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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 세력 (1) (85/250)

거대 세력 (1)2022.02.24.

다시금 의식이 생긴 주민성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깨어났다. “후우…….” 다시 깨어난 장소는 게이트 한복판이 아닌, 주민성이 폐허 도시에서 일궈낸 아지트의 어딘가. 밖에서 빛이 새어 들어오지 않는 것으로 보아 어느새 밤이 찾아온 모양이다. “키익.” 바깥으로 향하는 통로 입구는 이름 모를 충성스런 고블린이 지키고 있었다. 분명 최선아와 능력을 공유하는 다섯 고블린 중 하나였다. “전부 잘 풀렸나 보네.” 안전함을 확인한 주민성은 크게 안도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 편이 많아 다행이었지. 위험할 뻔했어.” 결과 자체는 최고였다. 큰 피해 없이 임진석을 제압할 수 있었으니까. 몸을 움직이며 찌뿌둥함을 털어낸 주민성은 자신이 의식을 잃은 이유를 복기했다. ‘건물 관조가 문제였을까, 시간 정지가 문제였을까.’ 주민성이 의식을 잃었던 시점은 건물 관조가 해제된 순간. 건물 보수를 제한 없이 미친 듯이 남발하며 동시에 인벤토리까지 화려하게 운용한 결과였다. ‘분명 관조 중엔 위험하다 싶은 느낌도 없었는데.’ 능력을 과하게 사용하면 무리가 갈 수밖에 없었다. 워낙 많은 심력을 쏟아야 하니까. 그렇게 되면 머리가 아프든지, 탈진 상태가 찾아오든지 어떤 방식으로든 몸이 위험하다는 신호를 보내오는 것이 정상이었다. 하지만 건물 관조 중엔 아니었다. 오히려 건물 관조가 끝난 이후, 둑이 터지듯 위험 신호가 한 번에 쏟아졌던 것이었다. “조심해야겠다. 끄응.” 주민성은 굳이 방에서 나오지 않고 다시 드러누웠다. 신우빈의 영향 때문인지 온갖 가구들이 아지트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하. 얼마 만에 느껴 보는 침대의 감촉인지.” 건물 부가효과 덕택에 피로는 쌓이지 않았다. 하지만 자취방을 나선 이후 제대로 된 휴식은 손에 꼽을 정도였기에 지금의 휴식은 마음의 여유를 위함이라 할 수 있었다. “진짜 개고생만 몇 번을 한 건지.” 능력자가 된 이후의 지난 몇 개월은 파란만장하기 짝이 없었다. 맨몸으로 콩이와 사투를 벌이고, 건물을 폭발시키며 몬스터 대군과 맞서기까지 했다. 고작 FFF급의 능력을 가지고.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과 연계하며 뭔가 해 보겠다 싶을 즈음엔 하위 차원까지 끌려갔다가 마석까지 이식되고 협회 간부들과 목숨을 걸고 싸우기까지 했다. 이젠 대업적이라고 말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 “조금이라면…….” 주민성은 배에 감고 있던 텐트까지 풀어헤치고 진정한 휴식을 만끽했다. 그동안의 고생에 대한 작은 포상이었다. 아침 해가 뜨고, 최선아와 송몽룡이 가장 먼저 주민성을 찾아왔다. 쓰러졌던 이유가 탈진임을 알고 있었기에 크게 걱정하는 듯한 기색은 없었다. “민성 씨. 잘 잤어요?” “네. 상황은 좀 어때요?” “사망한 한 명 제외하면 전원 생포예요.” “전원이요?” 전원이라면 별도로 학교에 구금중인 황태범과 성아영까지 포함했다는 뜻. 답은 송몽룡에게서 들을 수 있었다. “그……. 선아 누나한테만 알려 줬어요.” 누나라는 호칭이 어색한 듯 송몽룡의 얼굴은 상당히 빨개져 있었다. “걱정 말아요! 저는 무조건 민성 씨 편이니까!” “당연하죠.” 주민성은 자신의 편이 누구인지 확실하게 구분해 두고 있었다. 여태까지의 아군이었던 신성과 대립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기에 더더욱. “좋아요. 일단 우리 쪽에서 잡은 간부들은 절대 빼앗기면 안 되니까요.” “아, 그것과 관련해서 지금 작은 트러블이 생겼어요.” “네? 트러블이라뇨? 몬스터 관련인가요?” 그럴싸한 의심이었다. 이 건물 안에는 정예 고블린들이 돌아다니고 있었으니까. “아뇨. 몬스터들은 문제없어요. 오히려 우빈 씨가 말도 안 될 정도의 수완을 보이셔서 들키지도 않았어요.” “그러면 포로 관련……?” “네. 비슷해요. 신성 측에서 섭외한 용병들이 민성 씨 쪽으로 전향했거든요.” “예에?” 그 부분에 대해선 주민성도 의아함을 느끼긴 했었다. 의식을 잃기 전, 과할 정도로 자신을 지켜오는 그들의 태도는 첫 만남 때와는 확연히 상반된 것이었으니까. “그 사람들, 어디 있어요?” “건물 밖에서 신성 측 사람들과 대치 중이에요.” “아아…….” 분명 신우빈의 판단이었으리라. 몬스터가 아무렇지 않게 돌아다니는 건물에 제3자를 들이는 건 멍청한 행동이었다. “포로들은요?” “관련 능력자들이 확실하게 제압 중이에요. 능력도 전부 봉인시켜 뒀으니 도망가진 못할 거예요.” “그럼 우리도 슬슬 나가죠.” “네!” 담판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주민성은 빠르게 복장을 갖추고 미로를 통과해 건물 밖으로 향했다. “으음. 미스터 신. 위약금으로도 부족합니까?” “당연하지. 이건 신뢰의 문제야.” “신뢰는 곧 돈일 텐데요.” “그래. 그 신뢰가 부족하다. 이놈들 몸값이 얼만지나 알고 그러는 건가? 수십. 아니, 백배는 받아야 할 일이지.” 건물 밖에선 신우빈을 필두로 한 신성 측과 물주를 필두로 한 용병들이 대립 중이었다. 여기서 의외였던 건, 기절해 있는 임진석의 신원이 용병 측에 있었다는 것. “소유권은 우리 것이 아닙니다. 빌딩 오너. 그의 것이죠. 따라서, 문제는 없습니다.” “아오! 그놈이랑 내가 같은 팀이라고!” “후우! 다시 같은 이야기의 반복……. 오우! 드디어 주인공이 왔군요!” 모든 이들의 시선이 주민성에게 쏠렸다. 그중에서도 신우빈의 복잡미묘한 표정이 가관이었다. “……좀 괜찮냐?” “그럭저럭. 그보다 무슨 일?” 평범한 인사였음에도 신성 측 인물들의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졌다. 반면, 표정의 변화가 없는 쪽도 있었다. 운전기사와 비서를 비롯한 신우빈 측 인물들이었다. ‘참 알기 쉬운 사람들이군.’ 2차 피아식별까지 끝낸 주민성은 사람들을 가로질러 임진석 앞으로 향했다. 주민성의 발걸음에 맞춰 용병들 역시 자리를 피했다. 영어라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상당히 호의적인 목소리 톤에 다시 한번 의아함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신세 졌습니다. 이놈, 데려가도 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빌딩 오너.” 사무적인 표정으로 신우빈을 대할 때와는 달리, 물주 능력자는 주민성에게 압도적인 호의를 보내왔다. “아, 제압은 어떻게 했는지 알 수 있을까요?” 이 부분은 짚고 넘어가야 했다. 능력이 개입된 제압이라면 건물 부가효과에 의해 제압이 풀릴 수도 있었으니까. “특상급 범죄자용 발찌를 채웠습니다.” “……감사합니다.” 거래가 500억 이상, 채우는 순간 SSS급 능력자조차 제압할 수 있다는 유물과 마주하는 순간이었다. 새삼 물주의 수완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발찌는 그의 처리가 끝나는 대로 회수해야 하니 연락 부탁드리겠습니다.” 이는 주민성이 물주에게 연락할 수밖에 없는 명분이기도 했다. ‘역시 나에게 원하는 게 있군.’ 생각을 마친 주민성은 그대로 임진석에게 텐트를 뒤집어 씌웠다. 놈의 능력이 봉인된 이상, 건물 부가효과는 얼마든지 적용시켜도 될 일이었다. “저녁 전에 연락 드리겠습니다.” “예. 그럼 저희는 근처에서 머물고 있겠습니다.” “네.” 주민성의 대답과 동시에 팽팽한 긴장감이 사라지고, 용병들은 망설임 없이 학원에서 멀어졌다. “……휴. 나머지도 이제 가 봐.” “도, 도련님?” “가라고.” “아, 예!” 신성 측 사람들도 물러났다. 예상대로 학원은 신우빈과 핵심 측근만 들어갈 수 있었는지 게이트 입구 방향으로 향하는 모습이었다. “대화가 필요할 것 같군. 그렇지?” “그래.” 이전의 날 선 모습과 달리 지금의 신우빈에게선 평소의 무심한 표정이 드러나 있었다. 학원 내부는 어두침침하고 복잡했기에 둘은 근처의 꽃집으로 이동해 마주 앉았다. “주민성. 네 사정은 이해한다.” 신우빈은 주민성과 임진석의 악연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주민성 입장에선 섭섭할 수밖에 없는 일. 그러나 상대를 이해하는 건 주민성도 마찬가지였다. 신우빈은 신성의 정식 후계자였으니까. “까놓고 얘기하지. 포로 처우 문제는 내 손에서 벗어났다. 아버지의 뜻이다.” “아버지라면…….” 신성 회장 신명철. 그는 협회장과 더불어 대한민국을 지탱하는 거물이자 양대산맥중 하나였다. 그런 거물의 관심은 주민성조차 염려하고 있었다. “그렇군……. 이유는?” “협회랑 제대로 한판 붙으시려는 모양이야. 아마도 나는 명분일 테고. 오늘 중으로 사내 간부부터 핵심급 능력자들까지 전부 이곳에 도착한다.” “미친.” SSS급 능력자인 물주를 앞세운 용병들이 선봉에 불과했다면, 후속대의 전력은 말할 필요조차 없을 터. 즉, 이번 싸움은 단순히 신성과 협회의 이권 다툼의 스케일을 넘어 전쟁으로까지 발전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사건의 스케일이 순식간에 커지는 순간이었다. “이해한 표정이군. 그렇다면…….” “그래도 안 돼.” “……뭐?” 이럴수록 더욱 단호해야만 했다. 주민성이 본 미래는 거대 조직 몇의 희생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었으니까. “믿겨지지 않겠지만 들어 둬. 정보에 대한 보답이니까.” “…….” 주민성은 신우빈에게 하위 차원에서 겪었던 일들에 관해 설명했다. 태양의 순례지에 대해 말했을 땐, 신우빈에게서 미미한 공포의 감정까지 느껴졌다. “보스급 수백도 아니고……. 수천? 그것도 학습된 보스급 몬스터?” “능력을 통해 본 게 그 정도야. 그리고 하위 차원에는 같은 등급의 건물들이 몇 개 더 존재했어.” “……청두, 이스탄불, 이라클리오라고 했었나?” “그래.” 신우빈은 다급하게 휴대폰을 꺼내 정신없이 문자를 타이핑했다. 그리고 주민성에게 내밀었다. -전 세계에서 동시에 나타난 비석! 그 정체는? -이스탄불, 비석으로 인한 불안감으로 폭동 일으켜……. -그리스 총리. 이라클리오 게이트의 비석, 문제없음을 주장……. “왜인지 중국 쪽은 언론 자체를 폐쇄했다. 우리 쪽 정보에 의하면 청두를 비롯한 5개 대도시에 이례적으로 고위능력자들이 집결하는 모양이야. 그렇다면 네 말이 맞겠지.” “벌써 시작이라고……?” “네가 말한 이상 현상은 게이트에서만 발생했어. 즉, 바깥에선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지났다는 말이지. 추측이지만, 하위 차원으로의 이동과 관계없이 일어났을 일이었다는 게 더 유력해.” 도리어 표정이 나빠진 건 주민성 쪽이었다. “처음부터 일어날 미래였다면…….” 주목해야 할 장소는 주민성이 알아낸 지역이 아닌 다른 비석이 설치된 장소였다. “비석은 총 몇 개야?” “몰라. 계속 늘어나니까.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발견되는 경우엔 제보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미친.” 시간만큼은 자신의 편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랬기에 더욱 아찔했다. “그런데도 한판 붙겠다고?” “비석 때문에 발생한 실질적인 피해는 없으니까. 협회건 신성이건 어느 정도의 리스크를 감당해낼 힘이 없는 것도 아니고.” “보통의 보스급이 아니잖아!” “그건 너만 알고 있는 정보야. 정보의 가치를 다시 계산해보길 권장한다.” “…….” 실제로 주민성은 자신이 가진 정보를 아주 높게 평가하고 있었다. 가치는 환산조차 불가능할 정도. 그럼에도 신우빈은 그 정보에 더욱 비싼 값을 매겼다. “그 정보라면 아버지는 물론이고 협회장까지 휘두를 수 있을 거다. 예상보다 훨씬 리스크가 심각한 수준인 것 같으니.” 신우빈은 더 말하지 않았다. 임진석에 대한 처우조차 주민성에게 전권을 넘기는 것으로 결정한 모양. ‘양쪽 다 납득시킬 수 있는 협상안…….’ 주민성은 근처에 널브러져 있는 임진석을 보며 고심을 거듭했다. 최면은 풀렸지만, 여전히 계약 때문에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하…….” 그때, 바깥이 크게 소란스러워졌다. 동시에 송몽룡이 주민성 근처에서 나타났다. “대장님! 협회예요!” “뭐?” 타다다다! 동시에 수많은 능력자들이 신우빈과 주민성을 지키기 위해 꽃집 주변을 에워쌌다. “아, 말하는 걸 잊었군. 기존 협회 측 안내역들은 전부 제압해 둔 상태였어. 지금 이 게이트, 우리 회사 소유나 마찬가지야.” “…….” 신성이 이렇게까지 자유롭게 인원들을 운용할 수 있던 배경엔 협회 측 인물들의 배제가 우선되어 있었다. 흐릿했던 퍼즐이 더욱 선명해지는 순간이었다. “주민성. 이제 결정해라. 어떻게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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