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되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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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되네 (1)
2022.03.07.
“이번엔 뭐래? 주인님이 되어 주셔서 감사하대?”
“……알아서 소통해 봐.”
성아영은 떨어트려 두는 편이 이득이었다.
앞으로 게이트에서 진행될 공사에 주민성의 온갖 능력이 쓰일 테니까.
“이제 너는 진짜 다이아가 됐어.”
“……능력 공유까진 안 바랬거든.”
“하여튼.”
슬슬 해가 떠오를 시간이었다.
이젠 폐허 도시로 돌아가 본격적인 공사를 해야 한다.
“일단은 저 건물에서 지내.”
“응? 무슨 소리? 밥은?”
“건물 안에 먹을 거 좀 남아 있더라.”
“…….”
가르취와 차크취가 노획한 물품 중엔 제법 멀쩡한 배낭도 있었다.
A급 능력자의 배낭이었던 만큼, 생활하는 데 필요한 물품 정도는 얼마든지 있을 터였다.
아무리 못해도 주민성이 챙겼던 짐보단 상등품이리라.
“……제대로 보고 가.”
“응?”
자신을 두고 떠난다는 걸 알아차린 걸까.
그럼에도 성아영은 순순히 주민성의 의견을 따를 분위기였다.
오히려 지금처럼 물품 체크를 도와달라고 요청할 정도면 주민성 입장에서도 편했다.
“알았어.”
이렇게만 해 준다면야 더할 나위 없었다.
오히려 생활용품 정도는 화끈하게 지원해 줄 용의도 있었다.
그렇게 둘은 협회인들의 배낭을 뒤집었다.
“……어때. 주민성.”
“…….”
생각보다 배낭 용품은 허술했다.
특히 식량은 가르취와 차크취가 귀신같이 쏙쏙 빼 간 상태.
잡다한 물품도 생각보다 부실했다.
다행히 생존과 휴식에 직결된 버튼형 매트리스나 6시간 지속하는 에너지 장벽 발생기 정도는 있었지만.
‘와. 엄청 비싼 것들이네. 이거 두 개면 1억은 넘겠는데?’
물론 여기서도 성아영은 주민성과 생각이 달랐다.
“야. 이거 다 싸구려잖아. 장난해?”
“……어?”
“싸구려라고! 이런 걸 어떻게 써!”
“…….”
성아영은 능력자로 지내온 시간도 상당히 길었던 모양이다.
일반인 생활도 거의 하지 않고, 아주 어릴 적부터 능력자로 키워졌다면 그럴 만하다.
다만, 그런 과거 따위 주민성에겐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그래? 필요 없으면 내가 쓰지 뭐. 매트리스 개이득.”
[마석 정제 매트리스가 수납됩니다.]
[마나 실드 발생기가 수납됩니다.]
성아영이 아무리 현대판 귀족과도 같은 생활을 해 왔다 한들, 갑이 주민성이라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게이트 자치권은 절대 호락호락한 권리가 아니니까.
“어어?”
“싫으면 그냥 맨몸으로 살아. 나는 갈 거야.”
“아, 아니! 그게 아니라고!”
“그럼 뭐.”
폐건물 바닥엔 먼지가 가득했다.
당연히 청소 도구도 없다.
“빗자루는 줄게.”
다행히 최선아가 쇼핑해 왔던 기본적인 청소 도구는 인벤토리에 모셔져 있었다.
툭.
“먼지떨이도 있어.”
툭.
“먼지 한번 빼면 쭉 깨끗할 거야. 일단 저것도 내 소유 건물이거든.”
“…….”
“그래도 불만?”
“……아니.”
성아영은 주민성의 정보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었다.
지금 같은 경우도 그랬다.
“청소를 한 번만 해도 된다고? 그럼 전문 가정부도 안 써?”
“응.”
“……나 청소해 본 적 없는데.”
“지금 해 보면 되겠네. 하는 김에 오크한테도 청소 가르쳐 놔.”
오히려 잘됐다.
폐허 도시의 고블린처럼 깔끔한 습관을 주입받은 몬스터는 위생적으로도 큰 도움이 된다.
“식량은 문제없겠네. 저걸로 끼니 때우고.”
“…….”
인간은 적응하는 동물이다.
어떤 환경이든 적응해내고, 기어코 지배종이란 위치까지 차지해낸 동물이다.
그리고 성아영은 그중에서도 월등한 존재.
이 정도의 환경쯤은 금방 적응할 터였다.
“……매트리스 돌려줘.”
“그래.”
툭.
나머지는 성아영이 알아서 잘 하면 될 일.
인천 게이트에도 매일 방문하기로 마음먹은 이상, 필요한 가구는 그때그때 제공해 주면 충분하다.
“글씨 쓸 줄은 알지?”
“……누나 화낸다.”
주민성은 아랑곳하지 않고 펜과 수첩도 건넸다.
“인명부도 관리해 줘. 너는 다이아. 그리고 아까 있었던 협회인들은 골드. 새로 방문하는 사람들은 실버로. 인성에 문제 있거나 말 안 들으면 브론즈야.”
성아영의 자존감을 채워 줄 권력도 제공했다.
이 정도면 SS급 능력자에 걸맞은 대우라 할 수 있다.
“여분 텐트는 10개 정도면 되겠지? 알아서 나눠줘.”
“……응.”
투두둑.
이후에도 주민성은 성아영에게 게이트에서 할 일들을 인수인계했다.
특히 가르취와 차크취의 식탐을 잘 조절해 달라는 부탁은 몇 번이고 반복했다.
“알았다고. 이제 가. 청소할 거야.”
“응. 오크들 너무 괴롭히지 말고.”
“내가 알아서 해.”
“그래. 나간다.”
“……시간 맞춰서 돌아와.”
“응.”
당장 필요한 조치들은 끝마친 상태.
주민성은 그대로 오크 라이더의 호위를 받으며 인천을 떠났다.
다음은 아침이 되기 전까지 폐허 도시에 복귀할 일만이 남았다.
성아영의 지갑이라면 균열에 빠지지 않는 이상 고블린들이 찾아낼 테고.
“취익! 감사합니다! 로드시여!”
“역시 로드입니다! 취익!”
어느덧 게이트 출구, 정확히 말하자면 주민성이 만들어낸 이상 현상 앞에 도달했다.
이곳이 미지의 지역인 만큼 오크들에겐 상당히 두려운 장소이기도 했다.
“따라와도 괜찮은데.”
“취익! 아닙니다! 저희는 계시대로 이곳을 지켜야 합니다!”
“그래?”
좀 더 알아봐야겠지만, 게이트의 몬스터들은 저마다의 사명을 가지고 이곳에 출현한 듯하다.
‘처음엔 제르취도 원한이 어마어마했었지.’
마석이 아닌 영혼석을 남길 정도의 원한.
그 이유는 알 수 없다.
하위 차원이 연관되어 있다는 단편적인 정보뿐.
‘내가 관여할 문제만 아니면 돼.’
주민성은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남들이 어쨌건, 인과관계가 어떻건.
안전하고 안락한 미래면 충분하다.
“그래. 다녀올게. 저녁에 보자.”
“취익! 마중하러 나오겠습니다!”
“오냐. 수고하고. 흐읍.”
활력꽃 향기를 잔뜩 들이마신 주민성은 그대로 폐허도시를 향해 내달렸다.
타탓!
폐허 도시에 도착하니 시계는 어느덧 7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다행히 늦진 않았군.”
회식 자리는 이미 깔끔하게 정리된 상태.
판자촌 능력자들은 폐허 도시를 돌며 아침 구보를 진행하고 있었다.
임진석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큰 걱정은 되지 않았다.
이동 도중 점유율 조회를 했기 때문이다.
‘콩이는 나른함이었으니 괜찮겠지.’
임진석에겐 집사의 재능이 있는 모양이다.
“하나! 둘! 하나! 둘!”
“목소리가 작다!”
“악!”
폐허 도시는 게이트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밝고 활기찬 분위기였다.
어제의 회식이 상당히 효과적이었던 모양.
아지트 근처엔 최선아와 최선호, 그리고 인력소 식구들이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주민성을 가장 먼저 알아차린 사람은 최선아였다.
“어! 민성 씨! 어디 다녀왔어요?”
“네. 인천에서 볼일 좀 봤죠.”
“새벽 중에요?”
주민성은 그간의 행적들을 설명했다.
“으아. 그래서 그 여자가 안 보였구나.”
“네. 여기만큼은 함부로 보이고 싶지 않아요.”
“저 같아도 그럴 거예요. 잘하셨어요!”
최선아와 성아영.
처음부터 둘의 관계는 썩 좋은 편이 아니었다.
그 덕에 최선아의 표정은 유난히 상쾌해 보였다.
“선아 씨는 그 여자 별로예요?”
“네! 은근슬쩍 약을 올려대는데 엄청 화난다니까요? 완전 지능적이에요!”
“……성아영이요?”
“민성 씨 없었을 때랑 엄청 차이 나요!”
이 부분은 뭔지 알 것 같았다.
성아영은 주민성에 대한 정보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었으니까.
반면, 이수길은 성아영에 대해 상당히 높게 평가했다.
“젊은 아가씨가 술에 대한 조예가 깊어. 그 외에도 폭넓은 지식을 갖췄으니 배울 점도 많을 거다.”
“그 부분은 좀 더 알아봐야겠네요.”
“그래. 천천히 살펴도 늦을 건 없다.”
주민성은 성아영에 대한 메모를 몇 줄 더 추가했다.
“그보다 민성아.”
“네. 아저씨.”
“요즘 뉴스에서 말이 많던데, 비석에 대해서.”
“아…….”
뉴스는 보지 않았지만, 이 부분은 신우빈을 통해 들었다.
전 세계적으로 출몰한다는 의문의 비석.
주민성은 이것이 뭔지 짐작하고 있었다.
‘새로운 몬스터의 위협.’
정확한 침공 시기는 알 수 없지만, 침공 자체는 이미 기정사실이라 할 수 있었다.
적어도 태양의 순례지 이용료가 차오르는 순간, 놈들은 차원 이동을 해 올 테니까.
그 외에도 주민성이 보지 못한 신화 등급 건물의 존재 또한 변수였다.
‘서둘러야 해.’
주민성은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들을 공유했다.
“믿기 힘든 내용뿐이라 죄송합니다.”
“아니야. 30년 전 대격변 때도 비슷했어. 동시다발적으로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으니까.”
“적어도 여기라면 다른 도시처럼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겁니다.”
“……일정을 좀 더 앞당겨야겠군.”
“네. 건설 재료만큼은 최대한 빨리 조달해야 해요.”
“그 정도라면 문제없다. 이제 우리도 밥값을 할 때야.”
박 씨 또한 같은 생각이었다.
“암요! 민성이가 이래서 우리를 불렀구먼! 맞제! 김 씨!”
반면, 김 씨는 걱정 어린 표정을 짓고 있었다.
“민성아. 그 전에,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다.”
“네. 말씀하세요.”
“네 말대로 전 세계적인 위기가 찾아온다면, 우리만 살 것이 아니라 가족들까지 지켜야 해.”
“물론입니다. 거주 환경이 어느 정도 갖춰지면 외부인도 받을 예정이에요. 물론 아주머니도 최대한 빨리 모셔야 하고요. 지영이랑 지호도.”
“그래. 가족들만 지킬 수 있다면, 뭐든 해 보마.”
인력소 식구 중에서도 상당히 유쾌한 김 씨였다.
그런 김 씨마저 이 정도로 진지해지게 만드는 것이 바로 가장의 무게였다.
“반드시. 지켜 보일게요.”
간단한 아침 조회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일과가 시작됐다.
특히 스미스에게 받은 총기를 지급할 때의 사기는 최고조에 달했다.
피비빗!
콰르르르르!
“마, 말도 안 되는 성능입니다!”
“이거라면 군을 재편성해도 될 정도예요!”
“저희가 정말 써도 괜찮겠습니까?”
“네. 이곳은 기본적으로 고블린들이 지키겠지만, 핵심 시설 보호라든지 세부적인 부분에 있어선 저도 도움을 받아야 하니까요. 이 정도는 당연히 해 드려야죠.”
판자촌 능력자들은 교육 과정에 열중했고, 이수길을 비롯한 인력소 식구들은 아지트에 들어가 각자의 인맥을 활용해 재료 조달을 시작했다.
주민성의 곁엔 최선호와 최선아가 함께였다.
“이쪽은 입구 방향이죠?”
“네. 폐허 도시 전체를 감싸는 거대한 장벽을 세울 거예요. 게이트에 방문하는 모든 사람은 이곳을 통과해야 할 겁니다.”
“2차 검문소 같은 거네요?”
“네. 적어도 장벽 안은 안전해야 하니까요.”
주어진 시간조차 알 수 없는 상황에서의 최선이었다.
“선호는 어때? 괜찮은 방법 같아?”
“네. 형. 게임에서도 쓰이는 방식이에요. 맵 전체를 다 활용할 시기가 되면 장벽 수십 겹도 나오고요. 통곡의 벽이 되겠네요.”
“다행이다.”
폐허 도시를 감싸는 장벽.
그런 장벽을 감싸는 제2, 제3의 벽.
이런 장벽이 중첩될수록 폐허 도시는 점점 안전해질 터였다.
“근데 형. 재료가 엄청 많이 들어갈 것 같아요.”
“그렇지? 그래서 준비한 방법이 있어.”
“역시 형이에요!”
주민성은 인벤토리에서 뭔가를 꺼냈다.
촤르르르!
“어? 이건?”
“위장막이네요? 갑자기 사라져서 아쉬웠는데!”
신성에서 챙겨온 물품 중엔 거대한 위장막도 존재했다.
아마 신우빈의 거처를 통째로 숨기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형! 이거 엄청 좋은 거예요!”
“응? 그냥 천 아냐?”
위장막의 용도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바로 건물 잔해 포장용이었다.
하지만 최선호의 견해는 달랐다.
“건물들, 잘만 배치하면 착시현상을 일으킬 수 있거든요. 특히 돌진형 몬스터들 낚을 때 쓰면 좋아요. 벽에 부딪히게 만들 수 있거든요.”
“진짜로? 그렇게도 쓰여?”
“형. 그뿐만이 아니에요! 이 천막, 마석 가공실로 짜인 물건이에요. 몇 십 억은 그냥 넘을걸요?”
“어어? 진짜로?”
주민성은 신성 직원들이 짐을 정리하던 당시의 기억을 떠올렸다.
-과장님! 위장막이 보이지 않습니다!
-미, 미친! 당장 찾아내!
-저기요. 위장막 제가 챙겼는데요. 가지면 안 될까요?
-어어……. 예? 잘 못 들었습니다만…….
-위장막. 제가 챙겼어요. 신우빈이 찾으면 제 핑계 대세요. 괜찮을 테니.
-아……. 그, 그러시군요……. 하하……. 김 주임. 들었지?
-…….
-잘 쓸게요.
그냥 비싸 봐야 몇 천만 원쯤 되는 천막이라 생각했다.
건물 전체를 덮어씌울 정도의 크기였으니까.
“이게 그렇게 비싸다 이거지? 후후후…….”
주민성의 뇌리에 미친 아이디어가 스쳐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