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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룩스의 목적 (1)
2022.03.30.


“오셨습니까. 크룩.”

크룩스는 약속했던 폐건물에 도착해 있었다.

만물 소통을 이용하기 위함이었다.

“응. 오늘은 제대로 공부 한번 해 보자고.”

투웅!

주민성은 기세 좋게 돈 가방을 바닥에 깔기 시작했다.

“크룩! 크룩! 드디어!”

여기선 분석이 중요하다.

허튼 질문은 오로지 낭비일 테니까.

‘크룩스도 돈이 들어가는 능력이 있는 걸까.’

크룩스는 기뻐하고 있었다.

적어도 주민성과의 대화를 기뻐하지 않는 이상, 돈에 애착을 가지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첫 번째 질문.”

“말씀하십시오.”

“돈. 얼마 필요해?”

주민성이 꺼낸 돈은 총 200억.

전부는 아니더라도 분명 크룩스의 목표에 어느 정도 부합하는 양이라 할 수 있었다.

가방으로 돈을 감췄기에 정확한 액수를 알 수 없는 만큼, 심리적 기대감도 함께 노리는 수였다.

그 덕분인지 크룩스는 순순히 답했다.

정보료도 청구되지 않았고.

“정확히 1780억 3000만 원입니다.”

“……음?”

낯선 금액이 아니었다.

언젠가 청구 당할 뻔한 적 있는 액수였다.

[크룩스가 자신의 정보를 제공합니다.]

[정보료는 1780억 3000만 원입니다.]

[고액의 정보료는 상대의 동의가 필요합니다.]

다행히 기억에 남아 있는 메시지였다.

‘자신을 소개하는 것이 목표의 전부?’

이 부분은 설명이 필요했다.

“그 돈이 필요한 이유를 알려면, 무조건 정보료를 내야 하나?”

“그것은 아닙니다.”

“뭐야.”

“사실, 금액은 제가 멋대로 정할 수 있는 부분으로…….”

“…….”

여태까지의 의문이 해결되던 순간이었다.

즉, 먼 길을 돌아왔다는 소리.

“내가 호구였구나.”

“크룩! 그건 아닙니다!”

“일단 바닥에 머리부터 박자.”

“크, 크룩!”

명령이었다.

엄연히 크룩스는 절대 을이었으니까.

“양아치야? 1780억? 그 돈이면 유물이 몇 갠데! 고작 자기소개에 그런 가격을 매긴다고?”

“크루욱!”

바닥에 주저앉은 주민성은 허탈한 목소리로 말했다.

“……들어나 보자. 그 1780억짜리 자기소개.”

이번에도 크룩스에게 거부권은 없었다.

“어, 어디부터 알려드릴까요?”

“돈값 할 수 있겠다 싶을 정도까지.”

“크루욱…….”

이번에도 명령이었지만, 크룩스의 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자기소개에 1780억의 값어치가 없다는 뜻이었다.

그래도 다른 할 말은 있었는지 크룩스의 입은 쉴 새 없이 움찔거리고 있었다.

“읊어 봐.”

“……죄송합니다! 하지만 돈은 필요합니다!”

돈을 모아야 하는 건 사실이었던 모양.

“왜.”

“이곳의 재화를 바쳐야만 위대한 고블린들이 강림하기 때문입니다!”

“누구한테 돈을 바쳐. 주인은 난데?”

“그것도 맞습니다! 하지만 제 사명입니다! 그러기 위해 여기까지 왔습니다!”

“……사명이라.”

주민성은 자신의 사명이 뭔지 잠시 고민했다.

‘돈 많이 벌어서 아무 걱정 없이 행복하게 살기.’

분명 전자는 이룬 셈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여전히 걱정거리는 수없이 많았다.

“위대한 고블린이 누군데?”

“그, 그건…….”

정보료를 청구하려는 낌새.

하지만 정보료 청구는 이미 통제당한 상태였다.

“……1억입니다.”

“어쭈.”

“정말 더 못 깎아 드립니다! 그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크룩! 원래라면 100억은 받아야만……!”

크룩스는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게 있었다.

“너, 돈이 뭔지는 알지?”

“크룩……? 인간의 화폐입니다.”

여기까진 정답.

“그런데 1억을 청구한다고?”

하지만 크룩스는 믿는 구석이 있었는지 말을 계속해서 이어갔다.

“어느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천만 원부터는 큰돈입니다! 밥은 백만 원 근처로 먹을 수 있습니다!”

“……음?”

“인간 하나의 부산물 가치는 총 3억 대입니다!”

“……잉?”

“그래서 제가 가진 정보 1억은 아주 저렴한 가격입니다!”

“…….”

이 내용은 분명 크룩스의 경험에 빗댄 정보였다.

어디서 설명해 줘야 할지 벌써 머리가 지끈거리는 느낌이었다.

“후우. 자세 바로.”

“크룩!”

“내가 이런 상황에서 경제 교육까지 할 필요는 없겠고. 일단 받아.”

스윽.

주민성은 1억 원이 들어있는 돈 가방을 크룩스에게 밀었다.

“정보료 청구 이런 능력은 됐고. 그냥 주는 돈 알아서 써라.”

“저, 정말입니까!”

“우리 기준으로 1억은 고블린 10,000마리니까 기억해두고.”

“크, 크룩!”

돈 가방을 받아드는 크룩스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이제 좀 목숨의 무게를 깨닫겠지.’

하지만 크룩스의 입에선 엉뚱한 소리가 나오고 있었다.

“확실히 암컷 1000은 있어야 하루 만에 충당 가능한 금액이었군요.”

“물고기 알 뿌리는 소리하고 있네.”

“크룩?”

“에휴. 위대한 고블린에 대해서나 말해 봐.”

크룩스는 돈 가방을 끌어안은 채 조심히 답했다.

“그럼 말하겠습니다. 일단 위대한 고블린! 크룩! 아직 고브스가 부족해 이곳에 강림하지 못한 고블린 로드입니다.”

“고브스는 또 뭐야.”

“아, 고브스에 대해선 추가 비용이 들어가는데…….”

주민성은 조용히 인벤토리를 꺼내 크룩스의 품으로 보냈다.

“크룩! 저희 고블린 종족의 신성한 화폐입니다.”

“옳지.”

고블린의 화폐는 현대 지폐와는 다른 뭔가가 있는 걸까.

생각해 보면 오크들 역시도 크라노돈의 조각 뼈를 화폐로 사용했었다.

“하여튼, 여기 오려면 돈이 필요하고, 그 위대한 고블린인가 뭔가를 위해 대신 돈을 벌고 있다?”

“조, 조금 과격한 표현이지만 맞습니다!”

이 역시도 이해하기 힘든 감성이었다.

해줄 말이라곤 하나뿐.

“너 호구니?”

“크룩…….”

“똘똘해서 좋게 봤는데, 고블린이 아니고 호블린이었다니…….”

“크루욱…….”

그래도 이해는 할 수 있었다.

주민성도 비슷했던 시절이 있었으니까.

“그 위대한 고블린인가 뭔가는 뭐 하러 오겠대?”

“가, 강림입니다! 종족의 번영을 위한!”

뭔가 비슷한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특히, 자신의 경험과.

“목적은?”

“그, 그게…….”

스윽.

이번에는 봉춘향에게 탕진해 비어 있는 돈 가방을 내밀었다.

물론 크룩스는 쉽게 속아 넘어갔다.

“……새로운 터전을 마련하기 위한 정복입니다.”

“아, 그러셨구나.”

주민성은 크룩스를 날카롭게 쳐다보며 말했다.

“어디를 정복하게.”

“……크루욱.”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위대한 고블린의 목적지는 이 게이트일 테니까.

그 말은, 이곳에 나타날 변종 보스 몬스터에 대한 정체이기도 했다.

‘고블린이 상대면 나름 괜찮은가? 포섭 과정도 있고, 무기도 빵빵한 데다 동족을 상대하기엔 자기들도 껄끄러울 테고.’

크룩스는 말을 잇지 못했다.

“아, 괜찮아. 더 말할 필요 없어. 가치 없는 정보였네.”

“크룩?”

돈을 주지 않은 이유는 당연했다.

왠지 예상됐던 내용이었으니까.

“혹시 그 위대한 고블린인가 뭔가도 어디서 대기하고 있지 않아?”

“크룩! 그, 그걸 어떻게!”

역시 크룩스가 있던 차원에도 태양의 순례지와 비슷한 건물이 존재했다.

“고브스를 소모해서 이동하는 개념일 테고.”

“크룩!”

“재밌네. 이쪽 화폐를 전송하면 고브스로 전환되는 건가? 환율까지 궁금해질 정도야.”

“크룩……!”

크룩스는 귀신이라도 본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반면 주민성의 표정엔 확신이 가득했다.

‘확실하군.’

물론 조금의 차이라면 있었다.

태양의 순례지의 이용료는 태양 에너지.

크라노돈의 뼛조각도 아닌, 단순 자연 에너지였다.

‘그러니까 전설 건물인가? 어떤 종족이 사용해도 유용하게 쓸 수 있는.’

참 다행인 건, 태양의 순례지엔 주민성이 확실한 변화를 일으켰다는 사실이었다.

덕분에 그곳에서 튀어나오는 보스 몬스터는 두 부류로 나뉠 수 있게 되었다.

이미 죽은 몬스터.

그리고 공룡 영혼들이 만든 변수조차도 뛰어넘은 강대한 몬스터.

모 아니면 도였다.

그리고 깨달은 점 하나 더.

인천의 오크들과 관련된 일이었다.

‘나한테 로드라고 부르는 이유가 설마.’

주민성은 이미 위대한 오크의 대접을 받고 있었다.

절대 을이 아닌데도 시키는 건 뭐든 할 정도로.

‘확실히 황무지 마을 오크들 상태가 영 아니긴 했었다만.’

지금은 아니었지만. 이전엔 누가 봐도 불쌍해 보이던 꾀죄죄한 오크들이었다.

‘오크 쪽도 돈을 투자하면 게이트에 보스급을 강림시킬 수 있는 건가? 확실히 거기 있던 놈들은 아무것도 안 하긴 했었지. 부하들이 대신 돈을 벌 테고.’

고블린 같은 약소 몬스터를 제외한다면, 보스 몬스터의 강림은 기정 사실이라 봐도 될 정도.

주민성은 다른 게이트의 오크들이 새삼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아마 그 오크들까지 날 로드로 본다면…….’

거기까지 생각이 뻗자 아득한 미래가 보이기 시작했다.

몬스터는커녕 인류와 대신 전쟁하게 되는 미래였다.

물론 주민성은 그런 미래를 어떻게 이겨내야 할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협회장이라는 완벽한 표본이 있었으니까.

결국은 강해지면 장땡인 문제였다.

“……하여튼 알겠어. 전부.”

“크룩!”

크룩스는 어느새 엎드려 주민성을 경배하고 있었다.

“너도 아는구나. 눈높이의 차이를.”

“물론입니다!”

그리고 크룩스가 자신만만하게 외쳤다.

“이제 돈 필요 없습니다! 크룩!”

“응? 갑자기?”

“위대한 존재는 바로 내 눈앞에 있었으니!”

“…….”

“주인님이라면 우리 종족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어 주실 거라 믿습니다!”

“…….”

신봉자가 하나 더 늘긴 했지만, 썩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특히, 크룩스의 지출 방향성이 바뀐 것은 아주 기뻐해야 할 일이었다.

“크룩스.”

“크룩?”

“세상에 공짜는 없어.”

“크룩…….”

주민성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정말 고블린이 위대해졌으면 좋겠어?”

“물론입니다!”

“구원이 받고 싶어?”

“크룩!”

그리고 씨익 웃었다.

“그럼 돈을 내야지. 대신, 그동안의 정이 있으니까 80억 3천만 원은 깎아 줄게. 1700억만 내.”

“……크룩!”

조금 과도한 제안이었나 했지만, 크룩스는 긍정적이었다.

“어마어마한 할인! 내겠습니다! 위대한 고블린 역시 주인님께 고개를 숙여야 할지니!”

“후후후…….”

“쿠루룩…….”

주민성 역시 크룩스에게 은혜를 베풀 필요가 있었다.

“금제를 풀어 주겠노라.”

“크룩!”

“이제 정보료 청구는 써도 된다.”

“만세!”

“단, 아군에게는 안 된다.”

“물론입니다! 주인님!”

1700억.

정말 벌어들일 수 있는 금액인지는 모르겠지만, 크룩스의 능력은 진짜였다.

적어도 노후를 대비할 자금 정도는 벌어올 터.

만족스러운 대화였다.

‘이대로라면 1000억 보상도 꿈은 아니겠군.’

물론 조건은 있다.

게이트 내부에 침입한 적, 더불어 돈을 두둑이 들고 있는 인간이 필요했다.

‘임진석에게 미리 말해 두길 잘했네.’

이렇게 위대한 고블린에 대한 의문은 해결됐고, 크룩스에 대한 궁금증이 남아 있었다.

특히 가장 짚고 넘어갈 문제는 크룩스가 인간들과 부대끼며 겪은 경험들이었다.

‘나도 모르는 인간의 값어치, 터무니없이 비싼 밥값.’

크룩스는 이런 것들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 정보는 협회와 관련된 경험이 분명할 터였다.

크룩스를 세뇌한 사람은 다름 아닌 임진석이었으니까.

“앉아 봐.”

“예!”

“세뇌당했을 때 이야기. 해 볼래?”

“……크룩.”

썩 좋은 기억은 아닐 터였다.

하지만 주적인 협회가 하는 수상한 짓들에 대해선 알아서 나쁠 것도 없었다.

오히려 큰 도움이 되어 위험을 미리 방지하는 효과가 있었다.

“……오래전 이야기입니다.”

“응.”

“제가 이 게이트에 도착했을 때였죠.”

크룩스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이번만큼은 꽤 진지한 이야기였기에 주민성도 잠자코 집중할 정도.

“크룩.”

시작은 평범했다.

네임드 고블린답게 게이트의 능력자들을 쉽사리 제압해내며 명성을 떨쳤던 이야기였다.

“크룩.”

문제는 그 이후부터였다.

처음 능력자에게서 정보료를 강탈했을 때.

“크룩.”

그때부터 정보료를 강탈당한 능력자는 보이지 않게 되고, 같은 복장을 착용한 능력자들이 역으로 크룩스를 추적해왔다.

‘그게 협회원들일 테고.’

협회 능력자들은 온갖 능력을 사용해 크룩스를 무력화시켰다.

그리고 생포에 성공한다.

“크룩. 저는 바깥이 보이는 이상한 관에 들어가 끌려 나왔습니다. 그렇게 순식간에 도착한 장소는, 바다 한가운데 외딴 섬의 하얗고 이상하게 생긴 건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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