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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시설 (2) (103/250)


복지시설 (2)
2022.03.14.


“……음. 나가서 얘기하는 게 좋겠구나.”

“네. 아저씨.”

김정남은 상당한 동요를 보였다.

그의 사정을 아는 사람은 오로지 자기 자신뿐.

어설픈 위로는 통하지도 않을 터.

이수길의 말대로 자리를 비켜 주는 편이 북받친 감정을 추스르는 데에도 도움되리라.

* * *

같은 시각.

비범한 오크 셋은 가벼운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취익. 저는 계약자님께 가 보겠습니다. 건물이 소란스러운 게 여간 걱정이 아니군요.”

“그러시게. 동지.”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오늘은 기필코 이름을 받길 기원하겠네.”

“취익.”

이름 없는 오크가 자취를 감추고, 제르취와 카르파크는 헬스장과 제법 떨어진 거리에서 바깥의 위협에 대비하고 있었다.

수시로 폐허 도시에 접근하는 몬스터가 워낙 많았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의 경우는 위협도 아니었지만.

서걱.

“키에에에!”

중립 몬스터는 살려 두지 않는 것이 기본 방침.

당연하게도 평범한 고블린은 네임드 오크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멍청한 녀석. 로드의 위대함만 깨달아도 살 수 있었거늘.”

“본능이 앞서는 건 어쩔 수 없을 테지요.”

제르취와 카르파크에겐 기묘한 관계가 형성되어 있었다.

그것도 상당히 상하가 명확한.

“제르취. 나는 말이다. 아직도 믿을 수가 없어. 아직도…….”

“전부 제 불찰입니다…….”

“아무리 시련이었다 한들, 그 울창했던 숲이 황무지가 될 지경이라니…….”

“…….”

제르취, 그리고 카르파크.

처음부터 비슷한 분위기를 풍겼던 두 오크는 당연하게도 같은 일족이었다.

다만, 묘한 차이가 한가지 있었다.

“가여운 일족의 후예 제르취여…….”

“……예. 조상님.”

바로 활동했던 시간대의 차이가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카르파크는 한때 칠흑 숲에서 이름을 떨치던 추적자.

그리고 제르취는 과거의 칠흑 숲, 지금은 황무지 마을이 된 과거의 칠흑 숲에서 이름을 떨치던 오크였던 것.

“재차 말하지만, 로드를 따라서 손해 볼 건 없다.”

“…….”

“너는 느끼지 못하겠지만, 그분은 누구보다도 짙은 일족의 위엄을 품고 계셨다.”

“……허, 허나.”

카르파크가 제르취를 날카롭게 노려봤다.

“취, 취익.”

힘이라면 지금도 제르취가 우위였다.

실제로 싸워도 제르취가 이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둘에겐 모종의 서열이 있었다.

“네가 받은 저주가 그러하다. 그곳에 남겨진 나의 친우들 역시 너를 원망하겠지. 이해는 한다.”

“취익…….”

“하지만 로드께선 우리 일족을 위해 크라노돈까지 요리하셨지. 그게 무슨 의미인지는 너도 알 터.”

“……예.”

언제나 빳빳하던 과거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지금의 제르취는 겸손 그 자체.

“그뿐만이 아니다. 제르취. 로드와 함께 왔던 아이들이 우리 일족의 후예였다는 것도 충격이구나. 어마어마한 재능을 타고 났었지.”

“그, 그것은…….”

“시끄럽다. 이 정도면 운명이야. 받아들여야 해.”

“취익…….”

그때, 카르파크가 급격히 기척을 죽였다.

“로드께서 움직이신다.”

“……거리를 벌릴까요?”

“아니, 거리를 좁히도록 하지. 이곳엔 유능한 아군이 너무 많아. 지금부터라도 로드의 눈에 들어야 한다.”

* * *

주민성은 이수길을 통해 각종 계획들을 전달받았다.

건설 업체는 당장 내일부터 움직일 모양.

“그럼 게이트에 방문하는 사람들 인명부도 체크해야겠네요.”

“그렇지. 대부분이 일반인이니까.”

“능력자도 있긴 한가 보네요.”

“그렇지. 사냥보단 작업에 도움되는 능력자도 있으니까. 추가비용은 전부 현금으로 지급하기로 했다.”

주민성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드디어 본격적인 건설작업인가.’

김 씨와 박 씨에게서 추가 자료까지 건네받았다.

“아무래도 보통 건설작업과는 개념 자체가 다르다 보니 얘기가 길어졌어.”

“네 맞아요. 기초 작업만으로도 충분히 건물로 판정되겠다고 생각 중이거든요. 가장 의존해야 할 부분은 전선이었는데…….”

삭막한 폐허 도시와 어울리지 않는 화려한 조명 셋.

헬스장과 편의점 두 채는 자신의 존재감을 마음껏 뽐내고 있었다.

“그래. 나는 저게 무슨 조화인지 감도 잡히지 않는구나.”

“저도요…….”

“그래서 말인데, 이번 자료는 참고만 하는 게 좋을 것 같구나. 특히 전력 생산 설비는 아예 네 능력대로 건물화 시키는 것도 좋아 보이고.”

“건물화라…….”

건물 내부에 설치된 전력 생산 설비.

상상만으로도 어마어마한 효율이 느껴졌다.

그만큼 위험하기도 할 테고.

‘건물에서 생산되는 전기는 출력부터가 다르겠지. 대비를 어떻게 해야 할까.’

전기가 통하지 않는 물질.

당장 떠오르는 것은 고무였다.

‘고무로 건물을 만든다?’

정상인의 입장이라면 당연히 터무니없는 헛소리다.

문제는 이 생각을 하는 사람이 주민성이라는 사실.

‘가능은 할 것 같은데, 선호라면 좀 더 좋은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을까?’

건설 작업은 수많은 사람의 역할 분담으로 이루어지지, 주민성 혼자서 해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이수길 덕분에 작업자는 대부분 마련된 느낌이었지만, 역시 제대로 된 도면도 없이 구상해 둔 작업이다 보니 미흡한 점이 한둘이 아녔다.

“오늘은 이쯤에서 정리해야겠네요. 아, 조만간 몬스터 웨이브도 있을 예정입니다.”

“몬스터 웨이브?”

“네. 김정남 씨가 방문하신 목적이 그거라서요.”

사람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위험을 감수하고 일부러 몬스터를 일으킨다니 이해하기 힘든 부분도 있을 터.

“이 부분은 양보할 생각이에요. 저보다 게이트에 오래 다니시기도 했고, 지역 자체에 사연이 많으신 분이라.”

“끄응……. 위험하지만 않다면 상관없겠지.”

“네. 그 부분은 김정남 씨와 제대로 조율해서 최대한 안전하게 진행할 계획입니다.”

“그래. 네가 하는 일이니 알아서 잘 하겠지. 벌써 많은 이들의 신뢰를 받고 있더구나.”

“하하……. 어쩌다 보니…….”

“우연을 인연으로 만들어낸다. 절대 쉬운 일이 아니지. 앞으로도 많이 의지하마.”

“열심히 하겠습니다.”

아저씨들이 아지트로 돌아가고, 헬스장 근처엔 주민성과 판자촌 능력자들만이 남게 되었다.

“대장님. 몬스터 웨이브……. 괜찮을까요?”

송몽룡은 웨이브를 상당히 걱정하고 있었다.

가장 최근의 웨이브만 하더라도 오크 라이더였다.

갈수록 까다로운 몬스터가 튀어나왔으니 그럴 만도 하다.

“괜찮게끔 해야지. 여차하면 우리가 정남씨를 지원하는 방향으로 가야 해.”

주민성은 이번 웨이브에 대해 상당히 낙관적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몬스터 웨이브에서 나타나는 몬스터들의 전투력이 한 단계씩 높아진다고 가정했을 때, 주민성 측 인원들의 전투력은 열 단계 이상 높아졌기 때문이다.

“김 대위님. 실전 준비는 어떻습니까?”

“안 그래도 전날 교육 과정 주제가 사격술이었습니다. 지금이라면 다들 백발백중 특등사수라고 할 수 있죠.”

판자촌 능력자들에게선 압도적인 자신감이 느껴졌다.

총기를 받자마자 빠르게 적응한 모습도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이 정도면 와이번 떼거리가 나와도 문제없겠군.’

이것으로 기본적인 안전은 확보된 상황.

게다가 판자촌 능력자들은 호위 서비스를 이용 중이었기에 갑작스러운 기습에도 대비된 만능형 특수부대나 마찬가지였다.

“아주 좋네요. 앞으로도 여러분들만 믿겠습니다.”

“하하! 저희가 대장님을 믿는 거죠! 안 그런가 대원들!”

“맞습니다아!”

그렇게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누던 도중, 김정남이 헬스장에서 걸어 나왔다.

눈물 자국까지 있는 거로 보아 상당히 큰 충격을 받은 모양.

“정남 씨. 괜찮으세요?”

“……예.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생각이지만, 그곳의 계신 분들은 제가 알던 분들과는 좀 다르네요.”

“그런가요?”

“네. 운동 자세는 과거 그대로셨는데 아쉽네요.”

말이 통하지 않는다.

뭔가 이상했다.

‘내 말은 듣던데.’

헬스장의 영혼들은 주민성의 명령을 따랐다.

그렇다면 내릴 수 있는 결론은 하나뿐.

‘건물주 말만 듣나 보네.’

김정남의 아쉬움과는 달리, 주민성은 영혼들의 쓰임새 자체에 주목했다.

사람과의 관계는 나중에 생각할 문제였기 때문이다.

‘죽어 버리면 안타까울 기회조차 사라질 테니까.’

지금으로선 미래의 위협에 대비하는 것이 최우선이었다.

“정남씨. 웨이브는 미루는 게 어떠실지요. 헬스장이나 편의점 어디든 쓰셔도 좋습니다. 텐트도 제공해드릴게요.”

이는 김정남의 컨디션을 최고로 끌어올리기 위함이었다.

“……그래도 되겠습니까?”

“당연하죠. 이제 김정남 씨도 같은 배를 탔는데.”

뼈가 있는 질문이었다.

혹시라도 변심했을까 확인하기 위한.

“네. 헬스장을 쓰도록 하겠습니다. 땀이라도 좀 흘리면 기분도 돌아오겠죠. 저 헬스장이라면, 제 평생을 걸어도 만족할 수 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김정남이라는 새로운 에이스가 게이트의 일원이 되는 순간이었다.

“다른 분들도 들으셨죠? 웨이브는 미루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한가지 건의해도 되겠습니까? 대장님.”

“뭔가요?”

“새로운 식구도 생겼는데 회식 어떠신지요!”

“그 부분은 대위님이 자유롭게 하셔도 괜찮아요.”

“오오오……!”

“근데 저는 아직 할 일이 남아서……. 참여는 못 합니다. 죄송해요.”

“괜찮습니다. 저희가 대장님의 발목을 잡을 수는 없지요!”

“대신……. 이것을 제공하겠습니다.”

“오오오……!”

주민성이 제공한 것은 하위차원에서 활약했던 불판.

크라노돈의 육향이 은은히 배어 있다.

이에 당황한 사람은 다름 아닌 김정남이었다.

“고, 고칼로리는 곤란합니다!”

“에헤이! 정남 씨 왜 그러십니까? 칼로리는 언제든지 태워 버릴 수 있잖아요?”

“그러고 보니…….”

폐허 도시는 상식에서 다섯 걸음쯤은 벗어나 있었다.

김정남 같은 헬스인조차 얼마든지 타락해도 될 정도로.

“그렇다면 함께 달려 보겠습니다! 하하!”

“훌륭합니다! 크하하!”

훈훈한 분위기가 연출되고, 주민성은 조용히 헬스장에서 벗어났다.

“김정남 씨 덕분에 새로운 작전도 구상할 수 있겠군.”

김정남의 합류는 많은 의미가 있었다.

특히, 협회에서도 환영받는 인물이라는 게 컸다.

“각성에도 슬슬 관심을 가져 봐도 될 테고.”

게이트 식구들중엔 일반인들이 여전히 존재했다.

그중에서도 최선호와 봉춘향에게 가지는 기대가 상당했다.

“둘의 경우엔 갈수록 바빠질 테니.”

각성비라면 얼마든지 제공해 줄 수 있었다.

협회에게 받아낸 합의금이 있었으니까.

이들을 곧장 각성을 시키지 않은 이유는 협회의 뒷공작 걱정이 대표적이었다.

거기에 봉춘향과 최선호를 보호해 줄 인물의 부재도 컸다.

“협회 간부급 능력자가 붙어 버리면 곤란해.”

임진석과의 악연은 어느 정도 해소되었다.

하지만 협회 간부는 임진석뿐만이 아니었다.

여전히 주민성에게 적대적인 인물도 존재한다.

대표적인 예시로는 황태범.

때문에 주민성에겐 SS급 능력자와 맞붙어도 지지 않을 인물이 필요했다.

“정남 씨라면 맡겨도 괜찮겠지.”

김정남에겐 이미 크룩스를 단번에 제압해낸 전적이 있었다.

송몽룡의 보고로 그 이상의 전투력도 끄집어낼 수 있다는 사실 역시 확인했다.

판자촌 능력자들 역시 김정남에 대해 사소한 것까지 알려줄 터였다.

“후후.”

몬스터 웨이브는 이미 걱정거리에서 벗어난 지 오래.

주민성은 오히려 도시 사람들을 구워삶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기대되는군.”

주민성은 인천으로 향하고 있었다.

슬슬 시간이 되었기도 했고.

“…….”

하지만 주민성의 걸음은 길어지지 않았다.

주민성을 쫓아오는 몇몇 몬스터 때문이었다.

이들의 존재는 헬스장을 벗어날 때부터 파악하고 있었다.

“나와.”

“취, 취익.”

“로드를 뵙습니다. 췩!”

이들의 정체는 제르취와 카르파크.

호위 서비스는 신청한 적도 없는데 호위를 자처하는 몬스터들이었다.

“안 그래도 물어볼 거 많았는데. 둘이 뭐야? 사귀니?”

“취익! 헛소리 마라!”

“제르취…….”

“……취익.”

왜인지 제르취가 카르파크에게 잡힌 모양새였다.

“앉아도 돼? 오늘은 좀 편하게 가고 싶네.”

“예. 여기 앉으시면 됩니다.”

주민성은 비어 있는 다크울프에 그대로 올라탔다.

“그럼 알아서 수다들 떨어. 나는 생각할 게 많아서.”

“아, 알겠습니다.”

주민성은 본격적으로 능력자 협회 인천지부 공략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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