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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청객 (4) (124/250)


불청객 (4)
2022.04.04.


장 박사는 생각보다 훨씬 독한 인물이었다.

온갖 꽃에 중독되어 있는 와중에도 기척을 숨겨 왔을 정도로.

이는 주민성이 마석을 이식받지 못했다면 절대 알아차리지 못할 수준이었다.

“처음부터 다 들키셨다니까? 나름 정보라도 캐 보려고 한 것 같은데, 소용없어요.”

그제야 장 박사의 입꼬리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크흐……! 크흐흐! 아주 놀랍군……! 주민성. 주민성이었어. 으흐흐!”

“유언은 그게 전부입니까?”

“아니.”

광기 어린 눈빛이 주민성을 정면으로 향했다.

“납치라든가 실험이라든가 전부 없던 일로 하지! 그보다 나와 협업하는 건 어떻겠나?”

“……협업?”

“그래! 쿨럭! 너의 그 능력. 비밀이 참 많지 않아?”

“…….”

장 박사는 주민성의 능력에 짚이는 바가 있어 보였다.

동시에 스미스를 중심으로 한 인벤토리 능력자 집단, 이전에 얼핏 언급되었던 협회장과 비슷한 능력을 사용한다는 말이 주민성의 뇌리를 스쳤다.

‘의문을 해결해 준다는 소린가?’

확실히 눈앞의 미친 연구원이라면 주민성이 모르는 정보들을 알려 줄 가능성이 컸다.

“돈이 문젠가? 돈이라면 얼마든 있네! 더 이상 이런 게이트에서 마석이나 주워 먹지 않아도 돼!”

“…….”

아웃이었다.

“돈은 나도 많은데.”

“……뭐?”

주민성에겐 돈이 있었다.

그리고 아지트는 도시에 있던 자취방보다 더욱 아늑한 장소가 되었다.

이젠 게이트가 집이나 마찬가지였다.

“게이트도 내가 있고 싶어서 있는 건데.”

“……으응?”

주민성은 그대로 장박사의 멱살을 잡은 채 균열 직전까지 이동했다.

손을 놓는 순간 장 박사와는 영원한 이별이다.

“대충 유언 잘 들었습니다. 일부러 정보를 흘려준 보람이 없었네요.”

“……커헉! 자, 잠깐! 기다려라! 주민성!”

“왜요. 뭐요.”

장 박사는 주민성의 소매를 필사적으로 붙잡았다.

중독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악력이었다.

“아니! 대화해 보자는데 왜 이리 성질이 급해!”

“……다짜고짜 촉수나 쏴댄 사람이 할 말?”

“그것까지 전부 봤다고? 크흐! 그랬었군!”

그 와중에도 새로운 사실을 알아냈는지 환희 어린 표정까지 지어 보이는 장 박사.

과연 미친놈이었다.

“그럼 안녕히.”

주민성이 팔을 내밀었다.

이제 장 박사는 대롱대롱 매달린 신세.

“……잠깐! 원하는 게 뭔가! 나에게 바라는 것들이 있었겠지?”

드디어 주민성이 원하는 답변이었다.

“연구소 위치. 실험 내용. 희생자 명단. 기타 등등 전부.”

“……거기까지 안다고? 임진석이 불었나? 그럴 리가 없을 텐데? 어, 어째서?”

“누구랑 얘기하시는 걸까. 균열 맛이 그렇게 궁금해요?”

“잠까아안!”

“선심 썼다. 1분 드립니다.”

분명 박사에겐 큰 기회였지만, 그럼에도 낙담하는 모습이었다.

“아, 안 돼! 네가 알려는 정보는 협회장님과의 계약이다!”

또 계약이었다.

이놈의 세상은 서로를 믿지 못해 온갖 구속을 자처하고 있었다.

물론 주민성 역시 계약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던 만큼 아이러니한 현실이었다.

“협회장인가. 또.”

“크흐흐!”

이젠 마지막 질문의 차례.

“계약. 파기할 수 있을 텐데요.”

“……무, 무슨.”

쉬운 일은 아닐 터였다.

하지만 실제로 임진석은 그걸 해냈다.

“임진석은 하던데?”

“혀, 협회장님과의 계약을 파기했다고? 미친 건가?”

정확히는 주민성과의 계약을 일시적으로 잘라낸 것이었지만, 더 이상 많은 정보를 알려 줄 필요는 없었다.

“파기. 할래요. 말래요.”

목숨이 걸린 일이다.

이쯤이면 장 박사에게도 양보를 기대해 볼 수 있었다.

“……못 한다. 차라리 죽지.”

“…….”

의외의 답변이었지만, 다행히 협회장에 대한 단서는 얻을 수 있었다.

‘협회장과의 계약은 죽는 것이 나을 정도로 심각한가.’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전부 얻었다.

그 이상은 계약이 얽혀 있었고, 최면이나 부가효과를 이용해 빈틈을 노리기엔 불확실한 요소들이 너무 많았다.

특히 협회장과 연관된 일은 극도로 조심스럽게 진행해야만 했다.

우드득!

주민성은 그대로 장 박사와 이어져 있는 촉수를 힘으로 뜯어냈다.

“그럼 잘 가시고.”

직접 죽이는 것보단 이렇게 떨어뜨리는 편이 나았다.

건물 부가효과로 심리적 문제는 일어나지 않겠지만, 직접 죽이는 건 아무래도 찝찝했기에.

“크흐흐! 결국 이렇게 되는가!”

물론 깔끔하게 추락시킬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처음부터 장 박사가 게이트에 방문한 루트조차도 불분명했기 때문에.

따라서 주민성이 경계하는 것은 전송과 관련된 능력이었다.

“이용료 청구.”

당연히 돈을 받을 생각 따윈 없었다.

그래야만 균열 아래에서 당장 살아남는다고 하더라도 온갖 페널티에 말라 죽을 테니까.

“크흐……. 이 능력은…….”

“혹시라도 살아남는다면, 그때 다시 얘기해 봅시다. 그대로 죽어도 상관없고.”

눈앞의 남자는 분명한 후환이었다.

따라서 여기서 끊어내는 것이 마땅하다.

툭.

“으하하하하하! 엄청난 발견이구나!”

장 박사는 죽는 순간까지도 지식욕을 불태웠다.

그것으로 끝.

“이렇게 하면 협회장이 화 좀 내려나.”

이런 행동은 분명 협회장의 분노를 살 터였다.

그럼에도 확실하게 해야 했다.

이곳은 엄연히 자치권을 주장할 수 있는 게이트니까.

침입자의 처분 또한 주민성의 자유였다.

“어차피 이쪽에 신경 쓸 여력도 없겠지만.”

이번 사건을 계기로 협회장은 제 나름 짊어지고 있는 짐이 너무나도 많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었다.

오늘의 침입은 분명 장 박사의 독단이었을 테니까.

그리고 메시지가 떠올랐다.

[건물 이용자가 사망했습니다.]

[미납자의 사망은 페널티가 적용되지 않습니다.]

“음?”

처음 보는 메시지였다.

그동안 이용료를 청구한 몬스터를 죽인 사례는 몇 번이고 있었기에 더욱 의아했다.

그리고 또 다른 메시지가 떠올랐다.

[혼합 영혼석이 텐트 923에 흡수됩니다.]

[미납자의 영혼이 텐트 923에 깃듭니다.]

“이건 또 뭐람.”

이번에도 영혼.

그것도 장 박사의 영혼이었다.

-크하하하하! 성공이다! 성공이야!

장 박사는 이런 결과마저도 예측했던 모양이다.

확실히 주민성의 비밀에 대해 알고 있던 건 거짓이 아니었다.

-주민성! 이제 처지가 바뀌었다! 협력해라!

황당한 소리까지 이어가는 것으로 보아 제정신은 돌아오지 않은 상태.

“멘탈부터 건강하게 해 줘야겠군.”

-건강? 나는 그런 제약마저도 벗어냈어! 으하!

“건강한 정신은 건강한 육체에서 깃든다는 말이 있지.”

-으, 응?

주민성의 건물주 능력은 정상적인 건물주의 범주에서 지극히도 벗어난 상태.

제대로 된 이용자보단 해괴한 이용자가 많은 것이 현실이었다.

이번만큼은 이런 괴팍한 능력을 적절하게 사용할 때였다.

“영혼 재배치. 헬스장.”

-무, 무슨 짓이냐!

“건강하게 다시 보자. 내가 지금은 바빠서.”

[고대의 영혼이 확인되었습니다.]

[영혼이 재배치됩니다.]

혼합 영혼석.

예상대로 장 박사는 온갖 몬스터들을 통해 실험했던 만큼 고대의 영혼 속성도 갖추고 있었다.

“이걸로 박사는 정리 끝.”

장 박사의 죽음은 실험체 폭주의 신호탄이었다.

지금쯤 폐허 도시는 폭주한 몬스터와 치열하게 싸우고 있을 터.

주민성은 분신을 통해 그나마 여유가 있을 봉춘향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 대장님.

“도시 쪽은 어때?”

-이미 상황은 종료되고 전후처리 중입니다.

“……응?”

상황 종료.

적어도 몬스터에게 패배해서 하는 말은 아니리라.

-침공해 온 몬스터는 변종 다섯으로 생각보다 수월하게 처리했습니다.

“어어?”

다른 몬스터도 아니었고 무려 장 박사의 실험체였다.

최소 크룩스급의 전투력, 그리고 능력을 병행해 사용하는 몬스터라는 소리.

-몬스터가 접근하기 전에 총기로 심장과 머리 등의 약점을 저격해 단번에 제압해냈습니다.

교육 과정의 성과라고 볼 수 있었다.

판자촌 능력자들 중 저격수가 한 명이라도 있다면, 교육에 참여한 능력자 전원이 그 저격수만큼의 숙련도를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맙소사.”

-지원 필요하십니까? 말씀만 해 주시면 바로 합류하겠습니다.

“…….”

게다가 총기의 화력은 장 박사의 실험체조차 압도했다.

이쯤 되면 미국의 저력을 재평가해야 할 정도.

“그럼 경계병 셋만 보내 줄래?”

-알겠습니다. 이쪽 상황은 정리되는 즉시 문자 보고하겠습니다.

“응. 부탁할게.”

어이없을 정도의 성과였다.

나름 믿는 구석은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해낼 것은 상상도 못 했기에 더더욱.

“어째 박사가 불쌍해지네.”

이렇게 장 박사의 파격적인 행보는 허무하게 끝이 났다.

다음은 거대 문어의 차례.

주민성은 그대로 거대 문어에게 텐트를 씌웠다.

“얘기 좀 하자.”

꿀렁.

회복되는 기미는 있었으나 거대 문어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만물소통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했다.

“뭐지. 설마 건물 안에 집어넣어야 하나?”

거대 문어를 건물에 담아내기엔 그 덩치가 너무나도 컸다.

그렇다고 절대 을 한도가 늘어나지 않은 상태에서 이용료 청구도 할 수 없는 노릇.

“생각지도 못한 데서 애를 먹는군.”

그래도 믿는 구석은 남아 있었다.

크룩스를 구했던 것처럼, 주민성은 거대 문어를 장 박사에게서 구해낸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공격하지 마라. 네가 아무리 문어를 닮았어도 숙회로 먹을 수는 없으니까.”

꿀렁.

이젠 제법 촉수가 활기를 띄고 있음에도 다행히 거대 문어는 공격해 오지 않았다.

나름 긍정적인 성과였다.

“좋아. 그렇게만 가자.”

꿀렁.

“일단 네가 살 집은 저 아래다.”

주민성은 손가락으로 균열 아래를 가리켰다.

“올라오지만 않는다면 서로 싸울 일도 없어. 각자 살아남자 이거지.”

꿀렁.

그 말을 끝으로 거대 문어는 균열 아래를 향해 서서히 내려갔다.

역시 실험체는 말을 어느 정도 알아듣는 경향이 있었다.

“후우. 드디어 하나 남았군.”

마지막은 실험체 40호였다.

40호는 덩치도 크지 않은 편이라 만물 소통엔 지장이 없었다.

따라서 될 수 있으면 활용 가능한 전력으로 만들자는 것이 주민성의 생각이었다.

“제대로만 쓰면 최강 카드가 되겠지.”

문제라면 절대 을의 한도.

이 부분이라면 그래도 믿는 구석이 있었다.

균열 너머의 지하 몬스터의 토벌을 본격적으로 해 건물주 등급을 끊임없이 상승시키면 될 테니까.

주민성은 행복회로를 신나게 굴리며 40호 앞에 도달했다.

“…….”

실험체는 말이 없었다.

다만 장 박사의 죽음으로 상당히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파직!

동시에 공격까지 해 왔다.

“윽!”

보이지 않기는 성아영의 능력과도 일치했지만, 방금의 공격은 분명히 인지가 되는 능력이었다.

그저 주민성이 피하지 못하는 수준이었을 뿐.

“이런 상태에서도 엄청 세구나.”

주민성은 욱신거리는 팔을 매만지며 추가로 꽃을 꺼냈다.

텐트천으로 마스크를 만든 것은 덤.

“저기 40호 씨.”

파직!

“아오.”

결국 주민성은 40호의 무력화를 재개했다.

강하기는 주민성도 마찬가지였기에 약해진 상태의 40호를 제압하기엔 충분했다.

“후우! 후우!”

때려도 때린 느낌조차 나질 않는 몬스터였다.

그럼에도 실험체를 제압할 수 있게 만든 원동력은 역시 인벤토리 컨트롤.

아예 대놓고 인벤토리를 실험체에 뒤집어씌워 꽃가루와 미세먼지를 뿌려댔으니 아무리 강해도 버틸 수가 없었으리라.

“이제 알겠지? 제발 좀 좋게 대화하자.”

“…….”

실험체는 더 이상 저항하지 않았다.

정확히 꽃가루와 미세먼지에 저항하느라 주민성에게 신경 쓸 여력이 없는 것이겠지만.

“읏차.”

주민성은 천천히 일어나 텐트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물론 안전거리는 확보해야 하기에 텐트 여러 개를 이어 4인용 텐트를 만들 심산이었다.

“……주민성.”

임진석도 합류했다.

“어, 왔어? 경비실은 어때.”

“경비원은 전부 죽었다. 이래서 나는 장 박사가 싫어. 피아 구분조차 하지 않는 쓰레기 놈.”

“남이사.”

“그보다 장 박사는 어디 있지? 위험한 놈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제압을….”

임진석은 텐트 주변을 기웃거리며 장 박사를 찾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능력을 사용할 기세로.

“장 박사 죽었어. 지금은 헬스장에 있고.”

“…….”

임진석은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화를 다스리기 시작했다.

“진짠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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