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가능성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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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가능성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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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가능성 (3)
2022.03.04.
활력꽃.
그리고 건물 부가효과의 조합.
이로써 급속 체력 회복이라는 조건이 갖춰졌다.
“이제 전력으로 달려도 문제없겠지.”
하지만 문제는 남아 있었다.
바로 성아영의 존재였다.
“음냐. 음냐.”
고블린꽃에 취했는지 술에 취했는지 알 수는 없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성아영을 이곳에 남겨 두면 찝찝함만 남을 터였다.
“에휴. 챙기긴 해야겠네.”
성아영의 소속 탓에 인벤토리 수납은 불편한 상황.
무난한 선택지는 직접 데리고 다니는 것뿐이었다.
물론 텐트를 씌워 깨우는 선택지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읏차.”
주민성은 그대로 성아영을 어깨에 걸쳤다.
흘러내리는 침을 텐트에 흡수시킬 생각은 없었기에 머리는 뒤쪽으로.
이것으로 모든 준비가 끝났다.
타탓!
마석 이식 이후, 주민성의 각력은 인간을 초월했다.
이미 육상 선수의 수준을 넘어, 스포츠카 이상의 속력을 내기 시작한 것이다.
심지어 거칠게 튀어나온 지면은 밟는 대로 푹푹 꺼질 정도.
여기에 무시무시한 탄력까지 더해졌다.
판자촌 능력자들과 교대해 폐허 도시를 경계 중이던 고블린들이 그런 주민성을 포착했다.
“키익? 키이익!”
“수고.”
슈슉!
“키이이!”
고블린의 눈엔 그저 목소리만 들릴 뿐이었으니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타탓!
게이트를 빠져나와 바닷길 돌파까지도 금방이었다.
쿵!
“후우우…….”
바닷길이 끝나갈 즈음.
주민성은 급히 달리기를 멈췄다.
수많은 기척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취, 취익! 로드!”
“음?”
인천 게이트에서 이어지는 바닷길.
입구 주변엔 수많은 오크 라이더들이 있었다.
게이트 너머 바닷길이 열리는 기괴한 변화가 원인이었던 모양.
“로드를 뵙습니다!”
쿵!
동시다발적으로 오크들이 다크울프에서 내려와 무릎을 꿇기 시작했다.
“저희를 버리지 말아 주십시오! 취익!”
“취익! 부탁드립니다!”
“이끌어 주십시오! 취익!”
주민성의 행방불명에 분리불안이라도 걸린 것 같은 태도였다.
내부적으로도 상당한 동요가 있었는지 서로를 믿지 못하는 모습도 보였다.
“……말하고 가지 않았었나?”
“이렇게 모르는 장소로 떠나실 줄은 몰랐습니다! 취익!”
“아이고…….”
그래도 이렇게 오크들이 마중 나온 것은 주민성에겐 좋은 소식이었다.
제르취와 카르파크.
뭔가 접촉이 있던 것으로 추정되는 둘을 오크들을 이용해 금방 쫓을 수 있을 테니까.
“카르파크는 어디 갔어?”
“취, 취익!”
오크들이 다시금 동요하기 시작했다.
몬스터끼리 서로 눈치 보는 모습은 상당히 진귀한 광경이었다.
“너.”
“취익!”
이럴 땐 상대를 지정해서 대답을 듣는 게 가장 빠르다는 것이 주민성의 판단이었다.
전부 공유하고 있는 내용일 테니까.
“카르파크. 어디 갔어?”
“취익! 로드께서 오신 그 길을 따라 떠나셨습니다!”
“……음?”
길이 엇갈렸던 모양이다.
이로써 제르취와 카르파크의 소재지가 명확해졌다.
‘우리 쪽 게이트에 있었다. 이건가.’
여기서 새로운 의문이 생겼다.
눈앞의 오크들에게선 대표로 보이는 개체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느 집단이든 대장이 생기기 마련인데.’
그 예시엔 크룩스가 해당했다.
크룩스는 고블린 왕이 아닌 행동대장임에도 불구하고, 게이트의 모든 고블린을 이끌고 있었다.
이는 콩이도 마찬가지.
콩이는 직접 명령을 내리진 않지만, 게이트의 모든 데빌도그는 콩이를 따랐다.
주민성과의 은근한 공통점이었다.
“그러면, 지금 여기 대표는 누군데?”
“취, 취익!”
“취이익!”
이것이 핵심이었던 모양.
복종의 자세를 유지하던 오크들조차 주민성의 시선을 피하기 시작했다.
“뭐가 문제인지 말해. 내가 해결해 줄 테니까.”
“취익! 정말입니까!”
“췩! 하, 하지만!”
주민성은 싸늘한 눈빛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취익……. 저희도 누굴 따라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응? 무슨 소리야. 괜찮으니까 전부 말해.”
그제야 오크들이 하나둘 입을 열기 시작했다.
“추적대장이 떠나고, 새로운 강자가 둘이 생겼습니다!”
“맞습니다! 둘은 서로 싸우지 않습니다!”
“취익! 누가 더 강한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렵습니다! 췩!”
동시에, 은근한 한기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짚이는 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설마…….’
그리고 가장 어려 보이는 오크가 손을 들며 소리쳤다.
“가르취! 차크취! 우리를 데리고 다니지 않습니다!”
“…….”
둘에겐 분명 오크 라이더들 틈바구니에서 임무를 수행하라는 명령을 내렸었다.
거부 반응도 없었다.
오히려 즐거워하는 느낌에 가깝기도 했고.
“걔들. 너희랑 같이 다니지 않았어?”
“맞습니다! 취익!”
“근데 왜?”
“인간! 인간이 왔었습니다! 췩!”
“…….”
새로운 사실이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주민성이 F급 게이트에서 분투하는 사이, 인천 게이트에서도 능력자들이 찾아왔던 것.
오크들은 그대로 말을 이어 갔다.
“가르취가 인간을 순식간에 제압했습니다! 취익!”
“취익! 차크취가 인간을 단번에 압도했습니다!”
이곳에 찾아왔던 능력자들은 바로 제압된 모양이었고.
“가르취는 인간의 제물을 전부 빼앗았습니다! 취익!”
“취익! 차크취는 인간을 노예로 만들었습니다!”
“…….”
살인을 하지 않았다는건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이 또한 쉬이 흘려들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가르취와 차크취 둘 다 강합니다! 취익!”
“누구를 따라야 할지 모릅니다! 췩!”
“…….”
그제야 내용들이 정리가 됐다.
가르취와 차크취가 앞장서서 인간들을 처리했는데, 정작 다른 오크들은 누굴 따라야 할지 몰라서 혼란이 왔다는 내용이었다.
사람이 이해하기엔 어려운 감성이다.
“그래서 대장을 뽑기로 했습니다! 취익!”
“신성한 대장전! 대장의 결투! 취익!”
“……근데?”
오크들은 대장을 추대하기 위해 행사를 열었고.
“가르취! 우리가 쌓아 둔 식량을 전부 빼앗습니다! 췩!”
“차크취! 식량을 더 가져오라고! 취익! 우리를 쫓아냈습니다!”
“…….”
오크들이 행사를 위해 준비한 물품을 전부 갈취, 그리고 남은 제물까지 전부 빨아먹기 위한 착취를 벌였다는 이야기였다.
“……어. 그래……. 괜히 내가 미안해지네…….”
“취익! 억울합니다!”
언제나 이랬다.
주민성의 주변엔 멀쩡한 부하들의 비율이 극단적으로 낮았다.
그나마 지금은 멀쩡한 크룩스마저도 처음엔 다짜고짜 사용료를 부과해 댔으니 정상은 아예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
“미안하다……. 인간이 미안해…….”
“취익! 로드는 위대한 오크들의 수장!”
“로드는 위대한 오크! 인간이 아닙니다! 췩!”
“……갑자기 미안함이 싹 가시네.”
“취익! 역시 로드이십니다!”
“…….”
이젠 나름 잘생김이 묻었다고 생각했는데, 오크들의 눈에는 주민성도 오크로 보이는 모양이다.
물론 머리는 마석 이식이 관련된 문제니 넘어가도 된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다만 대놓고 오크라고 하니 기분이 나쁠 뿐.
“후우. 하여튼 알겠으니 걔들한테 먼저 가 보자.”
“취익! 안내하겠습니다!”
“취익! 나쁜 놈들! 혼내준다!”
제르취와 카르파크는 둘째 치고, 가르취와 차크취는 주민성이 직접 관여할 필요가 있었다.
당장의 고비는 없겠지만, 인간들을 노예화했다는 건 후속대가 찾아올 수도 있다는 말이었으니까.
‘A급 게이트에 방문할 정도면 능력자 보험 정도는 당연히 가입했겠지. 최대한 빨리 데리고 나가야 해.’
능력자 보험.
상품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어마어마한 비용이 들어가는 고등급 능력자를 위한 상품이다.
보험에 가입한 능력자는 보험사에 자신의 게이트 방문 기록을 공유하고, 예정된 시각에 귀환하지 못할 땐 고위 능력자가 직접 찾아가 구출하는 구조였다.
여기가 A급 게이트인 것을 고려한다면, 뒤이어 나타날 능력자는 분명 유명 길드의 S급 이상.
이곳이 위험 지역인 것까지 감안하면 협회 간부급에 비견될 만한 강자가 찾아올 것이 확실시된다.
‘걔들 둘이선 절대 못 막지.’
주민성이 협회 간부들을 제압할 수 있었던 건, 수많은 도움 덕분이었다.
해외 언론을 동원해 전투 의지를 상실시키고, SSS급 능력자를 포함한 용병대와 수많은 신성 측 능력자의 희생.
그리고 변수 그 자체인 제르취를 비롯한 몬스터, 판자촌 능력자, 최선아의 군단까지 전부 합세해서 이룬 결과였다.
절대 주민성 혼자서 이뤄낸 성과가 아니었다.
“앞장서.”
“취익! 안내합니다!”
“취익! 혼내 준다!”
투두두두두!
과연 오크 라이더랄까.
오크 라이더는 고블린 라이더보다 훨씬 빠른 기동력을 자랑했다.
“취익! 저 앞입니다!”
최전방의 오크가 가리킨 곳은 주민성이 인천 게이트에서 처음으로 소유한 폐건물.
중식당이었다.
딸깍.
주민성은 그대로 조명을 켜 건물을 비췄다.
그러자 건물 주변에서 속옷 차림의 남자들이 포착됐다.
“히, 히익!”
“살려……! 사, 사람! 능력자님! 여기입니다!”
당장은 사람이 우선이 아니었다.
이들은 협회 측 능력자일 가능성도 있었고, 몬스터를 이끄는 모습을 보인 이상 곱게 보내 줄 이유도 없었다.
주민성은 몹쓸 광경에 인상을 찡그리며 가르취와 차크취의 위치부터 살폈다.
“느, 능력자님!”
“시끄러워요.”
“아, 알겠습니다! 놈들은 안에 있습니다!”
노예화(?)된 남자들은 주민성이 자신들을 구하러 온 능력자라고 생각했는지 필사적으로 오크 형제의 위치를 알렸다.
“어……. 근데 웬 여자를…….”
“쉿! 쉬잇!”
이젠 놀랍지도 않은 얘기지만, 성아영은 여전히 주민성의 어깨에 매달려 있었다.
오크들은 아마 전리품쯤으로 생각하고 있을 테고.
지금의 주민성에게 인천 게이트는 집 마당과 마찬가지라 한 손의 핸디캡쯤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가르취. 차크취.”
어두컴컴한 중식당 안쪽, 그곳에선 입에 온갖 식량을 덕지덕지 묻힌 오크 형제가 있었다.
“취이?”
“대, 대장취!”
도둑질하다 걸린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두 오크는 갑작스러운 주민성의 등장에 크게 당황한 모습이었다.
“뭐 하냐…….”
“취, 취익! 대장에게 줄 물건을 정리하고 있었다!”
“나눔취!”
주민성은 성아영의 발에 걸린 굽 낮은 구두를 벗겼다.
벗겨진 구두는 그대로 가르취와 차크취의 이마에 살포시 옮겨졌다.
빠악!
쾅!
“취이이익! 아프다!”
“고통취!”
이것도 나름대로 힘을 조절한 수준이었다.
주민성의 전력을 고스란히 받아낼 만한 인물은 황태범 정도밖에 없었으니까.
“임무. 직접 말해 봐.”
“취익! 제르취를 찾는다!”
“추적취!”
두 오크는 임무를 잊은 상태는 아니었다.
은근히 놀라운 일이었다.
“근데 왜 안 찾아.”
“취익! 제르취! 여기 없다!”
“실종취!”
일단은 정답.
하지만 주민성은 알아서 잘을 선호했다.
이것은 기준에는 조금 못 미치는 결과였다.
“그래. 제르취는 여기 없지. 그러면 뭘 해야겠어?”
“취익! 맛있는 것! 먹는다!”
“맛있취!”
두 오크의 식탐은 콩이와도 비견될 정도.
하지만 지휘력도 적용되고 임무까지 내렸으니 식탐이 2순위쯤은 될 거라 믿었었다.
1순위인 추적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할 거라 믿었다.
오판이었다.
“너희들을 얕본 것 같다.”
“취익! 뭔가 불안하다!”
“조공취!”
가르취와 차크취는 급히 바닥에 있던 물건을 주워 주민성에게 건넸다.
“취익! 전리품이다!”
“약탈취!”
“…….”
밖에 있던 능력자들의 옷으로 추정되는 걸레와 식량, 각종 물품이었다.
“음?”
그때, 걸레짝 사이에서 작은 명찰이 포착됐다.
“가르취. 그거 줘 봐.”
주민성은 그대로 명찰을 뜯어 내용을 확인했다.
-A급 경비원 백준호
“쯧.”
바깥에 있는 남자들의 정체는 협회원이었다.
이것으로 보험의 걱정은 사라졌다.
다만, 협회장의 존재감이 다시금 떠올랐을 뿐.
“곤란하군.”
협회장과의 전화를 통한 협상은 하책이었다.
정보는 언제나 조심히 다뤄야 한다.
“증거 인멸은…….”
협회인들을 지워 버리는 건 중책이었다.
당장은 최선이겠지만, 이 역시도 협회에게 명분을 제공한다.
“아니지……. 그렇다면.”
주민성은 성아영에게 시선을 옮겼다.
“일단은 이 여자도 협회 간부니까.”
이용료 청구를 해 둔 이상, 성아영은 주민성에게 손해될 일은 하지 않을 여자였다.
즉, 성아영을 통한다면 상책을 짜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