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불청객 (2) (122/250)


불청객 (2)
2022.04.02.


폭발 능력은 생각보다 희귀한 능력에 속했다.

단지 주민성이 폭발에 너무 많이 노출되어 있었을 뿐.

그런데 이번 몬스터는 SS급 능력자인 황태범보다 더욱 무식한 폭발 능력을 가졌다고 한다.

“이쯤 되면 내가 운이 좋은지 나쁜지 모르겠다.”

“확신하지. 주민성. 너는 세상에서 가장 운이 나쁜 부류에 속한다.”

“……신랄하구만.”

주민성과 임진석은 그렇게 경비실이 보이는 위치까지 도착했다.

“……싸한데.”

“동감이다.”

보통이라면 단순 기분 탓으로 넘길 수도 있었다.

하지만 둘의 감각은 평범함과 궤를 달리했다.

즉, 지금의 싸한 기분은 실제로 위협을 느끼고 있다는 증거였다.

“경비실에 있을 만한 적은?”

“……나도 모르겠다. 정말로. 이 정도의 기운을 가진 실험체는 없었다.”

“정말이지?”

“그래.”

계약서의 제약을 이용해 다시 한번 사실을 확인했다.

임진석의 말은 사실이었다.

‘임진석도 모르는 적이라.’

분위기가 어찌 되었건 접근은 해야 했다.

지금도 폐허 도시의 식구들 역시 몬스터와 필사적으로 싸우고 있을 테니까.

‘어떻게든 박사인가 뭔가부터 제압하자.’

몬스터는 나중의 문제였다.

세뇌가 문제라면 주민성이 얼마든 풀어낼 수 있었으니까.

오히려 장 박사 쪽에서 세뇌를 풀어냈음을 알아차리고 도망쳐버리는 전개가 가장 곤란했다.

따라서 선두는 임진석의 역할이었다.

“앞장서라.”

“…….”

“앞장서라. 진석몬.”

“……개자식.”

“가라.”

장 박사와 구면인 인물을 앞세워 상대의 방심을 유도한다는 노림수였다.

그렇게 임진석이 출발하고, 주민성은 사각지대에 숨어 조용히 능력을 사용했다.

‘건물 관조.’

[10분간 건물을 관조할 수 있게 됩니다.]

[관련 능력이 해금되어 있지 않습니다.]

[건물주는 별도의 공간으로 격리됩니다.]

여전히 제대로 해금되지 않은 능력이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도 지금의 목적에 있어선 최고의 능력이나 다름 없었다.

“후우. 이제부터 10분인가.”

건물 관조가 적용중인 건물은 바로 임진석이 몸에 두르고 있는 텐트.

주민성은 이질적인 관조 공간에서 자유롭게 주변을 지켜봤다.

끼익.

곧이어 경비실에서 한 중년이 나타났다.

“임진석? 여긴 무슨 일이지?”

“내가 할 말인데. 기밀 임무중이다. 실험체 회수해.”

“크흐흐! 내가 언제 자네 말 듣는 거 봤나?”

장 박사는 임진석 같은 괴물 앞에서도 조금도 주눅 들지 않는 수준의 인물이었다.

오히려 어떻게 약 올릴까 잔뜩 고민하는 표정이었다.

한 가지는 확실해졌다.

누가 봐도 미친 연구자 부류였다.

‘저놈이 장 박사. 나를 실험체로 만들려고 했던 놈.’

정말 나쁘게만 보이는 인물이었다.

색안경도 아니었다.

사실 기반이었으니까.

‘저놈만 제대로 제압해도 미래의 큰 위협은 없어진다고 봐야 할까.’

어차피 건물 관조는 10분 지속이었다.

시간이라면 있었기에 주민성은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그보다. 내가 모르는 기밀 임무도 있던가?”

“…….”

“이 게이트라면 실험체 9호의 포획, 그리고 실험 후보 탈락자 주민성에 관한 감시 임무만 있었을 텐데.”

“그랬지.”

실험 후보 탈락자.

그것만으로도 분명 위기에서 반쯤 벗어난 것이나 다름 없었지만, 탈락자라는 단어는 여전히 기분나쁜 말이었다.

“으음……. 이해는 가는군. 주민성은 나보단 회장님께서 더 관심을 가지고 계셨으니.”

임진석 또한 생각 없이 허세를 펼치진 않았는지, 박사에겐 나름 먹히는 핑계를 대고 있었다.

“이제 알았나? 그러니 당장 실험체 회수해라.”

장 박사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싫은데.”

이 역시도 예상했던 모양.

임진석은 더욱 거리를 좁혔다.

“이번에도 회장님 믿고 덤비는 건가? 너도 알 텐데. 회장님은 지금 아주 바쁘시다는 걸.”

“아주 잘 알지. 그래서 회장님의 부담을 덜어 주러 직접 왔네만.”

“……부담이라고?”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회장님께선 실험체 넷을 이곳에 투입하려 하셨다.”

“……”

장 박사는 오히려 더욱 기세 좋게 임진석을 압박했다.

“자네의 쓸모가 다 했다는 말이겠지.”

“……헛소리.”

“그래. 헛소리였네. 농담은 이쯤하고, 좀 비켜주게. 실험체 테스트 겸 방문했거든.”

그 순간, 끔찍한 살기가 주민성을 향했다.

쐐애애액!

그로테스크한 촉수가 주민성을 향했다.

물론 건물 관조가 적용되고 있어 정확히는 임진석이 두르고 있는 텐트를 향해 날아온 것이지만.

“……!”

서걱!

다행히 촉수는 임진석에 의해 잘려 나갔다.

괜히 뭐든 잘라 버리는 절단 능력이 아니었다.

효과 하나는 확실했다.

“무슨 짓이지?”

임진석의 살기 어린 물음에 장 박사는 너스레를 떨며 답했다.

“궁금한 건 못 참는 성격이라 말이지. 그보다 자네, 임진석은 맞는가?”

“…….”

장 박사는 임진석의 차림새에 상당한 흥미를 보이고 있었다.

“자네가 다른 사람처럼 느껴진단 말이지. 쭉 게이트 저편에서 느껴지던 이상한 존재감이 섞여있어.”

신기하게도 장 박사는 주민성의 존재를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지적 사항은 하나 더 있었다.

“게다가, 명품이 아니면 입지도 않는 임진석이 이상한 누더기까지 걸치고 있고 말이야. 요즘 세상은 누더기까지 명품이라고 우겨 팔 정도로 더욱 타락한 걸까?”

“쓸데없는 관심이다.”

임진석은 정석적으로 답변했지만 소용없었다.

장 박사의 흥미는 한번 불이 붙으면 계속해서 타오르는 성질이 있었다.

“평범한 물건은 절대 아니겠지. 내가 사겠네. 얼마면 되겠나?”

“……정말 미쳤군.”

“나는 처음부터 미쳤네. 그러지 말고 가격이나 정해 보시게나.”

졸지에 주민성의 텐트가 경매 대상에 오르는 순간이었다.

“가까이 오면 죽인다.”

“크흐흐! 할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장 박사는 그대로 아무렇지도 않게 임진석에게 접근했다.

그렇게 절단 능력이 발휘되는 순간.

콰드드드득!

절단나는 대상은 장 박사가 아니었다.

그를 대신해 기묘한 촉수가 다시금 솟아 장 박사를 대신해 잘리기 시작했다.

“으흐흐!”

“더러운 놈!”

“팔지 않는다면 빼앗으면 그만이지!”

“정신 차려라! 장 박사!”

“키히히!”

장 박사의 눈빛이 바뀌었다.

“자네가 나를 고깝게 본다는 사실은 진작부터 알았지! 나도 내 목숨쯤은 지킬 줄 알아야 오래오래 실험할 것 아닌가! 크히히!”

“……크윽! 미친 자식!”

촉수는 끝없이 재생을 반복하며 임진석을 압박했다.

그런 와중에도 미처 잘라내지 못한 촉수는 그대로 임진석의 심장을 향해 쇄도하고 있었다.

‘으. 징그럽다.’

물론 지금의 장면은 전부 주민성의 시선이었다.

‘조금 도와줘야겠네.’

건물 관조는 단순 관찰용 능력이 아니었다.

안전을 확보한 상태에서 상대에게 공격도 겸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

쿵!

콰직!

“으응?”

거대한 건물 잔해가 임진석과 장 박사의 사이를 가로막으며 존재감을 뽐냈다.

“음?”

장 박사의 눈빛이 다시 바뀌었다.

호기심 가득한 눈빛이었다.

“……저것은?”

장 박사의 시선은 건물 잔해가 아닌 인벤토리를 향하고 있었다.

“뭐야. 임진석이 저 능력을 얻었다고? 그런 실험은 없었을 텐데?”

콰지지직!

다시금 여유를 확보한 임진석이 나머지 촉수까지 전부 잘라내며 말했다.

“죽인다.”

“으흐흐! 바라던바!”

이곳에 정상인은 없었다.

애초에 임진석도 주민성에 의해 제법 성질을 죽였을 뿐.

콩이에게 관대하다는 점을 빼고 본다면 극도로 잔인한 남자였다.

“살아 돌아갈 생각은 마라.”

콰지지지지직!

임진석이 능력의 출력을 높여나가기 시작했다.

능력을 전력으로 끌어올린 SS급 능력자의 무위는 주민성조차 감탄시킬 정도.

“오오! 바로 이거야! 이게 절단 능력이지!”

“……미친놈!”

물론 장 박사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이 기회에 네놈도 실험체로 삼아주마! 협회장님의 분노를 어찌 감당할지 기대되는군! 크히히!”

미친놈과 미친놈의 싸움.

가슴이 웅장해지긴커녕 주민성의 불안만 가속시킬 뿐이었다.

‘아오. 답 없는 놈들.’

주민성은 이 상황에 개입하기로 마음먹었다.

‘남은 관조 시간은…….’

[건물 관조 종료까지 3분 남았습니다.]

단 3분.

그동안만 기다리면 주민성은 이 상황에 직접적으로 개입할 수 있었다.

서걱!

콰지직!

하지만 3분조차도 쉽지 않았다.

장 박사가 새로운 카드를 꺼냈기 때문이다.

“임진석이라면 이 녀석을 쓸 만하지!”

그 순간, 경비실에서부터 어마어마한 위압감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임진석도 이를 느꼈는지 급하게 몇 걸음 물러나 경비실을 응시했다.

“……실험체를 경비실에 들인 건가?”

“아니. 그런 개념마저도 초월한 실험체지.”

“……뭐?”

장 박사를 촉수를 수복하며 씨익 웃었다.

“40호다. 크흐!”

“……미친 자식!”

왜인지 임진석이 급하게 물러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으윽!”

어마어마한 존재감이 근처에 나타났다.

동시에 임진석은 사방에 능력을 뿌리듯 쏟아냈다.

하지만 절단 능력은 그저 허공만을 갈랐다.

“소용없다. 40호는 인간이 상대할 수 없는 역작이니.”

대신, 커다란 타격을 입은 사람은 임진석이었다.

파지직!

“크윽!”

임진석의 능력은 적중했다.

허나, 실험체 40호는 잘려도 잘리지 않는 존재였다.

‘저게 40호…….’

40호는 반투명한 상태의 몬스터였다.

그러나 40호가 일으키는 물리력은 전부 적용됐다.

꾸드득!

임진석은 순식간에 나타난 40호에게 멱살을 잡힌 채 바닥에 처박혔다.

쾅!

“진작 꺼낼 걸 그랬나? 이렇게 허무하게 제압할 수 있으면 죽일 필요도 없겠지.”

“크윽!”

다행히 장 박사의 명령은 제압이었는지 임진석의 목숨은 끊어지지 않았다.

‘미친. 이렇게 강하다고?’

주민성조차 놈의 움직임을 눈으로 쫓지 못할 정도였다.

그뿐만이 아니라 힘으로도 제압할 자신이 없었다.

[건물 관조 종료까지 2분 남았습니다.]

여기까지 흐른 시간은 고작 1분.

임진석이 견뎌야 할 시간은 지금까지의 두 배였다.

‘건물 잔해도 통할 것 같지도 않고.’

잔해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은 가장 강력한 공격 수단인 폭발도 통하지 않는다는 소리였다.

‘호흡기도 없는 모양이네.’

미세먼지 역시 봉인되긴 매한가지.

‘이용료 청구도 안 될법하고.’

애초에 40호는 건물로 담을 수 있을법한 느낌의 몬스터가 아니었다.

쾅! 쾅!

“커헉!”

40호는 여전히 임진석을 연달아 바닥에 내리꽂았다.

아예 의식을 잃게 만들려는 심산이었다.

“드디어 네놈을 추출할 기회가 찾아왔구나. 크흐흐.”

쾅!

“아까의 능력은 왜 쓰지 않지? 이런 단순한 패턴이라면 막을 수 있을 텐데?”

임진석이 어디까지 버텨 줄지는 모른다.

하지만 확실한 것 한 가지.여기서 임진석의 기절은 아군 전력이 줄어드는 것으로 무조건 손해라 할 수 있었다.

‘최대한 정신 사납게 하자.’

관조가 끝나기 전까지는 시간을 끌어야 했다.

따라서 주민성의 선택은 양동.

툭.

“음?”

실험체 근처에 텐트가 흩뿌려졌다.

‘시야를 집중시키고.’

장 박사의 머리 위에 건물 잔해를 떨어트렸다.

‘기습.’

쿠르르!

“소용없다!”

건물 잔해는 솟구치는 촉수에 요격당했다.

하지만 이 또한 시선 돌리기용.

[텐트 211이 폭발합니다.]

콰아아아앙!

온갖 부가효과가 덕지덕지 붙은 텐트였기에 화력은 이전의 배 이상.

그럼에도 실험체는 큰 타격을 입지 않는다.

허나, 장 박사에겐 효과가 있었다.

콰지지직!

“크악!”

폭발은 장 박사 주변에 솟구친 촉수들을 전부 찢어발겼다.

“40호! 날 지켜라!”

파직!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진 실험체는 어느새 장 박사와 함께 멀리 벗어나 있었다.

덕분에 임진석의 구원은 성공.

“쿨럭!”

입가에서 피를 쏟아낸 임진석은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장 박사. 죽인다.”

하지만 임진석은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자각하지 못했다.

“……음?”

폭발에 휘말린 것 치곤 임진석의 상태는 양호한 편.

이 역시 주민성의 기지 덕분이었다.

[텐트 929가 파손됩니다.]

[텐트 930이 파손됩니다.]

흩뿌려진 텐트 중에서 임진석에게 씌워진 것은 내구도를 강화시킨 텐트였다.

929번과 930번 텐트만이 유일하게 완파되지 않은 텐트이기도 했다.

그 순간, 우악스런 손이 임진석을 감고 있는 텐트를 향했다.

“크윽!”

이번에도 40호의 소행이었다.

40호는 어느새 텐트를 뜯어내 장 박사에게 합류했다.

“대체 이 누더기는 뭐지?”

[건물 관조 종료까지 5초 남았습니다.]

16548857162975.jpg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