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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라미드 (4) (107/250)


피라미드 (4)
2022.03.18.


“나 용돈 줘.”

“…….”

“용돈 달라고.”

“…….”

“응애. 나 아기 아영. 읍읍!”

“후우.”

성아영의 입을 막은 주민성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돈의 힘 때문이었다.

“옆에서 이상한 말투로 조잘거리기 금지. 알았으면 고개 끄덕여.”

“……읍! 푸하!”

“저게 정상이야?”

“당연하지. 너가 이상한 거야.”

“…….”

주민성은 2차 경매를 성공적으로 끝마쳤다.

텐트 3개의 낙찰가는 중요하지 않았다.

총 500억이 넘는 어마어마한 거금이 모였으니까.

이쯤이면 로또니 비트코인이니 시대를 풍미했던 돈벌이 수단과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

당장이라도 능력자 생활을 청산하고 지하벙커를 파고 싶은 욕망이 샘솟았다.

이번 몬스터 침공만 끝나면 반드시 지하벙커를 마련하겠다는 헛생각은 하지 않는다.

‘어림도 없지.’

하지만 건물 부가효과는 이런 허황된 생각을 진정시켜주고 이성적인 판단을 강조했다.

진정한 안전은 위협 요소가 전부 사라져야만 누릴 수 있으니까.

드르르르!

삐익! 삐익!

“오라이! 오라이!”

시대를 이끄는 부자들의 행동력은 어마무시했다.

순식간에 섭외된 컨테이너 차량부터 공사 차량까지 연이어 인천 게이트를 가로지르며 주민성의 감탄을 자아냈다.

“이 정도로 진심일 줄은 모르고 허락한 건데…….”

“요즘 밖에선 비석 때문에 시끄럽다며. 여기가 도시보다 안전하다고 느꼈을 거야.”

몬스터가 사람을 지키는 게이트.

몬스터를 다루는 능력자.

그리고 게이트의 자치권을 가진 능력자.

외부인들 입장에선 주민성과 게이트 자치권의 시너지를 엄청난 메리트로 판단한 모양이다.

“……아예 여기서 눌러 살려는 계획이겠지?”

“당연하지. 수십억이 푼돈도 아니고. 저 사람들도 뽕 제대로 뽑겠다는 생각일 거야.”

“…….”

주민성이 오늘 하루 동안 받은 회원들은 이러했다.

공사 제안과 함께 추가 기부금을 쾌척한 플래티넘 2명.

기존 골드회원의 지인과 경매에 성공한 골드 8명, 실버 294명.

여기까지가 기존 인원이었다.

문제는 뒤이어 찾아온 현장 인부들.

이들은 총 696명으로 다른 회원들이 이용료를 대신 내준다는 전제하에 브론즈로 신규 가입을 마쳤다.

조사장의 집요한 인원수 맞춤 덕에 오늘의 신규 회원 수는 정확히 1000명.

“아무리 그래도 너무 적극적인데.”

“자기들이 알아서 하겠다는데 그게 왜?”

“너무 비현실적이라서 그래. 부루마블도 아니고.”

“돈은 원래 많을수록 더 잘 벌리는 법이야. 좋게 생각해.”

이용료 일 수익만 따져도 3억 3천.

심지어 게이트에서 받는 돈은 세금도 떼지 않는다.

어차피 사회에 환원할 계획도 없고 전부 능력에 사용할 돈이었지만, 역시 묘한 기분은 감출 수가 없었다.

고작 만 원짜리 마석 하나에 울고 웃었던 시절이 오래전 얘기도 아니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용돈……. 아니다. 집으로 줘.”

“…….”

공사는 중식당을 기준으로 이뤄지고 있었다.

기존 폐건물은 철거하지도 않고, 눈치껏 남는 공간을 교묘하게 활용하는 모습이 제법이다.

“확실히 좀 비교되긴 하네.”

“그렇지? 나 다이아야. 플래티넘보단 좋아야 해. 알지?”

“일단은 출퇴근할래?”

“차 사주게?”

“아니, 다크울프 줄게.”

“……승차감 안 좋을 것 같아.”

“다크울프는 돈 주고도 못 산다?”

“그건 그렇네…….”

생각보다 주민성이 본격적이어서일까.

성아영의 시선에선 탐색하는듯한 느낌이 사라진 상태였다.

오히려 앞으로의 계획에 더욱 큰 흥미를 느끼는 모양.

“마음에 드는 놈으로 타. 다섯 마리면 돼?”

“다섯 마리나?”

“응. 텐트만으론 좀 부족한 느낌이기도 하고, 플래티넘 등급도 다크울프 한 마리씩은 받을 테니까.”

“본격적이네?”

“당연하지. 이 게이트도 내꺼니까 제대로 지켜야지.”

주민성 역시 성아영을 놀리는 것에 큰 흥미가 생겼기에 이를 응원했다.

‘컨테이너 마차라도 만들어 줘야겠군. 이름은 컨라리 정도면 될까.’

컨테이너 무게는 상관없었다.

창가에서 바깥 풍경을 내다보며 어이없어하는 표정만 상상해도 투자 욕구가 샘솟았으니까.

다크울프쯤은 얼마든지 늘려 줄 생각이었다.

“그래. 응원할게.”

공사 작업은 야간까지 계속해서 진행됐다.

회원들의 신원 역시 전부 파악한 상태.

주민성의 예상대로 능력자 협회 인천지부 직원들이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계획을 앞당겨도 되겠군.’

이젠 안산으로 돌아가도 될듯하다.

처음 목적이었던 수금, 그리고 이용자들의 신뢰는 충분히 얻어냈으니까.

오히려 과분한 금액과 신뢰를 얻은 덕분에 주민성이 할 일은 예상보다 훨씬 앞당겨졌다.

“나 이제 갈 건데. 여기 더 있을거야?”

“아니……. 눈치 보여.”

성아영 역시 나름대로 중식당 인테리어를 하긴 했다만, 자금력을 앞세운 압도적인 투자는 이길 수 없었다.

“그럼 오늘부터 출퇴근해.”

“응……. 근데 나 어디서자?”

“음.”

당장 떠오르는 장소는 다 무너진 아파트.

성아영이 이용료를 납부한 건물이기도 하고, 학교와 가까워 판자촌 능력자들이 감시하기에도 용이한 위치였다.

“아파트는 어때?”

“이게 다이아 대우야?”

“쩝. 알았어.”

같은 여자인 최선아와 붙여 놓을까도 했지만, 왜인지 둘은 앙숙 관계였다.

그렇다면 다이아에 걸맞은 최고의 건물을 제안해 줄 수밖에.

“그럼 편의점 하나 써.”

“……그것도 폐건물이지?”

“아직 모르시는구나. 정보에 어두우시네. 후후후.”

“응? 무슨 말이야? 내가 정보에 어둡다고? 내가?”

“후후후…….”

주민성은 인벤토리에 있던 편의점 식품 몇 개를 꺼냈다.

“샌드위치? 우유?”

“응. 이런 거 처음이지?”

“뭐야 진짜? 포장은 왜 이렇게 허술하고?”

성아영에게 건넨 것은 유통기한은 알 수 없지만 3일 안에 상할 것 음식들이었다.

건물 부가효과가 신선 식품에 어떻게 작용할지 모르기에 반절만 따로 챙겨 뒀었는데 새삼 이럴 때 쓸모 있다.

“일단 먹어 봐. 절대 아무나 먹을 수 있는 음식 아냐. SSS급 능력자라도 이건 못 구해.”

“저, 정말?”

“응.”

성아영의 나이는 알 수 없었지만, 아무리 높게 봐도 주민성보다 조금 많아 보이는 정도였다.

대격변 세대임은 틀림없으리라.

“그럼 먹어 봐야지.”

성아영은 자신이 다이아임을 강조하고 싶었던 걸까.

회원들이 지켜보는 앞에서도 당당히 샌드위치 포장지를 뜯었다.

“음? 내가 뭘 본 거지?”

“저 샌드위치는…….”

30년 전의 편의점 음식.

당연하게도 알아보는 회원들이 존재했다.

하지만, 접근해 오진 않는다.

성아영과 합류했을 때부터 곁에서 묵묵히 무게 잡고 있는 제르취와 카르파크 덕분이었다.

“아서라. 괜히 호기심 가지지 말게.”

“끄응. 어릴 때 자주 먹었던 건데, 좀 아쉽네그려.”

물론 이들의 목소리는 주민성만이 들을 수 있었다.

성아영은 그들의 부러움 가득한 시선만을 느낄 뿐.

“음? 생소한 맛이네. 비싸 보이는 재료들은 아닌데.”

“빈티지는 빈티지 나름의 맛이 있는 거야.”

“그러게. 이렇게 먹는 것도 나쁘진 않아.”

“응. 얼른 먹고 다크울프 골라. 슬슬 움직이자.”

“알았어.”

끼니를 대충 해결한 둘은 회원들에게 몇 가지 당부를 마치고 안산 게이트로 귀환했다.

느긋하게 이동해 편의점에 도착하니 시간은 어느새 새벽.

“……이게 대체 뭐야?”

“키히히! 손님이다!”

“점원은 어디 가고 왜 고블린이…….”

둘 중 하나는 블랑이였던가.

아무튼 최선아의 호위 고블린 둘이 담당하는 매장이었다.

“무서운 기름 맛을 보여 주지! 키헤헷!”

“지옥처럼 타올라라! 크히힉!”

둘은 주문도 하지 않았는데 편의점표 치킨과 피자를 만들기 시작했다.

“뭐야. 얘들……. 이상해.”

물론 성아영에겐 고블린이 그저 키헷 크힉 하는 것으로만 들릴 터였다.

“오, 물건 많이 빠졌네.”

주민성이 자리를 비운 사이 편의점에도 제법 많은 손님이 방문했던 모양이다.

물품이 마구 동나는 건 주민성에게도 환영할 일이었다.

돈 걱정이 사라지면서 건물 보급 능력에 대한 거부감이 사라진 상태였으니까.

“이왕 이렇게 된 거 바로 써 봐야지.”

“응? 뭐를?”

주민성은 곧장 인벤토리를 띄워 한창 만들어지는 치킨과 피자를 제외한 모든 물건을 수납했다.

물론 진열대와 창고에 있는 물건도 포함이다.

기상천외한 광경이었다.

“뭐, 뭐 해! 물건 사라지잖아!”

“있어 봐. 능력 테스트 좀 해 보게.”

“……이것도 능력이야?”

“응.”

성아영의 벙찐 표정은 언제나 보기 좋았다.

아마도 주민성에 대한 조사가 끝낸다면 수십 년은 훌쩍 지나지 않을까 싶다.

“온 김에 제대로 식사라도 해. 샌드위치는 양 적잖아.”

“너는?”

“능력만 써 보고 먹을게.”

주민성은 그대로 편의점을 빠져나갔다.

머릿속에 주입된 건물 보급 능력은 건물 전체를 시야에 담은 채 사용하는 능력이었기 때문이다.

‘편의점2. 건물 보급.’

몽롱한 감각과 함께 능력이 펼쳐졌다.

[건물 속성에 해당하는 물품이 보급됩니다.]

[보급 권한에는 일정 재화가 소모됩니다.]

[편의점2에 건물 보급이 적용됩니다.]

[1493만 원이 필요합니다.]

지잉.

또 다른 생소한 인벤토리가 떠올랐다.

호위서비스용 인벤토리처럼 작은 크기였는데, 크룩스의 정보료 청구와도 비슷한 이미지였다.

“그렇다는 건, 여기 넣는 돈은 날아간다는 뜻이겠군.”

능력 중엔 이용료 청구처럼 돈을 재활용할 수 있는 능력도 있었고, 호위서비스처럼 납부한 돈의 출처를 알 수 없는 능력도 존재했다.

건물 보급은 후자에 해당했다.

“뭐, 돈이라면 이제 많으니까.”

[1493만 원이 납부되었습니다.]

[편의점2에 건물 보급이 적용됩니다.]

납부가 끝나고, 건물 보급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꺅!”

“키엑!”

성아영의 뒤편에서 사라졌던 진열대도 다시 생성되고, 각종 군것질거리부터 소모된 식품들도 복구됐다.

예상대로의 결과.

여기서는 인벤토리에 수납한 물건들이 어떻게 되는지가 관건이었다.

투툭.

감자칩과 콜라가 손에 잡혔다.

이것으로 인벤토리에 수납한 물건 역시 무사함을 알 수 있었다.

“소유물 복제 유료 버전인가?”

건물이 처음부터 가졌던 물건이라면 얼마든지 응용할 수 있어 보인다.

심지어 재사용 대기 시간도 없는 능력이었기에 용도가 무궁무진하다.

“대박이네.”

세상이 반쯤 멸망한다 하더라도 편의점만 있으면 평생 먹고사는 것도 가능해 보일 정도.

편의점은 기본적인 생필품부터 식량까지 전부 충족할 수 있는 건물이었다.

재화가 어디로 사라지는지가 조금 마음에 걸리지만, 하루에 벌어들이는 돈만 현금으로 3억 이상이다.

돈을 버는 것보다 쓰기가 더욱 힘든 경지에 도달했기에 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진열대 같은 것들만 수납하지 않아도 비용이야 더 저렴해지겠지. 있을 때 팍팍 써야겠군.”

이런 식이라면 학교나 꽃집도 보급할 수 있어 보인다.

아지트는 외부 물건이 대부분이라 예외였지만.

“학교에 있는 라면은 이 편의점에 없단 말이지. 그런 점에서 학교엔 종종 들르는 게 좋겠어.”

딸랑딸랑.

예상대로 성아영의 황당한 표정이 주민성을 맞이했다.

놀리는 재미가 쏠쏠한 여자다.

“너 대체 능력이 몇 개야? 3개가 아니잖아! 이 사기꾼!”

“3개는 무슨. 나 능력 하나밖에 없어.”

일단은 맞는 말이다.

건물주 능력이 별의별 뿌리를 다 내려서 그렇지, 주민성의 능력은 건물주 하나뿐이었다.

“건물주는 그렇다 쳐! 너 신체 강화도 있잖아!”

“강화 아니야. 그냥 내가 강한 거야.”

실제로 주민성은 인간 자체가 강해진 케이스에 해당했다.

지금의 강한 신체는 아무런 집중력을 요구하지 않았으니까.

핸디캡이 있다면 게이트를 조용히 빠져나갈 수 없다는 정도.

“아오. 치킨이나 먹어. 이거 은근히 맛있네.”

“키히히! 돼지처럼 울부짖어라!”

“불닭 피자? 이거는 조금 매콤한데 먹을 만해.”

“키헥! 이것이 지옥불의 맛이다!”

지금은 엄연한 새벽.

어마어마한 칼로리를 자랑하는 야식 파티였지만, 성아영이나 주민성이나 자기관리는 뛰어난 편이었다.

이왕 먹는 거 맛있게 먹으며 하루를 보낼 뿐.

“오! 이것도 처음 보는 맥주다!”

“마셔. 마셔.”

이를 계기로 성아영은 편의점에서 머물며 출퇴근하기로 정해졌다.

“건배!”

“참고로 건물 안에서 먹으면 안 취하니까 기억해 둬.”

“시끄럽고 건배!”

아침이 밝았다.

오늘의 일정은 간단하다.

김정남을 최대한 구워삶아 몬스터 웨이브를 성공적으로 끝내고, 봉춘향과 최선호를 비롯한 일반인들과 임시 서비스를 테스트해 볼 작정이다.

“후우. 배부르군.”

성아영은 창고에 나름의 인테리어를 해 두고 잠을 청하러 간 상황.

새삼 걱정없어 보이는 모습에 주민성도 황당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보다 얘는 호위서비스 개념이 없는 건가.”

“크르르…….”

편의점 입구 주변엔 다크울프 다섯 마리가 식빵을 굽고 있었다.

끝끝내 성아영이 내부로 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호위서비스는 둘이 더 존재한다.

바로 가르취와 차크취였다.

“맞다. 걔들 운동시킨다고 보냈던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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