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다른 건물주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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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다른 건물주 (3)
2022.03.26.
쿠구구구……!
움직이는 건물.
물론 주민성도 생각했던 바였다.
단지 스케일의 차이가 있을 뿐.
‘나는 컨테이너 차량 정도로 생각했었는데…….’
컨테이너가 나쁘다는 말이 아니었다.
지금도 스미스는 건물 부가효과가 적용된 컨테이너를 아주 유용하게 활용하고 있을 테니까.
“어때요? 형?”
“와…….”
최선호의 스케일이 너무 거대했을 뿐이었다.
“이대로면 어디든 갈 수 있어요! 당장 저쪽으로는 중국이겠네요.”
“중국이라.”
중국은 땅덩어리도 크고, 인구수도 많고, 게이트도 많은 나라였다.
누가 봐도 강대국의 자질을 모두 갖춘 나라에 해당한다.
다만, 중국엔 SSS급 게이트가 존재했다.
세계 금지 구역에 선정되었을 정도로 위험한.
‘중국은 위험해.’
청두에 나타날 보스급 몬스터.
그곳엔 같은 보스급조차도 제압할 정도로 강대한 몬스터가 나타날 예정이었다.
게다가 중국은 게이트를 전부 수습한 한국과 달리 지금도 여전히 게이트와의 전쟁에 한창이다.
“형이라면 중국 게이트도 점령할 수 있을 거예요. 단지 수단이 없었을 뿐이지. 지금은 달라요.”
“음?”
“게이트 몇 개 억누르는 대가로 자치권을 주장할 수 있잖아요. 그것도 협회장이 보증해 주는.”
주민성은 협회장의 세계적 위상을 다시 한번 떠올렸다.
‘……가능하긴 하겠네.’
능력자 협회장 정혁수는 살아 있는 전설이었다.
실제로 협회장이 보증한 자치권을 주장한다면 중국조차 한발 물러설 것이 확실할 정도로.
물론 협회장이 죽고 난 다음이라면 얘기가 달라질 터였다.
“이 기회에 한번 가 볼까요?”
최선호의 표정엔 모험심이 가득했다.
병실에만 있던 시간이 워낙 길어서인지 모험에 대한 동경이 상당히 컸던 모양이다.
“다음에 가자. 아직은 힘을 더 키워야 해. 너도 이 요새 하나로 만족할 생각은 아니잖아?”
“그것도 그렇네요. 용도 변경 100회도 채워야 하고.”
“그치?”
주민성은 차마 1000회 보상과 10000회 보상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노가다는 작업량을 알게 되면 더욱 고달픈 법이니까.
“그러면 가볍게 근처 바다로 돌게요.”
“그러자.”
쿠구구……!
“그보다 배가 좀 빠른 느낌인데?”
“네. 아무래도 게임 속 해상 요새를 떠올렸나 보니 속도까지 그대로 반영됐거든요.”
“너무 나가면 위험할 수도 있어.”
“네? 왜요?”
주민성의 바뀐 체질이 문제였다.
“여기서 더 나가면 균열이잖아. 균열은 비행기도 추락시키는 거 알지?”
“헉.”
“응? 왜?”
최선호는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균열……. 지나쳤을걸요?”
“응?”
최선호의 개인실엔 창문이 없었다.
“잠깐 나가서 보고 올게. 거기 가만히 있어. 일단 이동도 멈추고.”
“아, 넵.”
밖으로 나갔던 주민성은 최선호에게 다시 돌아왔다.
“……근데 창문은 어디 있어?”
“……같이 나가요. 형. 설명하기가 더 어려워요.”
주민성은 최선호의 안내에 따라 움직였다.
그제야 깨닫게 된 사실 한 가지.
학원에 만든 잔해 미로는 애들 장난 수준이었다.
“여기선 왼쪽으로 가는 발판을 누르고 오른쪽으로 가야 해요. 안 그러면 양쪽 다 함정이거든요.”
“…….”
내부가 상당히 복잡하긴 했지만, 설명을 들으면서 가는 길은 그렇게 지루하지만은 않았다.
“근데 지금 떨어지는 물은 전부 바닷물이지?”
“네. 침몰선이었거든요. 어떻게 말려야 할지 걱정이에요.”
“천천히 말리지 뭐. 어차피 녹슬어도 제 기능은 하잖아?”
“그렇긴 하네요.”
그렇게 둘은 바깥이 보이는 장소에 도착했다.
정확히는 건물 옥상이었다.
“후우. 드디어 밖인가.”
“고생하셨어요.”
주민성은 곧장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 말을 잃었다.
“……뭐야. 균열 지났네?”
“그러게요?”
해안요새 뒤편, 균열 너머에 인천이 보였다.
이는 균열을 가로질렀다고밖에 할 수 없을 정도.
‘뭐지? 그냥 밖인데?’
놀라운 사실이었다.
텐트를 뒤집어쓴다 하더라도 주민성이 딛는 땅은 무조건 게이트가 되어 왔으니까.
‘무슨 차이지? 소유권이 없는 건물인가? 아니면 실내에 있어서?’
과정은 어떻게 되었건, 지금의 핸디캡을 극복할 방법이 발견된 순간.
이 점만 잘 이용한다면 조용히 게이트를 빠져나가는 것도 가능해진다.
“기특하다. 선호야.”
“……형?”
안산과 인천으로 국한되었던 활동 범위가 무한정 늘어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로 인해 생기는 대표적인 장점 한가지.
‘이제 스미스와도 연계할 수 있겠어.’
체질 때문에 미뤄 뒀을 뿐.
주민성은 스미스를 비롯한 능력자 집단에도 큰 관심이 있었다.
‘나처럼 인벤토리를 쓰는 능력자 집단.’
그들이라면 곧이어 찾아올 새로운 대격변도 어떻게든 극복해낼 수 있을 터.
그들은 잠정적으로 미래를 위한 파트너였다.
“덕분에 나중이 훨씬 편해질 것 같아.”
“그렇다면 다행이에요.”
물론 관심 사항은 더 있었다.
바로 균열 아래였다.
“혹시, 이 건물은 잠수도 돼?”
최선호가 가진 능력은 용도 변경.
잠수형 건물로 바꾸는 것조차 가능할지 모른다.
“일단은 될걸요?”
“일단은?”
“네. 능력을 쓰면 건물 외형 자체는 바뀌긴 할 텐데……. 역시 게임과 현실의 괴리감이 좀 커서요.”
해상 요새도 그랬다.
원하는 건물은 얻었지만, 정작 건물주가 굶어 죽을 위기에 처했으니까.
지금처럼 구멍이 숭숭 뚫린 해상 요새가 잠수함으로 바뀐다고 녹슨 철판이 말끔해질 리도 없었고.
“그렇구나. 그럼 미뤄 두자.”
최선호의 건물주 생활은 이제 시작에 불과했다.
주민성처럼 물리법칙을 무시하는 건물을 갖추려면 지금보다는 더 성장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인천으로 돌아갈까요?”
“응.”
해상 요새는 빠르게 해안가로 향했다.
“어? 아까 봤던 오크들이다.”
해안가에는 제르취와 가르취, 차크취가 있었다.
그런데 왜인지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취, 취익! 놔라! 이것들아!”
“대장이 시켰다! 취익!”
“명령취!”
“…….”
그제야 주민성은 자신이 내렸던 명령을 기억했다.
제르취를 붙잡으라는 명령이었다.
“오크들이 사이가 좋네요.”
“…….”
물론 오크들의 대화는 주민성만이 알아들을 수 있었다.
“…….”
당장이라도 이런 어이없는 상황을 중재하고 싶었다.
하지만 최선호의 시선이 부담스럽다.
“전부 형을 따르는 몬스터들이죠?”
“어……. 응…….”
“대단해요. 가만히 내버려 둬도 자기들끼리 알아서 훈련하는 몬스터라니.”
“…….”
오크들 역시 주민성의 존재를 알아차렸다.
“취익! 대장이다!”
“여기취!”
“……취익!”
부담스러운 시선이 늘어났다.
지휘권은 참 이래저래 까다로운 권한이었다.
“운전 수고했어. 선호야.”
“네. 형도요. 덕분에 살았어요.”
일단은 최선호를 여기서 떨어트릴 필요가 있었다.
‘괜히 이상한 꼴 보였다간 선호가 괴상한 능력을 얻을지도 몰라.’
용도변경 덕분에 주민성 역시 건물주 능력에 대해 어느 정도 깨달은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건물도 필요하지?”
“네. 더 가져도 괜찮아요?”
“물론이지. 애초에 게이트에 있는 건물이 다 내 것도 아니고.”
“에이. 게이트가 형 거잖아요.”
주민성은 씁쓸한 표정으로 카르파크를 포장해 둔 텐트를 꺼냈다.
“취익! 여기는…….”
“어? 이 오크…….”
“구면이지?”
최선호 역시 카르파크의 존재를 알아차린 상태였다.
“네. 뭔가 행동이 특이해서 붙잡아 둔 상태였거든요.”
고작 용도 변경, 기껏해야 건물 통제 능력이 전부였음에도 손쉽게 몬스터 서열 3위인 카르파크를 생포해내는 수준.
최선호의 잠재성은 어마어마했다.
“……내가 몰래 호위로 붙인 오크였어.”
“앗…….”
그보다 더 황당한 건, 서열 2위인 제르취가 왜 오크 형제에게 제압당했냐는 사실이었다.
“일단 가 봐. 카르파크 붙여 줄게.”
“고마워요. 형.”
최선호의 다음 행선지는 도심이었다.
이번엔 평범하게 건물을 획득하려는 모양이다.
확실히 100회의 용도 변경을 위해서라면 건물이 밀집한 구역이 적절했다.
“취익! 대장! 이제 뭐 하면 되냐!”
“임무취!”
제르취는 굴욕스러운 표정으로 주민성의 시선을 피했다.
아무리 죽고 죽이는 싸움에 특화된 제르취라지만 이렇게 붙잡히는 건 너무했다.
“취익. 차라리 죽여라…….”
주민성은 곧바로 가르취와 차크취에게 명령했다.
“참나. 이제 놔도 돼.”
“취익! 알았다!”
“해방취!”
제르취는 충격이 심했는지 말이 없었다.
“수련. 수련이 필요하다.”
“어떻게 수련하게.”
“강한 상대가 필요하다.”
“여기 있네. 강한 상대.”
이미 가르취와 차크취가 협공하면 제르취도 손쓸 수 없다는 것으로 실질적인 서열은 정해졌다 할 수 있었다.
“……후손은 건드리지 않는 주의다.”
“거참 까다롭네.”
이런 제르취도 주민성에겐 나름 특별한 포지션이 있었다.
바로 순간이동의 매개체라는 사실이었다.
다만, 제르취가 죽어야만 하고, 강제로 이동된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크라노돈 급의 강자가 필요하다.”
“취익! 먹을 거!”
“맛있취!”
“…….”
동시에,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여차하면 제르취를 이용해서 다른 게이트로 이동할 수도 있겠는데?’
물론 중국의 SSS급 게이트는 논외였다.
적당한 변종 보스 몬스터가 출몰하는 게이트라면 괜찮겠지만.
‘문제는 돌아올 수 있는 수단인데.’
크룩스의 징검문은 단거리에 가까웠고, 제르취의 사망호출은 일방통행이었다.
작은 퍼즐 하나가 맞춰지지 않는 상황이라 할 수 있었다.
“됐고. 내 호위나 해라. 일단은.”
“취익…….”
다음은 가르취와 차크취 차례.
“취익!”
“취!”
성아영의 운동 명령은 상당히 효과적이었다.
가르취와 차크취의 풍만한 뱃살이 제법 들어갔기 때문이다.
돼지 오크에서 근육 돼지가 되었다는 사실은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었다.
“너네는 그냥 성아영 말 들어.”
“취, 취익? 나쁜 인간!”
“싫취!”
“명령이지롱.”
뉘앙스가 어쨌건, 명령은 통하는 법.
이렇게 유용한 전투력들이 과도한 폭식으로 혈관이 막혀 죽는 꼴은 볼 수 없었다.
“그보다, 운동은 어떻게 했어?”
“취익! 별거 아니다! 물속에서 쇳덩이를 꺼냈다!”
“운동취!”
가르취와 차크취가 끄집어낸 건 최선호가 소유해낸 해상요새의 원형인 침몰선이었으리라.
내용 자체는 굉장히 무식하고 터무니없었지만, 운동 자체는 상당히 효과적이라 할 수 있다.
물속에 들어감으로 전신 운동인 수영을 할 수 있고, 침몰선을 끄집어내는 행위는 근력 운동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주민성은 둘의 운동을 응원했다.
“잘했어.”
“취익! 칭찬받았다!”
“더 해취!”
적어도 둘이 운동하는 기간엔 해상 요새 걱정은 안 해도 될 듯하다.
* * *
안산 게이트 밖.
이곳엔 얼굴을 가린 낯선 능력자들이 서성이고 있었다.
“상급 마석 스물. 지금 전송할까요?”
“그래.”
위이잉!
“전송 끝냈습니다.”
“음.”
곧이어 한 남자의 휴대폰이 울렸다.
-물건 받았다. 계좌 확인하도록.
“감사합니다. 고객님. 오늘도 저희 흑수 길드를 애용해주셔서…….”
뚝.
남자의 말은 전화가 끊김으로 끝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
“의뢰인이 너무 건방지군요.”
전화를 받았던 남자는 헛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대체 누굴까. 누군데 우리에게 이렇게 겁도 없이 심부름을 시키는 걸까.”
흑수 길드는 비공식 길드였다.
그것도 뒷세계에서 꽤 잘나가는.
의뢰는 가리지 않는다.
테러부터 시작해 요인 암살, 밀수품 유통까지 전부 성공시켜온 전적이 있었다.
“길드장님. 알아볼까요?”
“이미 알아봤다.”
“대체 누굽니까? 그놈.”
방금 마석을 전송한 능력자도 보통 인물은 아니었다.
보통은 폭탄 테러나 화학 테러가 그의 역할이었다.
“일단은 협회 소속이다. 다른 정보는 소거했더군.”
“어? 간부인가? 그럼 이번에 연줄 제대로 생기는 거 아닙니까?”
“아니. 간부급은 아닐 테지. 처음부터 잘난 인간들이 상급 마석은 뭐 하러 웃돈 주고 구매하겠어?”
길드장이 자존심 상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그들은 최상급 마석도 줍지 않는 인간들이다. F급 게이트에 있을 이유도 없고.”
“간부도 아닌 주제에 감히…….”
“그래서 생각해 봤는데 말이야. 이 기회에 상하관계 명확한 연줄을 만들어 볼 생각이야. 일단은 협회 소속이잖아?”
전송 능력자는 사회생활도 아주 뛰어났다.
“길드장님은 계획이 있으셨군요. 후후.”
“그래. 일단 버르장머리는 고쳐 줘야지. 전송 위치는 그대론가?”
“예.”
“전송해. 내가 직접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