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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급 (2) (117/250)


SS급 (2)
2022.03.28.


오크들과 티격태격하는 사이, 주민성에겐 수많은 메시지가 떠오르고 있었다.

[건물 이용자 임진석에게 페널티가 부과됩니다.]

[건물 이용자 임진석에게 페널티가 부과됩니다.]

……

밝던 분위기도 한순간 굳어 버릴 수밖에 없었다.

나름대로 확실하게 통제했다 생각했던 임진석이 반전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쯧.”

동시에, 휴대폰 벨이 울렸다.

전화는 항상 비상시에만 걸기로 되어있었다.

“제발 안 좋은 소식만은 아니길.”

발신인은 김 대위.

판자촌 능력자들 일부에겐 이수길이 루트를 개척해서 구매하고 보급했던 대포폰이 있었다.

인력소엔 중국인 노동자도 상당히 많았기에 이런 부분에서는 상당히 요긴했다.

주민성은 불안한 소식이 들리지 않을까 걱정하며 조심스레 통화 버튼을 눌렀다.

“네. 대위님.”

-급한 일이라 연락드렸습니다. 통화 가능하십니까?

“네. 말씀하세요.”

왜인지 김 대위의 목소리엔 떨림이 섞여 있었다.

-임진석이 학교로 찾아왔지 말입니다.

“……학교요?”

-예. 대장님 연락처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음? 전화 할 수 있대요?”

-예. 휴대폰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

임진석의 소지품은 전부 압수한 상태였다.

있던 휴대폰은 이전의 전투로 조각난 상태.

자기 손으로 직접 박살 냈으니 주민성 입장에선 딱히 신경 쓰지 않았던 부분이기도 했다.

“혹시 제압할 수 있겠어요?”

가장 걱정되는 부분은 그것이었다.

페널티가 부과되었다곤 하나, 임진석은 계약을 파훼할 수 있었다.

이용료 청구도 마찬가지.

-이미 제압 끝냈습니다.

“……네?”

-제 발로 와서 제압당했다는 쪽이 맞지만요.

“아.”

-오히려 크룩스 쪽이 문제였습니다. 임진석에게 몇 번이고 달려들어서 겨우 말리던 참입니다.

“……그랬군요.”

크룩스는 임진석에게 원한이 있었다.

자신을 세뇌시킨 장본인이었으니까.

평소 차분하고 충직한 모습만 보여 주던 이전의 모습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지만, 이해하지 못할 것도 아니었다.

‘크룩스가 있었지. 참.’

원한 관계라면 주민성도 있다.

꾸준하고 차분하게 임진석을 괴롭히려는 것, 그리고 바로 복수하겠다는 차이가 있을 뿐.

그보다 이젠 어엿한 게이트의 지킴이가 된 판자촌 능력자들의 성장이 고무적이었다.

준 보스급 몬스터인 크룩스를 아무런 피해 없이 말릴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는 뜻이었으니까.

“그래도 다행이에요. 임진석 거기 있죠?”

-예. 그렇습니다. 전화 바꿔 드릴까요?

“아뇨. 직접 갈게요. 도착하기 전까지 잘 가둬 주시고, 경비는 최대한 삼엄하게 부탁드리겠습니다.”

-예. 나중에 뵙겠습니다.

굳이 임진석과 통화할 필요까진 없었다.

능력과 관련된 문제였기 때문이다.

특히 메시지 같은 경우엔, 서로 다른 메시지가 떠오르기 때문에 직접 대면하는 쪽이 정보 얻기가 훨씬 수월하다.

“취익?”

가르취와 차크취는 지루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애초에 휴대폰이 음식이 아니었기에 당연했다.

“근데 너희들 다른 능력은 안 써?”

“능력취?”

해상 요새를 떠나기 전,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한 가지 있었다.

바로 성아영의 능력이었다.

“취익! 그런 거 모른다!”

“가르취가 여럿으로 늘어나는 거야. 멋지지 않아?”

“머릿수 많으면 먹는 음식 줄어든다! 취익!”

“…….”

정말 안타까운 일이었다.

가르취와 차크취는 압도적인 피지컬에 비해 심각할 정도로 지능이 낮았기 때문이다.

덕분에 성아영의 분신 능력은 여전히 심증으로만 남게 됐다.

‘애초에 어린 오크였지. 크라노돈 고기 때문에 몸만 성장했을지도 모르겠네.’

오크들은 여전히 얼빵했다.

‘성아영의 능력은 직접 알아보는 게 낫겠군. 요새에 대해서도 일단은 비밀로 해 두자.’

임진석도 그렇고 성아영도 그렇고 숨기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따라서 주민성도 이 정도의 패는 숨겨 두는 편이 유리하다.

“에휴. 나 간다. 요새 잘 지키고 있어.”

“취익! 이제 밥 먹는다!”

“먹고 운동도 해.”

“먹자취!”

그보다 분신 능력이 절실한 사람은 주민성이었다.

당장 오늘만 하더라도 학교에 들러야 할 일이 생겼고, 저녁엔 인천의 회원 관리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안 되겠다. 성아영을 더 굴려야겠어.”

돌아가는 길은 제르취와 함께였다.

오크 형제에게 제압당한 것 때문인지 생각이 많아 보였다.

“고생이 하고 싶니?”

“……고생이 아닌 시련이다.”

“쩝. 네가 나 대신 일 좀 해 주면 얼마나 좋냐.”

“그것은 고생이 맞다.”

제르취의 시련은 오로지 싸움 관련이었다.

바닷길은 평소처럼 무난했다.

차이가 있다면, 안대를 써 봤기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띈다는 정도.

“크롸라라라라!”

보기만 해도 오금이 저릴 듯한 심해 생물의 영혼들이 바닷길 주변을 배회하고 있었다.

더욱 무서운 건, 저런 영혼들도 만물 소통 능력을 거치면 무슨 터무니없는 소리를 하는지 이해된다는 사실이었다.

‘언젠간 저런 것들도 쓰임새가 있겠지.’

이미 영혼 재배치를 통해 태양의 순례지에 변수를 일으킨 후였다.

정확히 어떤 반전을 일으켰는지 사실 확인만 된다면 이 역시도 적극적으로 활용할 계획이었다.

‘당장 활용하기엔 너무 시끄럽고.’

생각을 마친 주민성은 그대로 안대를 벗었다.

애초에 외눈으로 이동하는 것은 상당한 불편함을 초래한다.

“제르취. 뛸래?”

“음. 그건 좋군.”

제르취도 느린 편은 아니었다.

마석 이식은 제르취 또한 영향을 받았으니까.

물론 주민성처럼 신체 능력의 전반적인 향상보다는 영혼과 관련된 부분에 영향을 받은 모양새였다.

“오케이. 알아서 따라와. 학교로 갈 거다.”

“취익. 이번엔 쫓아 주지.”

“괜히 헛디뎌서 죽지나 말고.”

타다닷!

게이트에 도착하기까지 달리기는 주민성의 압승.

따로 활력 꽃을 통한 도핑조차 필요 없었다.

하지만 속도는 조금도 늦춰지지 않았다.

이번에 만날 상대는 다른 이도 아닌 임진석이었기 때문이다.

‘이번 기회에 약점을 제대로 보완해야겠어.’

그렇게 도착한 학교.

평소와는 달리 상당히 삼엄한 분위기였다.

“오셨습니까!”

“임진석은요?”

“창고에서 교대로 감시중입니다.”

“네. 수고하세요.”

창고 입구엔 판자촌 능력자들 말고도 거대한 데빌도그도 있었다.

“……너 혹시.”

“컹!”

“콩이구나.”

왜인지 엄청 오랜만에 본 것 같은 콩이는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었다.

윤기 가득한 털은 예전부터 그랬으니 상관없었지만, 유독 두둑해진 살집이 주민성을 당황케 했다.

“왜 이렇게 살쪘어? 보스 데빌도그라고 해도 믿겠다.”

“컹!”

그 외에도 더욱 날카로워진 것 같은 이빨과 발톱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더욱 깊어진 눈매는 덤.

“강해졌으면 만사 오케이긴 하다만.”

“컹!”

이것으로 안부 인사는 끝.

주민성은 임진석을 보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이제 비켜 주지 않겠니?”

“컹.”

하지만 콩이는 창고 문 앞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이유라면 알고 있었다.

“……아직 마석 못 주는데.”

“컹!”

“진짜야. 봐.”

주민성은 콩이 앞에 인벤토리를 띄워 최하급 마석 하나를 떨어트렸다.

“내 말이 맞…….”

콰작!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콩이가 떨어지는 마석을 낚아채 입에 넣었기 때문이다.

보통의 반사 신경과 동체시력으로는 절대 해낼 수 없는 일이었다.

“컹! 크르르!”

콰직! 콰직!

콩이는 자랑이라도 하듯 신나게 마석을 씹어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삼키려는 찰나.

예정된 반전이 일어났다.

[최하급 마석이 마석에 흡수됩니다.]

“컹?”

신나게 씹어대던 마석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커엉?”

지금의 콩이 상태는 굳이 점유율 조회를 띄우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마석 살살 녹는다!”

분노였다.

“컹! 크르르! 컹컹!”

콩이가 따지듯 주민성에게 달려들었다.

예전 같았으면 장기가 파열될 정도의 무시무시한 돌진이었을 터였다.

“오구오구.”

하지만 지금의 주민성은 그런 콩이마저도 받아낼 힘이 있었다.

“그래. 마석이 사르르 녹았네.”

“컹! 컹!”

“여튼 이래서 마석 못 줘. 대신 다른 집사 붙여 줬잖아.”

주민성은 창고를 가리켰다.

“그렇지?”

콩이 역시 납득했는지 화를 가라앉히기 시작했다.

“크르르…….”

그리곤 판자촌 능력자들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음?”

판자촌 능력자들이 주머니에서 작은 최하급 마석이 하나씩 꺼냈기 때문이다.

“자, 콩아. 먹어라.”

“내 거도!”

“컹!”

마석이 현찰이었다면, 그야말로 압도적인 수금 현장이라 할 수 있었다.

이미 마석은 현금화가 가능한 물건이었으니 그냥 수금 자체라고 해도 될 정도.

“……이것이 재능인가.”

부럽지 않을 수가 없었다.

건물주라는 능력을 가졌음에도 제대로 된 수금 횟수는 손에 꼽을 정도였기 때문이다.

물론 인천에서의 수금은 최초이자 최고로 많이 뜯어낸 업적이었지만, 이 부분은 조금만 관리에 소홀해도 신경 쓰일 일이 잔뜩 생기기 때문에 돈값 한다는 느낌이었다.

“다르군…….”

그저 다가가서 짖으면 됐다.

애교를 부릴 필요도 없었고,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마석을 요구하면 누구나 마석을 내주는 것이었다.

“한때는 만 원짜리 마석 하나에도 울고 웃었는데.”

추억에 젖을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

이곳에 방문한 용건은 임진석 때문이었으니까.

“에휴. 들어가자.”

주민성은 텐트를 겹겹이 둘러 혹시 모를 임진석의 능력 사용에 대비를 마치고 창고 문을 열었다.

끼릭.

그곳엔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는 임진석이 있었다.

“으으. 콩이 보고 싶다.”

“…….”

다시 만난 임진석은 여태껏 알던 극악무도한 협회 간부가 아닌 콩이 중독자 그 자체였다.

하지만 주민성은 그 모습을 조금도 동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위장 전술로 취급했다.

빠악!

“큭. 주민성인가.”

“왔는데 왜 모른척해.”

임진석을 도발한 것은 주민성 나름대로의 계획이었다.

이성을 잃을수록 본모습을 드러낼 테니까.

“……더럽게 아프군. 그보다 능력을 사용한 건 미안하게 됐다.”

“…….”

임진석의 반응은 의외로 차분했다.

오히려 맞은 사람이 미안해하고 있으니 손을 멈출 수밖에.

이런 대응도 플랜에선 크게 벗어나지 않았기에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능력. 어떻게 풀었어.”

“잘라냈다.”

“어?”

임진석의 능력은 절단.

그것도 SS급 절단이었다.

“능력도 잘라?”

“내가 원하는 건 뭐든.”

“계약도?”

“당연하다.”

그제야 알 수 있었다.

여태 일부러 통제에 응했다는 것을.

다행인 점은, 건물주 능력이 절단 능력에 어느 정도 대항이 된다는 점.

“페널티도 잘라?”

“……그건 아니더군. 이대로라면 출력이 떨어져서 두 번째는 힘들 거다.”

임진석의 표정은 진지했다.

“응. 안 믿어.”

물론 두 번 속아 줄 생각도 없었다.

그 말이 사실이라 한들 방어를 더욱 단단하게 해 둘 필요가 있었다.

“크룩스!”

“예!”

주민성의 외침에 크룩스가 한달음에 달려왔다.

“드디어 기회를 주시는 겁니까! 크룩!”

“음, 정확히는 심문의 기회를 줄게.”

“……오오오!”

죽이라는 명령도 아니었지만 크룩스는 크게 기뻐하고 있었다.

오히려 지금 같은 순간만을 기다려온 듯 미간엔 환희가 가득했다.

“죽이진 말고, 확실하게 심문해서 나한테 보고해.”

“알겠습니다!”

크룩스는 임진석과 다르다.

절대 을이기 때문이다.

원한다면 100%의 진실만을 들을 수 있는 권리였다.

“……주민성. 대화로 하고 싶은데.”

“응. 하는 거 봐서.”

“…….”

“그러니 최대한 성실하게 정보를 제공해.”

마무리로 크룩스에게 한 겹의 텐트를 더 하사했다.

이것으로 세뇌 대비까지 완료.

“그보다, 몬스터한테 말을 하라고?”

“콩이랑도 소통하잖아? 크룩스도 꽤 똑똑하다?”

“…….”

애초에 크룩스를 세뇌했던 장본인이 임진석이었다.

여태껏 한국말로 명령해 온 것도.

크룩스가 말을 잘 알아듣는 데 이 점도 한몫했을 터였다.

“아, 휴대폰은 압수야. 근데 어디서 났어?”

“……휴대폰은 줄 테니 직접 대화했으면 좋겠군.”

“선택권 준 적 없는데.”

“……”

임진석은 포기한 표정으로 주민성에게 휴대폰을 건넸다.

“콩이가 줬다. 마석을 매일 바치니 보상으로 주더군.”

“…….”

“그래서 상당히 의미 있는 휴대폰이다. 물론 너에게 해가 될 일은 절대 하지 않을 생각이다. 그러니 돌려줘라.”

왠지 콩이가 오만했던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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