재감도 평범한 병사였다.

“제, 제가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생각보다 경비실이 깔끔해 할 일은 별로 없었다.

죽은 경비원들은 텐트에 넣어 수납해 뒀으니 추후 방문할 신성 측 능력자에게 고스란히 넘기면 될 일이었다.

“정리만 조금 하면 되겠네.”

“……생각보다 도움이 안 되어 죄송합니다.”

“아냐. 그보다 폐허 도시 쪽 얘기나 해 줘.”

“……앗. 넵.”

봉춘향은 잠시 눈을 감고 집중했다.

“거의 마무리되고 있습니다. 아, 특이사항으론 변종 몬스터에게서 이상한 마석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이상한 마석?”

이상한 마석이라면 일단은 영혼석이 가장 유력했다.

“혹시 색깔이 다르다거나?”

“아뇨. 색깔은 다른 마석과 같은데 순도가 균등하지 않다고 합니다.”

“……음?”

마석의 순도가 다르다는 것은 곧 마석 등급이 다르다는 말.

주민성은 봉춘향에게 종이와 펜을 내밀며 말했다.

“그려 볼래?”

영혼석과 마석은 모양에서도 차이가 있었다.

봉춘향의 그림 실력만 멀쩡하다면 여기서 확실히 알 수도 있으리라.

“……대장님?”

“응?”

“차라리 사진을 찍어서 보내겠습니다.”

“…….”

송몽룡 또한 봉춘향의 말에 입을 벌리며 경악했다.

“그러면 되는구나……. 핸드폰 최고…….”

과연 봉춘향은 천재였다.

“흠흠. 사진이 확실하겠네.”

몸으로 해결하는 경향이 커지다 보니 주민성은 이런 사실조차 망각하고 있었다.

곧이어 사진이 도착했다.

“이렇게 생겼습니다. 대장님.”

“응.”

전송된 사진 속 마석의 크기는 상당했다.

상급 이상으로 봐도 될 정도.

“마석이 맞긴 하군.”

영혼석은 아니었다.

이것만큼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다만, 누구나 순도 문제를 알아차릴 정도로 불투명한 부분이 많은 마석도 확실했다.

‘아. 그러고 보니.’

주민성은 장 박사를 처리했을 당시의 메시지를 떠올렸다.

[혼합 영혼석이 텐트 923에 흡수됩니다.]

[미납자의 영혼이 텐트 923에 깃듭니다.]

‘혼합 영혼석이었지.’

그 말은 즉, 혼합 마석도 존재할 수 있다는 소리였다.

물론 답을 알려 줄 사람도 존재한다.

정확히는 영혼이었지만.

‘장 박사에게 물어봐야 하는 건가.’

단순히 가서 물어볼 일이 아니었다.

마석을 흡수하는 체질 때문이었다.

“마석은 지금 어디 있어?”

“대장님 방으로 옮기고 있습니다.”

“아.”

혼합 마석은 아지트로 이동 중인 모양.

이대로라면 마석이 고스란히 흡수될 위험이 있었다.

그렇다고 혼합 마석을 다른 곳에 방치했다간 콩이의 위장에 흡수될 가능성이 존재했다.

‘사방에 위험이군.’

이전과는 다른 느낌의 위협에 피식 웃음을 흘린 주민성은 새로운 지시를 내렸다.

“미안한데 마석은 학교에서 보관해 줘. 창고에 자리 많잖아.”

“알겠습니다.”

이번엔 상당한 집중이 필요했는지 봉춘향이 눈을 감는 시간이 길어졌다.

“나는 그동안 신성에 연락 좀 할게.”

“네.”

주민성은 전화를 걸기 위해 경비실을 빠져나왔다.

하지만 전화는 걸지 못했다.

“……누구세요?”

낯선 이들 여럿이 게이트에 찾아왔기 때문이었다.

“신호 보고 찾아왔습니다. 박사님이 부르셔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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