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청객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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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4.01.
한창 업무 시간일 지금 경비실과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건 분명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대장님?”
주민성은 씁쓸한 표정으로 휴대폰을 바라봤다.
“비상이군.”
“……!”
“모두에게 전달해 줘. 지금부터 비상 경계 태세야.”
“예!”
최우선은 일반인들의 안전.
전투 가능 인원은 전부 경계로 돌입했다.
“상대가 누구건, 핵심 지역인 이곳과 폐허 도시는 절대 노출해선 안 돼. 어떻게든 조기에 제압하자.”
“알겠습니다!”
이 게이트는 주민성의 지배를 받는 곳이었다.
타인을 게이트에 들이는 것 역시도 주인의 허가가 필요했다.
그 절차를 밟지 않는 대상은 침입자라고 봐도 무방했다.
“춘향이는 지금부터 전달 시작하고.”
“그럼 먼저 가 보겠습니다!”
봉춘향은 그대로 분신을 늘려 사방으로 흩어졌다.
다시 봐도 신기한 능력이었다.
“나는 임진석에게 연락해 봐야겠군.”
이런 정보가 부족한 상황에선 임진석의 능력 활용성이 컸다.
상대가 어떤 의도든 침입자라면 최면 능력의 힘을 빌려서라도 알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임진석. 어디야?”
-……아직 편의점이다.
생각대로 임진석은 편의점의 매력에 푹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던 상황.
합류하기엔 충분했다.
“나한테 합류해. 게이트에 누군가 침입했어.”
-협회인가?
“아마도. 확실하진 않지만.”
-협회일 가능성이 큰데도 나를 부른다라. 너에게 불리할 수도 있을 텐데.
“헛소리. 여기는 내 집이다. 무조건 내가 유리해.”
-……내가 그쪽으로 가면 되겠나?
“아니. 내가 간다. 거기서 기다려.”
-알겠다.
이것으로 대화가 끝나고, 종료 버튼을 누르려는 찰나.
-콩이 안 돼요. 이건 사람이 먹는 거야.
“……?”
-컹! 컹!
-그럼 순살만 먹자. 착하지?
-컹!
통화가 종료됐다고 생각하고 콩이와 대화를 나누는 임진석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
왜인지 어떤 식의 조련이 이뤄졌는지 알 것 같았다.
아무리 악연이라지만, 차마 임진석의 이런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았기에 주민성은 직접 통화를 종료했다.
“어휴.”
한때 주민성을 끔찍이도 옭아매던 인간이었다.
저번 침입자 처리도 그렇고 손속 또한 상당히 잔인하다.
그럼에도 콩이에겐 따뜻한 집사 그 자체.
“여튼 임진석 쪽은 됐고. 크룩스.”
“크룩!”
“여기 지켜야 해. 알지?”
“맡겨만 주십시오!”
시간이 지날수록 교육과정의 효과를 누적시킬 수 있는 학교는 어떻게 보면 편의점만큼 중요하다 할 수 있었다.
때문에 몬스터 자원도 아낌없이 쓸 예정이었다.
“고블린 반절은 여기로 전부 모아서 침입에도 대비하고.”
“알겠습니다!”
크룩스는 그대로 징검문을 열어 고블린을 소집하러 떠났다.
방비는 이 정도면 완벽했다.
혹시라도 고블린들이 무력하게 무너진다 하더라도 총기로 무장한 판자촌 능력자들의 지원사격이라면 어떻게든 방비가 가능할 터였다.
거기다 봉춘향의 본체와 송몽룡까지 대기하고 있었으니 고위급 전력도 나름 충족했다 할 수 있다.
“그럼 난 출발한다.”
다음은 아지트의 차례.
주민성은 폐허 도시까지 전력으로 달렸다.
이곳은 잔해탑이 워낙 눈에 띄는 데다, 중요 건물인 꽃집부터 편의점, 헬스장 등의 초월 건물까지 있어 침입자에게 절대로 노출시켜선 안 되는 장소였다.
게다가 반드시 보호해야 할 일반인들까지 몰려 있다.
‘내가 없어도 선아 씨라면 충분히 잘해내겠지.’
최선아는 F급 능력자라는 경계를 진작에 넘어선 상황이었다.
고가의 장비로 능력의 한계를 극복한 것은 물론, 고블린이나 데빌도그를 다루는 솜씨가 주민성 이상이었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최선아 한 사람을 보는 것보단 몬스터 군단의 지휘관으로 바라보는 편이 옳았다.
‘인천은 성아영과 선호인가.’
인천의 대비는 정말 만약의 경우였다.
어차피 안산 게이트에서 인천으로 넘어가는 길목은 주민성이 지형을 바꿔낸 길 하나뿐.
길목만 확실히 봉쇄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성아영과 최선호가 나서는 상황은 게이트가 뚫릴 때 한정된다 할 수 있었다.
설령 그런 일이 발생한다 하더라도 큰 걱정은 없었다.
먼치킨 오크인 가르취와 차크취, 그리고 카르파크가 이끄는 악몽의 오크 라이더 부대가 있었으니까.
“후우!”
그렇게 주민성은 폐허 도시에 도착했다.
사전에 봉춘향을 통해 연락해 둔 덕분인지 주변 경계는 매우 삼엄한 상태로 유지되고 있었다.
“민성 씨!”
저 멀리서 최선아가 달려왔다.
야간 특화 장비로 세팅해서인지 상당히 은밀한 움직임이었다.
“침입자는요?”
“아직 어디 있는지 모르겠어요. 그래도 고블린들을 사방에 풀어 뒀으니 금방 보고하러 올 거예요.”
“그럼 제가 찾아볼 테니 이쪽 방어만 부탁드릴게요.”
“네!”
주민성은 빠르게 편의점에 들렀다.
안에선 임진석이 정성어린 손길로 콩이를 쓰다듬고 있었다.
“나 왔다.”
“……크흠.”
“태평하구만. 게이트에 침입자 온 건 알지?”
“알고 있다.”
임진석에게 침입자는 아무런 문제가 아니었다.
혼자서 이전의 침입자를 제압한 전적이 있었기에 보이는 자신감이었다.
“침입자 위치만 말해라. 금방 죽여 줄 테니.”
“아니 무슨, 보이면 다 죽인대.”
“생포를 원하나?”
“당연하지.”
전에 침입했던 전송 능력자는 주민성도 상당히 탐이 났던 인물이었다.
이용료 청구만 한다면 임시 서비스를 통해 상대의 능력을 공유할 수 있을 테니 합당한 처벌 수단이기도 했고.
“무조건 살려. 죽지 않을 정도로 패 주는 건 당연하겠지만.”
“좋다. 움직이지.”
콩이는 여전히 편의점 사료에 맛을 들여 고개도 들지 않고 있었다.
“콩이는 여기 맡겨도 괜찮겠나? 바깥은 위험하다.”
“…….”
“거기다 수비 상태도 걱정이군. 고블린은 너무 쉽게 쓸려나간다. 될 수 있으면 능력자들을 부르는 게 좋을 텐데.”
물론 주민성도 같은 생각이었다.
단지 인력이 부족할 뿐.
“당장은 어쩔 수 없어. 그래도 물량이 부족한 건 아니잖아?”
“침입자는 협회 소속인가?”
“아마도. 확실하진 않다만.”
왜인지 임진석은 고민하는 표정이었다.
“……음. 일단 너를 노리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만 알아 둬라.”
“뭐래. 아는 거 있으면 전부 말해.”
“……큭.”
계약서와 이용료 청구의 중첩 작용은 임진석에게 비밀을 허락해 주지 않는다.
따라서 주민성은 임진석이 알고 있는 정보는 뭐든 알아낼 수 있었다.
“후우. 전부 이해하지도 못하겠지만 일단 들어라. 너는 일반인 시절부터 협회 블랙리스트였다.”
“…….”
“목적은 간단하다. 협회장님이 비밀리에 건설한 연구소에 진행하는 실험 재료로 쓰일 목적이었지.”
“…….”
이유는 모르겠지만, 협회장은 처음부터 주민성의 존재를 알았던 모양.
나이로 본다면 아마 주민성의 얼굴도 모르는 부모님과 비슷한 또래일 터였다.
임진석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협회에선 특이 능력자를 실험 대상으로 지정하고 있다. 최고 기밀이니 이에 대해 아는 협회인은 거의 없겠지만.”
특이 능력자.
아마도 건물주 능력이라면 조건에는 부합했다.
하지만 협회장은 일반인 시절부터 주민성을 주목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떡잎부터 알아봤다는 소리니까.
‘협회장의 능력이 대체 뭐길래.’
건물주 능력 기준이라면 방법은 있을 터였다.
주민성에겐 건물 탐색 같은 능력이 있었으니까.
비슷하게 사람을 찾는 능력이라도 소유했다면 불가능하지만은 않은 일이었다.
“블랙리스트, 실험 대상에 오른 능력자는 우리의 감시를 받게 된다. 분석이 필요하니까.”
“그래서, 나한테는 너가 붙었고?”
“……그렇다. 본래 나의 포지션은 게이트 보스 포획조였다. 너에게 붙은 건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었지.”
이 역시도 크룩스가 말했던 정보와 부합했다.
전부 사실이리라.
그때, 최선아가 다급히 주민성을 찾았다.
“민성 씨! 찾았어요!”
“어디죠?”
“경비실이요! 근데 문제가 하나 있어요!”
“……네?”
여기까진 이전의 정보와 일치했다.
그럼에도 최선아의 표정에는 당혹스러움이 가득했다.
“이상한 몬스터들이 이쪽으로 오고 있어요! 벌써 고블린 수백이 죽었어요!”
“미친.”
이런 패턴은 주민성도 예상하지 못한 바였다.
침입자는 경비실에서 느긋하게 기다리고 엉뚱한 몬스터가 쳐들어오는 전개라니.
“이건 대체 무슨 경우지?”
동시에, 임진석의 표정은 상당히 심각했다.
무언가 짐작 가는 모양.
“……그놈이 직접 움직인 건가?”
“임진석. 말해.”
“……장 박사. 협회장님이 총애하는 인간 중 하나지. 내가 말했던 연구소의 대표이기도 하다.”
“그놈이 왔다고? 왜?”
“모른다. 나 역시 그놈과는 친하지 않으니까.”
뭔가 거물급이 쳐들어온 모양이다.
게다가 실시간으로 못 보던 몬스터까지 접근해 오는 상황.
“아마 지금 오는 몬스터들은 실험체일 가능성이 크다. 네가 칭하는 크룩스와도 비슷한 개체지.”
“…….”
심지어 크룩스처럼 실험체란다.
그렇다는 말은 능력자처럼 능력을 쓰는 몬스터일 가능성도 덩달아 상승한다.
“미치겠군. 혹시 경비실로 접근해 침입자만 제압하는 방법은?”
“물론 실험체는 장 박사가 통제하는 게 맞아. 하지만 별로 권장하고 싶지 않군.”
“왜?”
“장 박사, 혹은 연구소에 무슨 일이 생기면 봉인 중인 실험체가 해방된다. 그리고 봉인된 실험체는 협회장님조차 제법 골치 아플 만한 괴물들이 득실거리지.”
임진석이 골치 아픈 것도 아니고 세계 최강 능력자인 협회장이 곤란하다고 했다.
하지만 여기서 임진석이 간과하고 있는 사실 한 가지.
“……오히려 좋아.”
“네, 네놈……. 설마…….”
“후후…….”
흑막이 유력한 협회장 정혁수가 곤란할 일은 주민성에겐 기쁨이었다.
“임진석. 가자.”
주민성은 곧장 자리에서 일어났다.
“장 박사를 제압하러 간다.”
“놈을 때려잡는 것은 나도 찬성이지만……. 호락호락하진 않을 텐데?”
“뭐야. 너 설마 싸우면 지냐?”
“……헛소리. 단지 놈의 호위가 성가실 뿐이다.”
“굿.”
주민성은 곧장 최선아에게 말했다.
“왜인지 놈들 목적지가 확실해요. 선아 씨는 학교에 지원을 요청해 주세요.”
“네! 바로 부를게요!”
“아, 몬스터 능력은 아직 모르죠?”
“네……. 고블린들이 너무 순식간에 쓸려나가서…….”
“그럼 확실히 분석부터 끝내고 맞상대하는 게 좋겠네요. 몽룡이 올 때까지만 어떻게든 버텨 보죠.”
동시에, 멀리에 있던 제르취에게 눈짓했다.
“다녀올 때까지만 지켜줘.”
“취익.”
인원은 최소화했다.
최대한 침입자가 알아차리기 어렵게 만들기 위함이었다.
마석이 이식되고 나서부터는 신체 운용부터 시작해 감각까지 극도로 발달해 기척을 숨기는 것도 가능했다.
마음 같아선 임진석까지 인벤토리에 넣고 싶었지만, 명색이 최상위 SS급 능력자인데 자기 앞가림쯤은 할 수 있을 터였다.
‘신체 능력도 장난 아니었지.’
S급도 아닌 SS급.
신체 강화 능력 따위 없어도 압도적으로 잘난 몸뚱이를 타고나게 되는 등급이었다.
“가자.”
“음.”
몬스터가 접근해오는 방향은 정면.
경비실을 급습하려면 반드시 우회가 필요했다.
“이쪽이다.”
스슥.
예상대로 임진석은 주민성의 움직임에도 쉽사리 따라왔다.
오히려 주민성의 자세마저 고스란히 흡수할 정도.
역시 임진석은 재능도 타고난 인간이었다.
그렇게 20분쯤 이동했을까.
폐허 도시 방향에서 폭음이 뒤섞이기 시작했다.
“음? 폭발?”
왜인지 임진석이 멈칫했다.
“왜. 폭발에 문제 있어?”
주민성에게 폭발은 아주 익숙했다.
건물 하나는 쉴 새 없이 터뜨려 왔으니까.
“……폭발 능력이 이식된 실험체는 30호 이상일 텐데?”
“뭐라는 거야. 알게 설명해.”
“쉽게 말하지. 실험체는 뒷번호일수록 강하다. 이곳에 온 실험체는 아직 조율 단계에 있는 몬스터일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지.”
안타깝게도 여전히 어려운 말이었다.
쉽게 해석하자면, 엄청 강력한 몬스터가 접근해 온다는 말이겠지만.
“더 쉽게 말하지. 실험체 9호. 그놈이 네가 말하는 크룩스다.”
“크룩스가 9호라…….”
가장 약한 실험체가 한 자릿수의 숫자라면, 30대의 실험체는 적어도 세배 이상은 강할지도 몰랐다.
“더더욱 쉽게 설명해 주지. 실험체 33호. 놈의 폭발 능력은 황태범 그 이상이다. 공간 자체를 폭발시켜 버리지.”
“미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