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라미드 (2)
(105/250)
피라미드 (2)
(105/250)
피라미드 (2)
2022.03.16.
“이게 무슨 일이람.”
예상을 벗어난 어이없는 광경에 주민성은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많아야 열댓 명쯤 모일 줄 알았는데.”
“그럴 리가 있나.”
여기서 주민성이 간과했던 점이 있었다.
전날 가르취와 차크취에게 포획되었던 협회인은 터무니없이 약해 보였을 뿐.
그들 역시 엄연한 A급 능력자였다.
김정남과 아무리 비교된다 한들, A급다운 인맥이 형성되어 있었던 것이 바로 주민성이 놓친 부분이었다.
“요즘 세상에 A급이면 어딜 가도 대우받아. 나는 쟤들보다 훠얼씬 더더더 대우받는 사람이고.”
“그래서 다이아 시켜줬잖아.”
“더 대우해 주라고!”
“아, 네. 그보다 좀 비켜 줄래?”
“씨이…….”
어제 만났던 협회인 몇 명이 눈에 띄었다.
이전과 다른 말끔한 차림이었다.
“그러네. 전부 명품이네.”
“내 말이! 우리 집에도 신상 잔뜩 왔을걸? 가져오면 안 돼?”
“쟤들 시키든가.”
“그래도 돼?”
“당연하지.”
성아영은 생각보다 훨씬 대단한 지위를 가졌던 모양이다.
구석에서 수군거리는 여자들의 대화도 가관이다.
“와. 특임대장님이 오고 계셔.”
“이 기회에 잘 보여서 연줄이라도 만들어야 해.”
“우리 남편은 왜 이리 숙맥인지. 오늘 제대로 힘 좀 써 봐야겠어.”
귀족들의 사교계가 이런 느낌이었을까.
주민성의 장사는 둘째치고, 성아영이 목적인 사람들도 상당히 많아 보였다.
물론 적게나마 주민성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는 사람도 있었다.
“저 훈남은 누구지? 특임대장님 남친?”
“그럴걸? 이번 모임 주최자라는데?”
“참가비도 엄청 저렴하던데. 무슨 목적이지?”
심지어 하루 33만 원의 이용료조차 저렴하다고 할 수 있는 이들이었다.
이런 모습만 봐도 어제 붙잡혔던 협회인들이 도시에 나와 얼마나 허세를 부렸을지 상상이 된다.
“쉿! 쉿! 자리 만들어! 어서!”
주민성과 성아영이 가까워지자, 모여든 사람들은 질서 있고 신속하게 갈라졌다.
그리고 전날 붙잡혔던 협회인들, 속칭 골드 등급 회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안녕하십니까. 다시 뵈어 영광입니다.”
“…….”
극도로 공손한 모습.
저마다의 목적이 역력한 표정이지만, 왠지 밉지는 않았다.
오히려 단번에 회원 등급을 올리려는 적극성을 높게 평가해 주고 싶을 정도.
‘플래티넘이 그렇게 탐나는 건가.’
개인당 100명 이상은 데려온 모양새.
심지어 뒷줄은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힘 빼.”
“응? 어?”
주민성은 그대로 성아영의 허리를 감아 쥐고 중식당 위로 점프했다.
“오오오……!”
“남친 맞나 봐! 그 무서운 특임대장님이 가만히 계셔!”
“대체 누구지? SS급 이상은 되나 본데?”
“아냐. 방금 점프는 능력이 아니었어.”
“그럼 설마 SSS급?”
“……아마도.”
정말 사소한 행동에도 어마어마한 뇌피셜과 호들갑이 쏟아지는 상황이었다.
사실은 그냥 잘 보이는 자리에서 말하고 싶었던 건데.
주민성은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수다를 뒤로하고 손을 들어 사람들을 침묵시켰다.
“이렇게 많이들 모여 주실 거라곤 상상도 못 했습니다.”
주민성의 카리스마에 압도된 것인지, 왜인지 얼굴이 빨개져 화난 듯한 성아영에 압도된 것인지는 몰라도 사람들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볼 뿐이었다.
“단순히 텐트 체험단을 모집했을 뿐이거든요.”
여분으로 남겨 뒀던 텐트 10개는 누군가 챙겨 온 거대한 유리 상자에 고이 모셔져 있었다.
그 주변을 골드 등급 회원들이 지키는 모양새였고.
그동안 주민성조차 모르는 경쟁이 있었는지 사람들의 눈에는 텐트를 향한 탐욕이 가득했다.
‘역이용해도 되겠는데?’
인벤토리엔 상당히 많은 텐트가 들어있었다.
하지만 주민성은 이것들을 꺼낼 생각이 사라진 상태.
“생각보다 많은 분들께서 모여 주신 덕택에 제 목적은 쉽게 이뤄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선 골드 회원님들 먼저 앞으로 한걸음 다가와 주십시오.”
“예!”
골드 회원들은 주민성을 주민성이라 말하지 않았다.
나름의 배려일 터였다.
자기 이미지 관리 차원일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상황 자체는 주민성에게 너무나도 유리하다.
척!
일사불란한 한걸음.
협회에서 제법 많은 교육을 받았던 모양이다.
“각자 텐트 두 개씩 챙기십시오.”
“가, 감사합니다!”
골드 회원은 총 셋.
여섯 개의 유리 상자가 빠르게 주인을 찾아갔다.
“직접 보는 게 빠르겠지요. 각자 데려오신 분들 중 가장 용무가 급하신 분을 불러 주세요.”
그러자 골드 회원들이 다급하게 인파를 향해 소리쳤다.
“여보!”
“자기야!”
“지부장님!”
누군가는 가족을.
누군가는 사랑을.
누군가는 출세를 택했다.
목적은 전부 달랐지만 간절한 것만큼은 전부 같다.
주민성은 이런 부분을 철저하게 이용할 계획이었다.
‘그보다 지부장을 최우선으로 고른 사람은 진짜 대단하네. 지부장은 일 안 하나?’
골드 회원들은 납부용 인벤토리의 사용법을 알고 있었다.
설명도 충분히 했었는지 수납은 순식간이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정확히 33만 원씩.
[텐트 이용료가 납부되었습니다.]
[이용료는 인벤토리에 수납됩니다.]
[텐트 이용료가 납부되었습니다.]
[이용료는 인벤토리에 수납됩니다.]
[텐트 이용료가 납부되었습니다.]
[이용료는 인벤토리에 수납됩니다.]
“들어가면 되겠습니다.”
“아, 알겠습니다.”
쭈뼛거리며 나타난 세 사람은 골드 회원의 안내에 따라 각자의 텐트에 들어갔다.
이제 효과는 말할 필요조차 없다.
수십 번이고 수백 번이고 검증되어 왔으니까.
“으어어…….”
당연하겠지만, 남은 사람들에겐 더욱 큰 탐욕이 생겨났다.
그리고 남은 텐트는 4개.
“여러분의 성원에 힘입어, 자그마한 상품을 걸려고 합니다.”
“오오!”
지금부터가 본격적인 약 팔이 시간이다.
“여러분은 실버 등급이 되실 겁니다. 하지만, 눈앞의 한정 텐트는 얘기가 다르죠. 저 텐트의 주인은 골드 등급이 되시겠습니다.”
“오오오오!”
“오늘은 처음이니까. 특별히 경매로 하죠.”
“……!”
아파트 분양도 아닌 텐트 분양이 시작되었다.
그것도 경매로.
반응은 뜨거웠다.
저마다 자신의 총알이 충분한지 점검하는 모습이었다.
“어, 어쩌지? 카드는 안 되나?”
“안될 거예요. 방금도 현금이었잖아요.”
이는 정확히 이용료만 챙겨온 사람들을 위한 상품이 아니었다.
중간 중간 섞여 있는 큰손.
차림새만 봐도 몇 억은 거뜬히 발랐을 법한 인물들이 주민성의 타겟이었다.
“기, 김 기사? 우리 현금은?”
“말씀하신 대로 총 20억을 준비했습니다.”
“아이 씨. 괜찮으려나? 오정동 부녀회장도 왔던데?”
이들의 허둥대는 모습에 가슴이 웅장해지기 시작했다.
“경매 시작은 5분 뒤에 시작하겠습니다.”
“서, 서둘러야 해!”
중식당 주변은 순식간에 시장통이 되어 버렸다.
“우리는 잠깐 내려갈까?”
“으, 응!”
주민성은 성아영과 함께 부서진 천장을 통해 중식당 내부로 진입했다.
왜인지 내부는 텅 비어 있었다.
“가르취랑 차크취는?”
“아, 걔들? 너무 살쪄서 운동 보냈어.”
“……운동?”
“당연하지. 호위가 배불뚝이인 꼴은 못 참아.”
“……어디로?”
“대충 바닷가로 보냈어.”
“…….”
“돌아오는 대로 바디트레이닝까지 시켜야지. 호위서비스가 좋긴 좋더라. 애들이 말은 잘 듣거든.”
“…….”
아무래도 가르취와 차크취는 제대로 된 교관을 만난 모양이다.
* * *
인천 앞바다 모래사장.
그곳에선 가르취와 차크취가 숨을 헐떡이며 달리고 있었다.
쿠르르르!
“취, 취익!”
“힘들취!”
가르취와 차크취의 허리엔 선박에 쓰이는 거대한 밧줄이 묶여 있었다.
그리고 밧줄의 끝에는 건물 잔해가 매달려 있다.
성아영이 손수 만든 걸작이었다.
잔해의 크기는 뜯겨나간 건물 그 자체라고 비유해도 될 정도.
“힘들다! 취익!”
“취췩취!”
여기에 둘을 감시하는 오크 교관 하나.
“꼼수 부리지 않습니다! 취익!”
이전에 둘이 제물을 멋대로 먹어치웠던 탓인지 오크의 표정엔 일말의 자비조차 없었다.
“이상한 고문이다! 취익!”
“갈증취!”
“대장이 보고 싶다! 취익!”
“그립취!”
***
중식당 내부는 상당히 깔끔해져 있었다.
인테리어 또한 성아영의 취향대로였다.
‘역시 해가 되지 않는 조건이라면 능력을 쓸 수 있는 모양이군.’
그런 생각을 마침과 동시에 문득 묘한 생각이 들었다.
성아영의 보이지 않는 능력 때문이었다.
‘혹시 안대를 쓰면 성아영의 능력이 보일까?’
콰트리취의 안대라면 충분히 그럴 만했다.
태양의 순례지에 이어 영혼까지 식별하는 물건이었으니까.
이 정도면 콰트리취의 안대 또한 유물이라 할 수 있었다.
“구, 구경 그만해. 아직 덜 꾸몄으니까.”
“……흐음. 조만간 제대로 된 건물 하나 줄게.”
“진짜?”
“응.”
이수길이 주문한 내역엔 컨테이너도 함께였다.
적어도 컨테이너라면 지내기에 훨씬 안정적이리라.
“슬슬 다시 가 볼까.”
“……응.”
이렇게까지 사람들이 모인 것엔 성아영의 공헌도 상당했을 터였다.
‘아파트도 초월 후보에 등록해야겠군.’
완파 직전의 아파트는 성아영이 장기 이용 중인 건물.
헬스장이나 편의점처럼 아파트 역시도 특별한 고유효과를 지니고 있을 테니 앞날이 기대되는 케이스에 포함된다.
“…….”
건물 밖에선 미묘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상당히 조잡한 경매였음에도 참가자들의 표정엔 오직 진지함뿐이었다.
“정가부터 시작하면 경쟁이 너무 심하겠죠. 그럼 백만 원 단위로…….”
스스슥!
동시다발적으로 수많은 손이 치솟았다.
“아니, 천 만…….”
스슥!
주민성은 그제야 이곳에 모인 사람들이 상류층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오천만 원 단위로 하겠습니다.”
그제야 반절 정도의 손이 내려갔다.
물론 그들 또한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돈을 안 챙겨 와서 아쉬워하는 표정이었다.
슥! 슥!
“일억 나왔……. 이, 삼, 사, 오억 나왔습니다.”
경쟁은 더욱 심해졌다.
이젠 각자의 지위로 붙으려는지 주민성의 안내는 뒷전인 모습이었다.
“이봐요! 텐트 네 개잖아요! 양보 좀 하고 살면 안 돼요?”
“허허. 쫄리면 죽으시든가.”
“뭐예욧?”
회원 간의 분쟁은 있어선 안 될 일.
주민성은 곧장 이들을 제지했다.
“얘기 못 들으셨나 본데, 여차하면 브론즈 등급부터 시작하게 될 겁니다.”
“아이고! 물론 알고 있습지요! 허허!”
상당히 나이 지긋해 보이는 이들 역시 주민성에겐 맥을 추리지도 못하는 모습이었다.
아마 도시였으면 주민성은 안중에도 없었을 그런 높은 사람들이었을 텐데도.
경매는 그렇게 재개되고, 총 세 개의 텐트가 각각 44억, 51억, 54억에 낙찰됐다.
어이가 없을 정도의 막대한 수입.
주민성은 그제야 새로운 사실을 또 깨달을 수가 있었다.
‘협회장은……. 끝까지 돈을 아꼈었군.’
허탈할 정도였다.
협회장이 챙겨 준 50억은 정말 푼돈이라도 되었는지 이곳의 사람들은 씀씀이부터가 어마어마했다.
여기서 더욱 황당한 건, 원가 10만 원도 안 될 텐트의 현시점 가치였다.
‘정말 이렇게 날로 먹어도 되는 건가?’
물론 이곳의 사람들이 혹한 건 텐트의 효능이 맞았다.
감동적인 임산부의 회복 과정부터, 제대로 걷지 못하던 여인의 걸음마, 머리가 훤히 벗겨진 중년의 풍성해진 변신까지.
이들은 모든 변화를 실시간으로 지켜봤다.
그럼에도 지금의 가격은 너무나도 심각했다.
‘평생 먹고살아도 될 수준의 돈인데.’
그리고 마지막 텐트의 가격.
“71억!”
“……더 없습니까?”
“있습니다! 72억!”
“…….”
나름대로 눈치 보며 숨을 죽이다 경쟁자를 떨치고 이득을 취하려던 부자는 하필 두 명이 남아있었다.
주민성에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소식이었다.
‘나 같으면 100명 모으고 말 텐데.’
물론 이것은 주민성의 시선일 뿐.
부자들의 시선은 조금 달랐다.
“조 사장님. 양보하시지요. 조 사장님 인맥이면 골드 등급 어려운 것도 아니실 텐데요.”
“허허. 선수끼리 왜 이러시나. 적당히 하고 양보하시게.”
“그럴 리가요.”
스슥.
“……73억 나왔습니다.”
단 네 개의 텐트를 처분할 뿐인데 실로 어마어마한 자금이 모여들었다.
물론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인벤토리에 텐트는 얼마든지 있었으니까.
물론 적당히 조절해야 불만이 나오지 않을 터였다.
“74, 75억 나왔습니다.
주민성의 눈가에 탐욕이 깃들었다.
실용성이 없어 봉인시켜 둔 능력 중엔, 돈으로 능력을 골라서 공유받을 수 있는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정도로 돈이 모이면 임시 서비스를 써 봄직도 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