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부 사냥 (4)2022.02.23.
아무리 능력을 각성한다 한들, 정신력의 한계는 누구에게나 존재했다. 인간에게는 생존 본능이 있으니까. 그리고 현대에서의 생존 본능은 능력을 과도하게 많이 사용했을 때 발현되어왔다. 본능적으로 출력을 억제하지 않는다면, 죽을 테니까. 그것을 의식하지 않는다면 임진석처럼 되는 것이었다. “몽룡아.” “네?” “능력, 얼마나 쓸 수 있겠어?” 송몽룡은 이미 성아영을 제압하는 데 상당한 힘을 쓴 상태였다. 이번 작전은 최대한 빠르고 간결하게 진행해야 했다. “……10분. 아니, 15분 이상은 해 볼게요!” “무리하면 안 돼. 10분 안에 끝내 보자.” “……네! 그런데 어떻게요?” 송몽룡의 질문은 당연했다. 임진석과는 초면이 아니었을 테니까. 가만히 있어 파묻었던 상대가 이렇게까지 압도적인 강함을 보이는 건 송몽룡도 의외였을 터였다. “자기 최면.” “아!” 임진석은 명백히 이성을 상실한 상황이었다. 단지 그것이 능력 때문인지 알아볼 수 없을 뿐. “능력을 썼어. 자기 자신한테.” “미, 미쳤어…….” “미친놈이고 말고.” 주민성은 임진석을 향해 분노어린 시선을 보내며 씹어뱉듯 말했다. “이대로 가만히 내버려 두면 죽겠지. 살아남더라도 식물인간은 당연할 테고.” “아! 그래서 제가 필요한 거네요! 멋대로 죽으면 곤란하니까!” 임진석은 멀쩡히 평범하게 살던 주민성의 능력자 생활을 꼬이게 만든 원흉 1순위였다. “비슷하지만 달라. 살려야 해.” “……예?” 주민성은 임진석에게 들어야 할 게 잔뜩 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들어야겠어. 놈은 날 이해시켜야 할 거야. 절대 쉽게 못 죽여.” “…….” 송몽룡은 말없이 주민성의 어깨를 토닥였다. “고마워. 몽룡아.” “아니에요. 대장님도 우리 모두를 구했으니까요.” “……그래.” 주민성은 판자촌 능력자들에게서 딱히 대장 노릇을 하지 않았음에도 대우받고 있었다. 협회에 의한 피해자라는 동질감 때문이었다. “방법만. 알려 주세요.” 송몽룡의 눈빛엔 주민성에 대한 신뢰가 가득했다. “……정말 고맙다.” 주민성은 곧장 자신의 작전을 말했다. “최면을 풀어내는 방법은 간단해.” “역시 대장님이라면 그럴 줄 알았어요!” 주민성은 인벤토리에서 텐트를 잔뜩 꺼내 송몽룡에게 건넸다. “이, 이게 방법이에요?” “응. 한 개라도 좋으니까 텐트를 녀석 머리에 씌워. 그러면 최면이 풀릴 거야.” 건물을 이용한 최면 해제는 이미 수차례 검증된 상태. 지금 상황에서 이를 무사히 실행할 수 있는 송몽룡은 최고의 카드나 다름없었다. “오직 너만이 가능해.” “바로 다녀올게요!” 팟! 시야에서 텐트와 함께 송몽룡이 사라졌다. 주민성은 곧장 고개를 돌려 임진석의 변화를 살폈다. “응?” “대장님!” “으응?” 송몽룡의 몸엔 상처가 가득했다. “접근할 수가 없어요! 전부 잘려나가요!” “그 정도야?” 송몽룡은 S급 능력자 중에서도 최상위 능력을 갖추고 있었지만, 상대는 SS급 최상위. 임진석에겐 허점을 노린 공격마저도 전부 잘라내 버릴 힘이 존재했다. “몇 분 걸렸어?” 송몽룡은 손목에 너덜거리는 시계를 바라보며 답했다. “7분이요.” 송몽룡이 부담 없이 능력을 지속할 수 있는 시간은 10분. ‘3분 남은 건가.’ 물론 송몽룡에겐 그 이상의 능력 사용이 가능했다. 하지만 그런 경우, 노화라는 부작용이 함께한다. ‘3분 안에 놈에게 건물 부가효과를 적용해야 하는데.’ 투웅! 바깥에선 송몽룡과 주민성의 존재도 알아차리지 못한 채 전투가 한창이었다. ‘용병들의 도움을 받으면 빈틈을 만들 수 있을까?’ 다행히 아군의 능력은 임진석에 비해 크게 약해 보이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임진석보다 약한 사람은 전부 죽었으니까. ‘아니야. 저 사람들도 한계겠지.’ 폭음은 반나절 가까이 끊이지 않은 상태였다. 그만큼 장시간의 능력을 사용했기에, 조금이라도 무리를 시키면 탈진 상태가 찾아올 가능성이 컸다. 즉, 이대론 용병들도 송몽룡도 임진석이 펼친 배수의 진을 뚫어낼 수 없다는 뜻이었다. ‘방법이 있을 거야. 분명히.’ 주민성은 심각한 표정으로 임진석을 바라보며 고심을 거듭했다. ‘놈 주변엔 뭐가 있던 전부 잘려 나간다. 시간이 멈춰도 마찬가지고.’ 상성이 적절한 SSS급 능력이라면 모를까, 적어도 이 게이트에 존재하는 능력자 중에선 임진석에게 접근해 살아남을 사람이 없었다. ‘건물. 건물이 분명 답일 텐데!’ 건물은 생명체가 아니었다. 때문에, 어느 정도 잘려나가는 것쯤은 아무렇지 않게 감당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임진석 주변의 건물들은 주민성의 소유가 아니었다. ‘분명 중급 이상이었겠지.’ 물론 반파 상태의 건물은 얘기가 다르다. 그런 경우엔 등급이 하향 조정되어 소유가 가능해진다. 하지만. ‘완전히 끝난 건물은 건물이 아니야.’ 건물주는 건물만을 소유할 뿐. 건물이 아니라면 소유할 수 없는 것이 건물주의 한계였다. “후우. 후우.” “대, 대장님?” 그럼에도 주민성의 표정은 잔뜩 흥분되어 상기된 상태였다. 그리고 주민성의 시선은 임진석의 능력에 휘말린 널브러진 텐트 조각을 향하고 있었다. “하지만. 얘들은 건물이지. 흐흐.” “대, 대장님?” 주민성은 잔뜩 고양된 표정으로 말했다. “이 텐트들. 부서진 건물에 두고 올 수는 있지?” “그 정도는 간단해요.” “그래. 부탁할게. 나 사라져도 당황하지 말고.” “네? 그게 무, 무슨 말이에요!” “건물 관조. 텐트 595.” [10분간 건물을 관조할 수 있게 됩니다.] [관련 능력이 해금되어있지 않습니다.] [건물주는 별도의 공간으로 격리됩니다.] ‘된다!’ 새까만 공간에 격리된 주민성은 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시야는 어느새 텐트를 중심으로 고정된 상황. 주민성은 송몽룡의 시간 정지로 인한 괴리를 극복해내기 위해 집중력을 잔뜩 끌어올렸다. “후우!” 송몽룡 역시 각오를 다지며 텐트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응?’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능력을 사용 중인 송몽룡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맙소사.’ 원래라면 시간 정지 능력이 끝나고 나서야 주변 상황이 펼쳐져야만 했다. 하지만 건물 관조는 이를 무시한 채, 송몽룡의 시간 정지마저 묵묵히 관찰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했다. “헉! 헉!” 송몽룡은 텐트를 끌어안고 전력으로 달렸다. 시간 정지는 생각보다 큰 집중력이 필요했는지 눈가엔 핏줄이 가득 솟아있었다. “으으으! 일단 해 보자!” 주민성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텐트에서 솟아오른 인벤토리는 송몽룡보다 빠르게 날아갔다. ‘수납! 수납! 일단 수납!’ [건물 잔해가 수납됩니다.] [건물 잔해가 수납됩니다.] …… “어어? 대, 대장님?” 이에 송몽룡이 당황했지만, 건물 관조 상태의 주민성의 대답은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는다. 할 수 있는 건 그저 인벤토리의 운용뿐. 촤르르르! 인벤토리는 쉴 새 없이 건물 잔해를 빨아들였다. 그러자 잔뜩 갈라져있는 맨땅이 모습을 드러냈다. ‘몽룡아! 거기!’ 송몽룡은 주민성이 지시했던 자리에 텐트를 힘차게 던졌다. 핏! “윽!” 동시에 송몽룡의 팔뚝에 붉은 실선이 새겨졌다. 시간이 정지되었음에도 발동중인 임진석이 능력 때문이었다. ‘수고했다. 몽룡아.’ 주민성은 곧장 다음 행동을 시작했다. ‘건물 보수. 텐트 595.’ [보수에 사용할 재료가 필요합니다.] 동시에 수납했던 건물 잔해가 텐트를 향해 쏟아졌다. ‘건물 잔해.’ [텐트595가 보수됩니다.] [적절치 않은 재료 활용에 텐트가 손상됩니다.] ‘건물 보수. 건물 보수.’ [적절치 않은 재료 활용에 텐트가 손상됩니다.] [적절치 않은 재료 활용에 텐트가 손상됩니다.] 누가 봐도 건물 잔해에 깔리는 모양새였다. 하지만 이곳엔 새로운 변수가 있었다. 바로 임진석의 능력이었다. 서걱! [적절한 재료 활용으로 건물이 보수됩니다.] ‘건물 보수.’ 서거걱! [적절한 재료 활용으로 건물이 보수됩니다.] [적절한 재료 활용으로 건물이 보수됩니다.] 판정이 뒤집히는 데엔 이유가 있었다. 텐트를 짓누르던 건물 잔해가 임진석의 능력에 잘려나가면서 짓누르는 힘이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적절치 않은 재료 활용에 텐트가 손상됩니다.] 물론 모든 건물 잔해가 그렇진 않았다. 다만 보수에 성공하는 경우가 더 많을 뿐. [적절한 재료 활용으로 건물이 보수됩니다.] [적절한 재료 활용으로 건물이 보수됩니다.] …… 그 결과. [텐트595가 교묘하게 보수됩니다.] [텐트595가 새로운 방향으로 보수됩니다.] 희망적인 메시지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맙소사!” 잘려진 건물 잔해가 덕지덕지 붙어 있는 기괴한 텐트 형태에 송몽룡의 벌어진 입은 다물어질 줄을 몰랐다. 여전히 주민성은 멈추지 않았다. ‘건물 보수! 건물 보수!’ 서걱! [텐트595가 황당하게 보수됩니다.] [텐트595가 손상됩니다.] [텐트595가 더욱 파격적으로 보수됩니다.] 주민성은 인벤토리를 천천히 임진석이 있는 방향으로 이동시켰다. 그 와중에도 건물 잔해는 계속해서 쏟아지고 있었다. ‘좋아. 이 정도면 시간 정지가 풀려도 충분해.’ [텐트595가 알 수 없는 형태로 보수됩니다.] [보수 수준: 알 수 없음] 메시지와 달리 주민성에겐 확신이 가득했다. 미래 또한 알 수 있었다. ‘이 텐트는 내가 원하는 대로 보수될 테니까.’ 서걱! 수십 개의 건물 잔해가 동시에 잘려나가고, 수백 개의 건물 잔해가 텐트에 달라붙었다. “크윽! 이제 대장님만 믿을게요!” ‘그래!’ 송몽룡은 최선을 다했다. 주어진 시간 3분이 아닌 5분 이상을 견뎌내는 데 성공한 것이었다. 이 정도면 밥상에 따끈한 국밥에 석박지까지 세팅된 수준이나 마찬가지. 시간 정지가 해제되고, 기괴한 형태로 진화한 텐트의 건물 잔해가 임진석 주변으로 쏟아졌다. 쿠르르르! ‘건물 보수!’ 잘려나간 건물 잔해는 다시금 텐트를 향해 달라붙었다.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과 다름없는 행동이었지만, 지금 같은 경우는 물이 아닌 양념장이 쏟아졌다고 봐야 했다. 쏟아지는 물보다 채워지는 물이 많은 격이었으니까. 쿵! 주민성의 영향력은 용병들에게도 미치고 있었다. 그리고 이를 가장 빠르게 눈치챈 인물은 물주. “……설마 빌딩 오너. 당신입니까?” 건물 관조 상태라 대답할 수 없었지만, 의도만은 전할 수 있었다. 여유가 생긴 인벤토리는 용병들과 임진석 사이로 날아가 경계선을 만들고 있었으니까. 쿠쿵! 쿵! 보수가 속도를 더해 나갈수록, 임진석의 공격은 잦아들었다. 그리고 건물 관조가 종료된 시점에선. “후우. 성공.” 임진석의 반격은 이어지지 않았다. 털썩! 과도한 집중 탓인지 주민성은 그대로 바닥에 쓰러질 수밖에 없었다. “대장님! 괜찮아요? 대장님!” 용병들 또한 주민성의 주변을 에워싸며 혹시 모를 임진석의 기습에 대비했다. 텐트의 영향 범위 안이라서 그런지 만물 소통도 적용되고 있었다. “반드시 지켜! 목숨을 걸어서라도!” “예!” 용병들이 확실한 아군임을 확인한 덕분이었을까. 그동안 쌓였던 긴장감이 순식간에 풀려 나가기 시작했다. “몽룡아. 저 새끼 꼭 생포해…….” “네! 맡겨 주세요!” 주민성은 이 말을 마지막으로 의식을 잃었다. * * * 한편, 최선아는 고블린 라이더를 이끌고 도주 중인 협회 간부를 추적하고 있었다. “블링아아! 뭔가 보여어?” “키에에에에엑!” 고블린 라이더 군단의 우익을 이끄는 블링이, 군단의 좌익을 이끄는 블랑이와도 소통했다. 고블린의 언어를 확실하게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손짓 발짓을 더해가며 다급한 괴성이 섞이면 조금 맹한 구석이 있는 최선아조차 눈치챌 수밖에 없었다. “뭐? 있다고?” “키에에엑!” 도주 중인 협회 간부를 발견했다는 신호였으니까. “가자!” 가속 능력이 더해진 데빌도그의 기동력은 최선아 본연의 능력을 크게 상회했다. 그리고 최선아는 그 데빌도그에 탑승하고 있었다. 슈우우우! 쿵! 쿠쿠쿠쿠쿠쿵! 블링이의 신호를 따라 바람을 가르며 도착한 장소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나마 흔적이라곤 먼지 가득한 폐건물에 남겨진 두 종류의 발자국뿐. “응? 아무것도 없는데?” “키엑! 키엑키엑!” 블링이는 최선아가 타고 있는 데빌도그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응? 데빌도그 밥 먹을 시간이야?” “키엑! 키에엑!” “아…….” 최선아의 발아래엔 왜인지 보이지 않았던 협회 간부가 기절해 있었다. “진짜 민성 씨 말대로네?” 주민성은 의식을 잃은 와중에도 연전연승을 거듭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