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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다른 건물주 (1)
2022.03.24.


한 시간 전.

최선호는 인천 게이트에 도착해 있었다.

“여기가 민성이 형이 말한 인천…….”

이곳의 악명이라면 최선호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걱정은 없었다.

다른 이도 아닌 건물주 능력자의 관리 구역이었으니까.

게다가 최선아의 배려로 블랑이까지 최선호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

“후우. 괜찮은데 정말. 나 혼자 돌아다녀도 돼.”

“키엑!”

블랑이는 단호했다.

왜인지 꺼림칙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바닷길까지 건너왔잖아. 지금도 멀쩡한걸?”

“키에엑!”

그럼에도 블랑이는 최선호에게서 멀어질 기색이 없었다.

“알았어. 그럼 오늘만 같이 다니자.”

“키익.”

조금 걷다 보니 최선호의 두 배는 될법한 오크 라이더 하나가 앞을 가로막았다.

뉴스에서나 보던, 악명 높은 오크 라이더였다.

자연스레 기죽은 최선호가 말했다.

“지, 지나가도 될까요?”

“취, 취익?”

왜인지 오크 라이더는 덩치에 안 어울리게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지나가라는 뜻이겠지?”

“키익…….”

오크 라이더의 위압감은 폐허 도시에서 나름 잘나가는 블랑이조차 한 수 접어 줄 정도.

“감사합니다…….”

“취익…….”

그렇게 입장한 인천 게이트.

출몰하는 몬스터를 제외한다면 폐허 도시와 크게 다른 점은 없었다.

“이제부터 시작이야.”

다른 능력도 아니고 무려 건물주 능력이다.

아직 제대로 밝혀진 것 하나 없지만, 상상력 하나는 누구보다 자신 있었기에 최선호의 눈빛엔 희망이 가득했다.

“키, 키엑?”

최선호는 도심 방향으로 가지 않았다.

이에 블랑이 당황해 최선호를 만류했지만 걸음은 멈추지 않는다.

“괜찮아.”

향하는 방향은 해안가 부근.

그것도 인적이 상당히 드물어 보이는 장소였다.

“민성이 형도 내가 하고 싶었던 걸 하라고 했었으니까.”

주민성이 했던 이야기들을 다시 떠올렸다.

-네가 바라는 것들, 건물주로서의 욕망. 이런 것들을 떠올리며 새 건물을 찾아 봐.

애초에 불치병으로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해 왔었다.

하나뿐인 가족인 최선아에게 뭐든 양보했다.

만약 움직일 수 있게 된다면, 바다가 보이는 집에서 남은 생을 살고 싶었다.

이것이 최선호가 가진 작은 꿈이었다.

‘바다를 등진 요새라면…….’

이는 곧 최선호의 꿈이자, 은인인 주민성에게도 도움 될 수 있는 선택지였다.

게이트의 몬스터는 대부분 지상에서 출몰하니까.

‘그렇게만 된다면 좀 더 효율적으로 몬스터를 막아낼 수 있어.’

위험할 수도 있는 과정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주민성이 간과했던 사실이 한 가지 있었다.

‘어차피 민성이 형 아니었으면 오래 살지도 못했어.’

최선호는 처음부터 시한부 삶이 판정됐기 때문이다.

이는 주민성조차도 자세히 알지 못했던 부분.

그랬던 상황에서 새로이 얻게 된 건물주 능력이었기에 최선호는 오히려 주민성보다 목숨에 대해 의연히 대처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첫 건물은 무조건 바다에 가까운 건물로.”

“키익.”

주민성의 손길이 닿지 않은 소유권이 없는 건물.

그중에서도 바다에 최대한 밀접한 건물.

이 고집만은 반드시 꺾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렇게 십여 분쯤 걸었을까.

듬성듬성 폐건물들이 보이기 시작했지만, 최선호는 폐건물에 발을 들이지 않았다.

“후우. 생각보다 성한 건물이 없네.”

해풍 때문인지 건물의 상태는 폐허 도시보다 훨씬 나빴다.

도심과는 달리 근방의 건물들은 신경 써서 지어진 건물도 아니었다.

“이것도 아니야.”

게임이라지만 누구보다도 큰 스케일로 건물을 지어나갔던 최선호였다.

이젠 주민성의 능력이 가미된 건물까지 체험했다.

허름한 건물이 눈에 찰 리가 없었다.

“생각보다 마음에 드는 건물이 없네…….”

“키익.”

계속해서 걷던 도중, 최선호는 괴상한 광경에 발걸음을 멈췄다.

“여기도 오크가 있나?”

목격한 것은 두 오크.

다른 오크에 비해 많이 특이한 오크였다.

다크울프도 타지 않은 데다, 체형은 다른 개체에 비해 훨씬 비대했다.

“취익?”

“취!”

이뿐만이라면 단순히 괴상하다고 하진 않았을 터였다.

문제는 두 오크의 행동이었다.

“취익!”

“취!”

두 오크는 바닷속에서 무언가를 열심히 끌어올리고 있었다.

심지어 잠수까지 해서 낑낑대는 모습이 여간 신기하다.

“대체 뭘 꺼내려고…….”

“키엑…….”

공격적인 오크는 아니었다.

눈도 마주쳤지만, 당장의 행동에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취이익!”

“취!”

바닷속에서 오크들이 꺼내려던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광경에 최선호는 말을 잃었다.

“…….”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오크들이 바닷속에서 침몰선을 건져 올렸기 때문이다.

대격변 당시 침몰했던 군함으로 추정된다.

“쿠어!”

“쿠!”

정말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힘이었다.

곧이어 오크가 기쁜 듯한 목소리로 포효했다.

“취이익!”

“취!”

우지직!

녹슨 철판 따위는 손쉽게 우그러지며 오크의 손아귀에 찢겼다.

“취이!”

“취!”

오크 둘은 그대로 침몰선 안으로 진입했다.

그 광경을 보던 최선호는 강렬한 영감을 얻었다.

“해상 건물…….”

분명 지금은 멀쩡한 곳 하나 없는 침몰선이었지만, 멀쩡하던 당시엔 상당히 거대한 군함이었으리라.

숙식 역시 가능했을 터였다.

최선호는 홀린 듯이 오크들의 뒤를 쫓았다.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메시지가 떠올랐다.

[소유자가 없는 건물에 입장하였습니다.]

[소유권을 최선호 님으로 변경합니다.]

[보유 건물 목록에 바다 쉼터가 추가됩니다.]

[용도가 바뀐 건물입니다.]

[이용료를 청구할 수 없는 건물입니다.]

[부가 능력이 없는 건물입니다.]

[최초로 건물을 소유하는 데 성공해 용도 변경 능력이 부여됩니다.]

[건물의 용도를 변경할 수 있습니다.]

“……헉.”

최선호는 정신없이 메시지를 읽어 내려갔다.

그리고 탄성을 내질렀다.

“이, 이게 건물주…….”

말도 안 되는 능력이었다.

여태 봐 왔던 주민성의 능력과는 다른 느낌이었지만, 이 역시도 응용할 방법이 무궁무진했다.

“군함이 바다 쉼터가 됐다는 건, 다시 군함으로 변경할 수도 있다는 말인데.”

바다 쉼터는 말 그대로 물고기 집이라는 소리였다.

시간이 너무나도 흘러버려 군함이라는 정체성 자체가 사라졌기에 나온 판정이리라.

“군함. 아니 해상 요새로 바꾸자.”

최선호의 머릿속에 능력의 사용법이 자연스레 스며들었다.

능력을 안 쓰고는 못 배길 상황.

“용도 변경. 바다 쉼터. 해상 요새로.”

최선호가 게임 속에서 몇 달 내내 지어 올렸던, 지독한 노가다의 산물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곧이어 메시지가 떠오르고, 상상이 현실로 바뀌기 시작했다.

[바다 쉼터가 해상 요새로 변경됩니다.]

철컹!

아무 물고기나 드나들던 구멍 난 철판이 치솟았다.

부식되다 못해 형체조차 알아보기 힘든 온갖 설비들 역시 형체를 재구성하기 시작했다.

“어? 진짜 이렇게 된다고?”

군함은 최선호도 아는 외형으로 바뀌고 있었다.

이 형태를 만든 사람은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이었으니까.

“취, 취익!”

“취!”

침몰선 안을 뒤적거리려던 오크들 역시 동요했다.

기껏 건져 올린 폐품이 멋대로 움직이니 당연했다.

그렇게 군함은 정신없이 형태를 바꿔 나갔다.

[용도 변경이 완료되었습니다.]

이윽고 변경 완료를 알리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대박.”

물이 뚝뚝 떨어지며 사방이 녹슬고 부식된 초라한 군함이었지만, 상상하던 형태 그대로였다.

심지어 최선호가 지금 있는 이 자리는 지휘실.

요새의 모든 조작을 할 수 있는 자리였다.

“레버부터 버튼까지 전부 나왔어…….”

그중, 녹슨 파란 버튼 하나가 최선호를 끊임없이 유혹하고 있었다.

요새를 본격적으로 가동하는 버튼이었다.

* * *

[3위. 칠흑 숲의 추적자 카르파크(경악)]

“아, 궁금해서 안 되겠다.”

될 수 있으면 최대한 여유를 가지려고 했다.

하지만, 자신과 같은 능력을 공유받은 사람의 변화가 궁금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

“찾으러 가 보자. 몰래 구경하면 괜찮겠지.”

주민성은 본격적인 구경 계획에 나섰다.

영혼 같은 변수도 있을지 모르니 헬스장에서 안대를 챙기는 것은 덤.

최선호 쪽 외에도 궁금한 장소는 너무나도 많았다.

경악하는 몬스터는 카르파크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4위. 고블린 첩보 대장 크룩스(경악)]

“후. 이쪽도 재밌어 보이는데.”

학교에 들르지 않은 기간도 꽤 길어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실제론 며칠 지나지 않았음에도.

심지어 포인트는 한 군데 더 있었다.

[5위. 폭식 마수 콩이(만족)]

임진석은 분노하고 오만했던 콩이를 대체 어떻게 만족시켰을까.

이것이 주민성의 또 다른 궁금증이었다.

“나도 분신 능력 하나 있으면 얼마나 좋아.”

분신을 떠올리니 자연스레 성아영에 관한 호기심까지 샘솟는다.

“에휴.”

하지만 현실을 봐야 했다.

임시 서비스는 오로지 능력이 없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혜택이었으니까.

“인천이나 가자.”

굳이 성아영과 동행할 필요는 없었다.

인천의 관리는 저녁에 따로 할 예정이었기에.

“키익! 저쪽으로 갔습니다!”

고블린들의 제보 덕분에 최선호의 행선지는 점점 명확해지고 있었다.

“다시 생각해도 카르파크 붙이길 정말 잘했어.”

“…….”

제르취는 말이 없었다.

왜인지 고민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왜 그래?”

“신기해서 그렇다.”

“뭐가.”

“너는 가만히 있지를 않는다. 로드답지 않게.”

“……다 이유가 있으니 바쁜 거다.”

일단은 주민성도 인간이었다.

하지만 제르취는 언제부턴가 주민성을 명예 오크쯤으로도 여기고 있었다.

마석이 이식되면서 생긴 일이다.

‘마석 이식부터 하위 차원까지. 전부 아리송하긴 하지.’

어쩌겠는가.

보스 몬스터에 대비하는 게 우선인데.

지금은 모처럼 휴식 겸 유희나 다름없었다.

‘최대한 개입하지 말고 구경만 하자.’

주민성과 제르취는 그대로 게이트를 나와 인천으로 향하는 길목에 도달했다.

역시 최선호의 흔적이 보인다.

‘공룡 둥지도 조사한 모양이네.’

화석이나 다름없는 공룡 둥지는 건물 부가효과 덕에 제법 생생한 외형을 간직하고 있었다.

물론 공룡 둥지의 소유권은 주민성에게 있었기에 최선호는 그냥 지나쳤던 모양.

‘이렇게 보니 선호도 알아서 잘 할 것 같은데.’

중간쯤 이후부터는 둥지도 그대로 무시하고 지나간 흔적이 보였다.

그만큼 소유권이 없는, 자신만의 건물에 대한 의지가 느껴졌다.

이 정도면 건물주 후임으로 충분하다 할 수 있었다.

‘그보다 선호는 어떤 능력을 얻으려나.’

주민성은 능력을 처음 얻었던 당시를 떠올렸다.

정확히는 협회가 아닌, 실질적인 능력 획득 장소였다.

‘나는 콩이한테 쫓겨서 정말 위급한 상황에서 얻었는데.’

그동안 얻은 능력들을 돌이켜 보자면, 이용료 청구는 상황에 걸맞게 부여된 능력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상대를 무력화시키고, 그걸로도 모자라 상대를 아군으로 만드는 능력이었으니까.

‘안전한 상황에서 얻는 능력도 궁금하긴 하네.’

일단은 최선호도 전력으로 삼기 위해 카르파크는 정말 위급한 상황에서 투입될 예정이었다.

아마도 위기를 겪게 된다면 어중간한 위기이리라.

‘역시 선호랑 가장 잘 어울리는 능력은 건물 짓는 능력이긴 한데.’

최선호는 건물주라기보단 건축가 쪽이 더욱 어울리는 타입이었다.

특유의 독자적이고 창의적인 방어 건물 구축은 정말 고이고 고여야만 이뤄낼 수 있는 경지였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서 더욱 응용한다면, 최선호가 교육 과정 강사로 참여해 판자촌 능력자들까지 함께 고인물로 만드는 편법도 있었다.

“음. 벌써 인천인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인천 게이트엔 금방 도착했다.

“뭐지. 아무도 없네?”

보통이라면 경비를 서고 있는 오크가 있어야 했다.

이 역시 카르파크가 경악한 이유와 연관 있으리라.

“제르취. 어디로 가야 할까…….”

제르취는 말없이 무릎을 굽혀 바닥을 살폈다.

“오. 너도 카르파크처럼 추적할 줄 알아?”

“……다크울프를 다루려면 추적술은 필수다. 물론 카르파크님은 나보다 훨씬 뛰어나지만.”

추적자라는 칭호는 괜히 달리는 것이 아닌 모양이다.

어찌 되었든 제르취는 최선호의 흔적을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저쪽으로 가면…….”

“……아냐. 안 찾아도 될 것 같아.”

안타깝게도 추적술의 의미는 사라졌다.

주민성의 기감에도 최선호로 추정되는 인물이 포착됐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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