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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부 사냥 (2) (82/250)


간부 사냥 (2)
2022.02.21.


잠실의 어느 초고층 빌딩.

이곳에선 능력자 협회 비상 대책 회의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회의는 일주일째 매일같이 반복되고 있었다.

이렇게까지 회의가 갑작스레 소집된 이유는 전 세계적으로 발생한 이상 현상 때문이었다.

“이게 뭔 개 같은 난리냐.”

회의실 상석엔 세계 최강의 능력자, 협회장 정혁수가 거대한 분노를 표출하고 있었다.

이에 한창 브리핑을 진행하던 남자는 몸 둘 바를 모르며 쩔쩔매고 있었다.

“……후우. 일단 계속해.”

“예. 어제까지 세계 284개 도시에서 출현했던 문제의 비석이 추가로 발견되어 현재는 297개 도시로 늘어났습니다. 이번에도 게이트가 아닌 구역에서 생겨났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회의 첫날 의뢰했던 검사 결과는?”

“……한 시간 전 결과가 나왔습니다. 비석이 게이트를 형성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S급 이상의 게이트에서만 흘러나오는 마나도 미량 검출되었습니다.”

정혁수는 심각한 표정으로 탁자를 손수 으깼다.

고민이 많을 때 하는 습관이었다.

“……몇몇 나라는 우리보다 조사도 빨리 끝났을 텐데 잠잠하군.”

대한민국은 협회가 정부를 대신하는 특이 케이스에 속했기에 전문 기업과 관련된 협력 프로젝트엔 추진력 면에서 미묘하게 불리한 측면이 있었다.

“예. 음모론을 일으켜 선동하는 일부 국가가 존재하긴 합니다. 다만, 마나 검출과 관련해선 전부 함구하고 있습니다. 추가로 조사를 마치는 국가 또한 비슷한 방침일 거라 판단됩니다.”

“암. 그래야지. 언론 통제는 항상 꼼꼼히 진행하게.”

“예.”

갑작스레 생겨난 비석이 S급 게이트로 돌변할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사실.

이는 단순 가능성만으로도 사람들을 공황으로 몰아갈 수 있는 위험천만한 정보였다.

“그런데 말이지.”

“예. 회장님.”

“당장이라도 바쁘게 움직여야 할 지금 시점에.”

쿠구구……!

은은하게 퍼져나가는 분노에 회의 참석 인원 전원이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후우! 아니. 됐다. 중요한 건 이게 아니니까.”

정혁수에겐 차마 뒷말을 이어갈 수 없었던 나름의 고충이 있었다.

‘이 새끼들은 대체 왜 연락을 안 받는 거야!’

임진석을 비롯한 간부 8인의 연락이 동시에 끊긴 것이 문제였다.

심지어 지금은 다른 사람들에게 알릴 수 없는 은밀한 임무를 수행 중인 상황.

이들의 연락은 임진석의 첫 상황 보고가 마지막이었다.

“……에. 다시 진행하겠습니다. 최근 급변한 분위기 때문인지 여러 국가에서 지원 요청이 있었습니다. 위급 상황 발생 시 회장님의 지원을 요청한 국가는 총 29개국으로 하나같이 거액의 돈을 제시해왔습니다. 또한, SS급 이상 집행위원급 요원을 요청한 국가는 앞서 말한 29개국 외 전부입니다.”

말을 마친 진행자는 필사적으로 눈을 굴리며 정혁수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시선이 오가는 장소는 비어있는 간부석이었다.

“……후우. 일단은 전부 보류. 함부로 움직였다간 순번 가지고 전쟁까지 날 수 있는 사안이다. 그보단 국내에 치중하기로 하지. 우리 쪽 발생지나 짚어 보지.”

“아, 예! 일단 가장 가까운 지역으로는 광화문에 있는 충무공 동상 앞입니다. 그리고 세종시 금강보행교, 평양 유경호텔 옥상까지 세 군데입니다.”

“……오늘은 움직여야겠군.”

“아무래도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 가장 소란스러운 지역은 인구 밀집도가 높은 광화문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수도권의 대부분 인구가 게이트를 피해 모인 곳이 서울이었으니까.

심지어 서울 내에서도 게이트가 있는 지역을 제외한다면 거주할 수 있는 지역은 더욱 한정된다.

그리고 광화문이 있는 종로구는 부유층이 밀집한 데다, 정혁수를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구역에 해당했다.

“직접 움직여야 나름의 명분이 되겠군. 광화문엔 내가 가지.”

“소, 송구합니다. 회장님.”

평소의 정혁수는 거액의 돈벌이가 아니면 절대 움직이지 않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예외였다.

S급 게이트의 다발적 출현은 자칫하면 인류 전체가 수십 년은 퇴보하거나, 종말을 맞이할지도 모르는 중대한 문제였다.

“허허. 하필 이럴 때 손이 모자라는군.”

“참석하지 못한 인원에 대해서는 별도로 연락을 계속 취해 보겠습니다.”

“음. 연락은 틈나는 대로 계속해 보게. 이제 슬슬 일어나도 되겠나? 당분간 계속 바쁠 것 같군.”

정혁수가 부서진 탁자를 털어내며 자리에서 들썩였다.

그럼에도 허리를 90도로 굽히고 있는 인원은 아무도 없었다.

회의 진행자도 여전히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금일 보고된 이상 현상이 한 가지 있습니다.”

“……또?”

“죄송합니다! 전대미문의 이상 현상이 유일하게 국내에서 발생했기에!”

“아니. 자네가 죄송할 필요는 없지. 내가 들어야만 하는 사안이라면 말이야.”

정혁수의 작은 경고에 진행자의 안색은 창백해져만 갔다.

진행자는 필사적으로 의식을 부여잡으며 숨 가쁘게 말을 이어나갔다.

“이, 인천 게이트와 안산 게이트가 관련된 사안입니다.”

쿵!

당장이라도 진행자의 머리통을 날려 버릴 것 같은 의자가 바닥으로 추락했다.

“……계속해 보게.”

“가, 가, 감사합니다…….”

단순히 인천 게이트와 관련된 내용이었다면, 회의 진행자의 커리어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곳은 단순히 매년마다 사상자가 많이 발생하는 지역이었으니까.

하지만 안산 게이트는 정혁수가 주목하고 있는 주민성과 협회 간부들이 은밀하게 파견된 게이트였다.

“세계 최초로 발생한 사건이었기에 회의에 올릴 수밖에 없었음을 양해 부탁드립니다…….”

“음.”

“보고에 따르면 인천 게이트와 안산 게이트가 이어졌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으음? 인천이야 그렇다 치고, 안산이라면 F급 게이트일 텐데? 내가 맞게 이해하고 있는 건가?”

“그렇습니다.”

처음으로 정혁수의 표정이 황당함에 물들었다.

이에 회의 참석자들은 숨소리마저 죽이며 회장의 기분에 거스르지 않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하고 있었다.

“게이트가 이어졌다라. 그렇다면 시흥시가 빠져서는 안 될 텐데. 내가 틀렸나?”

실제로 인천과 안산 사이에는 시흥시라는 일반인 거주구역이 존재했다.

따라서 보고가 올라온다면, 그에 따른 인명 피해나 재산 피해가 함께 보고되는 게 정상이었다.

“마, 맞습니다! 하지만 시흥시엔 아무런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협회 사람이 게이트 경계에 균열이 발생한다는 상식을 모르진 않을 테고. 하아……. 일단은 계속해 봐. 목숨 걸고.”

정혁수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다.

인천과 안산 게이트가 하나로 합쳐졌다는 말은, 시흥시가 균열에 의해 초토화된다는 소리였으니까.

“두 게이트는 일직선이 아닌 교묘한 곡선 형태로 이어져 있었습니다……. 가, 간격은 3미터 정도이며 오이도 방면 바닷길을 통과해 이어진 상태입니다. 인명 손실은 없으며, 시화호 근처의 일부 설비가 파손된 수준으로……. 커헉!”

결국, 화를 참지 못한 정혁수가 진행자의 목줄기를 잡아들어 올렸다.

“자네. 나랑 장난하나? 아니, 미친 거겠지. 우리 협회는 말이야. 정신병과 관련된 복지 혜택이 없어. 숨통이 끊어질 때까지만 보고하게.”

“사, 사실입니다! 커헉! 그, 급히 장거리 관찰 능력자를 호출해 확인한 결과! 지형 자체가 바뀌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진행자의 필사적인 외침은 목숨을 건질 수 있는 내용이었다.

딱 정혁수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정도.

“지형이 바뀌었다?”

살아갈 기회를 얻은 회의 진행자는 잔뜩 군기든 모습으로 외쳤다.

“그렇습니다! 바다 아래의 지표면이 솟구치며 통행로라도 되는 것처럼 지형이 바뀐 상태입니다! 자료를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촤르륵!

진행자의 품속에선 제법 정성 들인 서류 뭉치가 쏟아져 나왔다.

“확인차 근처에 배치되었던 인원들을 파견해 촬영한 사진입니다!”

“호오.”

이는 정혁수조차 흥미롭게 볼 수 있는 사진이었다.

비록 사건 발생 지역이 게이트라곤 하나, 좁아터진 땅덩어리가 넓어진 것만으로도 긍정적으로 검토할 수 있는 사업이 수십 개는 떠올랐으니까.

“정말 특이하군. 정말로 지형이 바뀌었어. 이쪽에는 따로 조사단을 꾸려 보게. 새로 얻을 수 있는 자원은 없는지, 생태계의 변화는 없는지 말일세!”

“아, 알겠습니다!”

“이제 안산 게이트에 관련된 내용만 남았군? 축하하네. 자네는 살았어.”

“감사합니다! 회장님!”

“그래. 보고 내용에 따라서 보너스까지 확실하게 챙겨주지.”

“예!”

정혁수의 잔혹한 심성에도 협회 구성원들이 충성을 다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능력자 협회장에겐 통 큰 배포가 있었다.

이는 회의 진행자도 받을 수 있는 혜택으로 만약 목숨이 끊어졌다면, 어마어마한 위로금이 가족들에게 전달될 예정이었다.

“현재 인천과 안산 두 게이트엔 별도의 조사단이 파견된 상태이며, 상대적으로 고급 인력이 부족한 안산 게이트엔 신성 측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습니다.”

“……신성이? 갑자기? 왜?”

협회와 신성은 꽤 오래전부터 협력 관계기에 지금의 지원은 당연하다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전폭적인 협조는 오히려 꺼림칙한 느낌을 들게끔 했다.

“신성은 해외 사업 확장으로 국내 가용 인원이 부족할 텐데?”

“신성은 일주일 전부터 대대적인 워크샵을 국내에서 개최한 상태였습니다. 이에 신성 측 해외 파견 중인 인원도 상당수 입국해 서울에 머물고 있습니다. 덕분에 상당히 쉽게 협조 받았습니다.”

정혁수는 묘한 위화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는 한때 신성 회장과 치열하게 이권을 다투던 시절 느꼈던 감정이었다.

그것도 크게 한 방 먹었을 때.

우지직!

정혁수는 뼈대만 남아 있는 탁자를 으스러뜨리며 진행자에게 물었다.

“그쪽과 동행한 우리 쪽 파견 인원은.”

“안산지부 소속 B급 협회원 두 명이 선발대로 긴급히 파견되었으며, 선발대 요청으로 시흥과 안양지부에서 A급 셋을 추가로 증원했습니다.”

“그 이후로는?”

“……없습니다. 지금 소집할까요?”

“……노는 S급 보내. 최소 셋 이상. 없으면 지방 애들 불러서라도. 탐지, 관찰계 능력자도 최대한 섭외해서 안산 감시하고. S급 중 하나는 그쪽 호위로 붙여.”

“아, 알겠습니다.”

S급 추가 증원은 상당히 이례적인 경우로, 이는 정혁수만이 알고 있는 정보 때문이었다.

‘간부 8명이 안산에서 연락 두절 됐는데 아무런 보고도 안 올라온다? 하.’

이는 신성 측 인원들이 협회 파견 인원을 찍어 눌러 정보를 통제했다고밖에 볼 수 없었다.

‘한 방 먹었군. 하필 이런 시국에.’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정혁수도 당장은 파악할 수 없는 상태.

선공권은 신성 쪽이 가져간 것이나 다름없었다.

“조사 끝나는 대로 관련된 신성 쪽 인원들 싹 다 잡아들여. 버러지들이 오냐 오냐 해 주니까 겁박을 해?”

“……예?”

“알 것 없다. 더 보고할 사항은.”

“어, 없습니다.”

“그럼 아까 정한 대로 각자 움직이지. 해산.”

백 명은 훌쩍 넘을 법한 회의 참석자들이 동시다발적으로 90도 인사를 마치고 순식간에 빠져나갔다.

그럼에도 소음은 거의 들리지 않는 수준.

지금 같은 상황에서 정혁수를 자극한다는 건, 돈이 급하니 최대한 빠르게 사망 수당을 지급해 달라는 신호나 마찬가지였다.

팟!

회의실 벽면을 지워 버린 정혁수는 허탈한 표정으로 바깥 풍경을 내려다봤다.

이마저도 화를 가라앉히기 위한 나름의 노력이었다.

“돈이 돈을 낳고, 사람이 돈을 낳는 이런 행복한 세상에서……. 돈이 제 발로 굴러오겠다는데 줍지도 못하는 상황이라니……. 크흐흐.”

이렇게까지 어이없는 상황이 되자 나오는 것은 실소였다.

“하다못해 셋 정도만 있었어도…….”

만약 협회 간부들이 곁에 있었다면 다르게 진행될 수 있는 국면이었다.

정혁수의 발걸음에 뒷수작을 꾸미는 국가가 존재한다면 임진석을 보내면 그만이었고, 주둥이를 함부로 놀리는 국가가 존재한다면 황태범을 보내면 그만이었다.

제 딴에 정의를 주장하는 길드는 말할 가치도 없었다.

성아영 하나면 충분하니까.

그 외 다른 간부들 또한 일당백의 유능한 인재들이었다.

심지어 각 국가를 대표하는 SSS급 능력자가 덤벼온다 한들 그들 또한 정혁수의 상대가 아니었다.

오히려 전부 찍어 누르고 돈을 쓸어 담을 기회였다.

그 정도로 지금의 정혁수는 괴물이 되어 있었다.

-고객님의 전화가 꺼져 있어…….

콰직!

하루 동안 박살 난 휴대폰 수가 다섯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물론 정혁수 소유의 휴대폰 수백 개는 전부 같은 번호였기에 임진석에게 연락이 온다면 비서실장이 알아서 찾아올 터였다.

“화가 도저히 식질 않는군……. 일정은 일정대로 말썽이고. 이럴 땐 연구소가 최곤데 말이지.”

정혁수에겐 비밀리에 수많은 실험을 진행 중인 지하 연구소가 있었다.

그곳이라면 정혁수의 본성을 거리낌 없이 펼칠 수 있었다.

태평양 어딘가에 철저하게 숨겨져 찾기도 힘든 데다, 우연히 위치가 발각된다 하더라도 반드시 증거를 없앨 수 있는 수단도 존재했다.

“후우. 오늘도 이렇게 넘길 수밖에 없겠군. 이번에도 주민성인가.”

언제나 승승장구하던 정혁수의 앞길에 대놓고 침을 두 번씩이나 뱉는 인물의 출현은 25년 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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