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급 (3)
(118/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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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급 (3)
2022.03.29.
그보다 문제는 콩이가 대체 누구의 휴대폰을 챙겼는지가 관건이었다.
이를 눈치챈 임진석이 말했다.
“황태범 휴대폰이다.”
“아.”
다행히 게이트 식구들 휴대폰은 아니었다.
아마도 놈이 기절한 사이에 몰래 들어온 콩이가 물건들을 챙긴 모양.
“그래서, 이 휴대폰으로 대체 뭘 한 건데?”
“콩이에게 줄 마석을 샀다.”
“……돈은? 아, 물어보는 내가 바보지.”
임진석은 협회 간부였다.
그것도 최상위의.
이름만 대도 돈을 갖다 바칠 사람들은 차고 넘쳤으리라.
주민성만 또한 한때 촉망받는 인재였기에 그런 부분은 바로 눈치챌 수 있었다.
“마침 황태범의 뒷거래 루트가 있더군. 그곳을 이용해 상급 마석을 구매하던 중, 놈들이 게이트에 침입해 왔었다.”
“게이트에?”
“그래.”
의아한 내용이었다.
이 게이트에 출입하는 모든 인원에 대해선 주민성 역시 파악하고 있었으니까.
‘경비실을 거치지 않은 건가? 아니면 경비가 당했거나.’
임진석의 설명이 이어졌다.
“사람을 전송시키는 특이 능력자가 있더군. 그런 방식이라면 균열을 돌파할 수 있다.”
“맙소사.”
너무나도 탐나는 능력이었다.
이용료만 청구한다면 임시 서비스로 비슷한 능력자를 양성할 수도 있었다.
“그놈. 어디 있지?”
“잘 처리했으니 걱정하지 마라.”
“…….”
많은 말이 함축되어 있었다.
분명 살인이었지만, 뒷얘기도 나오지 않을 터였다.
무려 협회 간부가 저지른 짓이었기 때문이다.
상대를 유해 능력자 취급만 한다면 면책될 터였다.
“쯧. 도움이 안 되는군.”
“내, 내가 말이냐? 나 임진석이?”
적어도 전송 능력자를 상대로 이용료 청구할 일은 없는 것이 확정됐다.
“어. 자꾸 이렇게 나오면 곤란해. 콩이랑 떨어지고 싶어?”
“그, 그것만은 안된다!”
“그럼 알아서 잘 하셨어야지. 기대치를 자꾸 낮추면 곤란하다 이 말이야.”
“노력하겠다고! 콩이만은 제발!”
이렇게 잔혹하고 냉철한 임진석마저도 콩이 앞에선 자존심이고 뭐고 없었다.
사람보다 동물을 선호하는 사람은 더러 있었으니 이해 못 할 것도 아니었지만.
“말로는 안 통해. 성의를 보여라. 임진석.”
“성의라니 그게 무슨…….”
“바쁜 와중에 여기까지 들렀어. 나한테는 1분 1초가 다 돈이야. 알만한 사람이 왜 그러시나.”
“아, 그렇군. 이해한다.”
다행히 얘기는 잘 통했다.
“계좌번호.”
마석 판매 계획이 막힌 이상, 현금이라도 최대한 비축하는 것이 이득이었다.
“아니. 현찰만 받는다.”
“그렇군. 경비실로 보내면 되나?”
“그래. 최대한 깔끔하게. 알지?”
“좋아……. 이렇게 보여도 가진 돈 하나는…….”
왜인지 임진석의 표정이 창백해졌다.
“……생각해 보니 남은 돈이 얼마 없군.”
“뭐야. 장난해?”
“추적에 쓰인 사비부터 콩이 사료값까지 너무 많은 지출이 있었다.”
“…….”
“몇 억을 썼는지도 모르겠군.”
“……억?”
아마 임진석이 거리를 두고 주민성을 압박해 왔을 당시일 터였다.
확실히 가짜 인부를 제외하곤 낌새를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은밀한 추적이었다.
그런 과정에서 수억이나 들었다니 내심 통쾌하긴 했지만, 직접 받을 돈이 줄었다는 것은 짚고 넘어가야만 했다.
“흥정 안 돼요. 고객님. 계산은 확실히 합시다.”
“후우. 당장은 무리다. 차라리 나를 다른 게이트로 보내줘라.”
“……장난하세요?”
임진석은 주민성의 능력을 잠시나마 파훼할 수 있었다.
장기적으론 임진석의 손해겠지만, 주민성은 그런 잠시의 손해조차도 용납할 의향이 없었다.
“내가 여태 당한게 얼만데. 양심 어디?”
“……후우. 곤란하군. 그러면 성아영에게 빌릴 수 있겠나?”
“성아영 돈은 다 내 돈인데.”
“…….”
“다른 데 알아보세요.”
성아영과 임진석이라는 두 명의 협회 간부를 붙여 두는 건 위험한 짓이었다.
이 역시도 용납해선 안 될 상황.
그럼에도 임진석이 가진 메리트는 쉽게 포기할 수가 없었다.
‘콩이에겐 가장 도움되는 인간이기도 해.’
콩이는 마석을 먹으며 성장한다.
이 가설은 거의 확실해진 상태였다.
주민성 또한 마석을 흡수하며 강해지기 시작하고 있었으니까.
여기서 임진석이 조달해 오는 마석은 F급 게이트에서 구할 수도 없는 상급 마석.
당장은 루트가 사라졌다 해도 임진석이 가진 위치라면 새로운 루트쯤은 얼마든 마련할 수 있을 터였다.
“딱히 떠오르는 방법 없으면 내가 제안하지.”
“좋다.”
이곳은 안산 전체를 아우르는 게이트였다.
여기서 주민성이 개척한 구역은 한때 번화가였던 폐허 도시와 학교가 위치한 아파트 구역.
여전히 개척하지 못한 구역은 많았다.
“건물 조사 좀 맡기자. 수원시나 화성시 방면으로.”
“……조사?”
“그래. 그곳에 있는 건물들에 대해 적어와. 전부.”
가능성이 있는 핵심 건물들을 추리고, 콩이를 자유롭게 성장시키는 방법이었다.
깜지를 쓰게 해 임진석에게 벌을 주는 것은 덤.
“정말 그거면 되나?”
“아직 안 끝났어. 너는 일주일에 두 번씩은 내가 있는 폐허 도시나 여기에 들러서 상황을 보고하고. 어차피 식량 조달 차원에서도 들를 수밖에 없을 거다.”
“……좋다.”
그리고 이제 본격적인 수금 수단에 대한 안내였다.
“폐허 도시에 편의점을 차렸다. 무료 아니니까 돈 내고 사 먹어. 마석 처분은 최선아 씨나 김 대위님께 말하면 도와줄 거다.”
“……편의점이라니.”
“가 보면 알 거야.”
도시 생활에 한창이던 김정남조차 편의점에 맥을 추리지 못했다.
임진석이라고 다를 건 없다.
심지어 편의점엔 애견용품도 일부 있었기에 반드시 큰돈을 쓰게 될 것이 뻔히 보였다.
“좋다. 동의하지.”
“오케이.”
이것으로 임진석의 처우는 정리되고, 다음 문제를 짚을 차례였다.
“메시지. 어떻게 떴는지 수첩에 적어.”
“음.”
수첩을 받아든 주민성은 내심 경악했다.
[이용료가 청구된 ■태입니다.]
[건물주에게 해가 ■는 행동은 전부 금지됩니다.]
[강제로 능력을 사■해 페널티가 부가됩니다.]
[근육의 피로도가 ■격히 상승합니다.]
……
‘이 미친놈은 메시지까지 절단해 버리네.’
그것도 문제였지만, 페널티를 감당하는 임진석의 정신력도 대단했다.
“……너 멀쩡하냐?”
“아니. 더럽게 힘들군.”
내색만 하지 않을 뿐.
임진석은 주민성이 처음 각성했을 당시보다도 더욱 열악한 몸 상태였다.
물론 동정해줄 이유는 없었다.
“페널티의 해소 방법은?”
“……손해를 배상하라는군.”
임진석은 수첩에 글을 이어나갔다.
[건물주에게 끼친 손해를 배상해야 합니다.]
[남은 시간: 24시간]
“오호. 가격은?”
“적혀있지 않다.”
“그래? 이렇게 하면 어떻게 될까.”
주민성은 눈을 감고 집중해 손해배상금을 떠올렸다.
‘아, 정신적 충격. 괜히 허리도 아픈 것 같고, 건물주의 명예도 훼손됐어.’
곧이어 새로운 메시지가 떠올랐다.
[건물 이용자 임진석에게 손해배상금을 청구합니다.]
[판정된 손해배상금은 176억원 입니다.]
“……주민성. 제정신인가?”
메시지는 임진석에게도 떠올랐던 모양.
이쯤 되면 자해공갈로 주민성이 역으로 고소당할 정도였다.
“제대로 대화에 임해 주면 좋겠군.”
“그건 내가 정해.”
주민성은 머쓱한 표정으로 다시 눈을 감았다.
‘생각해 보니 허리는 멀쩡했어. 정신도 건강하고 명예야 뭐. 게이트인데 별거 있나.’
[손해배상금이 재판정됩니다.]
[재판정된 손해배상금은 29억 원입니다.]
그럼에도 페널티는 상당히 컸다.
“29억인가. 이 역시도 24시간 안에는 힘들다. 괜히 덜미를 잡혀서 너에게도 손해가 될 수 있어.”
“쯧.”
어차피 수익은 편의점을 통해 계속 올릴 예정이었다.
헬스장도 있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임진석이 지출하는 금액은 주민성이 컨트롤하기 수월해질 터였다.
주민성은 다시 눈을 감아 손해배상금을 재판정했다.
‘그냥 천만 원만 받자.’
[판정된 손해배상금은 1000만 원 입니다.]
“이 정도는 되겠지?”
“그 정도라면 충분하다. 경비실로 사람을 보내지.”
“아니.”
주민성은 충분하지 않았다.
고작 천만 원으로 새로운 변수를 끼어들게 만들 생각 역시 없었다.
척.
“돈은 여기.”
주민성은 인벤토리에서 이천만 원을 꺼내 임진석에게 넘겼다.
“일단 천만 원은 배상금으로 쓰고 남은 돈은 활동 자금이다.”
“오오…….”
“오오는 무슨. 돈은 갚아야지.”
“당연하지. 얼마든지 갚겠다.”
무턱대고 넘겨준 돈이 아니었다.
이 역시 재테크였다.
“이 게이트 자치권은 나에게 있어. 이자 설정도 내 자유고.”
“…….”
“주 25%. 복리. 실적에 따라 이자율 낮춰 줄 의향은 있어. 거절은 거절한다.”
이곳은 F급 게이트였지만 워낙 몬스터 개체수가 많아 쉽게 갚을 수 있는 돈이었다.
최하급 마석 천 개면 되니까.
하지만 임진석에겐 콩이가 붙어 있었다.
“……일주일 안에 갚으면 되겠군.”
“그렇지? 실적까지 남기면 더 좋을 거야.”
수원과 화성.
수원은 민간인 거주 구역이라 쳐도, 화성은 아니었다.
그곳은 D급 게이트였다.
또한, 판자촌 능력자들이 밀집해 있다는 소문도 있었다.
‘게이트를 확장한다면 화성부터 챙겨야 해.’
몬스터는 둘째 치더라도, 그들 역시 이곳의 판자촌 능력자들 같은 전직 군인 출신이라면 아주 소중한 인적 자원이 될 수 있을 터였다.
아예 화성 게이트까지 통째로 합병해낼 수 있다면 더더욱 좋고.
물론 이는 우선순위에서 많이 밀리는 작업이었기에 임진석에게 기반을 닦아 놓으라고 하는 편이 적절했다.
“이제 됐지?”
“좋다. 납부하지.”
[손해배상금이 납부되었습니다.]
[건물 이용자 임진석의 페널티가 해소됩니다.]
뚜둑.
그제야 임진석은 몸을 풀며 전보다 훨씬 나아진 상태에 만족했다.
“참 터무니없는 능력이란 말이지.”
“지는.”
메시지조차 잘라내며 능력을 파훼하는 능력자.
심지어 주력 능력은 최면이었다.
“근데 평소엔 어떻게 생활한 거야? 폐허 도시에 없던데.”
“고작 F급 게이트다. 능력 따위 쓰지 않아도 쉽지.”
“…….”
즉, 단순 체술만으로 게이트에서 무난히 생활했다는 뜻이었다.
콩이에 의존했던 주민성과는 상당히 달랐다.
‘전투력 하나는 끝내준단 말이지.’
임진석의 말로는 이번에 게이트에 침입한 길드가 뒷세계에서 꽤 알아주는 집단이라고 말했었다.
그런 이들조차 단독으로 전부 처리해낼 수 있는 힘.
분명 보스 몬스터의 침공에서도 쓸모는 있을 터였다.
‘그때라면 엄청 정신없기도 하겠지.’
생각을 정리한 주민성은 임진석을 아주 조금만 풀어 주기로 마음먹었다.
“일단 페널티는 조금 풀어주지. 적대 몬스터 한정으로.”
“좋군.”
이것으로 충분했다.
건물주가 허락했으니까.
“이제 가 봐도 되겠나? 콩이가 보고 싶군.”
“참나.”
“편의점에도 관심은 있으니 걱정 마라.”
“…….”
정보 교환은 이것으로 충분했다.
건물 조사와 더불어 주민성과 관련된 메시지도 전부 수첩에 적어서 받기로 했으니까.
심지어 건물주와 이용자의 관계였기에 임진석의 입장에선 잔머리를 굴릴 수도 없었다.
“그럼 가 보겠다.”
“오냐.”
임진석은 콩이와 함께 떠나고, 주민성은 학교에 남아 판자촌 능력자들과 컵라면을 즐겼다.
봉춘향의 성장을 확인하려는 의도도 있었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크룩스 때문이었다.
‘너무 바빠서 신경을 못 썼어.’
생각해 보면 크룩스는 알아갈수록 특이했다.
주민성과 스미스의 공통분모인 인벤토리.
그것도 이동형 인벤토리 능력을 사용하는 몬스터였다.
‘스미스의 능력도 돈과 관련된 능력이겠지.’
가진 표본만 보자면 그랬다.
주민성의 능력, 그리고 크룩스의 능력은 이용료와 정보료라는 공통점이 존재했다.
외견 역시도 특출났다.
단순 변종이라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머리만큼은 데빌도그인 고블린이었다.
이는 어느 몬스터에게서도 볼 수 없는 기형이었다.
‘이젠 알아봐도 될 때지.’
크룩스와 임진석의 관계.
그리고 협회와 크룩스의 관계.
아마도 지금이라면 전부 알 수 있었다.
크룩스가 있던 차원조차도.
‘정보료가 충분할지 모르겠지만.’
수백억으로도 아쉬운 감은 있었다.
단순히 엄살만 떨어도 손해배상금 176억 원이 판정될 정도니까.
심지어 크룩스에 대한 정보료는 1000억을 넘었다.
‘부디 적당한 정보료이길.’
식사를 마친 주민성은 크룩스와 함께 근처 폐건물로 이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