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 이용자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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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이용자 (2)
2022.03.06.
모든 협회인들이 부랴부랴 떠나고.
을씨년스러운 게이트엔 성아영과 오크들이 주민성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뭐 하면 돼?”
성아영은 다이아라는 계급이 마음에 들었는지 기분이 좋아 보였다.
“돈 내.”
“………….”
성아영이 이용 중인 건물은 완파 직전의 아파트.
완파 직전의 건물은 최저 이용료가 적용되어 그녀의 이용료는 당시의 텐트 이용료와 같은 29만 원이었다.
“29만 원입니다. 고객님.”
“그러고 보니……. 쟤들보다 4만 원 싸네?”
“……그렇지?”
성아영은 이용료 상승의 원리를 잘 알지 못할 터.
하지만 여전히 방심할 수 없는 상대였다.
그녀는 주민성 못지않게 기만에 특화된 능력을 가진 사람이었으니까.
“다이아는 4만 원 할인이야. 30일이면 120만 원, 1년이면 대략 1400만 원쯤이고.”
“대박……. 엄청 좋은 거잖아.”
“……응. 맞아.”
주민성은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으며 성아영에게 감투를 씌웠다.
“내세요. 고객님.”
“알았어!”
성아영은 곧장 허리춤을 뒤적였다.
계속해서 뒤적였다.
“……야. 주민성.”
“………….”
“지갑이 안 보여…….”
연기로 보이진 않았다.
아예 성아영을 통째로 인벤토리에 집어넣으면 지갑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주민성은 좀 더 합리적인 추론에 돌입했다.
‘가다가 떨궜겠네.’
실제로 그랬다.
성아영을 들쳐메고 워낙 빨리 달렸으니까.
만약 지금 성아영 차림에 지갑까지 있었다면, 가다가 흘렸을 가능성이 훨씬 컸다.
“후.”
이대로는 이용료 청구 페널티가 심해질 뿐이었다.
당장 며칠은 괜찮겠지만, 이것이 중첩된다면 사람 구실도 힘들어질 터.
“내줄까?”
“아, 기다려 봐. 진짜 어디 갔지? 힝.”
이상한 꽃까지 받은 데다, 자고 일어나니 엉뚱한 인천 게이트다.
이런 경우, 보통은 주민성을 통해 궁금증을 해결하는 것이 기본.
성아영의 감각은 상당히 특이한 편이었다.
“지갑에 얼마 들어 있었는데?”
“그걸 어떻게 알아. 너는 밥그릇 밥알 개수까지 전부 세?”
성아영에게 빵빵한 지갑은 너무나도 당연했다.
주민성도 이런 면에선 양심이 있었기에 선뜻 이용료를 내줄 것을 제의했고.
“내준다니까?”
“아, 됐어. 가오가 있지.”
“우와…….”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고 했던가.
성아영은 그런 속담을 전적으로 부정하는 여자였다.
오히려 더욱 괴롭히고 싶어지게 만드는 쪽이랄까.
덕분에 상황은 귀찮게 흘러갔다.
“……혹시 마석도 괜찮아?”
이용료 청구로 아군은 공격하지 못하겠지만, 살기는 고스란히 오크들을 향했다.
SS급 능력자의 순수한 살기는 C급 몬스터인 오크가 받아낼 수준이 아니었다.
“취, 취익!”
“미친 인간이 위협한다! 췩!”
실제로 그녀가 능력을 마음껏 쓸 수 있는 상황이라면, 오크건 다크울프건 싹둑싹둑 토막 날 게 확실한 상황.
여기서 주민성의 허락 한 번이면 조건도 끝.
곧장 능력을 사용할 터였다.
따라서 대답은 언제나 같다.
“노우. 절대 안 돼.”
“왜! 여기 오크 많잖아!”
보통은 길들인 오크에 의문부터 느껴야 하지만, 성아영에게 이곳의 오크는 그저 개미에 불과했던 것.
“그럼 딱 서른 마리만! 응?”
“취, 취익!”
주민성은 성아영에 대한 평가를 수정했다.
“얘들 의외로 비싸. 고블린이 아니라고.”
“어, 정말? 여기 엄청 노다지네?”
“…….”
참고로 이곳은 가성비 나쁘기로 소문난 게이트였다.
-금전 개념은 진짜 없는 듯
수첩에 성아영에 대한 정보가 한 줄 추가됐다.
그간 수집해 둔 대략적인 정보는 이러했다.
-이름: 성아영
-등급: SS
-능력: 보이지 않는 공격
-파괴력 상당함
-인벤토리와 비슷하게 운용 가능
-능력2: 죽었다가 살아남(불확실)
-죽음에 대한 두려움 없음
-성향: 생각보다 협회에 대한 충성심 있음
-주량: 매우 강함 (유의)
-성격: 알 수 없음
-눈치는 빠르나 애매함
-이상한 부분에서 고집 강함
-금전 개념은 진짜 없는 듯
성아영의 진짜 성격은 여전히 알 수 없었다.
따라서 괜히 끌려 다녔다가 생길 변수보단, 평소처럼 상황을 주도해 모든 상황에 대비하는 것이 옳다.
“받아.”
“‘받아 주세요’라고 말해 줘. 그럼 받아 줄게.”
역시 갑질에 특화돼서일까.
성아영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아!”
물론 그녀 입장에선 안타까운 사실이다.
주민성은 진짜 갑이었으니까.
“거부권은 없다.”
성아영의 옷소매에 돈뭉치가 쑤셔졌다.
어림잡아 150만 원쯤 넣었으니 5일쯤은 문제없으리라.
주민성은 그대로 인벤토리를 운용해 성아영의 소매를 훑었다.
소매넣기와 소매치기를 동시에 해낸 것.
[아파트(완파 직전) 이용료가 납부되었습니다.]
[이용료는 인벤토리에 수납됩니다.]
[아파트(완파 직전) 이용료가 납부되었습니다.]
[이용료는 인벤토리에 수납됩니다.]
…….
메시지는 빠르게 성아영의 납부 사실을 알렸다.
“아! 이거 뭐야! 아! 싫어!”
“납부 감사합니다.”
“야! 다시 해! 차라리 직접 내게 해 달라고!”
이것으로 5일쯤은 문제없을 터.
이젠 성아영에게 임무를 내릴 차례.
“성아영. 정말 돈을 내고 싶니? 이용자가 되고 싶어?”
“뭐? 무슨 헛소리야!”
“그럼 싫어?”
“아, 아니……. 그건 아니라고!”
적어도 이렇게 밀어붙이면 어떻게든 통했다.
나름의 노하우라고 할 수 있었다.
“다음부턴 돈 제대로 받을 거야.”
“……그럼 됐어.”
“물론 게이트 밖으로 나가는 건 금지.”
“야!”
성아영이 게이트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시기는, 적어도 그녀의 위험성을 통제할 수 있을 때로 정해졌다.
“여기 있던 사람들 다 협회 소속이잖아. 아니야?”
“……맞아.”
“그 사람들이 가족들부터 지인까지 데려올 거 아냐.”
“응.”
성아영은 주민성의 말에 홀린 것처럼 대화에 몰입했다.
“너 일단은 SS급 능력자잖아? 적당히 도와주면서 수고비 받아. 서로 좋은 거잖아.”
“……그러네? 내가 이런 봉사는 처음이라…….”
협회 특임대장 성아영.
그녀가 투입된 임무는 임진석과 마찬가지로 절대 평범하지 않을 터였다.
따라서 지금 같이 평범한 업무는 성아영에겐 신선하게 작용했다.
“그렇게 돈을 벌면 되는구나? 아, 다행이다.”
“그치? 기대할게. 다이아.”
“응!”
-정신 연령 생각보다 어림
메모를 한 줄 추가한 주민성은 다음 단계에 돌입했다.
‘능력을 알아내야 해.’
성아영의 능력은 여전히 알 수 없다.
하지만 주민성에겐 상대의 능력을 알아낼 수단이 존재한다.
“그런 의미에서 말인데.”
“응?”
“다이아잖아. 다이아라면 뭔가 더 특별해야 하지 않을까?”
“난 이미 특별한데?”
성아영의 자존감은 굉장히 높았다.
주민성의 막무가내식 대우조차 긍정적으로 해석할 정도로.
“더 특별해질 수 있어. 나한테 그런 능력이 있거든.”
“그런 능력도 있어?”
성아영의 눈빛이 순간 변했다.
아주 찰나의 순간이었다.
지금은 다시 평소의 눈빛.
역시 성아영은 협회 측 감시역이라는 임무에도 충실할 것으로 보인다.
‘걸려들었군.’
주민성은 빠르게 영업을 시작했다.
“응. 전에 말했던 플래티넘 등급 버프. 다이아라면 당연히 가져야 할 혜택 아니겠어?”
“응! 맞아! 다이아가 플래티넘보다 높잖아!”
“이용료 30일 납부. 그게 내 능력의 조건이야.”
“……그래?”
이미 성아영은 이용료 납부를 통해 메시지를 확인했다.
속으론 주민성의 능력에 대해 쉴 새 없이 고민했을 터.
“응. 당연히 받아야 할 혜택이지. 협조할래?”
얼굴을 잠시 찌푸리던 성아영은 생각보다 시원하게 질문에 응했다.
“좋아. 대신, 돈은 갚을 거야.”
“얼마든지.”
이것으로 순순히 30일 납부까지 확정됐다.
이후 과정은 순탄하기 그지없었다.
“받아.”
주민성은 곧장 협회 측 비서에게 받았던 현금 뭉치를 건넸다.
납부용 인벤토리도 함께.
“29만에 25를 곱하면 몇이지?”
“그냥 돈뭉치 통째로 던져도 돼. 알아서 거슬러져.”
“참 신기한 능력이란 말이지…….”
주민성은 집중력을 극도로 끌어올려 대답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정확히 25일분의 이용료만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거스름은 그대로 땅에 떨어질 거야.’
이용료 납부에 대해선 여러 가지로 테스트를 했던 바.
지금의 주민성이라면 지금 같은 고난도 제어까지 쉽사리 해낼 수 있었다.
[아파트(완파 직전) 이용료가 납부되었습니다.]
[이용료는 인벤토리에 수납됩니다.]
[아파트(완파 직전) 이용료가 납부되었습니다.]
[이용료는 인벤토리에 수납됩니다.]
……
툭.
정확히 25일분.
남은 현금 뭉치는 홀쭉해져 바닥에 떨어졌다.
[학원 건물에 한 달 분 이용료가 납부되었습니다.]
[대상을 장기 이용자로 정의합니다.]
‘좋아.’
드디어 호위 서비스를 진행할 수 있는 본격적인 조건이 갖춰졌다.
“가르취! 차크취!”
“취익! 여기 있다! 대장!”
“취취취!”
두 배불뚝이 오크는 중식당 창가에서 고개를 빼꼼 내민 채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이리와.”
“취익!”
성아영과 무식하게 강한 두 오크의 조합.
자칫하면 위험해 보일 수도 있지만, 강강 조합의 순기능이 너무나 매력적이었다.
‘성아영이라면 녀석들의 식탐을 통제할 수 있겠지.’
물론 식탐 통제는 부수적인 효과에 불과하다.
주민성의 진짜 목적은 성아영의 능력을 공유받은 오크를 탄생시키는 것.
“호위 서비스는 개체당 200만 원이야.”
“……또 돈이야?”
“어쩌겠어. 능력이 그런걸.”
“이걸 FFF급답다고 해야 하나…….”
“돈이나 받아.”
주민성은 다시금 500만 원어치의 현금 뭉치를 던졌다.
“……이것도 갚을 거다?”
“그러던가.”
여기선 주민성보다 성아영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
호위 서비스는 장기 이용자의 혜택이니까.
“호위 서비스 떠올려.”
“응? 무슨 소리?”
“그냥 떠올려.”
“…….”
잠시 미심쩍은 표정을 짓던 성아영은 곧장 눈을 감고 집중해 가기 시작했다.
최선아가 말해 줬던 메시지 내용은 알고 있었다.
[호위 서비스를 이용합니다.]
[이용료는 한 개체당 200만 원입니다.]
[호위 개체는 장기 이용자의 능력을 공유합니다.]
이것이 성아영이 볼 메시지였다.
“……뭐야. 나 새로운 능력 생긴 거야?”
“저 둘한테 서비스 신청해.”
성아영의 곁엔 이미 가르취와 차크취가 있었다.
“취익! 이 인간! 기분 나쁘다!”
“무섭취!”
새로운 능력이 생겨서일까.
성아영의 의심스러운 분위기는 어느새 가득한 호기심으로 바뀌어 있었다.
“하, 한다?”
“응.”
그녀 앞엔 어느새 호위 서비스용 인벤토리가 띄워져 있었다.
“두근두근!”
“입으로 심장 소리 금지.”
“콩닥콩닥!”
“…….”
스륵.
돈이 사라졌다.
본격적인 호위 서비스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현상이었다.
“……주민성?”
성아영은 엄청나게 당황하고 있었다.
아마도 능력의 공유 메시지 때문일 터.
“야! 이거 뭔데!”
“환불은 안 됩니다. 고객님.”
“이런 거는 미리 말해 주라고!”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성아영 자신이었다.
반면, 엄청나게 곤란해하는 이들도 있었다.
“취익! 싫다! 이런 인간 싫다!”
“거부취!”
곤란한 반응이었다.
호위 서비스가 적용되면 교감도 가능해질 테니까.
주민성은 성아영의 태도 변화를 살폈다.
“……뭔데. 뭐라 말이라도 해 봐.”
“응? 쟤들 하는 말 안 들려?”
“취, 취이?”
“……응?”
뭔가 이전의 호위 서비스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당장 최선아만 해도 고블린의 말을 알아듣는 데다, 판자촌 능력자들도 각자의 호위 몬스터들과 상당한 교감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냥 취취! 거리는데?”
“……원래는 소통도 되긴 하거든?”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잘 써먹어야겠지.”
성아영은 곧장 배불뚝이 오크 형제를 향해 말했다.
“……안녕? 성아영이라고 해.”
두 오크의 반응 또한 가관이었다.
“대장! 이상하다! 괴물이 말을 건다! 취익!”
“살려취!”
오크들 기준에선 성아영이 엄청난 괴물인 모양.
“주민성. 쟤들 뭐래? 반갑대?”
“……응? 그럴걸?”
“그럴걸은 뭔데! 괜찮으니까 말해.”
“…….”
지금은 사실을 숨기는 방향이 훨씬 이로웠다.
당분간 인천 게이트 총괄은 성아영이니까.
“너 예쁘대. 잘 부탁한다더라.”
“진짜? 짜식들. 보는 눈은 있어서.”
물론 진실은 언제나 냉정한 법.
“취익! 괴물이 웃는다! 무섭다!”
“두렵취!”
기묘한 조합의 기묘한 동거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