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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부 사냥 (3) (83/250)


간부 사냥 (3)
2022.02.22.


한편, 주민성은 신우빈과의 통화를 겨우 마친 상황이었다.

“휴. 재벌 2세는 다르구나.”

여태까지의 신우빈이 경비원의 모습으로 힘을 숨기고 있었다는 사실은 어느 정도 짐작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어울리지 않게 체계적이고 깔끔한 방식이었다.

주민성의 수첩에는 신우빈과 통화하면서 적은 수많은 메모가 정신없이 적혀있었다.

“일단 정보들부터 종합해 보자.”

뒤죽박죽 휘갈긴 메모를 차분히 정리하자 제법 깔끔한 결과물이 나왔다.

-신우빈 측에서 생포한 협회 간부는 2명.

-현재 게이트엔 300명이 넘는 능력자가 투입되어 있음.

-해외 언론사는 총 13개국의 유명 언론사가 투입됨.

-용병중 한 명은 은밀히 섭외한 SSS급 능력자임.

-추가로 500명 이상의 신성 측 인원이 투입될 예정.

-협회 소속의 동행인은 전부 제압한 상황.

-간부 2명은 위치 파악 안 되는 중.

-또 다른 간부 2명은 아직 교전 중.

-능력자가 아닌 사람들은 아지트 3층에 있음.

-폐허 도시에 있던 고블린들은 선아 씨가 데리고 나감.

-선아 씨한테 연락하려면 수길 아저씨 폰으로.

-신우빈은 따로 설득할 필요 있음.(☆☆☆)

“좋아. 한 장으로도 정리되네.”

주민성은 만족한 표정으로 정리한 결과물을 뿌듯하게 바라봤다.

신우빈의 일 처리는 과할 정도로 좋았다.

특히 협회 간부 입장에선 퇴로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꼼꼼했다.

다만, 주민성의 입장에서 신경 쓰이는 문제가 몇 있었다.

대표적으론 주민성과 신우빈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생포한 협회 간부의 처우 문제였다.

“휴우.”

신우빈은 협회 간부 처우 부분에 대해서만큼은 자신의 권리를 주장했다.

기업 차원의 문제이기에 양해해 달라는 부탁까지 해가면서.

“그런다고 내가 양보할 것도 아닌데. 미안해지게.”

지금은 작은 의문이 생긴 상태였다.

생각을 정리할수록, 상황을 정리할수록 명확해졌다.

주민성은 신우빈의 아버지이자 신성의 실질적인 왕인 신성 회장이 뒤에서 힘을 썼을 경우를 가정했다.

전에 만났던 신성 측 직원들의 소속 때문이다.

신우빈의 휘하 직원이었다면 절대 일어나지 않았을 트러블 또한 의심을 더욱 증폭시켰다.

여기에 SSS급 능력자의 개입까지.

송몽룡과 달리 시간이 멈춰 있었던 신우빈이 하루 만에 추진했다기엔 과하다 싶은 인원 편성이었다.

“만약 내 생각이 맞다면, 오늘이 신성과 협회의 2차전이 되겠지.”

보통 사람이라면 그저 거대한 권력자들이 싸우는구나 하고 넘길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주민성은 이 전쟁을 원치 않았다.

태양의 순례지에서 대기하는 보스급 몬스터들 때문이었다.

심지어 놈들은 지구에 대해 어느 정도 지식을 갖췄기에 기존 게이트의 몬스터보다 훨씬 위험한 존재들이었다.

“후우. 일단은 상황부터 끝내고 봐야겠군. 손이 모자랄 정도로 바쁘겠어.”

수첩을 덮은 주민성은 신우빈이 만든 판에 본격적으로 끼어들기로 마음먹었다.

그 시작은 최선아였다.

-네! 민성 씨! 걱정했어요! 어디 다치진 않았죠?

“네. 다행히도요. 지금 어디쯤이세요?”

-아직 고블린들 인솔 중이라 멀리 못 갔어요. 눈에 띄지 않고 가기가 좀 어렵네요. 도착까진 좀 걸릴 것 같아요. 민성 씨는요?

“전 지금 학교예요. 크룩스도 여기 있으니까 선아 씨 쪽으로 보낼게요.”

-저도 학교로 갈까요?

“아뇨 크룩스 보낼 테니까 합류해서 움직여주세요.”

-어? 제가 따로 할 게 있어요?

“당연하죠. 선아 씨 역할이 중요해요. 협회 간부 쫓아 주셔야 하니까.”

-저, 저요? 제가 쫓는 거 맞죠? 전화를 잘못 걸었다거나…….

최선아는 F급의 평범한 가속계 능력자였기에 주민성의 말을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가속계 능력자라면 신성 측 능력자 중에도 있을 테니까.

“저는 선아 씨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힝……. 히이잉…….

“동물 소리 내도 안 통해요. 선아 씨는 사람이니까. 할 수 있어요. 저는 믿습니다. 성공하면 그동안의 빚도 없던 거로 하죠.”

-아 정말 걱정했는데 농담이나 하시고! 빚은 직접 갚을 거예요. 그보다……. 제가 할 수 있을까요?

“네. 할 수 있어요. 생각보다는 덜 위험할 것 같아요.”

주민성의 말은 사실이었다.

그동안의 치열했던 경험이 헛되지만 않았다면.

‘여태까지 교전 중인 놈은 여태껏 날 쫓고, 최면까지 걸었던 그놈일 테니까.’

얼굴을 마주한 시간은 적었지만, 임진석은 누구보다도 주민성과 끈질긴 악연을 이어가는 중인 인물이었다.

이 정도로 지독하게 끈질긴 놈이 아니라면, 어마어마하게 공을 들인 신성의 포위망 속에서 버텨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있었다.

이것만큼은 확신했다.

따라서 최선아를 활용하려는 이유 또한 일맥상통했다.

“이런 포위망 속에서도 발각되지 않은 협회 간부는 전투계열이 아닐 가능성이 커요. 디버퍼나 버퍼, 은신이나 탐지 같은 보조계 정도로 예상합니다.”

-예. 예상인데요?

“여차하면 고블린을 먼저 앞세워서 상대 능력을 파악할 수도 있어요. 선아 씨 호위들은 엄청 빠르니까.”

-확실히 저보다 빠르긴 한데…….

템빨이 가미된 최선아, 그리고 가속 능력을 공유하는 고블린과 데빌도그라면 해볼만 하다고 생각하는 주민성이었다.

보험으로 크룩스까지 붙여 주면 안전도 확보할 수 있는 데다, 징검문은 별다른 제약 없이 누구나 통과할 수 있으니 호위 서비스를 적용받지 않는 고블린 라이더들의 기동력 또한 대폭 상승시킬 수 있었다.

게다가 주민성이 상대한 협회 간부 중에서 가장 빠른 인물은 황태범.

능력의 발동 속도면 모를까, 기동력에서 최선아를 앞지를만한 인물은 없을 거라는 판단이었다.

-그래도 이렇게까지 믿으신다니 해 볼 수밖에 없겠네요!

“고마워요. 보답은 꼭 할게요.”

-알았어요. 그럼 나중에 봐요!

“네. 파이팅.”

최선아가 움직여 주는 것만으로도 주민성에겐 큰 도움이었다.

도주 중인 협회 간부 2명은 원래라면 주민성이 직접 쫓아야 할 대상이기도 했으니까.

“수길 아저씨 쪽도 걱정되긴 하는데, 그쪽은 신우빈이 지켜주고 있고 잡은 간부들은 여기 사람들에게 맡기면 되겠지. 이제 계약도 나름 피할 수 있을 테니.”

성아영이 조금 신경 쓰이긴 했지만, 그녀의 능력에 관해 설명해 주면 충분히 대비할 수 있을 거라 판단됐다.

강력한 능력자를 상대하는 경험은 교육 과정에도 큰 도움이 되리라.

최종적으로 신우빈과 최선아, 그리고 판자촌 능력자들이 역할을 분담함으로써, 선택지는 하나로 압축됐다.

바로 교전 중인 전장에 합류하는 것이었다.

“그놈만 확실하게 잡으면 대성공이다.”

주민성은 생각을 곧장 실천으로 옮기기 위해 움직였다.

“뭐야. 이대로 방치?”

“죽이진 않을 테니까 가만히 있어. 때가 되면 협회로도 돌려 보내줄게.”

“그쪽이 편하긴 하겠네. 그러던가.”

성아영은 의미 모를 미소를 지으며 주민성의 경고에 긍정했다.

“쓸데없이 도망치면 안전은 보장 못 해 준다.”

다음은 교실이었다.

주민성은 판자촌 능력자들에게 성아영과 황태범의 능력을 자세히 설명했다.

그러자 김 대위에게선 상당히 긍정적인 답변이 나왔다.

“보이지 않는 공격이 까다롭긴 합니다만, 교육 과정에는 최고입니다. 경험이 쌓일수록 우리는 강해집니다. 오히려 맡겨만 주신다면 직접 맡아보고 싶습니다.”

“든든하네요. 믿고 있겠습니다. 대위님.”

“하하! 명령하셔도 따랐을 겁니다. 대장님.”

주요 길목에 송몽룡의 오크와 제르취를 배치하는 것으로 혹시 모를 황태범과 성아영의 도주에도 대비했다.

콩이는 여전히 보이지 않아 아쉽긴 했지만, 제르취라면 주민성도 믿을 수 있었다.

“흥. 평소 같으면 무시하겠지만, 날 죽였던 놈들이라면 얘기가 달라지지. 내 손에 걸리면 반드시 찢어발겨 주겠다.”

“죽이진 마라. 자, 커피.”

“취, 취익!”

다소 튕기긴 하지만, 제르취 역시 이번 임무엔 상당한 의욕을 드러냈다.

이 정도면 충분하리라.

“저는 대장님과 함께네요! 다행이다.”

“당연하지. 우리 쪽 최강 능력잔데.”

송몽룡은 주민성과 동행하기로 했다.

상대가 임진석이라면 절대 방심해선 안 될 상대.

시간 정지 능력은 주민성의 목숨을 몇 번이고 구해 줄 동아줄이 될 예정이었다.

학교를 나서기까지는 좋은 분위기였다.

하지만 걸음을 이어갈수록, 폭음에 가까워져 갈수록 주민성과 송몽룡의 표정은 심각해져만 갔다.

다른 능력자들의 시체가 점점 많아졌기 때문이다.

“뛸 수 있겠어?”

“……네! 할 수 있어요!”

콰르르르!

파지직!

송몽룡을 다독이며 도착한 현장에는 치열하다 못해 처절한 전투가 일어나고 있었다.

“바로 합류할까요?”

“아니. 일단은 상황부터 이해해야 해. 상대가 강할수록 신중하게 접근해야지. 계약 때문에 대놓고 공격하지도 못할 거고.”

“그렇네요…….”

송몽룡도 그렇지만, 상대가 임진석이라면 계약은 주민성에게도 적용된다.

-을 주민성은 계약에 동의한 이후 ‘갑’ 능력자 협회 계약자의 얼굴과 이름을 인식할 수 없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라면, 인식할 수만 없을 뿐.

적대든 공격이든 전부 가능하다는 점이었다.

“저쪽으로 가자.”

“네.”

일단은 근처 폐건물로 우회해 상황을 지켜보는 것이 먼저였다.

서걱!

“끄아아아!”

예상대로 아직까지 버티고 있는 협회 간부의 정체는 임진석이었다.

여기서 놀라운 사실은 다른 간부 한 명이 죽어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작전은 생포일 텐데?’

협회 간부는 요즘 세상에서 보기 힘든 방법으로 죽어있었다.

그것도 목이 뎅강 잘린 상태로.

황당하리만큼 허무한 모습의 죽음이었다.

임진석과 동행하는 간부라면 절대 어설픈 능력자는 아닐 것이었기에 더욱 의문스러웠다.

반면, 임진석은 압도적인 살기를 풍기며 다른 능력자들을 압박하고 있었다.

주민성은 끝까지 남아 분투하는 능력자들을 살폈다.

‘만났던 사람들이군.’

주민성과 약간의 트러블이 있었던 신성 측 능력자도 있었다.

안타깝게도 전부 죽어 있었지만.

살아남은 사람들은 전부 외국인 용병들이었다.

‘설마 저 남자가 SSS급이었나?’

주민성에게 명함을 줬던 강렬한 인상의 남자.

자신을 물주라 자칭했던 남자였다.

그는 용병들을 향해 뭐라 소리치고 있었다.

영어라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주민성은 단번에 그가 지금의 전투를 이끄는 인물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는 다른 용병들을 철저히 보호하며 임진석의 접근을 튕겨내고 있었다.

“헤이! 정신 차려!”

“음?”

“대장님. 저 사람 한국어도 하는데요?”

남자가 말을 건 상대는 임진석이었다.

의아함을 느낀 주민성은 송몽룡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얼굴이 제대로 인식되지 않는 지금으로선 그게 최선이었다.

“몽룡아. 저놈 얼굴 보여?”

“네? 아, 네! 보여요. 의, 의식이 없어 보이는데……. 눈에 흰자밖에 안 보여요.”

실제로 임진석이 정신 줄을 놓고 있었다면 정신 차리라는 말도 쉽게 납득이 갔다.

“설마 의식을 잃은 채로 싸운다는 건가?”

“합류할까요? 이대로는 먼저 지치는 쪽이 질 것 같은데.”

대부분의 용병들은 지친 상태인 데다, 그들을 이끄는 남자에게도 엄청난 피로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임진석은 아니었다.

단지 의식을 잃었을 뿐.

광폭한 기세는 조금도 사그라들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상황이었다.

‘SSS급을 저렇게 지치게 할 정도라니. 대체 무슨 방법을 쓴 걸까.’

주민성은 임진석을 주의 깊게 지켜봤다.

이대로는 끼어들어도 방해만 될 뿐이었다.

투웅!

물주의 기묘한 능력에 당한 임진석은 무너진 건물더미로 튕겨져 날아갔다.

콰가가각!

충돌음 대신 기괴한 절단음이 고막을 메웠다.

맥없이 잘려진 건물 잔해처럼 주민성의 자신감도 갈갈이 찢겼다.

지금의 비상식적인 현상이야말로 여태껏 임진석이 숨겨왔던 능력의 정체였으리라.

‘가까이 있으면 뭐든지 잘라버리는 능력인가. 미쳤군.’

주민성은 함부로 싸움에 끼어들지 않은 이성적 판단에 크게 안도했다.

지금의 판단은 매우 큰 성과였다.

임진석의 능력 두 가지가 밝혀지는 순간이었으니까.

‘최면, 그리고 주변 절단.’

주민성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 지독한 싸움을 끝낼 방법이 보였기 때문이다.

‘자가 최면! 자기 자신한테 최면을 걸면 저런 기상천외한 짓도 가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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