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청객 (3)
(123/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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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청객 (3)
2022.04.03.
[건물 관조 종료까지 3초 남았습니다.]
“이 누더기에 비밀이 있으렷다?”
건물 관조 종료를 앞둔 긴박한 순간이었다.
‘더 방심해라.’
[건물 관조 종료까지 2초 남았습니다.]
장 박사는 임진석의 텐트를 본격적으로 관찰하기 시작했다.
[건물 관조 종료까지 1초 남았습니다.]
목표는 머리.
힘 조절을 못 해 장 박사의 머리가 터져나간다 한들 힘을 뺄 생각은 없었다.
눈앞의 상대는 임진석조차 제대로 제압해내지 못한 괴물이었으니까.
“왜인지 살기가 계속해서 느껴진단 말이지…….”
장 박사의 예측은 적절했다.
[텐트 771이 폭발합니다.]
콰아아아앙!
[건물 관조가 종료됩니다.]
주민성이 마지막으로 시선을 집중한 방향은 폭발에 휘말린 장 박사의 뒤.
뒤통수를 후려갈기기 가장 좋은 위치였다.
빠악!
“끄어……!”
건물 폭발에 이은 두 번재 유효타였다.
이번에도 예상치 못한 공격이었는지 촉수는 제대로 대응하지 않았다.
쾅! 쾅!
처음이 어려웠을뿐.
두 번째 이후부터는 매우 쉬웠다.
빠악!
상대가 어디를 때려야 의식을 잃는지, 어디를 때려야 더욱 큰 고통을 느끼는지 황태범을 통해 학습했다.
뻐억!
“컥!”
물론 실험체의 공격도 있었다.
이는 주민성조차 감당하기 힘들 정도.
고통이 거세질수록 주민성은 더욱 의지를 불태웠다.
‘몬스터보단 박사가 먼저야!’
고통 참기는 일반인 시절부터 항상 해오던 것들이었다.
맞으면서 때리는 투박한 방식도 마찬가지.
“누, 누구냐! 네놈!”
빠악!
주민성은 박사와 말조차 섞지 않았다.
쉴 새 없이 텐트로 휘감아 둔 급소를 노리는 실험체의 공격을 어떻게든 흘려내 덜 아프게 맞기에 급급했다.
쉬익!
어느새 촉수도 본격적인 대응을 시작했다.
하지만 무기는 주먹뿐만이 아니었다.
무릎, 팔꿈치, 머리도 사용했다.
퍼걱!
물론 여기까지라면 정상적인 신체 활용의 범주.
주민성에겐 또 다른 무기가 있었다.
쿵! 쿵!
“으아아!”
공격 경로가 한정되는 신체와는 달리, 인벤토리는 어느 공간이든 노릴 수 있다는 것이 가능했다.
쿠르르……!
하늘에서 잔해가 빗발쳤다.
“고작 이 정도로!”
건물 폭발로도 죽지 않는 박사였다.
물리적인 공격수단만으론 한계가 있었다.
슈우우우……!
쏟아지는 건 건물 잔해뿐만 아니라 미세먼지도 함께였다.
그것도 꽃집의 온갖 꽃가루가 함유된.
“끄륵……!”
주민성은 상대에게 절대 여유를 주지 않았다.
“여기서 입을 벌려? 꽃 들어간다.”
꽃블린이 가꿔낸 꽃들은 향기만 맡아도 효과가 적용되는 버프 덩어리였다.
하지만 이를 과다하게 복용하면 디버프로 바뀌는 특징이 있었다.
“우욱!”
장 박사의 움직임이 빼어난 편은 아니었다.
판자촌의 D급 능력자들 정도.
체술보다는 촉수에 의지하는 면이 컸다.
덕분에 꽃을 쑤셔넣는 데엔 큰 지장이 없었다.
콰직! 콰직!
그런 와중에도 촉수는 위협적인 건물 잔해를 위주로 요격하고 있었으니 주민성은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편이었다.
“누, 누굽!”
“닥쳐. 꽃이나 처먹어.”
처음 저항만 거셌지, 이후부터는 별거 아니었다.
미세먼지와 꽃가루의 콜라보레이션은 모두에게 적용되었기 때문이다.
꽃의 복용량이 커질수록 촉수와 실험체의 움직임이 무뎌졌다.
“일단은 몸에 좋은 꽃이니까 더 먹어라.”
“우욱!”
활력, 분노, 용기, 마취, 그리고 수면 효과가 있는 고블린 꽃까지.
전부 장 박사의 입에 들어갔다.
“실험 좋아한다며? 어떤 효과인지 맞혀 봐.”
“우우욱! 우욱!”
그런 와중에도 장 박사는 진짜로 꽃의 효능을 하나하나 감정하고 있었다.
그 모습엔 광기마저도 느껴졌다.
“아니, 직접 맞추지 말고. 꿈속에서 맞추셔야지.”
우득.
주민성에겐 물리 치료나 기타 요법과 관련된 자격증 따윈 없었다.
물론 고통에 대한 배려도 없었다.
우드득.
“끄우우우웅!”
장 박사는 기괴한 소리를 내며 의식을 잃기 시작했다.
‘여기서 제압 못 하면 실험 대상은 내가 되겠지. 그러고도 남을 놈이다.’
풀썩!
그렇게 장 박사는 거품을 물고 쓰러졌다.
상대의 위험도에 비해 생각보다 쉬운 제압이었다.
“후. 제대로 맞붙었으면 위험했겠어.”
정확히는 박사보단 그를 호위하던 촉수와 실험체가 큰 위협이었다.
“전력은 이게 전부가 아니겠지.”
크룩스 역시 한때는 실험체였다.
그리고 지금 이곳에 있는 실험체는 40호.
이 역시도 탐사 대상이 F급 게이트였기에 나름 조절한 전력이었을 터였다.
지금의 기회는 다신 오지 않을 기회라고 봐야 했다.
쉬쉬쉬쉿!
촉수는 여전히 미쳐날뛰고 있었다.
단지 공격 대상이 주민성이 아니었을 뿐.
쾅! 쾅!
단순히 휘둘러지는 공격은 주민성도 손쉽게 피할 수 있었다.
“다음은.”
문제는 실험체였다.
나름 미세먼지와 꽃으로 제압에 성공하긴 했으나 눈앞의 실험체 40호는 장 박사의 통제에서 벗어난 상황.
회복이 끝나는 대로 미쳐 날뛸 예정이었다.
“…….”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는 기묘한 몬스터였다.
이런 괴물에게도 호흡기가 존재한다는 점에 감사해야 했다.
“임진석조차 제대로 손쓰지 못한 괴물이라.”
하지만 주민성은 손을 쓸 수 있었다.
몬스터와 소통할 수 있는 만물 소통 능력부터 최면과 같은 통제를 풀어낼 수 있는 건물 부가효과가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 녀석한테 임진석의 능력이 개입된 것 같지는 않지만.”
건물 부가효과가 덧씌워진다면 그동안 중첩된 꽃의 효과가 사라질 가능성이 있었으니 실험체를 움직이지 못하게 묶어 두는 것이 우선이었다.
“…….”
문제는 실험체의 특수성이었다.
“안 묶이네.”
단순히 반투명한 몬스터가 아니었다.
뭔가 보통의 몬스터와는 다르게 물리적인 구속 자체가 힘든 타입이었다.
“이러니 절단 능력도 먹히질 않지.”
결과가 어찌 되었든 최악의 경우엔 인벤토리 안에 봉인시킬 수도 있었기에 최소한의 안전은 확보된 셈.
주민성은 좀 더 여유를 가지고 다른 방법을 모색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럼 촉수부터 제압할까.”
땅속에서부터 멋대로 솟구치는 촉수였다.
일부는 장 박사의 몸에도 이어져 있다.
꾸드득!
“으. 촉감 더럽네.”
힘이라면 주민성도 지지 않았다.
촉수가 아무리 발광해도 굳건하게 붙잡을 수 있었다.
“그보다 이놈은 본체가 뭐야? 호흡은 점막으로 하는 것 같은데.”
땅속을 파내고 싶지는 않았다.
끌어내기엔 일부가 장 박사에게 연결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결정은 간단하다.
꾸드드드득!
장 박사가 어찌 되건 말건 끄집어내면 그만이었다.
애초에 장 박사는 제압 대상이지 보호 대상이 아니었다.
쿠르르르……!
“주민성…….”
어느새 임진석도 비틀거리며 다가왔다.
“몸빵하느라 수고했어.”
“……미치겠군.”
할 말이 많아 보이는 복잡한 표정이었다.
잘나가는 SS급 능력자가 FFF급보다 못한 활약을 했으니 그럴 수밖에.
“그보다 뭐 하는 거냐. 얼른 죽이지 않고.”
“걸핏하면 다 죽이래.”
“죽임당하지 않으려면 죽여라. 그게 정답이니까.”
“참나.”
지금의 문제는 객관식이 아니었다.
엄연히 주관식이었다.
“헛소리말고 너도 저 촉수 당겨. 전부 끄집어내게.”
꾸드득!
“……주민성.”
왜인지 임진석이 당황했다.
“왜. 뭐. 말해.”
“……손. 괜찮나?”
“손?”
손은 멀쩡했다.
점액이 조금 거슬리긴 했지만 씻어내면 될 일.
“저 점액. 독액일 텐데?”
“……뭐?”
순간 촉수를 놓칠 뻔하긴 했지만, 주민성은 멀쩡했다.
그저 기분만 나빴을 뿐.
“후우. 기다려라.”
잠시 사라진 임진석은 근처에서 중립 고블린 한 마리를 붙잡아 왔다.
“키익! 키에엑!”
그리고 냉큼 고블린을 촉수를 향해 집어던졌다.
“키이이이이!”
푸스스슷!
발악은 그걸로 끝.
고블린은 그대로 녹아 사라졌다.
마석까지 통째로.
“……나보고 죽으라는 소리냐?”
“…….”
알고 보니 촉수는 주민성만이 멀쩡히 잡을 수 있었다.
그제야 임진석의 자잘한 흉터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쯧. 귀찮게 됐군.”
결국 촉수를 당기는 일은 주민성의 역할이었다.
그렇다고 임진석을 놀게 놔둘 수는 없는 일.
“박사한테 최면 능력 통해?”
“아니. 이놈이 나에게 하던 태도로 봐선 대비했을 거다. 실험체도 마찬가지고.”
“쯧.”
“인간이길 진작 포기한 놈이다. 전에 못 보던 신체 개조까지 끝낸 상태야.”
임진석 역시 장 박사의 촉수는 낯선 모양이다.
“역시 촉수가 우선인가.”
“경비실이 우선이라고 생각되지 않나?”
“……아. 그것도 그렇네.”
덕분에 역할이 정해졌다.
“그럼 가서 경비실 확인해. 생존자 파악부터.”
“보나마나 전멸이다. 이놈은 보통 미친놈이 아니야.”
“가서 확인해.”
“…….”
지금의 경비실 인원들은 신우빈이 제법 신경 써서 배치한 인재들이었다.
신우빈이 여태껏 알아서 잘해 왔던 만큼, 주민성도 이에 부응할 필요가 있었다.
“너도 알겠지만, 이 게이트는 외부의 이목이 집중되면 안 된다. 경비실을 확인하란 건 눈에 띌 만한 요소가 있는지 찾고 정리하란 뜻도 포함이야.”
“……협력하지.”
그렇게 임진석은 경비실로 떠나고, 주민성은 홀로 남아 촉수와의 사투를 재개했다.
꾸드득!
쿠르르!
그렇게 꺼내진 촉수의 크기는 어마어마했다.
폐허 도시의 잔해 탑이 눕혀진 크기와도 비견될 정도.
“…….”
촉수의 정체는 본 적도 없는 몬스터였다.
외관이라면 거대 문어와 비슷한 느낌.
이 역시 장 박사의 실험 결과였으리라.
“단순히 통제를 푸는 것만으론 부족해.”
장 박사라면 협회장과도 이어진 인물.
그를 대비하기 위해선 더욱 철저한 준비가 필요했다.
“마음 같아선 이용료라도 청구하고 싶지만.”
촉수와 실험체는 당장 쓸 몬스터가 아니었다.
아직 절대 을의 한도는 늘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커 버리면 소통하기도 힘들겠어.”
결국 주민성의 선택은 봉인이었다.
이런 덩치의 몬스터마저도 감당할 수 있는 공간이 게이트엔 있었으니까.
“좋아. 너는 균열 확정.”
아직 가본 적 없는 균열 밑바닥에도 몬스터는 살고 있었다.
이는 건물 잔해를 떨궈 건물주 등급을 상승시켜 왔기에 확실했던 부분.
“물론 판정을 내 것으로 하려면 더 고민해 봐야겠지만. 수용이라면 문제없겠지.”
그 외에도 촉수가 균열에서 솟아오른다든지 게이트 자체를 벗어난다든지 하는 부분에 대한 조치도 필요했다.
“할 수 있어.”
이 부분은 소통으로 극복할 셈이었다.
절대 을이 궁극적인 목표인 점은 변함없었지만, 이용료 청구가 무조건 필요한 것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한때 실험체였던 크룩스도 절대 을이 되기 전부터 소통은 가능했기에.
“일단은 거대 문어라고 불러야지.”
촉수의 명칭도 정해졌다.
그나마 비슷하게 생긴 생물체가 문어였다.
“저녀석은 아직 잠잠하고. 얼른 다녀와야지.”
주민성은 실험체와 잠시 눈을 마주치곤 거대 문어를 끌고갔다.
물론 여기엔 장 박사도 딸려 있었다.
질질…….
거대 문어는 덩치에 비해서 가벼운 편이었다.
물론 이것도 주민성 기준.
그것도 지금의 근력 기준이었지, 평범한 신체 강화 능력자라도 함부로 끌고 다닐 수 없는 무게였다.
“그보다 점액 좀 어떻게 안 되나.”
거대 문어가 쓸린 땅이 부식됐다.
역시 도시엔 어울리지 않는 녀석이었다.
“그렇다고 바다에 풀어 둘 수도 없고…….”
균열이라면 인천 게이트에도 존재했다.
그것도 최선호의 해상 요새가 있는 바다까지.
“아, 그래도 그건 좀.”
바다에 거대 문어를 풀어 버리면 분명 어마어마한 등급상승은 노릴 수 있었다.
그쪽 균열에도 본 적 없는 몬스터는 존재할 테니까.
하지만 이것만큼은 양심의 문제였다.
“안 돼. 나는 회도 먹고 초밥도 먹어야 해.”
주민성은 느끼지 못하지만, 거대 문어의 독이라면 방사능 그 이상일 터.
미래를 생각해서라도 바다에 거대 문어를 푸는 것은 손해가 확실하다.
“어쩔 수 없네.”
그렇게 주민성은 균열 앞에 도착했다.
이젠 거대 문어와 소통할 시간.
하지만 주민성은 거대 문어 대신 장 박사를 바라보고 있었다.
“숙주는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움찔.
장박사의 움직임이었다.
혼미하지만 어느 정도의 의식은 회복한 모습이다.
“듣고 있는 거 다 압니다. 박사.”
“…….”
여태까지 혼잣말을 이어간 이유는 이 때문이었다.
장 박사는 생각보다 빠르게 의식을 회복해 주민성의 혼잣말을 경청하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