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에스트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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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에스트로 (1)
2022.03.22.
워낙 임팩트있게 생겼던지라 잊을 수가 없었다.
눈앞의 몬스터 시체는 분명 태양의 순례지에서 건물 관조 도중에 봤던 몬스터였다.
다른 시체도 마찬가지.
“어어?”
동시에, 죽어 있는 몬스터의 심장에서 마석이 제멋대로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마석은 그대로 시야에서 사라졌다.
물론 보이기에만 그럴 뿐, 실제 마석은 주민성에게 흡수됐다.
메시지가 증거였다.
[최상급 마석이 마석에 흡수됩니다.]
[최상급 마석이 마석에 흡수됩니다.]
……
캐낼 필요도 없었다.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마, 마석이 사라져?”
물론 이 광경을 처음 보는 김정남은 크게 당황했는지 양손을 올리며 자신을 변호했다.
“저 아무것도 안 했습니다! 정말입니다!”
“…….”
흡수된 마석의 등급은 최상급.
A급 능력자에게도 상당히 귀한 취급을 받는 물건이었다.
수천만 원이 눈앞에서 사라지는 걸 보고도 당황하지 않는 쪽이 오히려 비정상일 정도.
당장은 김정남의 당황한 근육을 진정시키는게 우선이었다.
“일단 진정하세요…….”
텐트를 세 개쯤 씌우고 나서야 김정남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얼마나 그의 성격이 강한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이, 이것도 능력이죠?”
“네. 일단은 진정 효과? 평정심에 도움 됩니다.”
“평정심……! 오오오오!”
텐트가 하나 더 추가됐다.
텐트가 네 개 이상쯤 중첩되면 대부분의 사람이 잃어버린 이성을 되찾는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이것만 있다면 승급도 문제없을 것 같습니다. 훈련할 이유가 없군요.”
“……그런가요?”
“네. 전투 중에 이성을 잃는 버릇이 있어서요.”
과연 치명적인 단점이었다.
“난전에 특히 쥐약입니다. 한 놈밖에 안 보이거든요.”
“…….”
보통의 건물 부가효과쯤은 근육으로 가볍게 이겨내는 김정남이었다.
‘정남 씨가 적이었으면 임진석보다 위험한 존재일지도.’
단순 전투력만 따진다면 임진석 쪽이 압도적으로 강하겠지만, 김정남은 여러 가지 복잡한 의미로 정신력이 강한 남자였다.
오히려 임진석은 최면 능력 때문인지 전투력에 비해 정신적인 부분은 상당히 취약하다.
‘덕분에 내가 살았으니 다행이지.’
아무튼 주민성의 운은 극단적으로 나쁜 것 같으면서도 좋은 편이라 할 수 있었다.
“덕분에 진정했습니다. 감사드려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마석이 멋대로 사라져서…….”
“네. 정말 괜찮습니다. 정남 씨 잘못은 없어요.”
“그리고 웨이브를 이렇게까지 경계하는 이유도 확실히 알게 됐습니다.”
온갖 이변이 발생하는 몬스터 웨이브.
김정남 역시 이런 웨이브는 겪어 본 적 없었기에 마석이 사라지는 현상도 이변 중 하나로 예상하고 있었다.
‘잘됐지. 내 안에 마석 있다고 홍보할 수도 없고.’
상황이 진정되고, 판자촌 능력자들도 주민성에게 합류했다.
“대장님. 이건 대체 뭡니까?”
“음…….”
하위 차원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할까 잠시 고민했지만, 이상한 사람이 될 가능성이 더욱 커 보였다.
누가 들어도 믿기 힘든 얘기니까.
다만, 이해시킬 만한 방법은 있었다.
“이놈들이 나중에 침공 오는 몬스터 중 일부예요.”
“확실히 살아 있었다면 엄청 위험해 보이긴 합니다.”
“네. 정말 일부에 불과합니다.”
태양의 순례지에서 봤던 보스급 몬스터들은 눈앞의 시체엔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그보다 주민성은 몬스터들이 죽어 있는 이유를 고민했다.
‘태양의 순례지면 일단 오크 마을 근처고.’
크라노돈 고기를 먹은 오크들이 어마어마하게 강해져 태양의 순례지를 제압했다는 가정이 있었다.
적어도 가르취랑 차크취는 눈에 띄게 강해진 케이스에 해당했다.
황무지 마을엔 주민성의 지휘를 받는 오크가 둘이나 더 있었으니까.
거기다 지금쯤이면 고대의 물건들과 고대의 땅굴 벌이 어마어마하게 증식한 상태일 터였다.
‘공룡의 영혼도 의심되는데.’
주민성은 게이트 이동 당시 생긴 지형 변동으로 생각지도 못한 공룡 둥지를 보유한 상태였다.
그리고 둥지에 있던 공룡들의 영혼은 영혼 재배치를 통해 태양의 순례지로 보내졌고.
‘공룡들이 헬스장의 영혼처럼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거나 물리적인 공격 수단이 통하지 않는다면?’
확실히 공룡들의 영혼이라면 태양의 순례지에서도 크게 꿀리지 않는 위압감이 있었다.
적어도 덩치와 괴성만큼은 최상위를 자부한다.
‘처음 나왔던 사이클롭스도 뭔가 이상했어.’
변종이라기엔 기형에 가까웠던 사이클롭스.
놈은 귀가 없었다.
적어도 공룡들이 내지르는 괴성에는 면역되어있으리라.
‘의심할 일이 한둘이 아니군.’
확실한 사실 한 가지는 있었다.
‘하위 차원에 무슨 일이 생긴 건 분명한데.’
주민성의 차원 이동으로 소진된 태양 에너지가 변수를 만들었거나, 강해진 오크들 혹은 공룡들이 변수를 일으켰거나.
전부 태양의 순례지에 영향을 끼칠 만한 사건들이었다.
“정말 일부예요. 더욱 확실히 대비해야겠습니다.”
“아, 알겠습니다.”
주민성이 개입한 건물은 태양의 순례지 하나에 불과했다.
그리고 하위 차원에 있던 전설 건물은 여럿이었다.
‘뉴스에 나왔던 변종 몬스터가 다른 전설 건물 출신이라는 가능성도 있겠지.’
추측에 힘을 더 싣는 논리 한가지가 있었다.
안산과 인천은 상당히 가까운 위치에 해당했다.
고블린, 데빌도그, 오크, 다크울프 등 이족보행 몬스터와 사족보행 몬스터의 혼합.
그리고 제르취와 카르파크의 연관성으로 볼 때 주변에 영향을 끼치는 차원은 쉽게 유추 가능했다.
‘일단 이쪽은 태양의 순례지와 관련 있겠지.’
오크 로드는 처음부터 인천행이 정해져 있었을 터였다.
적어도 태양의 순례지에 있던 보스들은 자신의 행선지를 전부 아는 눈치였으니까.
‘진짜 오크 로드가 나타날 장소였으니까.’
인천의 오크 라이더들이 기다리던 오크 로드.
어쩌다 주민성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는 있었지만, 태양의 순례지에는 또 다른 오크들이 있었다.
보스급 오크가 나오지 않을 리가 없는 것이다.
이는 고블린 로드도 마찬가지.
‘카르파크와 크룩스가 선발 대장쯤 되겠고. 중견급으로 제르취가 뒤이어 나타났을 테고.’
점점 퍼즐이 맞춰지는 느낌이었다.
사람보다 몬스터들의 패턴을 먼저 알아가게 되는 느낌이 여간 찝찝하긴 했지만.
“웨이브는 여기까지 하죠. 이번은 운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다행입니다. 솔직히 저런 몬스터들이 튀어나오면 총기 효과가 없을까 걱정됐거든요.”
“음.”
확실히 총기는 몬스터를 상대로 제대로 쓰인 적 없는 상태였다.
김정남과 달리 데뷔 찬스조차 없었기에 주민성은 판자촌 능력자들에게 기회를 주기로 했다.
이 기회에 전직 군인들에게 총에 대한 믿음을 주는 것도 괜찮은 판단이라 생각된다.
“한번 쏴 보세요. 그러면 확실할 테니.”
“음?”
“바위도 박살 내는 총이잖아요. 게다가 에너지 탄이죠. 소모되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저도 총기가 어느 수준까지 통할지 궁금하기도 해요.”
“알겠습니다. 그럼 해 보겠습니다.”
김 대위의 지휘 아래 판자촌 능력자들은 빠르게 포지션을 재정비했다.
“위험하니 물러나 주십시오.”
“네.”
자리를 피해야 할 사람은 주민성과 김정남뿐이었기에 과정은 상당히 신속했다.
“조준.”
위이잉!
교육 과정 덕분이었을까.
판자촌 능력자들은 한사람이 된 것처럼 움직였다.
마석의 효과인지 주민성의 시력 역시 어마어마하게 강화된 상태였다.
그 덕에 판자촌 능력자들이 사소한 버릇까지도 공유된 상태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차렸다.
‘아니, 전보다 더 뚜렷하게 보이는데?’
안력을 끌어올리자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는 판자촌 능력자의 손톱 결까지 보일 정도였다.
이쯤이면 초인 수준에 도달했다 할 수 있었다.
“격발.”
김 대위의 지시가 내려지고.
핏!
같은 타이밍에 총기가 발사됐다.
퍼걱!
깔끔하고도 그로테스크한 소리가 귓가에 박혔다.
총기의 효과는 말할 것도 없었다.
몬스터의 머리는 처음부터 없던 것처럼 자취를 감췄다.
흔적은 둘째 쳤을 때 기준이었다.
“허.”
총으로도 몬스터를 제압하지 못했기에 자리를 점점 잃어갔으니 군인으로선 트라우마였을 터였다.
그래선지 김 대위는 입술을 작게 깨물곤 다시 한번 손짓했다.
핏!
파각!
핏!
퍼석!
판자촌 능력자들은 몬스터를 어떻게 무력화시킬지 준비가 되어있었다.
눈빛만 봐도 알 정도의 숙련도.
이 역시 교육 과정의 결과물이었다.
누구 하나 말하지 않았음에도 팔다리를 정확히 분담해서 제압하고 있었다.
아무리 죽은 몬스터가 상대라지만, 절대 하루 이틀의 노력으론 할 수 없는 제압법이었다.
“대위님. 어때요?”
“…….”
김 대위는 주먹을 꽉 쥐며 전율하고 있었다.
군인 경력이 길었던 만큼 온갖 풍파도 함께였을 터였다.
지금의 격발은 그동안의 한풀이 같은 의미도 있었다.
“……최고입니다. 이젠 절대 물러서지도, 양보하지도 않을 수 있겠습니다.”
왜인지 주민성을 향한다기보단 다른 누군가를 상대로 하는 말처럼 들렸다.
“약속. 지키겠습니다.”
전 직급 대위.
수백으로 구성된 대대를 이끌던 남자였다.
지금은 소대 수준의 규모로 줄어있으니 나름의 깊은 사연을 품고 있었으리라.
“…….”
병사들 역시 가만히 있지 않았다.
하나같이 자신이 있던 자리에서 경례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괜히 분위기 타서 함께 경례할 수는 없는 일.
주민성은 김정남과 함께 조용히 자리를 비켜 줬다.
“정남씨. 부탁드릴 일이 있습니다.”
“음? 제게요?”
“네. 아직 각성하지 않은 몇몇 사람들이 있거든요. 그들의 각성을 도와주셨으면 해요.”
“아, 돈이 문제라면 얼마든 내드릴 수 있습니다.”
“그게 아니고요…….”
주민성은 판자촌 능력자들과 능력자 협회의 갑을 관계에 대해 간략히 설명했다.
“아, 그래서 다들 비장한 표정이셨군요…….”
“네……. 부당한 계약에 묶여 고립되었던 사람들입니다. 물론 저도 마찬가지였죠.”
“미, 민성 씨도요?”
“당연하죠. 물론 복수는 했습니다.”
임진석에 관한 이야기도 함께했다.
“허. 그런 악질 능력자가 협회 간부라니.”
“협회로선 꽤 입맛에 맞는 인재겠죠.”
“제 주변에 그런 피해자가 있었다면 어떻게든 도왔을 텐데. 후우.”
과연 김정남은 정의감 넘치는 인물이었다.
마침 주민성도 김정남에게 잘 맞는 임무를 가지고 있었고.
“이 기회에 한 번만 도와주세요. 각성.”
“그런 문제라면 얼마든 돕겠습니다. 그보다 그 협회 간부는 어디 있습니까? 같이 운동이라도 시키면서 사람을 만들어야…….”
임진석은 이미 콩이의 집사로서 그동안의 죄를 갚아 가고 있었다.
오히려 김정남의 정의감에 장난기마저 발동할 정도로 화도 많이 사그라진 상태이기도 했다.
“SS급인데 괜찮아요?”
“으음……. 그래도 최면은 다시 못쓴다고 하셨으니…….”
“저도 임진석이 어디 있는지는 잘 몰라요. 어차피 게이트도 빠져나갈 수 없는 상태라 괜찮습니다.”
“허어…….”
그보다는 임무가 먼저였다.
“각성. 부탁드립니다.”
“당연히 협력해야죠! 각성비도 제가 대신 내 드리겠습니다!”
“돈은 저도 많아서요. 위험하지 않게만 도와주세요.”
“알겠습니다. 어떻게 하면 될까요?”
주민성은 본격적인 작전을 설명했다.
“일단은 정남 씨의 승급이 우선입니다.”
“승급이요?”
“네. S급 능력자 김정남의 후원이 보기에도 좋을 것 같아서요.”
주민성이 보는 협회는 상대가 어떻게든 쓸모가 있다면 겉으론 웃으면서도 뒤로는 온갖 계략을 꾸미는 사람들이기도 했다.
유독 협회를 상대로 까칠하게 구는 이유이기도 했다.
“각성은 인천에서 할 계획입니다. 내부 협력자도 나름 준비해 뒀어요.”
“헛……. 저 연기는 좀 약한데요.”
“아, 괜히 말한 걸까요? 그게 더 자연스러웠으려나.”
“아뇨. 말해 주셔서 다행입니다. 오히려 몰랐으면 제가 협회를 적대적으로 대했을지도 몰라서요.”
“흐음.”
주민성은 김정남의 정의감이 걱정됐다.
떳떳하기엔 아직 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텐트를 드리면 좀 괜찮을까요?”
“오오. 텐트라면 확실합니다. 제 단점을 완벽히 커버해주는 능력이거든요!”
“다행이네요. 그럼 승급은 무조건 하실 수 있겠죠?”
“물론입니다! 오히려 조금만 더 부탁드리고 싶은게 생겼는데요…….”
“네. 말씀하세요.”
“텐트. 다섯 개만 두르고 가도 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