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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골손님 (3) (101/250)


단골손님 (3)
2022.03.12.


“아니…….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는 겁니까?”

“예.”

주민성의 확고한 대답에 김정남이 움츠러들었다.

“뭔가 범상치 않은 능력이라고 생각하긴 했다만……. 무려 30일입니다. 제가 죄송해서 안 돼요.”

“아뇨. 김정남 씨는 그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자신을 낮추지 마세요.”

사실이었다.

머리 한 개쯤 더 나온 수준조차 아니었다.

김정남은 여태껏 만난 A급 능력자 중에서도 유독 특출났다.

“다 먹었으면 갑시다. 보여 드릴 테니. 말하는 김에 더하자면, 그 치킨도 앞으로 평생 먹을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

“…….”

혜택으로만 가득한 제안에 상당한 동요를 느꼈는지 김정남의 광배근이 움찔거렸다.

딸랑딸랑.

그렇게 주민성과 김정남, 그리고 수많은 능력자 일행들은 유유히 웨이브 비석으로 향했다.

“몬스터들이……. 전부 공격하지 않는군요.”

“네. 공격하는 몬스터는 전부 죽이니까요.”

게이트임에도 게이트 같지 않은 풍경.

도시라고 착각할 정도로 쾌적한 환경에 김정남의 입은 다물어질 줄 몰랐다.

“분명 게이트인데, 이상하리만큼 마음이 안정됩니다. 지금 컨디션이라면 승급 시험조차 문제 되지 않을 만큼.”

편의점에서의 건물 부가효과를 받은 덕분이었을까.

김정남의 근육은 상당한 무리를 해 왔음에도 최상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승급을 준비 중이셨습니까?”

“예. 계속 승급해 왔죠. 처음엔 C급이었거든요.”

“와…….”

말이 C급부터 A급까지였지, 실제로 그만한 등 급상승을 이뤄낸 능력자는 세계를 통틀어도 손에 꼽을 수준.

신체 강화 능력자들의 단련법은 지옥과도 같은 인내의 연속인 것으로 유명했다.

‘절대 놓쳐선 안 될 사람이다.’

아직 김정남의 실전 능력은 검증되지 않은 상황.

그럼에도 김정남의 가치는 끝없이 치솟고 있었다.

그만큼 승급 능력자는 독하기로 유명하다.

몸값 역시 동급 능력자와 비교하면 배로 비싸고.

‘탱커는 필수야.’

주민성 주변엔 마땅한 탱커가 없었다.

물론 판자촌 능력자 중에서 탱킹 관련 능력자가 몇 존재하지만, 그들은 등급도 부족할뿐더러 지금은 교육과정에 힘쓸 시기.

지금으로선 제르취가 유일한 탱커라고 할 수 있었다.

그것도 치명적인 약점이 존재하는 사망형 탱커.

‘제르취가 죽어 있는 시간 동안 버텨 줄 사람이 필요해.’

이 부분에 있어 김정남은 매우 믿음직스러웠다.

크룩스조차 쉽게 제압할 수 있는 A급 신체 강화 능력자.

게다가 단련하기에 따라 등급상승조차 노릴 수 있는 포텐까지.

주민성의 계획에 아주 큰 부분을 차지할 수 있는 인재가 바로 김정남이었다.

“저 건물은 꽃집입니다. 아까 말해 줬던 꽃을 재배하는 장소에요.”

“오오오…….”

이미 김정남에겐 활력꽃 한 송이가 쥐어져 있었다.

효능은 직접 체감하고 있을 테니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 없으리라.

그렇게 일행은 웨이브 비석 앞에 도착했다.

이곳에선 한때 제르취를 포함한 오크 라이더와의 격전, 그리고 수많은 텐트가 설치되었던 흔적으로 가득했다.

“……지형이 많이 변했군요.”

“네. 그리고 아직 정남 씨에게 말씀드리지 않은 사실이 있습니다.”

“……예?”

이젠 사실 한 가지를 고백할 순간이었다.

김정남의 목적이 몬스터 웨이브로 밝혀진 이상, 반드시 말해야 했다.

“지금의 비석은, 다른 몬스터가 나타날 가능성이 있습니다.”

“……다른 몬스터요?”

“예. 원래는 고블린과 데빌도그였지만, 최근 일으켰던 웨이브에선 오크 라이더가 나타났었거든요.”

“…….”

김정남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비석과 주민성을 번갈아 볼뿐이었다.

“오크 라이더라면……. 인천의……?”

“예.”

국내 능력자라면 인천의 오크 라이더를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만큼 인천 게이트는 특이하고 위험한 게이트였다.

“여담이지만, 이 게이트는 인천의 게이트와 이어져 있습니다.”

“……예에?”

김정남이 놀라는 것도 당연했다.

안산과 인천은 이어져 있는 도시가 아니었으니까.

“인천 게이트의 중간 보스도 근처에 있습니다. 처음부터 거리를 두고 우리를 쫓아오고 있었어요.”

“……맙소사.”

물론 제르취와 카르파크에게 볼일은 나중이었다.

굳이 불러서 자랑할 필요도 없었고, 지금은 헬스장의 복구가 우선이었다.

“제가 비석에 대해 말씀드린 이유는, 순서를 명확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확실히 다른 몬스터라면 저 역시 준비가 필요합니다. 알려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게이트를 탐사중인 능력자에게 정보만큼 귀한 건 없었다.

지금의 정보 또한, 김정남의 목숨을 구할 수도 있는 정보.

빚은 최대한 많이 지워 두는 게 좋았다.

“헬스장. 저 건물 맞습니까?”

주민성은 ‘보람 헬스’라는 간판이 너덜거리는 폐건물 하나를 가리켰다.

“……네. 맞습니다. 일부러 외면하던 간판이었는데, 아직도 떨어지지 않고 그대로네요…….”

“그렇군요.”

확인을 받은 이상 머뭇거릴 틈은 없었다.

주민성은 곧장 헬스장으로 달렸다.

“주, 주민성 씨?”

갑작스러운 기행에 놀란 김정남과 다르게 다른 이들의 반응은 평범했다.

저마다 텐트를 마스크처럼 올려 쓰고 귀를 막아 다음 일어날 일에 대비하기 시작한 것.

“흐읍!”

콰광!

쿠르르르!

진심으로 도약해 날린 주민성의 발차기는 그대로 폐건물의 벽을 무너뜨렸다.

“아아……. 추억의 헬스장이……! 갑자기 무슨 짓입니까!”

주민성은 상쾌하게 미소 지으며 김정남에게 답했다.

“추억을 되돌리고 있습니다.”

“미, 미친 소리! 당신은 제 추억을 부수고 있습니다!”

철컥!

김정남의 분노에 판자촌 능력자들은 말없이 총기를 겨눠왔다.

“다 김정남 씨 잘되라고 하는 일입니다.”

“대장님의 뜻은 따르세요.”

“일단 결과부터 보십시오.”

“처음만 지나면 괜찮아져요. 견디세요.”

이들은 이미 광신도나 다름없었다.

그들을 구해낸 사람은 다름 아닌 주민성이었으니까.

심지어 호위 서비스에 교육 과정까지 선물 받았으니 앞으로도 주민성의 위상은 더욱 치솟을 예정이었다.

물론 그 사정을 모르는 김정남은 미쳐 버릴 지경이었다.

“아아……. 아저씨들의 땀이 서린 헬스장이……”

쾅!

쿠르르르!

주민성은 그 와중에도 헬스장 구석구석 발을 쑤셔 넣으며 건물 소유 각을 재고 있었다.

“흠. 아직도 아닌가.”

이번 헬스장도 완파 직전까지는 가야 소유가 가능해질 모양.

생각보다 고등급 건물 소유는 상당히 번거로웠다.

“정남 씨. 효율적인 체술 좀 알려 주시면 안 됩니까?”

“……싫습니다. 절대.”

“그럼 다음에 배울게요.”

김정남의 경계가 크게 올라간 상태였지만, 주민성은 아랑곳하지 않고 행동을 재개했다.

우지직!

대롱거리던 간판마저 단숨에 뜯겨 바닥에 팽개쳐졌다.

괜히 어중간하게 초월시켰다가 간판에 간판이 끼어 버리는 불상사를 막기 위함이었다.

털그렁!

“아아…….”

그런 모습에 봉춘향이 다가와 김정남을 위로했다.

“과거에 얽매이지 마십시오.”

“……하지만!”

콰르르르!

[소유자가 없는 건물에 입장하였습니다.]

[소유권을 주민성 님으로 변경합니다.]

[보유 건물 목록에 헬스장(완파 직전)가 추가됩니다.]

[건물의 상태가 양호하지 않습니다.]

[부가 능력이 발현되지 않습니다.]

“어. 됐다.”

주민성은 곧장 발길질을 멈추고 헬스장 내부를 살폈다.

이번은 보수 과정을 생략한 건물 초월.

얼마만큼의 정신력을 소모할지 모를 일이었기에 더욱 신중해야 했다.

‘최대한 내부를 정리해 둘 필요가 있겠군.’

건물 내부 설비는 이미 과거의 약탈자들에게 노획당한 상태.

잡다한 전선이나 돈 안 되는 물건들만이 남아 있었다.

“김정남 씨!”

“……뭡니까.”

“챙길 물건 있으면 챙기세요.”

“지금 저보고 약탈까지 하라는 겁니까?”

“아뇨. 이제부터 복구할 거니까 챙길 물건 있으면 빼라는 말이에요.”

김정남의 표정은 황당하게 변했다.

“복구……. 해 주려고 했습니까?”

“저는 했던 말 취소하는 사람이 아닌데요.”

“그럼 대체 왜 건물을…….”

“제가 FFF급이라 멀쩡한 건물은 복구 못 해요.”

“…….”

등급까지 들먹인 마당에 김정남이 내세울 논리는 없었다.

능력이 그렇다는데 어쩔 수 없는 것.

“김정남 씨는 흥분을 좀 가라앉힐 필요가 있습니다. 평소에도요.”

“……죄송합니다.”

이 모든 과정은 김정남의 성향을 파악하기 위함이었다.

어차피 결과는 같으니까.

“오세요.”

“예…….”

그제야 판자촌 능력자들 역시 총기를 내리며 미소지었다.

“보셨습니까. 이것이 대장님의 선구안입니다.”

“오늘의 위업도 메모해야겠어요.”

“내일 교육과정에 참고해야겠군.”

주민성은 머쓱한 표정으로 헬스장 내부를 기웃거리며 먼지를 쓸어냈다.

“S급은 되고 돌아오려 했던 헬스장인데…….”

“장담컨대, 다음 승급은 간단할 겁니다.”

“……그 정도입니까.”

“네. 여긴 이제 평범한 헬스장이 아닐 테니까요.”

주민성은 그대로 뭉쳐진 먼지를 걷어찼다.

파밧!

[미세먼지가 수납됩니다.]

[미세먼지가 수납됩니다.]

……

“청소는 제가 할 테니, 김정남 씨는 물건부터 챙기세요.”

“아, 예!”

김정남이 챙길 물건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이거면 되겠군요.”

“음?”

김정남이 집은 물건은 색 바랜 사진 한 장이었다.

이마저도 먼지에 덮여 형체를 제대로 알 수 없을 정도.

“여기 관장님께선 헬스 커뮤니티를 운영하고 계셨습니다. 이 사진이라면, 당시의 회원님들 모습이 남아있겠죠.”

“이 상태라면 확인하기 힘들 텐데요.”

“복구할 수 있습니다. A급 능력자가 되니 협회에서 상당히 많은 업체를 소개해 주더라고요. 덕분에 관련 능력자도 알게 됐어요.”

“……A급부터군요.”

등급제 혜택은 주민성의 생각보다 더욱 깊고 은밀하게 스며들어 있던 모양이다.

‘전투와 관련 없는 희귀 능력자들은 전부 협회의 손아귀에 있는 걸까.’

주민성은 씁쓸한 표정으로 김정남과 함께 건물을 빠져나왔다.

이젠 진짜 건물을 초월시킬 시간.

“헬스장은 편의점과 같은 방식으로 복구될 겁니다. 다만, 기괴한 탑과 연결되었다거나 하는 일은 없을 거예요.”

“……예?”

“아무튼 그렇습니다. 봐야 알 거예요.”

편의점의 초월은 잔해 탑을 쌓아 올려 받은 특전이라고 할 수 있었다.

반면, 이번에 할 것은 새로 얻은 능력인 건물 초월.

‘변수는 차마 말해 드릴 수가 없어서.’

주민성이 유일하게 두려워하는 것 한가지는 과부하로 인한 실신이었다.

아무런 조건 없이 받는 최초 특전과는 다르다.

직접 사용하는 능력은 주민성이라는 인간 자체를 소모하는 느낌이었기에 체감 자체가 틀렸으니까.

“후우.”

주민성은 눈을 감고 헬스장을 떠올렸다.

헬스장의 황량한 모습이 떠올랐다.

주민성은 그대로 집중을 끌어올려 말했다.

“건물 초월.”

온몸에 남은 기운이 쑥 빠져나가는 듯한 감각.

능력이 발동되었다는 증거였다.

[헬스장이 초월합니다.]

[건물의 종합 성능이 5배 강화됩니다.]

[건물이 완전 보수됩니다.]

[재사용까지 남은 시간: 30일.]

쿠르르르!

“오오오……!”

판자촌 능력자들 또한 지금의 광경에 감탄했다.

쿠구구구!

건물 초월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웅장한 변화를 시작하고 있었다.

뚫린 벽은 순식간에 메워지고, 전선들 역시 제멋대로 움직이며 이어졌다.

그렇게 반쯤 복구되었을 즈음.

새로운 메시지가 떠올랐다.

[건물의 상태가 복구되었습니다.]

[건물 부가효과가 적용됩니다.]

[건물 고유 능력이 발현됩니다.]

[근육 성장 효율이 급격히 상승합니다.]

[과거의 영혼이 되돌아옵니다.]

“……음?”

근육 성장은 둘째치고, 익숙한 문구가 주민성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는 하위차원에서 한때 경험했던 고대의 영혼과도 일치했다.

“설마…….”

주민성은 비틀거리며 헬스장으로 천천히 걸었다.

“대, 대장님!”

“괜찮습니다. 근처만 갈게요.”

헬스장은 여전히 복구에 한창이었다.

수많은 헬스 기구는 물론, 전신거울까지 생성되는 과정은 다시 봐도 믿기지 않는다.

하지만 여기서 의아한 점 한가지.

[과거의 영혼이 되돌아옵니다.]

고대의 영혼과 달리, 헬스장에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목소리도, 형체도.

‘아직 돌아오는 중? 아니면 뭐지?’

그때, 벤치 프레스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끼릭.

“음?”

그뿐만이 아니었다.

가만히 있던 러닝머신도 가동되기 시작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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