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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 세력 (2) (86/250)


거대 세력 (2)
2022.02.25.


협회의 또 다른 정예가 왔다곤 하나 신성의 저력 또한 만만치 않았다.

오히려 인원수라면 신성 측이 압도할 정도.

하지만 주민성은 능력자들의 싸움에서 인원수는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수천에 가까운 고블린들이 협회 간부 몇 명에게 학살당했던 일은 불과 하루 전의 이야기였으니까.

“대화로 풀지.”

이것이 주민성의 답이었다.

이 생각엔 신우빈 역시 동의했는지 피식 웃음을 지었다.

“그래. 너도 들었지?”

“예. 도련님.”

어느 샌가 나타난 신우빈의 비서.

여태 몸을 숨기고 있었던 모양이다.

‘같은 편이라지만 도저히 방심을 못 하겠군.’

비서는 그대로 상황 조율을 위해 밖으로 나섰다.

“우리는 5분 뒤에 나가면 될 거다.”

신우빈의 목소리엔 확신이 가득했다.

그만큼 비서의 능력을 믿고 있기 때문이리라.

5분이 지나고, 주민성과 신우빈은 건물 밖으로 나와 협회 능력자들과 대치중인 현장에 도착했다.

그러자 협회 측 대표자가 신우빈에게 인사했다.

“이런 일로 뵙게 되어 송구합니다.”

“난 됐고, 이쪽과 얘기해봐.”

“……예?”

협회 대표자는 S급 이상의 능력자로 추정됐다.

착용하고 있는 장비 수준도 최선아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

게다가 어깻죽지엔 유물로 추정되는 방어구까지 존재감을 뿜어내고 있었다.

“죄송하지만 처음 보는 분인데…….”

말투는 공손했지만, 말에는 뼈가 있었다.

나는 신성 측의 간부를 모두 알고 있는데 너는 못 보던 놈이구나 같은 느낌의.

그럴 수밖에 없었다.

투혼 갑옷은 텐트를 고정하기 위해 허리를 감싸는 형태로 바뀌어 있었으니까.

즉, 주민성은 아무런 장비도 착용하지 않은 평범남 그 자체였던 것.

“서로 초면인데 당연히 모를 수밖에요.”

상대의 무시어린 시선에 익숙해질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끔찍했던 기억은 처음 각성했던 그 날로 충분했다.

철컥!

주민성은 빠르게 상대의 차림을 머리에 그려 넣고 투혼 갑옷의 형태를 바꿨다.

철컥! 철컥!

“…….”

협회 대표자의 표정이 썩어 들어갔다.

어마어마한 돈을 투자해 맞춘 장비들이 투혼 갑옷에 의해 전부 모방당했기 때문이다.

“……유물 보유자셨군요. 도발입니까?”

“당연.”

지금은 분명 대화의 장이었지만, 유물을 보유한 상대라면 얘기가 달랐다.

주민성은 유물을 통해 하위 차원으로 날아간 당사자였으니까.

‘최대한 많은 유물에 대해 알 필요가 있어.’

협회 대표자는 얼굴을 찡그리며 한발 물러났다.

은은하게 압박하는 신성 측 능력자 때문이리라.

“무례했다면 사과드립니다. 자격은 충분하신 듯하니 이제 얘기를…….”

“아니.”

“그쪽도 자격을 증명해야 할 것 같습니다.”

주민성은 망설임 없이 남자를 향해 건물 잔해를 떨궜다.

쉬익!

여기서 상대가 유물로 잔해에 대응하는 것이 베스트였고, 능력을 사용해 잔해에 대응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상대의 역량을 파악할 수 있으니 이득이었다.

콰르르!

“이 정도면 되겠습니까?”

“…….”

건물 잔해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부서졌다.

아예 먼지처럼 흩날릴 정도였다.

하지만 이것은 상대의 역량이 아니었다.

‘저격이라니.’

누군가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먼 거리에서 정확히 건물 잔해만을 노린 것이었다.

주민성은 안타까움을 뒤로하고 상대의 역량을 순순히 인정했다.

“……충분하군.”

“감사합니다.”

FFF급이 S급 이상을 상대로 하대하는 어이없는 광경이었지만, 이곳에서 주민성을 무시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름 아닌 신우빈이 권한을 양보한 사람이니까.

“일단 저희 측 요구 조건입니다. 최우선은 게이트에 억류된 간부들의 해방입니다. 한 명도 빠짐없이 전원 돌려보내 주실 것을 요청합니다.”

“누구의 지시죠?”

“협회장님이 직접 내리신 지시입니다.”

“…….”

이 게이트가 협회장 정혁수와 신성 회장 신명철이라는 두 거물의 관심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순간이었다.

여기서 신우빈이 개입했다.

“잠시만 끼어들지. 그 요구 조건은 들어줄 수가 없어.”

“그렇다는 말씀은…….”

주변 분위기가 순식간에 팽팽해졌다.

“우리가 간부들 전부를 잡고 있지 않은데 어떻게 돌려보내지? 이사후는 죽었고 황태범과 성아영은 실종 상태다.”

“……마, 말도 안 돼.”

“니들도 봤을 거 아냐. 성아영 황태범은 여기 없어.”

협회 대표자는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오히려 더욱 기세를 끌어 올려 답했다.

“둘은 그렇다 칩시다. 하지만 이사후는 협회에 단 둘뿐인 예지 능력자입니다. 그를 죽였다고요? 이것은 돌이킬 수 없는 실수입니다!”

“참나. 내가 죽였냐? 니들끼리 죽였지?”

“……예?”

“이사후는 임진석이 죽였다.”

“그, 그럴 리가……”

신우빈이 주민성을 바라봤다.

이제 어떻게 하겠냐는 표정으로.

“선아 씨.”

“네!”

신우빈의 비서를 보고 자극받았던 걸까.

최선아 또한 숨어 있다가 갑자기 튀어나오는 기행을 펼쳤다.

“……그놈. 데리고 와 주세요.”

“네!”

마음 같아선 어디 가둬 놓고 평생 추궁하고 싶었지만, 그것은 허무한 복수로 끝날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놈을 통해 어마어마한 이득을 얻어낸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협상을 통한 이득은 물론, 자신을 따르는 이들의 신뢰까지 얻어낼 수 있을 터였다.

협상까지 마치고도 놈을 내주지 않는 결과가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털썩!

건물 부가효과 때문인지 임진석은 금세 정신을 차리고 주민성을 노려보고 있었다.

“직접 말해. 이사후인지 뭔지 네가 죽였다고.”

“…….”

협회 간부는 죽은 한 명을 제외하고 전원 생포한 상황이었기에 이사후가 누구인지는 쉽게 알 수 있었다.

신우빈의 증언이 더해졌으니 이젠 확실하다.

“당신도 알지? 이놈 최면 능력자라는 걸.”

“……최면이었습니까?”

의외로 협회측 대표자는 임진석의 능력을 모르고 있었다.

뒤가 구린 능력이다 보니 여태껏 철저히 숨겨 왔던 모양.

“아주 귀한 정보군요…….”

협회 대표자의 눈빛에 거대한 탐욕이 깃들었다.

주민성을 향한 호의는 덤.

‘같은 소속이라고 전부 같은 편은 아니지.’

임진석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상황은 점점 주민성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말해 주지 않으셔도 알겠습니다. 이사후는 같은 간부에게 죽임당했다는 걸. 아주 억울하게. 크흐흐.”

“……조창우. 이제야 본색을 드러내는군.”

남자의 정체가 드러난 순간이었다.

그 이름은 주민성도 알고 있었다.

작년 부산에서 혜성처럼 등장한 SS급 능력자의 이름이었으니까.

‘고작 1년 만에 협회 간부와 나란히 설 정도인가.’

강약약강인 성향만 제외해 놓고 본다면 능력 자체는 뛰어난 인물로 판단된다.

근처의 협회 능력자들의 신뢰까지 얻어낼 정도라면 수완도 상당할 테고.

“좋습니다. 살아남은 분들만 반환해 주시면 문제없겠죠.”

조창우의 의도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부분이었다.

여기서 간부 몇을 더 죽여도 못 본 것으로 하겠다는.

신성과 협회, 심지어 조창우에게도 나쁘지 않은 해결 방안이다.

“조창우 씨.”

“예.”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습니까.”

이 협상에선 주민성이 봐야 할 이득이 빠져 있었다.

“제 요구 조건도 들으셔야죠.”

“아……. 그렇지요. 말씀하십시오.”

주민성의 요구 조건은 간단하다.

침공해올 보스 몬스터에 각자 대비하는 것.

그리고 방해도 하지 말 것.

“협회장. 연결해 주시죠.”

“……제 선에서 끝내시는 게 좋을 텐데요.”

“나중이라면 모를까, 지금은 아쉽습니다. 더 큰 권한을 가진 사람과 얘기해야 해요.”

주민성은 상대의 기분을 크게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정론을 내세웠다.

하지만 조창우는 완고했다.

지금의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모양.

“우리는 교전까지도 생각하고 이곳에 왔습니다. 저희는 여러분을 처벌하러 온 사람이고요. 아실 텐데요. 집행권 정도는 있습니다.”

“…….”

주민성은 시선을 돌려 아군 전력을 파악했다.

당장 보이는 전력이라면 부족함은 없었다.

문제가 있다면 회복이 덜 된 능력자들이 많다는 정도.

반면, 협회 측 능력자들의 상태는 아주 쌩쌩했다.

게다가 어딘가에서 저격중인 능력자들까지 경계 대상이었다.

“좋게 가시죠. 서로에게 이득 되는 방향으로.”

이것이 거대 세력 간의 눈치 싸움인 걸까.

평범하게 혼자서만 다니던 주민성으로선 답답한 상황이 아닐 수가 없었다.

주민성의 고민이 깊어지자 신우빈이 가세했다.

“조창우. 신성이 만만하냐?”

“…….”

뚜둑.

“윗선에서 의견 좀 조율하자는데 어디서 아랫것이 머리를 들이밀어? 주제 파악하자. 응?”

“……부모 잘 만난 F급 주제에.”

“하.”

조창우가 본색을 드러냈다.

“협상은 결렬이다.”

“……!”

이게 공격 신호였던 걸까.

조창우가 팔을 높이 들어 올렸다.

당장이라도 집중 포화가 쏟아질 것 같은 분위기.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뭐, 뭐야.”

“뭐긴. 저격수 전멸이지.”

주민성이 조창우를 도발함으로 신성 측 외부 능력자들이 저격수들을 제압한 모양.

신성이 가진 저력은 주민성의 상상 이상이었다.

쿵!

“크윽!”

“덕분에 새로운 포로들이 생겼군요.”

SSS급 능력자, 물주까지 가세했다.

한 번의 손짓으로 협회 측의 모든 능력자를 꿇어앉히는 그의 능력은 가공할 정도.

“이걸 어쩌나. 얘기가 달라졌는데.”

승기를 잡은 주민성은 악당 그 자체였다.

뚜둑!

“아, 안 돼!”

조창우의 어깻죽지에 달려 있던 유물이 뜯겼다.

가공할 정도의 힘이었다.

“유물은 압수. 잘 쓸게.”

“크아아아!”

주민성은 그대로 조창우의 턱을 가격했다.

뻐억!

마석 이식을 통해 향상된 주민성의 근력은 SS급 능력자라도 단 한방에 기절시킬 수 있는 수준이었다.

“참나. 대화로 한다며?”

“대화 상대는 더 있으니까.”

“조창우가 파견된 거로 봐선 다음 지원군은 진짜배기들만 올 거다. 최상위 길드까지 개입할 수도 있고.”

즉, 다음은 SSS급 능력자까지 올 수 있다는 말이었다.

그들은 오로지 극한의 이득만을 추구하는 괴물들이었다.

“그럴 일은 없을 거야.”

주민성은 뜯어낸 유물을 매만지며 임진석에게 다가갔다.

“협회장이랑 통화 좀 하자.”

“……그냥 죽여라.”

“부탁 아니었는데. 몽룡아. 얘 휴대폰 좀.”

“네!”

임진석의 소지품은 송몽룡이 진작에 챙겨 둔 상태.

능력에 대한 자신감 때문이었는지 잠금은 걸려 있지 않았다.

“아, 여기 있다. 회장님.”

“빌어먹을 놈.”

조창우를 비롯한 협회 능력자들의 제압이 진행 중인 사이, 주민성은 협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디냐.

“처음 뵙겠습니다. 회장님. 주민성이라고 합니다.”

-…….

“저 아시죠?”

-……전화한 걸 봐선, 이긴 모양이군.

“예. 어쩌다 보니.”

-원하는 게 뭔가. 살아남은 아이들은 돌려보내 줬으면 하는데.

의외로 협회장은 주민성에게 인자한 태도를 보였다.

심지어 요구사항도 금방이라도 들어줄 기세였다.

“저 좀 그만 괴롭히면 안 됩니까?”

아마 협회장이 맞을 터였다.

주민성을 이렇게까지 몰아세운 원흉의 정체는.

“멀쩡한 사람 이렇게 놀림거리 만드는 이유가 뭐였습니까?”

-그건 만나서 얘기해야 할 것 같은데. 그리 가면 되겠나?

“……오지 마십쇼.”

주민성은 협회장과 맞설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아무리 지금의 능력이 특별하다지만,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하고 강력한 능력자와 비교할 정도는 아닐 테니까.

“오면 도망갑니다. 도망가서 들키지 않을 자신도 있고, 간부들이 협회로 돌아갈 일도 없을 겁니다.”

-허허.

그리고 진짜 요구사항을 말했다.

“휴전합시다. 정보 조금 풀어 드릴 테니 저 좀 내버려 두십쇼.”

-정보? 정보라. 나는 자네의 가치를 아주 높게 평가하거든. 그만한 가치가 있는 정보라면 받아들이지.

만난 적도 없는 사람에게 이런 고평가를 받는 건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여태껏 협회가 자신을 괴롭혀 온 것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사실.

분명 꿍꿍이가 있을 터였다.

‘내 능력에 대해서 뭔가 알고 있어.’

건물주란 능력은 확실히 특이한 능력이었다.

“비석.”

-…….

“비석에서 여태껏 본 적 없는 보스급 몬스터들이 쏟아질 겁니다. 근거 없는 정보라고 생각하신다면 그대로 협상은 결렬이고요.”

주민성은 농성까지도 충분히 각오한 상태였다.

이대로 인천 게이트로 물러나 바닷길을 게이트화 시키고 온갖 장애물을 설치한다면 협회로서도 곤란할 수밖에 없을 테니.

“요구사항 말하겠습니다. 이 게이트에서 무엇을 하던, 내버려 두십시오.”

-음. 그게 전부인가?

“예. 진짜 지긋지긋합니다. 변태세요?”

-허허. 좋네. 도움 되는 정보였어.

“…….”

-아이들은 돌려보내 주게. 다시 습격할 일도 없을 거야. 다음엔 내가 직접 갈 테니까.

“한 명은 뺍시다. 그게 누군지는 잘 아시겠죠.”

임진석만큼은 주민성도 절대 양보할 수 없었다.

놈과는 너무나도 긴 악연을 이어 왔으니까.

하지만 협회장의 대응은 그 이상이었다.

-그런 문제라면 계약서 사본을 보내지. 동시에 찢으면 사라지는 계약이니까. 물론 이것으론 부족하겠지. 안산 게이트의 자치권도 인정하겠네.

“……정말입니까?”

게이트 자치권은 주민성도 예상하지 못한 스케일이었다.

말 그대로 뭐든지 할 수 있는 권한이었으니까.

-나는 뱉은 말을 취소하지 않는 사람이야. 계약서와 함께 관련 문서도 첨부하지. 그러니 자유롭게 뭐든지 해보게. 이 정도면 됐나?

여태 꿈꿔오던 내 집 마련의 기회가 찾아오는 순간이었다.

“그 말, 후회하지 마십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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