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라미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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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라미드 (1)
2022.03.15.
공략에 필요한 인재는 전부 확보된 상황.
이젠 작전만 세우면 될 뿐이었다.
구상한 작전은 이러했다.
첫째, 김정남을 봉춘향과 송몽룡의 후원자 겸 보호자로 동행시킬 것.
이것만으로도 어중이떠중이들의 갑질은 전부 막을 수 있었다.
이는 한때 주목받았던 주민성 역시 겪어본 바.
여기서 과거의 후원자들보다 더욱 스펙 좋은 A급 능력자가 합류한다?
그것도 승급 자격까지 있는 능력자가?
성능은 확실하다.
둘째, 반드시 능력자 협회 인천지부로 보낼 것.
당장은 미미하겠지만, 주민성은 이미 인천 협회인들에게 이용료 청구라는 독을 푼 상태.
이들은 곧 내부 협력자가 될 터였다.
‘정 안 통하면 성아영이라는 강경책도 있고.’
한 사람당 둘씩만 데려와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구조였다.
분명 눈에 띄는 성과가 나타나리라.
‘문제는 사람이 얼마나 모이냐인데.’
이 부분은 주민성도 가늠할 수 없었다.
관심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남의 사정에 대해 훤히 꿰뚫고 있지도 않았기 때문에.
그저 최선을 다해 이용료 납부가 가치 있는 투자였음을 증명해 보이면 될 뿐이었다.
구상은 여기까지.
차후의 일은 그때 더 생각해 보면 될 일이다.
“한적하군.”
“취, 취익.”
든든한 오크의 호위를 받아서일까.
주민성을 노려오는 몬스터는 한 마리도 없었다.
다크울프가 속도를 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로드. 속도를 낼까요?”
카르파크가 눈치 빠르게 물어왔다.
“괜찮아. 이대로 가도 안 늦으니까.”
“예.”
주민성은 여유롭게 주변을 감상했다.
이중엔 얼떨결에 소유한 공룡들의 둥지와 끝을 알 수 없는 균열도 포함되어 있었다.
‘건물주 등급이라도 올릴까.’
게이트 통행로는 게임으로 비유한다면 폭렙 사냥터라 할 수 있었다.
균열 지하에 사는 의문의 생명체 때문이었다.
단순히 건물 잔해만 떨어트려도 등급이 올라갔기에 언젠간 맘먹고 이용해야 할 장소이기도 했다.
‘떨어트린 건물 잔해를 회수할 수가 없다는 게 좀 아쉽지만.’
물론 건물 잔해의 대안이라면 있었다.
대표적으론 균열 깊숙이 있는 공룡 둥지.
‘건물 폭발만 사용해도 최소 대박이란 말이지.’
가뜩이나 건물 잔해가 부족한 지금의 상황에 있어 건물 폭발은 건물주 능력의 등급을 실컷 올릴 수 있는 환상적인 카드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주민성은 생각을 실천으로 옮기지 못했다.
등급 재판정 때문이다.
[포기한 건물이 너무 많습니다.]
[소유 건물의 관리도가 처참합니다.]
건물 폭발은 위의 두 가지 사항에 포함되어 있었다.
건물 폭발은 관리는커녕 건물 자체를 포기하는 능력이었으니까.
주민성이 직접 뛰지 않고 다크울프에 올라탄 것도 비슷한 이유 때문이었다.
[지나치게 부지런합니다.]
[여유가 심각하게 없습니다.]
건물주 능력은 주민성을 지나치게 부지런하다고 평가하고 있었다.
게다가 여유까지 심각하게 없단다.
정상인이라면 상당히 평가받을 내용이었지만, 건물주의 기준에는 이마저도 결격 사유였다.
‘참 어이없는 능력이란 말이지.’
능력이 그렇다는데 어쩌겠는가.
주민성은 자신의 능력에 감사하고 있었다.
당연히 앞으로도 목숨처럼 다룰 예정이고.
‘됐다. 사냥은 무슨. 여기서 더 부지런해지면 안 돼.’
지금의 스케줄도 충분히 부지런하다고 할 수 있었다.
인천은 매일 들르기로 했고, 폐허 도시의 관리도 꾸준히 이어나갈 예정이었으니까.
이럴 때는 느긋하게 수다나 떨면서 이동하는 것이 도움 되리라.
“제르취.”
“뭐, 뭐냐. 취익.”
“카르파크랑은 어떻게 친해진 거야? 동포 같은 느낌인가?”
“……제대로 정정해 주겠다. 잘 들어라.”
“아냐. 대충 들을래.”
“…….”
수다를 떠는 와중에도 주민성은 건물주의 마음가짐을 다시 한번 상기했다.
최대한 부지런하지 않고, 느긋하게.
“취익. 너는 황무지 마을을 기억할 것이다.”
“응. 그게 뭐.”
“그곳은 내가 태어난 곳. 나의 고향이지.”
“그건 나도 알고.”
“…….”
제르취는 두통을 인내하며 말을 이어나갔다.
“황무지 마을의 과거 이름은 칠흑 숲이었다.”
“칠흑 숲…….”
칠흑 숲에 대해선 당연히 알 수밖에 없었다.
[칠흑 숲 오크 구제에 성공했습니다.]
[칠흑 숲 오크 종족 일부의 지휘권이 활성화됩니다.]
[지휘 가능한 오크: 추적자 카르파크 외 490]
제 발로 합류해 온 오크 라이더들의 소속이었으니까.
대화 몇 번 나눴던 것 치고 과하게 고개를 숙여 온 오크들이기도 했다.
“카르파크가 칠흑 숲 소속이었지.”
“맞습니다. 로드.”
카르파크가 설명을 이어갔다.
“로드를 처음 봤을 때부터 일족 전체가 느꼈습니다. 고향의 냄새를.”
“…….”
오크 마을에서 며칠 지냈던 게 원인이었던 모양이다.
결과야 좋았으니 이 부분에 대해선 따로 해명할 이유가 없었다.
그보다 숲과 황무지의 냄새는 엄연히 다른데 알아차리는 것도 좀 이상하긴 했다.
오크의 감성은 인간이 이해하기엔 난해하다.
“일단 알겠어. 그건 안 궁금해.”
“취, 취익.”
“카르파크. 나 찾아왔다며.”
“……취익. 그렇습니다.”
주민성이 궁금한 건 이 부분이었다.
게이트에서 게이트로 이동하는 것에 대해 오크들은 본능적인 거부감을 보였었다.
“다른 오크들은 겁내던데?”
쉽사리 게이트 사이를 이동할 수 있는 기준.
주민성 입장에선 그것을 알아야만 앞으로의 게이트 확장 계획을 세울 수 있었다.
어찌어찌 인연이 닿아 전체가 아군으로 합류한 케이스는 오크 라이더가 유일했으니까.
“지금도 봐. 너희는 아무런 동요도 없이 이곳을 횡단하고 있잖아?”
지금 주민성 일행이 지나는 곳은 바다 한가운데.
조금만 발을 헛디뎌도 그대로 끝장이나 마찬가지인 좁디좁은 골목길이었다.
“저 역시 이 길이 불쾌하긴 마찬가지입니다. 고블린들이 출몰하는 게이트도 그렇고요. 단지 제 충성심이 앞설 뿐입니다. 취익.”
“불쾌하긴 하구나.”
어느 정도의 거부감은 카르파크 역시 있는 모양.
그렇다면 또 다른 호기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
‘가르취랑 차크취는 뭐지.’
제르취는 안산 게이트, 카르파크는 인천 게이트라는 명백한 거점이 존재했다.
하지만 배불뚝이 오크 둘은 하위차원에서 쭉 살아왔음에도 인천에서 너무나도 잘 적응하고 있었다.
이쯤 되면 가르취와 차크취를 통해 몇 가지 테스트를 더 해보고 싶을 정도.
‘일단은 충성심인가. 그러고 보니 지휘권도 있었지?’
제르취의 죽음과 함께 찾아온 기묘한 능력 지휘권.
주민성은 오크를 상대로 지휘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문득 하위차원도 궁금해지긴 했다.
영혼 재배치를 이용해 공룡들의 영혼을 부어 버린 태양의 순례지, 그리고 주민성이 모든 건물을 소유해 버린 황무지 마을까지.
관심을 접어 두기엔, 저지른 짓이 너무나도 많은 장소였다.
‘하위차원 근황이라도 좀 알고 싶은데.’
영혼 재배치 능력은 지정 대상을 소유 중인 건물로 옮길 수 있는 능력이었다.
하지만, 명확한 단점이 존재하는 능력이기도 했다.
보낼 수는 있는데 호출할 수가 없는 명확한 단점이.
때문에, 헬스장에서 영혼이 나타났을 당시에도 영혼 재배치는 처음부터 논외였다.
‘결국, 이 문제도 등급 재판정이 힌트가 되겠군.’
부지런하지 말자.
일하려거든 등급 재판정에 도움 되는 일만 하자.
이 생각을 다시금 되새긴 주민성은 고개를 저으며 오크들과의 대화로 돌아왔다.
여러 대화를 나눠 보고 정리해 본 내용은 이러하다.
카르파크와 제르취는 활동했던 시간대가 다를 뿐인 같은 일족.
카르파크가 제르취에겐 조상 정도 되는 것.
여기서 주민성이 가진 정보를 종합해 보면 흥미로운 사실 한 가지를 더 알 수 있었다.
‘제르취와 명상소의 영혼들.’
오크 주민들과는 달리 명상소의 영혼들은 제르취를 기억했다.
자초지종을 듣진 않았지만, 제르취 역시 황무지 마을에선 한 발자국 떨어져 겉돌기만 했었고.
주목해야 할 부분은 이것이었다.
‘시간대가 달라.’
명상소의 영혼들은 하나같이 늙은 오크들이었다.
주민성은 여기서 하나의 가정을 추가했다.
‘제르취가 황무지 마을에서 조상급 배분이라면?’
허황된 가정은 아니었다.
이미 차원 이동을 통해 시간적 괴리를 겪었던 바 있었으니까.
주민성이 하위차원에서 보낸 일주일.
그때도 게이트의 시간은 멈췄었다.
현실의 시간이 흐르고 있었음에도.
이런 차이를 전부 지켜본 이는 시간 정지 능력자인 송몽룡과 호위 오크뿐.
‘점점 하위차원의 시간이 빠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군.’
생각이 정리된 주민성은 한가지 실험을 해보기로 했다.
“제르취.”
“……뭐냐.”
“황무지 마을 오크 이름이 뭐였더라. 즈취였나?”
“취익……. 스취겠지. 아니면 즈쉬일 테고.”
주민성에겐 하위차원의 오크를 불러낼 방법이 존재했다.
바로 여왕벌의 권능인 세입자 호출 능력이다.
물론, 지금은 쓸 수 없는 과거형이지만.
“후우. 너무 간단하게 생각했어.”
주민성이 게이트로 복귀했을 당시의 돈벌이 수단은 간단했다.
하위차원에서 나오는 고대 물건들을 판매하는 것.
유통로는 당연히 세입자 호출이었다.
어이없게 막혀버린 수단이라 가르취와 차크취가 더욱 원망스러워지는 순간이었다.
“녀석들이 벌집만 집어먹지 않았어도 됐을 텐데.”
“한창 먹을 때인 아이들이다.”
“…….”
가설이 정확하다면, 황무지 마을에서 생성되는 고대 물자들이 예상보다 훨씬 많이 쌓여 있을 터였다.
‘아깝다! 아까워!’
역시 하위차원은 포기할 수가 없었다.
언젠간 반드시 그곳의 물건들도 되찾아야 했다.
그렇게 생각을 마친 순간.
주민성은 다시 한번 낙담했다.
‘……이래서 내가 여유가 없는 거네.’
태생부터가 그랬다.
주민성은 독하고 부지런한 사람이었으니까.
건물주 능력과는 정말 어울리지 않는다.
“에휴. 모르겠다.”
주민성은 그대로 자세를 숙여 다크울프의 머리에 몸을 기댔다.
“그렇게라도 휴식을 취하시는 게 좋습니다. 로드.”
“나 잘 쉬는데…….”
“제가 보기엔 너무나 바쁘시기에…….”
“…….”
대답하지 않는 주민성을 향해 카르파크가 말을 이어갔다.
“칠흑 숲 오크 중엔 많은 영웅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공통점이 뭔지 아십니까?”
“……뭔데.”
“쉴 때 확실하게 쉰다는 점입니다. 다른 부락을 복속시킬 때는 1년을. 왕국을 침략할 때는 10년도 휴식합니다. 휴식을 마친 이후엔 언제나 몇 배로 강해져서 돌아왔고요.”
“…….”
카르파크의 주장 역시 휴식이었다.
대단한 자가 되려면 그래야 하는 것처럼.
“우리는 로드를 따릅니다. 당연히 로드의 팔과 다리도 대신할 수 있습니다. 취익.”
“…….”
“좀 더 저희를 써 주십시오.”
업무 분담이라면 제법 하고 있었을 터.
하지만 그것은 판자촌 능력자나 인력소 식구들을 비롯한 사람들에 한정되어 있었다.
여기서 네임드 몇을 제외한 평범한 몬스터에게 내린 방침은 눈에 띄지 말고 알아서 지내라였다.
이 부분은 카르파크의 조언을 따를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해 볼게.”
“감사합니다. 로드.”
이후 별다른 대화는 없었다.
카르파크의 하위차원 이야기라도 물을까 싶었지만, 여유를 찾으라는 말에 따랐다.
“도착입니다. 로드.”
어느덧 주민성과 일행들은 인천 게이트에 도착했다.
급조된 입구 부근엔 극소수의 오크 라이더만이 대기하고 있는 상황.
교대 근무의 개념도 잡힌 모양이다.
“취익! 로드를 뵙습니다!”
이번에도 물어볼 거라면 얼마든지 있었다.
상황은 어떤지, 성아영은 잘 있는지.
가르취와 차크취는 말썽 안 피웠는지.
“그래. 수고하고.”
“취익!”
하지만 주민성은 질문을 생략했다.
마인드를 진심으로 바꿔 보려는 심산이었기에.
‘여차하면 제르취나 카르파크에게 수습도 시켜 봐야겠군. 나서는 것도 줄여 보자.’
인천 게이트는 안산보다 훨씬 한산했다.
이곳의 몬스터가 고블린처럼 엄청나게 많은 것도 아니었을 뿐더러, 지금의 방침은 게이트에 방문하는 외부인들의 안전에 집중되어 있었으니까.
“왔어?”
중식당 근처에 도달하자 어떻게 알아차렸는지 성아영이 미리 마중 나와 있었다.
“더 빨리 오지 그랬어!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응?”
“일단 직접 가서 봐!”
주민성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중식당에 도착했다.
“…….”
“오오! 드디어 오셨다!”
“여보! 주민성 씨야!”
중식당 근처엔 수백에 가까운 외부인이 모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