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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바뀐 입장 (2)
2022.02.28.


주민성은 콩이와 임진석의 조합을 상상했다.

“네가 콩이를? 감당할 수는 있고?”

당연한 물음이었다.

임진석은 절대 도시로 보내지 않을 예정이니까.

“마석이라면 얼마든지 조달하지.”

“…….”

임진석은 콩이의 식성을 진작 파악하고 있었다.

“네가 모르는 사이에도, 콩이와 나는 깊은 교감을 나누고 있었다.”

“……안 물어봤는데.”

“…….”

그런 와중에도 주민성은 임진석이 콩이를 만났던 시점을 상상했다.

‘언제부터지? 미행하면서 마주쳤던 건가?’

확실히 그럴싸한 가설이었다.

한창 폐허 도시를 들쑤시고 다니던 시절, 콩이는 틈틈이 어딘가로 사라지곤 했었으니까.

그것도 입가에 마석 가루를 잔뜩 묻힌 채.

“설마, 마석까지 먹인 거야?”

“그래. 품질 좋은 마석들만 골라 먹였지.”

“…….”

괜스레 뜨끔함을 느낀 주민성은 임진석의 시선을 피했다.

최하급 마석만 먹여 왔기에 당연한 행동이었다.

심지어 배급하던 마석마저 빼돌리기까지 했으니 더더욱.

“……자격은 있군.”

“저, 정말이냐!”

주민성은 임진석의 요청을 흔쾌히 수락하기로 마음먹었다.

안 그래도 콩이의 분노를 풀어 주려면 임진석 같은 호구가 필요했으니까.

‘게이트 지배력 조회.’

[현재 소유 중인 게이트의 점유율]

[1위. FFF급 건물주 주민성]

[2위. 죽음에서 돌아온 오크 로드 제르취(당황)]

[3위. 칠흑 숲의 추적자 카르파크(당황)]

[4위. 고블린 첩보 대장 크룩스(기쁨)]

[5위. 폭식 마수 콩이(분노)]

콩이는 여전히 분노 상태.

얼마나 마석에 한이 맺혔는지는 안 봐도 뻔했다.

‘그보다 제르취랑 카르파크는 뭐지?’

평범하게 사용하던 게이트 지배력 조회는 휘하 몬스터의 감정 동요까지 표시하고 있었다.

‘크룩스는 실제로도 충직한 타입이니까 이해는 가는데.’

여기서 유력한 가설이 있다면, 제르취와 카르파크가 마주쳤을 경우였다.

제르취 역시 다크울프를 다루는 오크였기에 연관성은 분명히 존재할 터.

그리고 송몽룡을 따르는 오크 또한 제르취와 같은 소속.

‘뭔가가 있군.’

임진석에게 할애할 시간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주민성이 신경 써야 할 게이트는 인천 게이트도 포함이었으니까.

‘연결됐으면 다 내꺼지. 뭐.’

당장은 협회장의 눈치를 봐야겠지만, 주민성에겐 어마어마한 야망이 있었다.

특히 멀쩡한 구역도 게이트로 만들어 버리는 지금의 이상 현상을 철저하게 이용할 계획이었다.

‘당분간은 힘을 키워야겠지만.’

생각을 마친 주민성은 임진석에게 말했다.

“콩이는 일단 만나게 해 줄게.”

“정말이냐!”

정말 어울리지 않게도, 눈앞의 대악당은 주민성의 호의에 순수히 기뻐하고 있었다.

“그래.”

대화를 어느 정도 마친 둘은 건물에서 빠져나왔다.

더 나누고 싶은 대화는 많았지만, 지금은 게이트 지배 첫날.

임진석 말고도 신경 쓸 것들은 산더미처럼 많았다.

“콩이는 지금 어디 있지!”

“몰라. 게이트 어딘가에 있으니 알아서 찾아 봐.”

“바로 가겠다!”

“그러든가. 가면서 계약서도 좀 살피고.”

괜히 SS급이 아니라는 듯, 임진석의 신체 능력은 매우 뛰어났다.

임진석이 순식간에 달려나가자 당황한 사람들이 주민성을 바라봤다.

“대장님! 저거 괜찮습니까?”

“네.”

주민성에겐 믿을 구석이 있었다.

-‘을’ 임진석은 계약에 동의한 시점부터 ‘갑’ 주민성에게 허락을 받아야만 능력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계약이 어떻게 적용될지는 모르겠지만, 어떻게든 발현되는 것이 계약일 터.

임진석은 이제 제르취 2호라고 봐도 무방했다.

“자자! 빨리 나르자고!”

“라면은 언제 와!”

“곧 올 겁니다!”

휴식을 지시한 덕분에, 폐허 도시에선 회식 준비가 한창이었다.

협회와의 갈등에서 어마어마한 승리를 거둔 만큼, 오늘만은 반드시 기념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대장님! 여기입니다!”

봉춘향은 식탁 앞에 놓은 고급스러운 의자를 가리켰다.

좌석이 두 개인거로 봐선 한 자리는 신우빈의 것일까.

신성에서 이런저런 가구를 챙겨온 덕분에 회식 규모는 생각보다 훨씬 커져 가고 있었다.

“어, 아직 볼일이 남았는데…….”

“그렇습니까? 기다릴 테니 얼른 다녀오십시오!”

엄격, 근엄, 진지.

봉춘향을 나타내는 적절한 단어들이었다.

나이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지만.

“금방 다녀올게요.”

“네!”

그렇게 사람들을 가로질러 주민성이 도착한 장소는 본 적 없는 컨테이너가 밀집한 곳.

용병들이 모여있는 장소였다.

이들은 한국식 회식이 어색했는지 협회가 물러났음에도 기존 인원들과는 제법 거리를 두고 있었다.

“왔군요! 빌딩 오너!”

“예. 구속구 잘 썼습니다.”

용병대장 물주.

그에 대해선 모르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그나마 신우빈에게 넌지시 물어봤을 때, 자신보단 아버지와 더욱 연관되어 있다는 정도가 전부였다.

“후후. 뭔가 궁금한 게 많은 표정이군요.”

“그렇습니까?”

건물 부가효과 덕분에 표정관리는 자신 있다고 생각했는데, 눈앞의 남자에겐 소용 없는 모양.

주민성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뭐 하시는 분입니까.”

“말 그대로 물주입니다. 필요한 것을 내어주고, 돌려받지요. 지금처럼.”

스륵.

남자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구속구가 사라졌다.

여기서 주민성은 큰 충격을 받았다.

‘인벤토리?’

주민성 특유의 은은한 보랏빛 인벤토리는 아니었다.

남자의 인벤토리는 진한 주홍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인벤토리. 좀 더 제대로 보고 싶은데, 괜찮으신지?”

“…….”

상대 쪽에서 먼저 인벤토리를 꺼내 보인 이상, 주민성에겐 남자의 요청을 거절할 만한 명분이 없었다.

오히려 호기심이 생길 정도였다.

“여기요.”

지잉-

“역시! 당신에겐 자격이 있었습니다!”

자격.

명함을 건네받을 당시에도 들었던 말이었다.

그리고 자격이 있다는 말은, 눈앞의 남자와 한배를 탈 수도 있다는 말과 일치했다.

하지만 전부 믿어서도 안 될 일.

주민성의 뒤통수를 노리는 사람들은 세상에 너무나도 많았다.

따라서 시작은 본격적인 탐색.

“그보다 저는 물주 씨에 대해서 더 알고 싶습니다.”

“이젠 이름으로 불러 주시지요. 스미스입니다. 미국인이고요.”

“아, 네. 스미스 씨.”

스미스는 주민성과 같은 능력을 가졌음에도 SSS급이라는, 어마어마한 등급을 가진 능력자였다.

배울 점이라면 얼마든지 있을 터.

“후후. 인벤토리에서 눈을 떼질 않으시는군요.”

“그렇죠. 워낙 유용한 능력이다 보니.”

“맞습니다. 인벤토리. 이 능력으로 우린 아주 훌륭한 파트너가 될 수 있습니다.”

“파트너…….”

그리고 본론.

“나에게 원하는 게 뭡니까.”

물주.

이름만 들어도 친해지고 싶은 단어였다.

하지만 주민성은 온몸으로 깨우치고 있었다.

호의에는 그만한 대가가 따른다는 것을.

“원하는 걸 말하세요. 내가 생각하는 파트너는 좋은 거래 관계를 이어 갈 상대니까.”

지금이라면 주민성도 충분한 카드를 갖췄다고 할 수 있었다.

그 누구도 개입할 수 없는 게이트, 최강의 가성비를 자랑하는 몬스터 군단까지 있었으니까.

게다가 건물주 능력의 무한한 성장 가능성까지 생각한다면 SSS급 능력자와의 거래조차 충분히 가능하다는 판단이었다.

“거래라. 아주 훌륭하군요. 더할 나위 없습니다.”

말을 마친 스미스는 그대로 인벤토리를 개방했다.

스미스의 인벤토리는 주민성의 것과 다르게 엄청나게 낮은 고도에서 떠올랐다.

쿵. 쿵.

그리고 수많은 박스가 쏟아졌다.

“충격 흡수 장치가 내장되어 이상은 없을 겁니다.”

“……이게 다 뭡니까?”

떨어진 박스는 범상치 않은 크기를 자랑했다.

심지어 박스 바깥면엔 위험물을 나타내는 표기까지.

누가 봐도 위험한 물건이었다.

“최신형 총기입니다.”

“총이요? 고등급 능력자에겐 의미 없는 물건일 텐데요.”

“다릅니다. 저희가 비밀리에 개발해 냈으니까요. S급 게이트에서도 문제없이 써먹을 수 있습니다.”

“…….”

여기서 드는 의문점이 한 가지 있었다.

왜 이런 무시무시한 병기를 여태 사용하지 않았는가.

이를 예측하기라도 한 듯 스미스가 말을 이었다.

“이번 작전에선 무의미했습니다. 이번에 추적하던 한국의 협회 간부들은 SS급. 아쉽게도 그들에게 쉽게 통하는 무기가 아닙니다. 괜히 노출했다가 볼 손해가 더욱 컸어요.”

“그렇습니까?”

“예. 지금은 이렇게 총기를 제공해 드려야 이득이고요. 후후.”

단순히 생각해도 부족한 논리였다.

S급 게이트의 몬스터들 또한 호구는 아닐 테니까.

오히려 무기를 꺼낼 시기를 기다리고 있었다가 더욱 그럴듯했다.

‘뭔가 숨기고 있군.’

결과적으로 스미스는 100점짜리 파트너가 아니었다.

훌륭한 파트너라면 모름지기 신우빈처럼 깔끔함이 있어야 했으니까.

‘신성 측에 제공하려던 총기였던 걸까.’

이쪽이 훨씬 신빙성 있는 추측이었다.

실제로 협회와 신성은 전쟁까지 가려던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발을 빼기도 뭐했다.

서로 인벤토리를 공개한 이상, 적대보단 협력이 훨씬 좋은 처신이었다.

“좋습니다. 총기 사용법은 기존의 것과는 다른지?”

“같습니다. 오히려 기존의 총기들이 가졌던 많은 단점들이 개선됐어요. 실전에서도 아주 유용하게 쓰일 테지요.”

곧이어 스미스가 박스에서 총을 꺼내 근처에 있는 용병에게 던졌다.

“직접 보시는 게 빠를 겁니다.”

총을 받은 용병은 그대로 근처 건물을 조준했다.

“무게는 7.5kg. 소음과 반동은 거의 없으며.”

피피피핏!

“마석 에너지 충전식 탄환이라 공기의 저항도 받지 않습니다. 관통력은 말할 것도 없고, 사거리도 보통의 저격총 수준이죠.”

콰르르르……!

상당히 멀리에 있던 아파트가 무너져내렸다.

효과는 사실이었던 모양.

지잉-

“마탄은 한 번에 4발까지 발사할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 구할 수 있는 최하급 마석을 넣으면 3초 이내에 재발사가 가능하겠군요. 마석의 성능이 향상될수록 재장전 시간도 단축되는 구조입니다.”

스미스가 제공하려는 총기는 누가 봐도 사기적인 무기였다.

‘이런 무기를 그냥 주려고 했다고?’

이 총은 일반인도 사용 가능한 무기였다.

심지어 최선아나 판자촌 능력자라면 이 총을 훨씬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으리라.

“협회의 무능력한 저격 능력자들보다 훨씬 낫다고 자부합니다.”

“…….”

그나마 재장전 시간 3초가 약점으로 보이는데, 이는 능력자들이 가진 각자의 능력으로 요령껏 대응해야 하는 모양.

이것으로 주민성은 총기에 대한 평가를 마쳤다.

‘무조건 챙기자!’

주민성은 입가에 흐르려는 침을 닦으며 스미스에게 물었다.

“이 총을 대가로 뭘 원하시는지.”

“후원이 가장 좋겠지만, 거래라면 얘기가 달라지지요. 빌딩 오너. 당신의 방문을 원합니다.”

“……미국이요?”

“정확히는 우리 길드의 아지트입니다.”

부처(Bucher)라는 이름의 비공식 길드.

그곳의 아지트라면 과연 어디일까.

“거기서 뭘 해야 합니까?”

“예. 제가 이렇게 무기를 제공해 주듯, 주민성 씨도 그에 맞는 능력을 제공해 줌으로 거래가 성사될 겁니다.”

“…….”

“건물주니까. 가능하겠죠?”

이 남자는 건물에 대해서, 건물주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 걸까.

선뜻 물어보기엔 찝찝한 점이 너무나도 많았다.

“……정확히 어떤 능력을 원하시는지?”

“저는 건물주가 가진 능력에 대해 정확히 모릅니다. 하지만, 평범한 능력이 아니라는 건 알죠.”

“아하.”

서로가 서로의 능력을 모르는 상황.

다만, 어느 정도의 추측만큼은 가능한 상황.

“잘 알겠습니다.”

“훌륭하군요.”

스미스의 총기 제공은 물주다운 후원이었다.

그렇다면 주민성 역시 건물주다운 후원을 해 줄 필요가 있었다.

“총기는 전부 몇 정입니까?”

“전부 합쳐 200정입니다. 별도의 관리도 필요 없는 아주 훌륭한 물건이죠.”

“좋습니다. 제가 미국까진 안 가도 되겠네요.”

“……그렇습니까?”

주민성은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말했다.

“먼저 묻겠습니다. 원하는 건 방어구나, 무기에 한정되는지?”

“그것은 아닙니다. 건물주에게 병기를 바랄 수는 없죠.”

“그럼 줄 게 정해졌군요. 제가 FFF급이라는 것도 감안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물론입니다!”

주민성은 용병들이 머무는 컨테이너로 향했다.

“저 컨테이너, 직접 끌고 온 거 맞죠?”

“아, 차량은 경비실에 있습니다만. 필요하신지?”

“아뇨. 컨테이너만 필요합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는 건물주의 실력을 보여 줄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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