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다른 건물주 (2)
(114/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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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다른 건물주 (2)
2022.03.25.
“제르취. 뛰자.”
“취, 취익?”
파밧!
제법 먼 거리였음에도 뚜렷한 존재감이 느껴졌다.
주민성은 이런 요란한 능력에 대해서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선호가 해냈구나!’
건물주 능력이 거의 확실했다.
바바밧!
이젠 확실해졌다.
광활하게 펼쳐져야 할 바다가 거대한 요새에 가려져 있었으니까.
“첫 건물이 저거라고?”
주민성이 처음으로 소유한 건물은 반파된 상점.
눈앞의 요새 역시 멀쩡해 보이진 않았지만, 일단 크기 면에서 상당히 비교됐다.
“부럽다.”
그 순간, 거대한 요새 구석에 있는 녹슨 철문이 자동으로 열리기 시작했다.
곧이어 비대한 오크 둘이 달려 나왔다.
“취익! 괴물이다!”
“도망취!”
가르취와 차크취였다.
그런 와중에도 진공 포장된 전투식량을 잔뜩 끌어안고 나오는 모습이 헛웃음을 자아냈다.
“저쪽으로 들어가면 되겠군.”
두 오크 역시 주민성을 포착했다.
“대장! 괴물이다! 도망쳐라! 취익!”
“가라취!”
“에휴. 덩칫값 좀……. 하긴 하는구나.”
가르취와 차크취도 나름 커다란 몸집을 가졌지만, 요새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지금 이렇게 도망쳐 나오는 것도 나름의 덩칫값이라 할 수 있으리라.
“그보다 구석에 있는 문이라니.”
요새 중앙엔 누가 봐도 진입하기 좋아 보이는 거대한 대문이 있었다.
보통이라면 대문을 통해 진입하겠지만, 요새의 소유주는 다른 사람도 아닌 최선호였다.
“함정인가 보네.”
주민성은 가르취와 차크취가 빠져나간 구석의 문으로 향했다.
[소유자가 있는 건물에 입장하였습니다.]
[임시 건물주의 소유입니다.]
[소유권을 자유롭게 가져올 수 있습니다.]
“앗.”
주민성의 건물주 능력엔 최선호가 소유한 건물을 언제든지 가져올 수 있는 권한이 있었다.
하지만 굳이 소유권을 빼앗을 이유도 없었다.
오히려 최선호가 이 요새를 기반으로 건물주 등급을 쭉쭉 올려주는 편이 이득이었다.
“안 사요. 안 사.”
메시지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용도가 변경된 건물입니다.]
[부가효과가 적용되지 않는 건물입니다.]
평소 볼 수 없던 생소한 내용의 메시지도 있었다.
“……용도 변경?”
주민성에겐 없는 능력이었다.
최선호가 얻은 능력과 관련 있어 보이는 부분이었다.
그렇다는 말은, 최선호가 이용료 청구 능력이 없을 가능성도 있다는 뜻.
“역시 건물주 능력이라고 전부 같진 않네.”
건물주 능력은 다른 능력과는 상당히 달랐다.
등급 재판정부터 권한이라는 부가적인 능력을 계속해서 성장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
“참 특이하단 말이지.”
주민성은 최선호를 찾기 위해 계속 걸었다.
“건물도 마찬가지야. 이렇게 물이 새는데 바다에 뜰 수가 있나?”
복도에선 여전히 바닷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바닥 마감처리도 불안정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물은 고이지 않았다.
바닷물은 미묘한 경사를 따라 어딘가로 흐르고 있었다.
“대체 어떻게 되어 먹은 구조인지.”
미로 같은 건물이었다.
이용자의 편의라곤 조금도 고려하지 않았다고 느껴질 정도로.
확실히 평범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음?”
그러던 도중, 주민성의 눈에 작은 팻말이 보였다.
상당히 녹슬었지만, 글씨를 알아보지 못할 수준은 아니었다.
-함장실
“함장이라니.”
배인지 건물인지는 주민성도 구별할 수 있었다.
텐트를 건물이라고 우기는 것보다 훨씬 설득력 있어 보일 정도로 이곳은 확실한 건물의 형태를 갖췄으니까.
“선호는 여기 있으려나.”
끼릭.
함장실은 작은 개인실의 형태였다.
의자는 뼈대만 남았기에 앉는 것은 무리.
주민성은 내부를 천천히 둘러보던 중, 숨을 멈췄다.
“…….”
수십은 될법한 총구가 주민성을 겨누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뭐야. 이것도 함정이야?”
정말 다행인 점은, 이 건물이 주민성을 공격하지 않는다는 사실.
주민성은 총구를 이리저리 살피기 시작했다.
끼리릭. 끼릭.
놀랍게도 총구는 주민성의 움직임을 따라왔다.
자동 조준까지 되는 모양이다.
“왠지 총알도 나갈 것 같은데?”
건물주의 가능성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에 할 수 있는 소리였다.
막말로 주민성의 텐트 또한 강철 이상의 강도를 가지게 되었으니까.
“겉보기엔 허술해 보여도 상당히 공격적인 건물이야.”
굉장히 방어적인 능력만 얻어왔었기에 이런 부분은 확실히 체감됐다.
능력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의 차이였다.
가진 능력으로 온갖 괴팍한 편법을 사용하던 주민성과는 달리, 최선호는 주어진 능력을 최대한으로 활용해 정석적으로 써먹는 느낌이었다.
“아무튼, 함장실이 함정이란 건 알겠어. 그래서 선호는 대체 어디있는거야?”
끼릭. 끼릭.
사령관실부터 선실, 부함장실 등등 온갖 방을 뒤졌다.
하지만 전부 함정이었다.
“후우.”
덕분에 불안감까지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렇게 요란하게 건물을 뒤졌으면, 선호 또한 낌새라도 보여야 하는 것이 정상이었으니까.
“설마 안에서 나오지 못하는 건가?”
결국, 주민성은 텐트를 중첩 착용하기 시작했다.
주변의 소리에 더욱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텐트를 네 개쯤 걸쳤을까.
멀리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형!”
“저쪽이군.”
주민성은 그대로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달렸다.
그리고 갈림길 앞에서 멈췄다.
“민성이 형!”
“민성이 형!”
“…….”
양쪽 길 모두에서 최선호의 목소리가 들렸기 때문이었다.
“둘 중 하나는 함정인가.”
주민성은 텐트 하나를 더 꺼내 망토처럼 둘러맸다.
그러자 들리지 않던 소리가 들려왔다.
……쾅! ……쾅!
오른쪽 갈림길에서 들리는 소리였다.
여기서 텐트 하나를 또 추가하자 소리가 선명해졌다.
콰앙! 쾅!
“취익! 취이익!”
“……!”
충돌음 사이, 미약한 오크의 콧소리가 섞여 있었다.
“카르파크인가?”
함정에라도 걸린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멀리서 뒤따라오던 제르취의 낌새도 느껴지지 않았다.
만약 제 속도로 따라왔다면, 지금쯤 제르취 역시 함정에 노출되었을 확률이 높다.
“난감하군.”
이렇게까지 소리가 차단되어있다면 주민성의 목소리는 카르파크에게 들리지 않을 터였다.
직접 구하러 가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최선호의 게임 화면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선호가 자기 방 하나는 끔찍하리만큼 철저하게 방어 수단을 갖췄었지.”
이 갈림길부터는 여태껏 겪어 보지 못한 수준의 방어대책이 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쯤 되면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최선호냐, 카르파크냐.
“근데 어쩌겠어. 상대가 건물인데.”
건물주 능력자가 건물 앞에서 애먹을 이유가 없었다.
물론 소유권을 넘겨받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겠지만, 최선호의 소유권이 사라지면 곤란해진다.
건물이 멋대로 방어 수단을 가동할지도 모르니까.
“일단은 물이 고이는 위치도 아니고.”
주민성의 방식은 언제나 정석과는 거리가 멀었다.
우지지직!
갈림길 정중앙의 철판이 뜯겨졌다.
[녹슨 티타늄 합판이 수납됩니다.]
[녹슨 티타늄 합판이 수납됩니다.]
“건물주가 건물에 끌려 다녀서야 어디 건물주라고 하겠나.”
최선호가 구축해낸 방어 건물은 확실히 집요한 느낌이 있었다.
지금의 행동에도 분명 대비가 되어있을 터.
“이래 봬도 내가 원조라 이 말이야.”
하지만 주민성은 건물주였다.
이 건물 또한 소유할 수 있었고, 건물의 모든 방어 수단은 주민성을 공격하지 않았다.
게다가 애초에 최선호는 건물 이용자에 해당했다.
“둘 다 구한다.”
오른쪽이 카르파크라면 왼쪽은 최선호가 있을 터.
물론 최선호의 집요한 방어라면 왼쪽도 낚시일 가능성은 있었다.
주민성의 텐트 중첩까지 대비했을 때 기준이었다.
“선호는 왼쪽이야. 확실해.”
주민성은 그대로 벽을 뜯어내며 전진했다.
다행히 뜯긴 벽 너머엔 추가적인 방어 수단은 없었다.
애초에 여기까지 뚫렸다면 건물 자체를 포기해야 할 긴급 상황이었을 테니까.
“이쯤인가.”
카르파크의 인기척이 확실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최선호도 마찬가지.
우지직!
주민성은 그대로 양쪽 벽을 뜯어내고 주변을 살폈다.
예상대로 복도는 전부 함정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철컹!
“아이고.”
그것도 아래로 빠지는 감옥형 함정이.
왜인지 자동으로 치킨을 튀겨대던 최선호의 게임 속 건물이 떠올라 함정을 더욱 섬뜩하게 만들었다.
“어차피 계속 쓸 건물이니 최소한으로 손상시켜야 해.”
주민성은 벽에 튀어나온 녹슨 철근을 붙잡았다.
마석 이식을 통해 어마어마하게 강해진 악력 덕분에 가로로 이동하는 묘기도 선보일 수 있었다.
“카르파크! 물러나!”
“취익! 로, 로드입니까!”
쾅!
주민성은 그대로 벽을 걷어찼다.
콰지지직!
수십 겹으로 된 철판이 우그러지고, 철창에 갇혀있는 카르파크가 모습을 드러냈다.
다행히 말려 죽이는 스타일의 감옥이었는지 추가적인 위협은 없었다.
“어휴. 문도 없는 감옥이라니.”
최선호도 비슷한 상황일 것으로 추정된다.
꾸드득!
“나와.”
“면목 없습니다. 로드…….”
철컹!
“…….”
카르파크가 한걸음 나오자 또 다른 함정이 발동됐다.
이런 끔찍한 연속 함정에 여기까지 접근해 온 카르파크가 새삼 위대해 보일 정도.
“안 되겠다. 들어가 있어.”
“……죄송합니다. 취익.”
주민성은 목에 두른 텐트를 꺼내 카르파크에게 씌웠다.
카르파크는 콩이나 오크 형제들과 달리 상당히 묵직한 타입이었으니 사고는 치지 않으리라.
[텐트 754가 수납됩니다.]
이것으로 카르파크의 구출은 성공.
다음은 최선호의 차례였다.
우지직!
우직!
왜인지 최선호가 있는 방향은 뜯어도 뜯어도 나타나는 새로운 벽 때문에 곤혹을 치르고 있었다.
“아니, 이건 대체 무슨 방어람.”
공격하는 입장에서도 엄청나게 지칠 것 같은 벽의 향연이었다.
그럼에도 힘을 낼 수 있었던 이유는, 벽을 뜯어낼수록 최선호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리는 덕분이다.
“흐읍!”
콰드득!
“미, 민성이 형!”
드디어 최선호가 보이기 시작했다.
카르파크가 있던 감옥과 달리, 최선호가 있던 실내는 의외로 쾌적한 상태였다.
“뭐야. 감옥 아니네?”
“네……. 여기가 지휘 본부예요.”
“…….”
확실히 이것저것 꾸며 놓은 티가 많이 난다.
단지 나가는 문이 없을 뿐.
최선호가 머쓱한 표정으로 해명을 시작했다.
“게임 속에서 지었던 해상요새를 똑같이 떠올렸거든요. 근데 되더라구요.”
“자가 격리가 취미였구나?”
“……아니에요. 게임은 그냥 로그아웃하면 그만이라서…….”
“아.”
게임과 현실의 명확한 차이가 여기에 있었다.
확실히 게임이라면 나가는 문 따위 필요 없었다.
접속만 해제하면 그만이니까.
“애초에 해상 요새는 공격용 건물이라서 이게 당연한 거였어요.”
“이게 공격용 건물이라고?”
누가 봐도 방어에 올인한 것 같은 이 요새는 공격용 건물로 밝혀졌다.
“역으로 기습해오는 적들에 대비하려면 이 정도는 해야 해요. 매칭되는 상대도 다 고인물이라서.”
“난 모르겠다……. 아무튼, 자가 격리만 제외하면 장점뿐인 건물이네?”
“네! 맞아요! 얼른 자랑하고 싶었는데 빠져나갈 방법이 없었어요……. 하마터면 굶어 죽을 뻔…….”
확실히 그랬다.
식량이라면 가르취와 차크취가 전부 털어갔으니까.
그 사실을 알게 되니 주민성은 새삼 또 놀랄 수밖에 없었다.
‘걔들은 대체 어떻게 빠져나갔지?’
오크 형제는 적수를 찾기조차 힘든 강자였다.
그런 녀석들조차 이 요새를 괴물 취급하는 것이 전부.
누가 괴물인지 따지고 싶을 정도였다.
“어휴. 아무튼 무사하면 됐어. 이제 진짜 건물주네. 다시 한번 축하한다.”
“헤헤…….”
우여곡절 끝에 최선호 구출 작전이 마무리되고, 주민성은 최선호에게 건물에 대한 설명을 전부 들을 수 있었다.
“그래서, 처음 생긴 능력이 용도 변경이야? 대박이네.”
확실히 이용료 청구와는 전혀 다른 능력이었다.
“네. 맞아요. 그리고 용도 변경 100회 채우면 또 다른 능력도 준다나 봐요.”
“……그래?”
이 부분은 비슷했다.
주민성 역시 이런 부분에서 능력을 성장시켜 갔으니까.
“그리고 최초로 침입자를 물리쳐서 건물 통제 능력도 생겼고요.”
“아.”
건물 통제는 가르취와 차크취 퇴치 보상이었다.
결국은 아군끼리와의 트러블이었지만, 이런 편법 역시도 건물주 능력은 기연으로 받아들였다.
“좋네.”
건물 통제는 원격 관리와 비슷한 방식이었다.
말 그대로 방구석에서 소유 건물과 관련된 모든 것들을 할 수 있는.
“이렇게도 할 수 있어요. 건물 통제.”
“음?”
쿠구구……!
최선호가 능력을 사용한 순간.
건물이 움직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