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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골손님 (1)
2022.03.10.


“김정남 씨. 결과 나왔습니다.”

A급 신체 강화 능력자 김정남.

협회에도, 길드에도 소속되지 않는 능력자였다.

“예! 바로 가겠습니다!”

신체 강화는 상당히 흔한 능력이었다.

하지만 그에겐 남들과는 다른 개성이 한 가지 있었다.

“오늘은 승급할 수 있을까요?”

특정 조건만 충족되면 능력자 등급을 올릴 수 있다는 개성이었다.

이는 능력을 발전시킬 수 있는 극소수의 신체 강화 능력자들에게만 주어지는 혜택이었다.

“……하하.”

담당관의 표정은 어두웠다.

이번에도 S급 능력자가 되는 데엔 실패한 모양.

“언제나 그렇듯 1:1은 완벽하세요. 다른 부분만 좀 더 보강하면 좋은 결과가 나올 거라 확신합니다.”

“……그렇군요.”

부모님은 격투기 선수 출신.

덕분에 몸을 쓰는 재능은 타고났다.

거기다 신체 강화 능력까지 각성했으니 김정남은 어디서나 환영받는 능력자가 될 수 있었다.

특히 보스 레이드에선 발군의 활약을 펼쳐 S급 능력자들에게도 주목받는 인재였다.

“이번에도 실패인가.”

그럼에도 김정남이 여전히 소속이 없는 이유.

-결격 사항

-힘의 분배: 매우 취약.

-지구력 점수: 평균 이하.

초장부터 전력을 다하는 버릇이 꾸준히 김정남의 발목을 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승급 결과: 불합격

“하아…….”

“김정남 능력자님. 다음에는 잘 되실 수 있을 겁니다.”

“더 노력하겠습니다…….”

김정남은 힘없는 발걸음으로 협회를 빠져나왔다.

“……이번에도 부족했다.”

그에게 단점이라곤 오로지 습관뿐.

근성이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우울한데 헬스장이나 갈까.”

스트레스는 헬스장에서 푸는 것이 평소의 패턴이었다.

하지만 오늘따라 왠지 전광판의 방송이 신경 쓰였다.

-몬스터 웨이브 비석과는 분명 다릅니다. 만져도 아무 이상 없다는 건, 말해봐야 입 아프겠고요.

-하지만 비석이라는 사실도 변치 않죠?

-하! 음모론! 음모론은 언제나 있었죠. 비밀결사부터 지구 종말, 세계대전까지. 무엇하나 이뤄진 게 없었습니다.

전 세계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난 비석 얘기였다.

이젠 토론방송까지 특별 편성된 모양.

“비석이라…….”

비석에 관해서라면 제법 지식이 있었다.

훈련과도 밀접했기 때문이다.

“게이트에 들를 때도 되긴 했지…….”

김정남에겐 개인 훈련장과도 같은 은밀한 게이트를 한군데 알고 있었다.

그것도 무려 수백에서 수천 마리의 최하급 몬스터가 동시에 쏟아지는 F급 게이트였다.

그곳이라면 힘의 분배, 지구력 점수를 개선하는 데도 상당한 도움이 될 터였다.

“헬스는 집에 가기 전에 들르지 뭐. 게이트부터 가자.”

F급 게이트는 그만의 소중한 비밀장소였다.

“…….”

게이트에 도착한 김정남은 전과 다른 분위기에 발걸음을 멈췄다.

경비실도 전과 같았고, 게이트 풍경도 그대로였다.

그럼에도 근육은 잔뜩 긴장하며 게이트를 경계하고 있었다.

“……기분 탓인가?”

왠지 모르게 느껴지는 무력감.

승급 심사에 불합격했을 때와 비슷한 감정이었다.

“기합이 부족해.”

김정남은 그 자리에서 고속 푸시업을 시작했다.

“498. 499. 500.”

“…….”

수상해 보이는 그의 행동에 경비원들이 몰려나온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후우!”

“게이트 앞입니다. 여기서 이러시면 곤란한데요.”

“……음?”

김정남은 게이트 경비원들과도 얼굴을 익혀 둔 상태였다.

하지만 지금 접근한 경비원은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김정남이라고 합니다. A급이고요.”

“그러시군요.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김정남 능력자님.”

“…….”

평소와는 다른 대우.

원래의 경비였다면 정신없이 굽신대며 김정남의 비위를 맞춰왔을 터였다.

‘예전과 확실히 달라.’

이것도 비석이 원인인 걸까.

여러 가지 의문이 동시에 몰아쳤다.

‘가보면 알겠지.’

김정남은 생각보다 근육이 앞서는 남자였다.

답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던 것.

“출입하겠습니다.”

“……잠시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별도의 허가가 필요한 사항이라서.”

“……그러십시오.”

경비원은 그대로 경비실로 돌아가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물론 김정남 역시 경비실에 따라온 상황.

경비원의 태도는 김정남을 더욱 당황케 했다.

“……예! 꾸준히 출입하셨던 분이라 절차는 생략되어 있었습니다! 예! 괜찮으십니까? 예! 알겠습니다!”

A급 능력자인 자신에겐 무덤덤하면서 전화 상대에겐 협회장이라도 상대하는 것처럼 극진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설마 게이트가 주목받기 시작한 건가? 비석 때문에?’

이런 상황은 곤란했다.

개인 훈련을 빠트림으로 발생하는 근손실이 어마어마했기 때문이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다행히 통화 분위기는 긍정적이었다.

김정남에게도 희망은 있었던 것.

통화는 근육의 팽창과 수축이 다섯 번쯤 오가는 사이 종료됐다.

그리고 경비원의 입이 열렸다.

“한 가지 사항만 동의해주시면 입장하셔도 좋습니다.”

“……네? 절차는 없을 텐데요? 뭐죠?”

“기밀 유지 조항입니다.”

게이트에서의 모든 일을 함구하는 조항이었다.

이는 SS급 이상의 게이트나 길드가 점유하는 게이트에서 흔히 경험해볼 수 있는 사안이었다.

“……그렇군요. 동의하겠습니다.”

“네. 그럼 여기 서명해 주시고요.”

특수 계약서가 아님은 확인했다.

대신, 지문을 남김으로 기밀 유지 조항에 힘을 실었다.

“협조 감사드립니다.”

“이제 들어가도 되는 거죠?”

“예.”

그렇게 김정남은 게이트 입장에 성공했다.

“후우. 오랜만에 느껴 보는 텁텁한 공기.”

목적지는 명확했다.

처음부터 몬스터 웨이브 비석으로 정해져 있었으니까.

그곳에만 도달한다면 위화감의 정체도 드러날 것이 분명했다.

“…….”

하지만 김정남의 발걸음은 오히려 점점 느려지고 있었다.

이번에도 위화감이 원인이었다.

“왜 몬스터가…….”

다른 등급도 아니고 가장 쉽다는 F급 게이트였다.

이곳의 몬스터라면 능력자의 전투력에 상관없이 무작정 달려드는 것이 인지상정.

“크룩.”

눈앞의 덩치 큰 고블린에게선 그런 낌새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역으로 김정남이 위축될 정도의 기세를 풍기고 있었다.

“……네임드 몬스터인가.”

“크룩.”

물론 그렇다고 기죽을 일은 아니었다.

“오히려 좋아.”

김정남은 자기보다 강한 상대일수록 투지를 불태우는 남자였다.

꾸드득!

근육들이 쉴 새 없이 꿈틀대며 팽창하기 시작했다.

김정남 특유의 신체 강화 능력이었다.

“크, 크룩!”

“오냐! 죽여 주마!”

근육의 팽창이 끝나고, 김정남은 말도 안 되는 속도로 고블린을 향해 쇄도했다.

1:1이라면 김정남의 전문 분야.

근육의 강화까지 끝낸 지금의 승률은 9할 이상이었다.

“크, 크룩! 크룩!”

“그래! 힘으로 붙어 보자!”

주먹이 거대 고블린의 턱을 후려치려는 순간.

‘제대로 들어갔다!’

쐐액!

황당하게도 주먹은 허공을 찢어발길 뿐이었다.

“뭐, 뭐지?”

“크룩! 크룩!”

심지어 거대 고블린은 김정남의 뒤를 선점했다.

“……나보다 빠르다고?”

놀라움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김정남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몬스터들에게 포위당해 있었다.

“오, 오히려 좋아…….”

속도 파악조차 안 되는 네임드 고블린 하나.

그리고 데빌도그에 탑승한 고블린 무리까지.

이 모든 몬스터들이 김정남의 투지에 불을 붙이고 있었다.

“키에엑! 키엑!”

“크룩! 크루룩!”

몬스터들이 압도적으로 유리한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몬스터들은 선뜻 공격해 오지 않고 김정남에게 소리치고 있었다.

“도발까지 하는 건가. 근손실 걱정은 없겠군.”

뿌드득!

김정남은 근육을 더욱 비대하게 강화했다.

이 정도면 후유증을 동반할 정도.

옷 또한 특수 소재가 아니었다면 순식간에 찢어졌을 터였다.

“키엑! 키엑!”

“오냐. 도발이라면 응해 줘야지!”

그렇게 온 힘을 실어 돌격을 하려는 순간.

김정남을 만류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지! 정지입니다!”

“……음?”

뒤이어 고블린들 사이에서 1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소녀가 나타났다.

소녀는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소년에게 업혀 있었다.

“얘들아! 거긴 위험해!”

“……정지입니다!”

“…….”

여전히 고블린들은 가만히 있는 상태였다.

이쯤 되면 김정남도 눈치챌 수밖에 없었다.

“몬스터가 사람을 공격하지 않는다고?”

근육과 함께 머리가 식어 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소녀가 말했다.

“이 게이트는 당분간 능력자 출입을 제한하고 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니? 아저씨가 이해가 잘 안 되는데……. 일단은 너희도 능력자 맞지?”

“……그건 대답해 드릴 수 없습니다. 말해 드릴 수 있는 건 하나. 김정남 씨가 전부터 게이트를 이용하셨기 때문에 출입이 허가되었을 뿐입니다.”

이상하게 말투가 딱딱한 소녀였다.

더불어 묘한 군기까지도 느껴졌다.

“……그, 그래. 그보다 너희들 위험하지 않아? 보기보다 강한 몬스터란다?”

“대답해드릴 수 없습니다. 게이트엔 어떤 용무로 오셨습니까?”

물론 김정남도 답이 없는 근육 뇌는 아니었다.

A급이라는 등급 역시 진짜배기였고.

“일단 너희가 능력자라고 상정하고 대답할게. 능력자는 자신에 대한 정보를 함부로 발설하면 안 되는 거란다. 그게 능력자로서 롱런할 수 있는…….”

“듣고 싶지 않습니다.”

“크흑…….”

소녀는 두 배로 차갑게 말을 이어 갔다.

“뭔가 착각하시는 것 같은데, 저희는 김정남 씨의 대답에 따라 내부 진입을 허가할지 거절할지 결정합니다.”

“……어어?”

“귀가 잘 안 들리십니까?”

“커흑…….”

김정남을 에워싼 몬스터는 어느새 다섯 배 이상 늘어난 상황.

이쯤 되면 눈치채야만 했다.

아니, 눈치를 안 채면 세기의 천치라 할 수 있었다.

‘몬스터를 사역하는 유해 능력자였나……. 그래도 아직 어린아이들인데…….’

세기의 사건이라 할 수 있었다.

눈앞의 아이들은 협회인과 내통하는 유해 능력자일 테니까.

‘시간을 두고 천천히 설득해 보자. 분명 개과천선할 수 있을 거야.’

실제로 김정남은 수많은 불량 학생들에게 근성장의 기쁨을 전도하며 갱생시킨 전적이 있었다.

“당이 부족하십니까? 대답해 주십시오.”

“크흠……. 일단 진정해 보렴.”

김정남은 충격을 가라앉히며 차분히 말했다.

“……아저씨는 조용히 훈련만 하고 갈게. 신고할 일은 절대 없을 거야. 아저씨가 장담할게.”

“……예? 아니, 그보다 훈련 내용이 어떻게 되십니까?”

“구시가지의 비석을 이용할 생각이야. 몬스터 웨이브가 훈련에 도움이 많이 되거든. 너희도 구경하지 않으련? 아저씨가 좀 세거든.”

소년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소녀의 눈치를 살필 뿐이었다.

구시가지에 뭔가 있는 느낌이었다.

소녀는 소년의 얼굴을 가리곤 대신 말했다.

“……동행하겠습니다. 정확히 훈련만 진행하고 떠나 주십시오.”

“그래.”

대답과 동시에, 몬스터들이 양쪽으로 물러섰다.

김정남이 걸어갈 수 있는 방향은 오로지 구시가지의 비석이 있는 방향뿐이었다.

“지금부터 보는 모든 것들은 떠나면서 잊어주시기 바랍니다.”

“그, 그래…….”

소년과 소녀.

그리고 근육 아저씨와 몬스터들의 기묘한 동행이 시작됐다.

“…….”

이동과정에서 별다른 대화는 없었다.

그저 묵묵히 걷고 걸을 뿐.

그렇게 김정남은 구시가지에 도착했다.

“허, 허억…….”

구시가지의 풍경은 그동안 김정남이 봐 왔던 풍경이 아니었다.

특히, 기괴한 형태로 하늘을 향해 뻗어 있는 거대한 쌍둥이 돌탑이 인상적이었다.

“마, 맙소사…….”

가까워질수록 충격은 더욱 커졌다.

추억 속에만 존재하던 편의점 간판에 불이 켜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유리창 너머 보이는 튀김기 옆엔 추억의 특선 닭가슴살 세트가 있었다.

“다, 단종된 게 아니었나?”

“그쪽은 비석 방향이 아닌데요. 영양제가 필요하십니까?”

“아, 아니! 얘들아! 부탁이야! 저걸 먹게 해 줘! 돈이라면 얼마든지 있으니까!”

“…….”

김정남은 진심으로 간절함을 느끼고 있었다.

생에 처음으로 헬스를 시작했을 당시, 김정남의 치팅데이를 화려하게 장식하던 음식이 바로 특선 닭가슴살 세트였으니까.

“10만 원? 아니 100만 원? 너희들 돈 필요하지 않니? 1000만 원이라도 낼 테니까 제발!”

“…….”

“제발! 부탁이야! 너희들이 뭘 하든 상관 안 할게! 저기서 파는 닭가슴살만 맛보게 해 줘!”

언제나 굳건한 의지를 자랑하던 김정남은 편의점 앞에 무릎까지 꿇은 상태였다.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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