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시설 (1)
(102/250)
복지시설 (1)
(102/250)
복지시설 (1)
2022.03.13.
운동기구들이 제멋대로 작동되는 기현상.
주민성은 홀린 듯한 표정으로 벤치프레스에 접근했다.
“대장님. 위험해요.”
이에 위험함을 느꼈는지 순식간에 나타난 송몽룡이 주민성의 앞을 가로막아온다.
“땡큐.”
아직 초월은 진행 중인 상황.
당장의 내부 진입은 수많은 변수가 따를 것으로 추정된다.
쿠르르…….
무너졌던 벽들이 복구되며 라커룸이나 스피커 등의 자잘한 설비들도 나타났다.
“대장님은 보면 볼수록 대단한 것 같아요. 제 능력이 초라해 보일 정도로…….”
“그건 아냐. 시간 정지만큼 사기 능력은 없단다.”
“그, 그런가요.”
그럼에도 송몽룡의 표정엔 부러움이 역력했다.
중학생의 감성과 성인의 감성은 엄연히 다르니까.
츠츠츳!
“타일이 깔리고 있어요. 저쪽은 좀 다른데, 뭐지?”
“샤워실인가 본데?”
“헉……. 샤, 샤워! 이제 제대로 씻을 수 있는 거예요?”
송몽룡이 이렇게 기뻐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그동안은 주민성이 구해 온 간이 샤워 시설에 의지해 왔기 때문이다.
물론 학교에서도 씻을 수는 있었지만, 본격적인 샤워공간은 없었기에 이번 샤워실은 어마어마한 발견이라고 할 수 있었다.
“저기서 온수까지 나오면 끝장이겠군.”
“오, 온수…….”
송몽룡의 반응은 약과였다.
뒤에서 경계를 취하던 판자촌 능력자들 역시 헬스장에 나타난 샤워 시설에 홀린 듯 걸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직 위험합니다. 거리를 유지해 주세요.”
“아, 예!”
이쯤 되면 헛웃음이 절로 나올 정도였다.
그만큼 지금의 변화는 현실성이 없었으니까.
[헬스장의 초월이 완료되었습니다.]
흥미진진한 기다림이 끝나고, 초월이 완료되었다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김정남 씨. 어때요?”
“……예전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그럼 다 같이 들어가 봅시다.”
“오오…….”
스르릉.
유리 자동문이 열리고, 흥이 절로 나는 경쾌한 팝이 흘러나왔다.
“역시 헬스장은 이래야지…….”
“음? 지금 헬스장은 다른가요?”
“예. 무슨 힐링 어쩌니 하면서 근육이 편안해지는 음악들만 나왔었거든요. 게다가 요즘 약물은 부작용도 별로 없어서 근육도 간단하게 만들 수 있으니까요.”
“그렇군요.”
김정남은 요즘의 헬스장에 관해 설명했다.
대략 요약하자면, 지금의 헬스장은 근육 성장보단 미용에 초점이 맞춰진 느낌으로 눈앞의 헬스장처럼 활기찬 느낌이 전혀 없다고 한다.
“저는 이런 헬스장을……. 진심으로 바라 왔었습니다. S급으로 승급하면 제자도 받을 수 있으니…….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헬스장도 운영하려 했었고요.”
“운영에도 관심이 있으셨군요.”
“예. 능력자 생활이 벌이는 좋다지만, 지금의 게이트는 위협이라기보단 돈을 벌러 가는 곳이라는 이미지가 강하잖아요? 몬스터는 게이트를 벗어나지도 못하고.”
“…….”
“그래서인지 저는 싸움보단 운동에 더 보람을 느낍니다. 헬스장을 운영하면서 생기는 적자는 능력자 활동으로 메꿀 예정이었어요.”
김정남의 말에 주민성은 괜스레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다름 아닌 게이트를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 때문에.
지금의 주민성은 몬스터가 가진 모든 특징을 그대로 이어받은 상태.
심장에 마석이 있고, 게이트를 벗어날 수 없으며, 몬스터들에게도 치프나 로드 같은 몬스터의 호칭으로 불리고 있다.
‘적어도 게이트 밖으로만 자유롭게 다닐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물론 지금도 주민성은 게이트를 자유롭게 떠날 수 있다.
지형을 바꾸고 사람들의 이목을 끈다는 게 문제였지.
당연하겠지만 게이트 밖은 도시다.
그 말은 곧, 게이트를 벗어나는 순간 주민성이 받을 호칭이 인류의 적으로 규정된다는 것.
“……주민성 씨?”
“아, 듣고 있습니다. 다들 들어가시죠.”
주민성과 일행들은 그대로 헬스장 내부에 진입했다.
평수는 상당히 큰 편.
30년 전까지만 해도 상당히 알아주는 헬스장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부터가 운동 구역입니다.”
끼리릭!
철컹!
설정된 무게만 해도 200kg.
제멋대로 움직이는 운동기구가 주변을 압도하고 있었다.
“그런데 민성 씨. 저 벤치프레스는 왜 멋대로 움직이나요? 게다가 상당히 안정적인 움직임입니다.”
“…….”
이유는 주민성도 모른다.
직접 건물을 초월시킨 건 지금이 처음이니까.
물론 의심되는 건 있다.
[과거의 영혼이 되돌아옵니다.]
영혼의 존재.
이 메시지가 지금의 현상과 관련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과거의 영혼은 이 건물에 있어.’
보이지 않는 것.
그러나 존재하는 것.
주민성의 기억 속엔 조건에 부합하는 건물 한 가지가 있었다.
‘태양의 순례지.’
태양의 순례지 또한 보이지 않는 건물이었다.
그리고 그 건물을 볼 수 있게 만들었던 건.
‘콰트리취의 그림자.’
하위차원에서 얻었던 안대였다.
“잠시. 잠시만 제자리에서 기다려 주세요.”
“아, 알겠습니다.”
사람들을 제지한 주민성은 곧장 인벤토리에서 안대를 꺼냈다.
‘안대로도 답이 안 나온다면 헬스장은 위험해.’
주민성이 겪었던 영혼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인천에서 안산으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보았던 고대의 영혼들이 그랬다.
‘누가 봐도 위협적인 놈들뿐이었으니까.’
주민성은 조심스레 안대를 착용했다.
동시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들이 과거의 영혼이리라.
“좋습니다. 회원님……. 1회 남았습니다…….”
“후욱…….”
“한 번 더…….”
“후우욱…….”
“한 번 더…….”
“…….”
안대 너머로 보인 영혼들의 상태는 전혀 멀쩡해 보이지 않았다.
우락부락한 체형은 둘째치고, 같은 말을 끊임없이 반복하며 우울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것이 문제였다.
보기만 해도 저주받을 것 같은 분위기였다.
“한 번 더…….”
“한 번 더는 무슨.”
“허, 허억…….”
주민성은 그대로 과거의 영혼이 들고 있는 벤치프레스를 빼앗았다.
“허, 허억…….”
근력이라면 이미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상태였기에 200kg짜리 벤치프레스는 아령이나 마찬가지였다.
“기구를 함부로 사용하시면 곤란…….”
쾅!
“히, 히익…….”
돌아온 지 얼마 안 돼서일까.
영혼은 상황 파악을 못 하고 있었다.
“기구를 어떻게 사용하든, 여기는 내 건물입니다.”
“말도 안 돼…….”
“돼.”
건물의 소유권이 주민성으로 확정된 이상, 갑의 권리 역시 주민성에게만 있었다.
“운동에 한 맺힌 건 잘 알았으니까, 일단 전부 모여 보십쇼.”
“……대장님. 저희 말씀입니까?”
“아뇨. 여기 귀신들한테 말했어요.”
“귀, 귀신!”
과거의 영혼이라 하기엔 설명하기가 껄끄러웠던지라, 호칭은 귀신으로 정해졌다.
그편이 가장 직관적이고 명확했다.
음침하기도 했고.
“운동기구 전부 압수해버리기 전에 움직입시다.”
“히, 히이이…….”
우락부락한 근육 귀신들이 질겁하는 모습은 주민성의 눈살을 절로 찌푸리게 했다.
‘하필 땀방울까지 전부 표현하는 귀신이라니.’
건물주 능력의 보정 덕분이었을까.
귀신들은 생각보다 말을 잘 들었다.
“여러분이 전부입니까?”
“예…….”
귀신은 총 스물.
그중 트레이너로 보이는 귀신이 셋이었다.
나머지는 전부 회원일 터.
주민성은 귀신들의 가능성을 떠올렸다.
‘보이지는 않는데 물리력은 행사할 수 있는 영혼이라.’
잘만 써먹는다면 전투에도 상당히 유용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문제는 영혼이 건물 밖으로 나갈 수 있느냐에 대한 문제.
“건물 밖으로 나갈 수 있습니까?”
“그, 그것만은 제발…….”
가능은 하나 거부감이 상당히 큰 모양.
그래도 당장은 헬스장을 지키는 수호병으로 써먹을 수 있어 보인다.
“여기서 계속 있을 방법은 간단합니다.”
“무엇입니까…….”
“이곳에 방문하는 고객들을 우선으로 대하세요. 간단히 말해서 손님은 왕.”
“…….”
주민성은 안대를 헬스장 전용으로 써먹을 예정이었다.
당장 헬스장 외엔 쓰일 구석도 없기도 하고.
이렇게 까다로운 방식을 취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수익성 있는 건물이 없습니다.]
[이용자의 평가가 부족합니다.]
전부 등급 재판정을 위한 준비였다.
헬스장이라면 건물 이용자들의 평가를 받을 수 있고, 수익까지 창출해낼 수 있을 테니까.
“……손님은 왕. 손님을 위한 트레이닝…….”
“물론, 트레이너가 아닌 분들도 손님에겐 극진해야합니다.”
“운동 도우미…….”
“…….”
어감이 조금 묘했지만, 결과적으로 귀신들은 주민성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이젠 이들의 존재를 보여 줄 때.
“대위님부터 안대 한 번씩 써 보세요.”
“아, 예.”
김정남의 차례는 자연히 마지막이었다.
귀신 중에 아는 얼굴도 있을 테니까.
“지, 진짜 귀신이었어…….”
“헬스장이라 그런지 근육들이 엄청나네요…….”
판자촌 능력자들이 안대를 돌려 보는 사이, 주민성은 계속해서 주문을 이어 나갔다.
“운동은 최대한 모여서 해 주세요. 손님들께 방해되지 않는 수준으로.”
대답은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대장님. 알겠답니다.”
주민성의 귀는 헬스장 어디에나 있었다.
앞으로도 안대 착용자는 그렇게 주민성의 귀를 대신할 터.
“안대 넘기신 분은 이쪽으로 오십시오.”
“예.”
이제부터 헬스장의 유용성을 보여 줄 시간이었다.
주민성이 주목한 것은 근력 운동과 달리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운동.
바로 러닝이었다.
“이 꽃은 활력꽃이라고 합니다. 향을 맡으면 지치기 힘들 정도로 체력이 샘솟습니다.”
“오오…….”
삐빅.
러닝머신의 속도가 20으로 맞춰졌다.
“향을 맡았다? 그럼 바로 뛰세요. 당연하겠지만 능력은 쓰지 말아야겠죠. 활력꽃은 정신력을 회복시키지 않으니까.”
주민성이 헬스장에 바라는 건 순수한 신체 단련이었다.
“먼저 뛰어 보실 분?”
판자촌 능력자들이 저마다 손을 들려는 사이, 자동문이 열렸다.
“제, 제가 뛰고 싶습니다! 제발!”
“저도요! 꼭 부탁드립니다!”
“음?”
새로 입장한 사람들의 정체는 이수길을 비롯한 인력소 식구들이었다.
그리고 주민성에게 간곡히 청하는 사람은 한때 일반인 구역에서 가짜 인부 역할을 했던 둘.
알고 있는 건 많은데 일반인이라 활용도가 딱히 없었던 이들이었다.
“눈치 그만 보고 싶습니다…….”
“여기서 단련만 할 수 있다면……. 뭐든 해 보겠습니다.”
생각해 보니 그랬다.
주민성은 이들에게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았다.
애초에 첫 만남부터가 나빴다.
그나마 둘 다 D급 능력자는 되었으니 그저 아저씨들의 조수로 일하라고만 했을 뿐.
그래서인지 눈앞의 남자들에게선 지독한 간절함이 느껴졌다.
“속도 20. 뛸 수 있겠습니까?”
“예. 쓰러질 때까지 뛰겠습니다.”
“해보세요. 그럼.”
주민성은 그대로 활력꽃을 건넸다.
그리고 이어진 러닝 감상회.
타다다다다!
“이, 이번에도 기적을 펼치셨어…….”
“무한 단련……. 오오오…….”
“근육도 전혀 무리 없어 보여.”
예상대로였다.
새로이 초월시킨 이 헬스장은 운동의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민성아. 이 시설, 우리도 쓸 수 있는 거야?”
“물론이죠. 아저씨.”
“그동안 너무 텐트에 의존하긴 했지. 건강을 위해서라도 자주 와야겠어.”
“아저씨들은 전부 무료니까 얼마든지 쓰세요.”
“됐다. 이런 헬스장이면 연간 회원권을 끊어도 전혀 아깝지 않지.”
차마 주민성은 헬스장 이용료에 대해 답하지 못했다.
‘연간 이용료면 엄청 비쌀 텐데.’
텐트도, 아파트도 아니고 무려 초월급 헬스장이다.
이용료는 절대 저렴하지 않을 터.
‘뭐 어때. 임금을 퍼 주면 되겠지.’
인력소 식구들은 최선호와 더불어 주민성의 또 다른 핵심 사업을 이끄는 이들이었다.
이들의 금전적인 여유는 반드시 보장해줘야 했다.
어차피 이곳에서 흐르는 돈은 전부 주민성의 것이니까.
‘이것이 경제 순환인가. 크으.’
주민성은 상큼한 미소를 지으며 인력소 식구들을 환영했다.
“그보다, 운동만 하려고 오신 건 아니죠?”
“당연하지. 결과 보고하러 왔수다. 주 사장.”
“하하……. 편히 말씀하셔요. 이사님들.”
“녀석. 비행기 태우긴.”
그 순간, 김정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대를 건네받은 모양.
“현수 삼촌! 저예요! 정남이!”
하지만 김정남의 표정에 반가움은 지극히 적었다.
오히려 당황스러움이 가득했다.
“진호 삼촌! 동석 삼촌! 저 못 알아보겠어요?”
“…….”
왜인지 과거의 영혼들은 김정남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