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객전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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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객전도 (2)
2022.02.17.
“고블린, 데빌도그. 맞네.”
생각보다 협회 간부들은 긴장하지 않았다.
고블린과 데빌도그는 약하기로 워낙 유명했으니까.
수천이 모여 있든, 수만이 모여 있든 협회 간부들의 강함은 절대적이었다.
“변종도 있군.”
“카메라는 없다.”
협회 간부들은 오히려 여유 있는 모습이었다.
오직 임진석만을 제외하고.
“이제 입이 아플 지경이군. 제발 방심하지 마라.”
이에 황태범이 응답했다.
“그래. 방심은 절대 안 해.”
대답과 동시에.
투투툭!
“키에에에겍!”
“끄르륵!”
고블린들의 머리가 동시에 터져나갔다.
“반격 능력 좀 있다고 뭔가 착각하는 것 같은데.”
투투투툭!
“끼에에엑!”
황태범의 싸늘한 말과 함께 셀 수 없을 정도의 고블린들이 연달아 죽어 갔다.
“제압 못 하는 건 피차일반이거든.”
다른 협회 간부도 황태범에게 합세했다.
“그쪽은 균열 방향이다. 뚫을 거라면 이쪽으로 가자고.”
치지지지직!
“키이기긱!”
허공에서 생성된 초록빛 파도가 건너편의 고블린들을 휩쓸었다.
더 볼 것도 없었다.
즉사였으니까.
초록빛 파도에 휩쓸린 고블린과 데빌도그는 한 마리도 남김없이 전부 녹아 버렸다.
“혼합 마석까지 녹일 셈이냐.”
“나름 조절한 건데.”
꾸드드득!
미처 초록빛 파도가 닿지 않은 공간까지 일그러졌다.
일그러진 공간에 휩쓸린 고블린들 역시 즉사를 면치 못했다.
이 모든 것들이 단 몇 초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주민성이 전력으로 쏟은 10분과는 근본부터가 달랐다.
“나쁜 놈들…….”
정확히는 운이 좋았기에 고등급을 받았을 테지만, 협회 간부들이 선보이는 능력만큼은 주민성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실로 명백한 힘의 차이였다.
“내가 어떻게 키운 녀석들인데…….”
정확히 말하자면 주민성이 고블린에게 한 일은 딱히 없었다.
규칙을 정해 줬고, 그 규칙 속에서 알아서 행동할 것을 명령했었다.
하지만 주민성은 자신이 고블린을 키워냈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명령조차 못 하는 놈들이.”
고블린들이 사람을 따르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온 세상을 통틀어 자신뿐이었으니까.
투툭!
치지직!
꾸득!
그 많던 고블린 라이더들이 대부분 쓸려 나갔다.
이제 남은 건 주민성 주변에 있는 콩이와 크룩스, 그리고 놀라 흩어진 고블린 라이더뿐.
그리고 동시에.
[고블린 영혼석이 마석에 흡수됩니다.]
[데빌도그 영혼석이 마석에 흡수됩니다.]
[데빌도그 영혼석이 마석에 흡수됩니다.]
……
영문 모를 메시지가 끊임없이 떠오르고 있었다.
“후우! 후우!”
메시지가 늘어 갈수록 주민성은 머리가 뜨거워짐을 느끼고 있었다.
이것이 분노 때문인지 능력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눈앞의 협회 간부들의 얼굴에 주먹을 꽂아 넣어야만 머리가 식을 것 같다는 감정.
저벅.
“뭐야. 저놈 갑자기 걸어오는데?”
“설마 몬스터 좀 죽었다고 화내는 거야?”
“애초에 우릴 상대하는 것부터 정상이 아닌 놈이었다.”
말은 여유로웠지만, 협회 간부들은 공격을 멈추고 주민성을 경계했다.
그들은 지금도 여전히 주민성의 역량을 전부 파악하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저벅.
“총대 멜 사람?”
“정석대로 가지.”
“누구 맘대로?”
협회 간부들은 주민성이 다가옴에도 느긋하게 의견을 교환하고 있었다.
이들의 생각은 간단했다.
이전의 알 수 없는 반격계 능력만 조심하면 된다였으니까.
“정석 한 표.”
“나도 정석.”
“정석이 맞다.”
협회 간부들은 황태범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또 다른 능력이 정석적인 공략의 시발점이라도 되는 모양.
“인당 1500씩 넣어라. 깨끗한 놈으로.”
“1500은 너무하잖아. 상대가 FFF급인데.”
“그럼 1000.”
심지어 다수결 투표까지 하기 시작했다.
저벅.
“오케이.”
“동의. 대신 내폭은 안 된다.”
“쳇.”
결국, 주민성을 상대하는 역할은 황태범의 몫이었다.
저벅.
“여어. FFF급. 너 좀 치나 봐?”
꽈드득.
주민성은 주먹을 으스러질 듯 쥐며 황태범에게 접근했다.
“이야. 학창시절 생각나네! 형이 선빵은 양보해 줄게.”
황태범은 가볍게 스트레칭하며 주민성을 도발했고.
“그러든가. 병X아.”
주민성은 그 도발에 흔쾌히 응했다.
타탓!
“뭐야. 신체 강화야?”
주민성은 그대로 황태범에게 돌진해 주먹을 날렸다.
쾅!
“컥!”
“……!”
예상대로 황태범의 얼굴을 한 대 후리자 주민성은 머리가 식어 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방금의 타격에 당황했다.
‘뭐지?’
인천의 게이트에서의 전력 질주로 신체에 변화가 생겼다는 사실은 주민성도 인지하고 있었다.
‘이렇게까지 강해졌다고? 아니, 저놈이 약한 건가?’
그럴리 없었다.
상대는 어중이떠중이도 아니고 협회 간부였으니까.
적어도 국내에서 상위 1%는 당연스럽게 차지할 만한 능력자로 취급될 터.
심지어 정황상 협회 간부들 사이에서도 선봉의 역할에 어울리는 능력을 갖췄을 것으로 추정되는 상대였다.
“쿨럭! 뭐야! 저 새끼! 좀 치는데?”
황태범은 주민성의 주먹에 맞고 10미터 이상은 날아가 있었다.
그럼에도 입가의 피를 닦으며 금방 일어나긴 했지만.
‘다른 능력은 신체 강화, 혹은 방어계인가.’
답은 황태범을 통해 직접 들을 수 있었다.
“야. 방금 나 50%였다.”
“헛소리 마. 거짓말치면 입금이고 뭐고 없어.”
“진짜라니까? 하!”
다른 간부들의 조롱에 황태범의 기세가 변했다.
뚜두둑!
“100%로 해 봐야겠네. 반격계라 조금 쫄리는데.”
여기서 임진석은 황태범에게 새로운 제안을 건넸다.
“황태범. 그냥 쳐 봐. 1000 더 준다.”
“하! 그 말 책임져라?”
황태범이 이죽거리는 사이, 임진석은 주민성을 뚫어질 듯 바라보고 있었다.
“뭔가 이상한데.”
“…….”
하지만 주민성에겐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이길 수 있을 것 같다는 고양감 때문이었다.
‘자신이 없어.’
주민성의 입가엔 작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질 자신이.’
쾅!
황태범이 땅을 박차는 소리였다.
동시에 주민성의 눈앞엔 주먹이 아른거렸다.
‘보인다!’
주민성의 뇌리에선 데빌도그와 난투를 벌였던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다.
‘분명 그때보다 훨씬 빠른 공격인데도!’
주민성은 살짝 고개를 틀어 황태범의 주먹을 피했다.
쿵!
회피와 동시에 주민성의 주먹이 황태범의 복부에 꽂혔다.
“커, 커헉! 잡았다!”
공격을 허용하긴 했지만, 팔을 붙잡혔다.
하지만 주민성은 물러서지 않았다.
‘더 강하게!’
꾸득!
주민성의 팔뚝 힘줄이 미친 듯 솟기 시작했다.
“흐읍!”
순수한 힘의 대결이 펼쳐졌다.
“흐으으읍!”
이번에도 승리한 쪽은 주민성이었다.
“흐아압!”
콰아앙!
힘에서 밀린 황태범은 그대로 근처 폐건물에 튕겨져 처박힐 수밖에 없었다.
“어, 어떻게?”
적은 힘으로 무거운 물건을 다루는 노하우라면 얼마든지 있었다.
능력자가 되기 전, 노가다를 통해 배운 것들이 잔뜩 있으니까.
“후우! 후우!”
이것으로 주민성에겐 확신이 생겼다.
“내가 말했지? 끝난 건 너희들이라고.”
“…….”
타탓!
주민성은 다시금 황태범에게 쇄도했다.
그런 와중에도 다른 간부들까지 경계하며 달렸지만, 별다른 기습은 없었다.
대신 수군거릴 뿐.
“반격계, 그리고 신체 강화. 건물 잔해를 동반한 폭발인가.”
“저거 FFF급 맞아? SSS급 같은데.”
콰앙!
“커헉!”
황태범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어, 어째서!”
신체 강화 능력의 출력을 100%까지 끌어올렸음에도 황태범은 주민성의 상대가 아니었다.
“말도 안 돼!”
쾅! 쾅!
사람과 사람이 낼 수 없는 충돌음이 이어졌다.
“커헉! 그, 그만!”
쾅!
콰르르!
황태범이 약한 것이 아니었다.
맞아서 튕겨진 뒤통수만으로 폐건물을 무너트릴 정도였으니까.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이제 아무도 없었다.
“저 녀석, 최근에 상대한 보스급 있었나?”
“나랑 레클루스 레이드에 참여했었다.”
“에든버러 SS급?”
“그래. 심지어 전열을 담당했지.”
“…….”
황태범의 신체 강화 능력은 SS급 게이트의 보스급 레이드에서도 통하는 수준.
이쯤이면 다른 간부들 또한 경각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괴물이잖아.”
“내가 계속해서 말했다. 만만한 놈이 아니라고.”
주민성을 바라보며 한숨짓던 임진석은 다른 간부들에게 비장하게 말했다.
“정보는 충분히 확보했어. 이 말의 의미는 잘 알겠지.”
“…….”
이젠 진정으로 상황이 심각하다는 사실이 파악됐는지 다른 간부들은 말없이 끄덕였다.
“그리고 우리가 상대는 주민성만이 아니지.”
임진석은 크룩스를 향해 손짓했다.
슥.
콰지지직!
크룩스는 순식간에 징검문을 통해 임진석의 공격을 회피했다.
“크워어어!”
“저놈도 아까 죽인 오크와 비슷한 수준이다. 쉽게 안 죽어.”
크룩스는 임진석과 회장만이 알고 있는 특급 기밀 정보였다.
될 수 있다면 생포하는 편이 좋았고, 콩이는 임진석이 개인적으로 탐내는 몬스터였기에 다른 간부들이 건들면 곤란했다.
“그러니 놈이 이성을 잃었을 때 흩어진다. 황태범은 여기서 포기하고. 죽는 것도 나쁘지 않아. 합법적으로 처벌할 수 있는 명분이 될 테니까.”
“돈도 굳겠군.”
“……하여튼. 놈은 심리전에도 능하다. 황태범을 인질 삼아 협상을 시도해 올 수도 있어. 그러니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각자 알아서 협회로 돌아가는 것뿐이다.”
주민성의 공격 수단은 유효했고, 협회 간부들의 공격 수단은 억제되어 사용할 수 없는 상황.
더 이상의 대화는 필요 없었다.
자리를 피하는 선택지밖에 남지 않게 되었으니까.
오더를 끝낸 임진석은 이사후를 바라봤다.
“……카메라를 들고 있는 능력자들이 곧 도착할 겁니다.”
“그렇겠지. 시끄러웠으니. 그럼 나중에 만나지.”
“예.”
스슥!
이사후의 끄덕임을 마지막으로 협회 간부들은 저마다의 능력을 사용해 흩어졌다.
그런 와중에도 주민성은 황태범을 열심히 다지고 있었다.
쾅! 쾅!
“끄극! 끄르륵!”
그렇게 주민성은 기어코 황태범을 기절시키는 데 성공했다.
“후우! 후! 맷집 한번 더럽게 세네.”
주민성은 그동안 묵은 체증이 전부 내려가는 기분을 만끽했다.
“다음은…….”
이젠 다른 간부들의 차례.
“컹!”
“크룩…….”
안타깝게도 다른 간부들은 전부 사라진 뒤였다.
“너무 흥분했군…….”
주민성의 시야는 상당히 좁아져 있었다.
시야를 가득 채운 메시지 때문이었다.
[고블린 영혼석이 마석에 흡수됩니다.]
[데빌도그 영혼석이 마석에 흡수됩니다.]
……
“쯧.”
주민성은 메시지를 천천히 지워 나가며 콩이와 크룩스에게 인사했다.
“오랜만이다.”
“컹?”
“크룩?”
콩이와 크룩스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순진한 눈빛이었다.
“아, 이상 현상…….”
주민성이 하위 차원으로 넘어간 사이, 게이트의 시간은 멈춰있었다.
따라서 콩이나 크룩스에겐 하루도 채 되지 않아 다시 만나는 수준이었을 터.
“나만 반가웠네. 쳇.”
“컹!”
“크룩!”
차마 눈을 마주치진 못했지만, 주민성은 콩이의 윤기 넘치는 털을 쓰다듬으며 나긋하게 말했다.
“미안하게 됐다. 희생이 좀 컸네.”
“괜찮습니다. 용감하게 싸우다 죽는 것은 명예니까.”
“맞아. 그러니까 먹이나 내놔.”
“…….”
주민성은 당황스런 표정으로 콩이를 바라봤다.
“내놔.”
“…….”
그리고 크룩스를 바라봤다.
“그렇게 바라보면 곤란합니다. 일단은 시체 수습이 먼저겠군요. 크흠.”
“…….”
크룩스는 어울리지 않게 쑥스러운 표정으로 주민성의 시선을 피했다.
“……아.”
주민성이 있는 장소는 폐건물 내부.
황태범을 두들기다 보니 벽까지 뚫어 버려서 휑하긴 했지만, 내부는 내부였다.
즉, 만물 소통이 적용되는 구역이었다.
“적응 안 되네…….”
“먹이 달라고.”
“맡겨 놨냐.”
“이곳의 먹이는 전부 내꺼다.”
“그래. 너는 식탐의 원조였지.”
콩이의 광오한 포부는 나름대로 귀여워 할 만한 구석이 있었다.
“그래. 실컷 먹어라.”
“열다섯 번 쓰다듬었다. 열다섯 개 내놔.”
콩이는 생각보다 속물다운 구석도 있었다.
“대체 누굴 닮아서 이렇게 계산적인지.”
“전혀 안 미안하지만, 나는 주인을 닮는다.”
“안 들려.”
주민성은 그대로 폐건물을 빠져나왔다.
만물 소통이 적용되는 구역에서 벗어나기 위함이었다.
“컹! 컹!”
“……전부 잔소리였냐.”
“크르! 컹! 컹!”
“그래. 밥은 드릴게.”
어차피 마석이라면 인벤토리에 얼마든지 있었다.
최하급이라면 더더욱.
촤르르!
“많이 먹어라.”
“컹!”
인벤토리에서 최하급 마석이 저마다의 자태를 뽐내며 쏟아졌다.
그 순간.
“컹?”
“잉?”
마석이 전부 사라졌다.
[최하급 마석이 마석에 흡수됩니다.]
[최하급 마석이 마석에 흡수됩니다.]
……
“분명 있었는데……. 없어졌네요?”
“컹! 컹! 커러컹컹! 컹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