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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골손님 (2) (100/250)


단골손님 (2)
2022.03.11.


한편, 주민성은 어두컴컴한 공간에서 김정남의 모든 행동을 관찰하고 있었다.

[건물 관조 종료까지 5분 남았습니다.]

갑작스러운 방문자의 등장으로 하던 일을 멈추고 대비했던 것.

“……뭐 하는 사람이지?”

첫 대응은 크룩스의 역할이었다.

최대한 사람을 보이지 않고 김정남의 목적을 알아낸다면 그거야말로 최고였으니.

이는 멀쩡한 상태의 고등급 능력자를 상대해 본 적 없었기에 나온 판단이었다.

차크취와 가르취 둘이서 인천의 A급 능력자를 제압해냈기도 했고.

따라서 크룩스와 고블린 라이더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A급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강한 사람인데.”

결과적으로 첫 대응은 오판이었다.

주민성은 게이트 점유율을 주기적으로 사용해 크룩스의 상태를 계속해서 파악하고 있었다.

[4위. 고블린 첩보 대장 크룩스(위태)]

이것 하나만으로 지원 동기는 충분했다.

그대로 내버려 뒀다면 크룩스의 사망, 그리고 주민성의 호출을 요구하는 메시지가 떠오를 터였다.

“그래도 다행이야.”

급히 크룩스를 구원하기 위해 보낸 사람은 송몽룡.

그리고 안내역으로 봉춘향을 붙였다.

이는 대화를 통해 설득하는 노림수였다.

둘의 유약해 보이는 외모는 상대의 전투 의지를 상실시킬 수 있었을 테니까.

“그마저도 안 통하면 죽여야 했는데.”

다음은 없었다.

아이들까지 죽이려 하는 능력자는 주민성이 허용할 수 있는 범위가 아니었으니까.

토벌 작전의 선봉엔 송몽룡과 멀찍이 거리를 두고 있는 오크 셋이 대기 중인 상태였다.

당연하겠지만, 전부 평범한 오크는 아니다.

송몽룡과의 호위 서비스를 통해 시간 정지 능력을 공유하는 이름 모를 오크 하나.

그리고 제르취와 카르파크였으니까.

오크들은 어떤 사건을 계기로 도원결의를 맺은 상태.

자세한 내용은 들어봐야겠지만, 당장은 크룩스의 조율로 주민성의 협조 요청에 응해 왔으니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좋은 게 좋은 거니까.”

염려하던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으니 더 생각할 필요는 없었다.

심지어 지금은 주민성의 영향 범위 안에 진입한 상태.

김정남은 경건한 자세로 치킨을 영접하고 있었다.

“트, 특선 닭가슴살이 내 품에…….”

“키엑.”

블링이는 대체 뭘 배웠는지 치킨 명인이라도 되는 양 근엄함을 뿜어내고 있었다.

고작 조리 실습 30분의 성과였다.

“으흑…….”

이런 하찮은 숙련도에도 불구하고 김정남은 눈물까지 흘리며 닭가슴살을 씹고 있었다.

미각 근육조차 키울 수 있는 걸까.

“……제가 찾던 그 맛입니다.”

“…….”

봉춘향은 이 광경을 보기조차 부끄러웠는지 고개를 돌려 김정남을 외면했다.

“퍽퍽 살은 나도 좀 그런데…….”

물론 주민성 역시 닭다리파였기에 그의 눈물을 공감하지 못했다.

[건물 관조 종료까지 1분 남았습니다.]

이젠 주민성도 김정남을 마주할 시간.

“살살 꼬드겨 봐야겠군. 나쁜 사람 같지도 않고.”

주민성은 의식을 집중해 편의점 창고에 몰입했다.

괜히 김정남 근처에서 튀어나와 봉변당할 이유는 없었으니까.

[건물 관조가 종료됩니다.]

“후우. 단백질 쉐이크가 있었던가.”

왠지 제로칼로리 콜라보단 단백질 쉐이크를 건네주는 게 더욱 좋은 평가를 받을 거라는 판단이었다.

물론 닭가슴살과 쉐이크는 전혀 공감할 수 없는 맛이었지만.

“이걸 파네.”

단백질 쉐이크를 챙긴 주민성은 그대로 창고를 빠져나왔다.

“으음?”

괜히 A급 능력자가 아니었는지 김정남은 주민성의 존재를 진작에 파악한 상태.

바짝 올라온 근육이 위협적이었다.

“안녕하십니까.”

“……당신이 대장입니까?”

생각보다 심각한 경계에 주민성은 거리를 좁히지 않고 신선칸으로 향했다.

“그건 둘째치고, 목 막히지 않아요?”

“…….”

저지방 우유까지 챙긴 주민성은 손수 단백질 쉐이크를 제조했다.

“이거 초코맛인데.”

“……흐읍.”

아무리 닭가슴살을 기합으로 먹어치운다 한들, 목이 막히지 않을 리 없었다.

“마시면서 얘기합시다.”

주민성은 그대로 김정남에게 천천히 걸어갔다.

“…….”

동시에, 편의점 주변의 인기척도 가까워졌다.

특수 총기로 무장한 판자촌 능력자들까지 합류한 모양.

“싸우고 싶지 않아요.”

“…….”

주민성은 차분하게 단백질 쉐이크를 내밀었다.

이것으로 선택권은 김정남에게 있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김정남은 흔들리는 눈빛으로 닭가슴살을 씹어 삼켰다.

“당신. 뭐 하는 사람입니까. 성인도 아니고 아이들을 게이트로 몰아넣다니.”

뭔가 할 말이 많아 보이는 봉춘향을 제지한 주민성이 친절히 답했다.

“아이들을 게이트로 몰아넣은 상대는 내가 아닙니다. 협회지.”

“……협회?”

“김정남 씨도 저에 대해 알 겁니다. 주민성이라고.”

김정남의 눈빛이 더욱 세차게 흔들렸다.

“……뉴스에서 본 얼굴과 다릅니다만.”

“……주민성 맞습니다.”

“자세히 보니 비슷한 것 같기도 하군요.”

조금 맥이 빠졌지만, 오히려 좋았다.

부드러워진 분위기는 대화에 도움이 된다.

“김정남 씨를 제외한 이곳의 모든 이들이 증인이니, 천천히 알아보시죠. 김 대위님도 들어오시고요.”

딸랑딸랑.

경쾌한 종소리와 함께, 한 무리 능력자들이 편의점에 진입했다.

“대장님. 괜찮으십니까?”

“예. 이분은 좋은 분 같습니다.”

물론 판자촌 능력자들의 존재 역시 김정남은 예상했던 모양이다.

“…….”

“저에 대해 아신다면 더 설명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이 아는 주민성은 건물주 능력자니까.”

그제야 눈치챈 걸까.

김정남의 근육이 두 배로 커지기 시작했다.

“편의점은 제 능력으로 복원했어요. 건물주가 아니면 대체 누가 이런 짓을 할까요?”

“그, 그러고 보니…….”

30년 전의 편의점.

그리고 30년 전의 치킨.

아무리 기술이 좋아졌다 한들, 추억의 맛은 복원할 수 있는 차원이 아니었다.

그리고 김정남은 추억의 맛을 생생히 접하는 중이고.

“맛있게 드시고. 볼일 보세요.”

“…….”

“아까 얼마까지 부르셨죠? 천만 원?”

“……예. 돈은 내겠습니다.”

공짜 치킨 하나에 쉐이크와 우유를 더해도 가격은 5만원을 넘지 않는다.

어마어마한 이득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주민성의 목적은 돈이 전부가 아니었다.

“돈보단, 우리와 함께할 생각 없으십니까?”

“아뇨. 돈을 내겠습니다. 이곳에서 겪었던 모든 일 역시 발설하지 않을 겁니다. 그게 약속이니까.”

“흐음.”

김정남은 예상보다 더 완고했다.

그렇다고 이대로 보낼 수도 없는 일.

‘이 남자가 원하는 걸 알아내야 해.’

눈앞의 남자는 힘으로도, 돈으로도 제압하기 껄끄러운 상대에 속했다.

이럴 땐 약점을 찾아가는 것이 최선이다.

“알겠습니다. 일단 쉐이크부터 드세요.”

“……예. 계산은 확실히 하겠습니다.”

김정남은 그제야 쉐이크를 들이키기 시작했다.

보기만 해도 불편함이 사라질 정도의 시원한 목 넘김이었다.

“크으으! 아버지 몰래 먹던 그 맛이야!”

“…….”

“크흠! 실례했습니다.”

약점 한 가지는 밝혀졌다.

김정남은 추억의 맛에 약했다.

“블링. 하나 더.”

“얼마든지 합지요. 키히.”

쓸데없이 무게 잡는 것만 제외하면 상당히 듬직한 모습이었다.

“원하는 만큼 드세요. 필요한 물건 있으시면 뭐든 가져가셔도 좋습니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주민성은 철저하게 김정남을 공략해 나갔다.

“근육이 범상치 않으신데, 운동 엄청 좋아하시나 봐요.”

“물론입니다! 각성 전부터 좋아했죠.”

근육이라면 주민성도 만만치 않았다.

그것도 운동 없이 노가다로만 다져진 순도 높은 근육이.

“오오. 저는 실전 근육에 관심이 많거든요. 한번 봐주시겠어요?”

“운동과 관련된 대화라면 얼마든지 환영입니다!”

주민성은 그대로 옷을 걷어 맨몸을 공개했다.

“이, 이건! 상당히 효율적입니다! 정확히 힘을 내는데 필요한 부분만 단련되었군요! 요즘 같은 세상에서 보기 힘든 근육인데!”

“그런가요?”

“예! 단순 쇠질로는 절대 만들지 못하는 형태지요! 만져 봐도 되겠습니까?”

“얼마든지요.”

주민성의 근육은 노가다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근육이었다.

단지, 김정남이 그런 세계를 겪지 않았을 뿐.

“허어! 이 정도면 타고난 부분도 상당히 있어 보입니다. 오오……!”

“……그, 그렇습니까.”

“벌크업 조금만 더 하면 훨씬 좋을 것 같은데요?”

김정남의 눈이 초롱초롱하게 빛났다.

흡사 피지컬 재능 넘치는 회원을 본 것 같은 트레이너의 눈빛이었다.

“삼대 측정 아직 안 해 보셨죠?”

“아, 네…….”

“크으! 헬스장만 있었어도……!”

“……헬스장요?”

“예……. 아마 게이트를 나가지 못하는 사정이 있으실 거라…….”

순간 주민성의 머릿속에 큰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헬스장. 초월. 활력꽃. 건물 부가효과.’

김정남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기 시작했다.

그 정도로 주민성의 머릿속은 정신없이 자신의 능력을 종합해 나가고 있었다.

‘헬스장은 아직 소유하지 못한 건물인데.’

희망이 없는 건 아니었다.

보유 건물 목록에 헬스장이 없을 뿐, 폐허 도시엔 헬스장 간판이 너덜거리는 폐건물이 존재했다.

‘중급 이상 건물이었겠지.’

등급이 높다고 소유가 금지된 것은 아니었다.

건물을 일부러 파괴해 등급을 낮추는 방법도 있었으니까.

‘헬스장은 그렇게 챙기면 되고.’

주민성이 새로 얻은 능력 중엔 건물 초월 능력이 있었다.

그리고 현재 보유 중인 초월 건물은 두 개.

전부 편의점이었다.

‘건물 초월 재사용 대기 시간이 아니야.’

현재 30일의 재사용 대기 시간이 걸려 있는 능력은 소유물 복제였다.

건물 초월이 아니었다.

즉, 주민성에겐 하나의 건물을 추가로 초월시킬 수 있는 권한이 있는 것이었다.

‘30년 전의 헬스장을 얻는다……?’

온몸에 소름이 돋는 기분이었다.

건물 초월을 이용해 복구시킨 헬스장은 김정남의 약점인 추억, 그리고 흥미인 헬스와 완벽히 부합하기 때문이었다.

‘거기다 부가효과와 활력꽃이 함께한다면?’

인간 자체를 회복시키는 건물 부가효과.

그리고 끝없이 체력을 회복시키는 활력꽃.

‘미친 조합이다. 이거라면 무조건 가능해.’

확신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김정남 씨!”

“……예에?”

주민성은 그대로 김정남의 손을 덥석 붙잡았다.

“무, 무슨 일입니까? 갑자기?”

“헬스장! 30년 전의 헬스장!”

“일단 진정부터 하십시오! 그보다 무슨 말입니까? 30년 전의 헬스장이요?”

“예! 추억의 헬스장입니다!”

주민성의 눈빛엔 탐욕이 가득했다.

“헬스장! 만들어 드립니다!”

“그, 그래도 전…….”

“회원도 얼마든 밀어 드립니다!”

“저 일단은 능력자고요……. 조금만 진정을…….”

주민성은 아랑곳하지 않고 의견을 관철했다.

“몸 상태가 무한히 회복되는 헬스장이 생긴다면?”

“……회복량에 따라 차이가 있겠죠. 그보다 그런 헬스장이 있다면 A급인 저는 들어가지도 못할 겁니다.”

김정남의 말은 사실이었다.

더욱 위 등급의 신체 강화 능력자라면 그들의 순서가 먼저일 테니까.

“김정남 씨가 그 헬스장의 관장입니다. 무한으로 쇠질할 수 있는 헬스장이요.”

“……무슨 능력인지 모르겠지만, 정신 간섭계 능력이라면 하지 말아 주십시오.”

“아뇨. 정신 간섭계 아닙니다. 이 편의점처럼. 헬스장을 복구시켜 보려고요.”

“…….”

편의점이 진짜란 사실은 김정남 본인이 가장 절실하게 느끼고 있을 터.

이번에도 주민성은 김정남에게 상상을 맡길 계획이었다.

“……정말입니까?”

“예. 훈련차 방문하셨다고 했죠. 몬스터 웨이브 비석과 가까운 위치에 헬스장이 있습니다.”

“……아아. 그 헬스장입니까…….”

“알고 계세요?”

“……예. 애초에 대격변 전까지만 해도 여기가 제 고향이었으니까요.”

우연의 일치는 아니었다.

오히려 김정남이기에 A급 능력자가 되었음에도 주기적으로 이곳을 찾아왔을 테니까.

“대격변 당일. 그곳에서 아버지는 수많은 친구분을 잃으셨습니다.”

“……그랬군요.”

“그 헬스장을……. 복구시켜 주신다는 겁니까.”

“예.”

“…….”

이 부분은 주민성도 노렸던 바가 아니었다.

훈련의 효율을 높여 줄 생각으로 제안했을 뿐.

이젠 아니었다.

“건물의 복구는 30일에 한 번만 가능합니다. 그렇게 사용한 능력은 30일 동안 쓸 수 없어요. 그 능력. 헬스장을 위해 쓰겠습니다.”

주민성은 김정남을 위해, 그리고 그의 가족들을 위해 능력을 사용하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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