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객전도 (1) (77/250)


주객전도 (1)
2022.02.16.


[서열 1위는 2위의 사망 장소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메시지는 서열 2위를 대신해 제르취를 죽인 대상과의 미팅을 주선하고 있었다.

정말 게이트의 주인이라도 대하는 것처럼.

“에휴.”

차원 이동했을 당시와 같은 느낌.

주민성은 익숙한 기운에 몸을 맡겼다.

“……!”

주변의 소음이 들려오고.

“처음 보는 패턴인데?”

“보험 하나 추가되겠구만.”

주변 풍경이 선명해지며.

“하.”

그제야 주민성은 익숙한 얼굴에 헛웃음을 흘릴 수 있었다.

“……주민서엉!”

낯설지도, 낯익지도 않은 어중간하게 익숙한 얼굴.

황태범이었다.

“이야. 또 뵙네요.”

“무슨 수작이냐!”

황태범은 경비실에서 만났던 당시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멀끔했던 정장은 군데군데 찢겨 있었고, 제법 관리받은 것으로 보이는 피부엔 먼지가 가득했기 때문이다.

“무슨 수작일까.”

“젠장. 함정인가?”

황태범은 주민성을 극도로 경계하고 있었다.

이는 다른 간부들도 마찬가지.

주민성은 이 틈을 노려 제르취의 사망 원인을 파악했다.

‘내폭인가.’

제르취는 폭발하기라도 했던 것처럼 핏덩이가 되어 있었다.

이는 주민성도 한번 겪어 본 능력이었다.

‘제르취도 분명 강해지긴 했을 텐데.’

주민성은 자신에게 이식될 마석의 일부가 제르취에게 넘어갔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석의 효능도 어느 정도 체감한 상황.

‘임시 권한이 참 좋긴 했구나.’

황태범은 다짜고짜 시비나 걸어대는 동네의 흔한 불량배가 아니었다.

주민성도 예전부터 알고 있을 정도로 유명한 SS급 능력자였다.

‘심리전으로 가자.’

주민성은 곧장 투혼 갑옷의 형태부터 바꿨다.

철컥! 철컥!

“이번엔 끝장 봅시다.”

“하……. 믿는 구석이 있었군.”

새롭게 바뀐 투혼 갑옷의 형태는 황태범조차 당황할 정도로 범상치 않은 디자인이었다.

“당연하지.”

투혼 갑옷엔 어느새 가시가 가득 솟아 있었다.

가시의 끝은 총구처럼 뚫려 있는 형태.

그리고 총구는 당장이라도 뭔가가 쏘아낼 것 같은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내폭. 또 써 보시게?”

“……크윽!”

주민성의 선택은 허세였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현실적으로 생각해도 눈앞의 협회 간부들과의 정면 대결은 승산이 없었으니까.

“더 강한 놈으로 돌려줄 테니까.”

주민성은 최대한 긴장된 표정을 감추며 투혼 갑옷 내부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투두두두두두!

“뭐, 뭐야! 이 자식!”

주민성의 갑옷 속에서 엄청난 굉음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굉음의 정체는 신진대사가 초대폭 강화된 땅굴 벌이었다.

이 사실을 모르는 협회 간부들은 혼란에 빠졌다.

여기서 임진석이 느끼는 충격은 더욱 컸다.

‘저건 진짜다……!’

임진석이 여태까지 봐 온 주민성은 미친놈 그 자체.

특히 파괴 행위는 주민성의 전문 분야였다.

“황태범! 뒤로 빠져!”

“크윽!”

투두두두두두!

“저놈 페이스에 말려들지 마라!”

“무, 무슨 소리야!”

“보면 모르나! 저 자식! 우리의 공격을 유도하고 있잖아!”

“……!”

주민성은 반달눈을 한 채 히죽거리고 있었다.

“역시 경험자는 다르시구나. 풉.”

“두 번은 당하지 않는다!”

그제야 다른 간부들도 임진석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저번에도 그랬어! 황태범이 놈을 공격한 순간부터!”

눈 깜짝할 사이 땅에 파묻혀 있었던 기억들이 협회 간부들의 뇌리를 강타했다.

“저놈이 원흉이다! 함부로 공격하지 마라!”

“크윽!”

임진석의 논리는 굉장히 그럴싸했다.

경비실 앞에서도 주민성은 가만히 있었을 뿐이었고, 알 수 없는 능력으로 황태범의 공세를 무효화시켰던 전적이 있었으니까.

“뭐야. 진짜 공격 안 할 겁니까?”

주민성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비아냥대고 있었다.

하지만 협회 간부들은 경비실에서 있던 일을 되짚어 보기 바빴다.

“건물주 맞아. 건물주한테 맞아는 봤어?”

“이제 내 차례네.”

경비실에서 대치했던 당시 주민성이 했던 말이었다.

협회 간부들은 이 말을 마지막으로 자신들이 땅속에서 정신을 차렸다는 사실을 지금에서야 알아차렸다.

“반, 반격계 능력?”

“미친!”

협회 간부들이 내린 결론이었다.

“하필 반격계라고? FFF급인데?”

협회 간부들에겐 건물주 능력에 관한 정보가 아무것도 없었다.

“임진석! 저놈 폭발계라고 하지 않았나?”

“잊지 마라. 저놈. F가 세 개다.”

“젠장! FFF 주제에 트리플이라니!”

이는 협회 간부들에겐 상당한 불만이었다.

본인들도 보유한 능력의 종류가 두 개 이하였으니까.

“하하……. 그랬던 건가. 나머지 하나의 능력은 반격계였나.”

임진석은 주민성이 가진 세 종류의 능력을 알고 있었다.

건물을 폭발시키는 능력, 최면에서 빠져나오는 능력, 그리고 몬스터를 다루는 능력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임진석은 몬스터를 다루는 능력에 관해 함구하고 있었다.

주민성을 따르는 귀여운 데빌도그 때문이었다.

‘그 데빌도그는 반드시 내가 가진다.’

실제로 임진석은 주민성보다 많은 마석을 데빌도그에게 투자한 이력이 있었다.

그것도 중급 이상의 마석만 엄선해서.

“……후퇴하지.”

임진석의 말에 반박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협회 간부들은 반격계 능력의 무서움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하필 회장님과 같은 계열이라니.”

능력자 협회장 정혁수.

그가 선보였던 능력 중에도 반격계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이가 없군.”

전투는 반강제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주민성은 소음만 일으키며 공격해 오지 않는 상황인데다, 협회 간부들 입장에서도 선뜻 공격하기엔 난감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상대의 공격력을 역이용하는 타입이군. 확실히 우리에겐 까다로운 능력이다.”

협회 간부들은 주민성의 능력을 인정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압도적인 전력이 모였음에도 FFF급 능력자 하나 처리하지 못했으니까.

상대가 반격계 능력자기 때문에 임무에 실패했다는 핑계를 챙길 수 있는 것은 덤이었다.

“괜히 기밀 임무가 아니었군.”

“그러게. 우리가 너무 강해서 문제일 줄이야.”

이에 주민성이 황당한 표정으로 답했다.

“뭐라는 거야. 허접들이.”

“……하. FFF급한테 이런 취급이라니.”

“……도발은 무시해라.”

임진석은 상황이 또다시 꼬였음을 직감했다.

다른 간부들을 처리하긴 커녕 갑작스레 튀어나온 주민성에게 비아냥거림까지 듣는 상황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결국, 임진석은 이전의 생각을 접고 다시 한번 간부들을 이끌기로 마음먹었다.

“이것으로 임무는 완벽히 실패했다.”

“…….”

그 자존심 강한 협회 간부들이 동시에 체념하는 순간이었다.

동시에, 주민성은 지금의 상황에 황당함을 넘어 전율까지 느끼고 있었다.

‘허세가 이렇게 먹힌다고?’

자신을 무시하고도 남을 만한 유명인들이 주민성을 극도로 경계하는 상황.

그런 와중에도 주도권까지 쥐고 있으니 지금의 상황은 꿈같이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주민성은 여기서 만족할 수 없었다.

협회 간부들은 도망가려는 낌새를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상대가 대놓고 등을 보일 생각은 없었는지 경계 수준이 한층 강화되었다는 사실.

‘더 당황 시켜볼까.’

지금도 쉴 새 없이 투혼갑옷 안에서 난동을 부리는 땅굴 벌은 보여선 안 되는 뻥카였기에 주민성은 새로운 카드를 꺼내기로 마음먹었다.

물론 이번에 꺼낼 카드도 뻥카였다.

‘건물 관조. 대충 근처에 있는 내 건물.’

건물 관조는 단순히 건물을 관찰하기 위한 능력이었지만, 주민성은 이 능력의 새로운 가능성을 주목하고 있었다.

‘어라?’

건물 관조는 성공적이었다.

다만, 여기서 주민성은 당황스러운 메시지를 맞이했다.

[근처의 소유 중인 건물을 탐색합니다.]

[소유 중인 건물은 탐색이 즉시 완료됩니다.]

[탐색 완료된 건물을 자동으로 지정합니다.]

[10분간 건물을 관조할 수 있게 됩니다.]

[관련 능력이 해금되어 있지 않습니다.]

[건물주는 별도의 공간으로 격리됩니다.]

건물 관조와 건물 탐색이 동시에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유레카!’

주민성은 새로운 능력의 활용법에 크게 기뻐했다.

기쁜 상황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근처에 있던 폐건물의 정체는 언젠가 주민성이 발 도장을 찍었던 건물이었다.

“와. 그동안 고생한 보람이 있긴 하네.”

고생이라고 하기엔 조금 애매할 수도 있었다.

하위 차원에서 했던 건 현지 몬스터 노동력 착취와 고기 장사뿐이었으니까.

심지어 보상도 전투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비전투형 능력들뿐.

하지만 이런 자잘한 능력들까지 기어코 써먹는 사람이 바로 주민성이었다.

“별도의 공간. 여기서라면 10분간은 무적이지.”

주민성은 곧장 관조 중인 건물 가장자리로 시선을 옮겼다.

그러자 건물 너머 협회 간부들이 당황하는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사라졌어?”

“은신? 순간 이동?”

“방심하지 마! 그 자식, 사라지는 게 처음은 아니잖아!”

협회 간부들은 주민성과의 1차전 기억이 생생했다.

이상 현상 때문에 게이트의 시간은 쭉 멈춰 있었으니까.

“이사후! 어떻게 된 거야!”

“흐, 흐릿합니다!”

“제기랄!”

협회 간부들이 정신없는 사이, 주민성은 또 다른 테스트를 시작했다.

“인벤토리 씨. 계십니까. 똑똑.”

두근.

여기서 주민성은 또다시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별도의 공간에 격리되었음에도, 인벤토리는 협회 간부들과 대치 중이었던 장소에 떠올라 있던 것이었다.

주변을 빙빙 돌고 있는 땅굴 벌은 덤.

“저게 된다고?”

지금은 이유를 생각하기 보단 당장 행동할 때였다.

인벤토리의 원격 조종은 주민성에게 절대적 우위를 선사할 테니까.

“할 수 있는 건 전부 써 보자.”

쿵! 쿵! 쿵!

주민성은 빠르게 건물 잔해로 협회 간부들을 포위할 울타리를 만들었다.

“효과는 미미하겠지만 당황시키기엔 충분하겠지.”

서거걱!

예상대로 건물 잔해는 1초도 되지 않아 전부 썰려 나가기 시작했다.

“미친.”

SS급 능력자는 과연 달랐다.

손짓 한 번으로 수십 개는 훌쩍 넘을 건물 잔해를 동시에 잘라낼 정도였다.

“하지만 잔해는 페이크였지.”

그사이, 인벤토리에선 미세먼지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나만 안 마시면 돼애!”

일방적인 공격 찬스.

지금 같은 상황에서 가장 효과적인 수단은 미세먼지였다.

“쿨럭!”

“이게 대체 뭔 능력이야!”

퍼엉!

미세먼지가 버텨낸 시간은 2초.

하지만 주민성은 여전히 자신만만했다.

“사실 미세먼지도 페이크였지.”

협회 간부들은 당황스런 표정으로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펄럭이며 떨어지는 텐트 천이었다.

“경비실에서 봤던 놈의 무기다!”

“방어! 방어가 먼저다!”

“제기랄!”

일부 협회 간부들은 방어 능력도 보유하고 있었는지 각자 자신의 능력을 더해 나갔다.

물론 능력을 더해 나간 건 주민성도 마찬가지.

“건물 폭발. 텐트 747. 748. 749.”

콰광!

쾅!

콰과과!

미세먼지가 지속적으로 상대에게 피해를 입힌다면, 건물 폭발은 즉각적으로 최대의 피해를 입힐 수 있는 최강의 공격 수단이었다.

하지만, 이 역시도 협회 간부들은 폭발을 막아 내는 데 성공했다.

“참나. 저거 F급 맞아? A급은 되겠는데?”

“그래도 막지 못할 수준은 아니다. 반격계 능력만 조심하면 되겠어.”

마지막 공격까지 막혔음에도 주민성의 표정은 여전히 평화로웠다.

“당연히 건물 폭발도 페이크였지.”

이 싸움은 처음부터 정상적인 싸움이 아니었다.

말도 안 되는 스펙의 능력자 다수와 조금 괴팍한 능력이 잔뜩 있는 FFF급 능력자의 싸움이었다.

다수의 강자가 약자를 핍박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건물 폭발은 어그로도 출중하거든.”

이곳 F급 게이트는 모든 기반을 일궈낸 홈그라운드.

이곳에 서식하는 몬스터라면 주민성의 건물 폭발음을 모를 리 없었다.

게다가 건물 관조의 남은 지속 시간은 아직도 8분 남짓.

“8분이면 여유는 있군.”

주민성은 계속해서 새로운 텐트를 꺼내고 폭발시키길 반복했다.

콰광! 쾅! 콰과과!

콰광! 쾅! 콰과과!

주민성은 일정한 박자를 유지하며 텐트를 3개씩 폭발시켰다.

협회 간부들은 여전히 방어에 올인한 상황.

“젠장! 비열한 자식! 어디냐!”

“방심하지 마!”

십여 분의 요란한 공방이 끝나고.

어느새 주민성은 관조했던 건물로 이동해 있었다.

“폭발은 이제 끝났나?”

“제기랄. 더럽게 시끄러운 능력이구만.”

주민성은 폐건물 창가에서 이죽이며 협회 간부들에게 말했다.

“끝난 건 너희들이고.”

“음? 뭐, 뭐야?”

협회 간부들은 그제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자신들이 수천의 고블린 라이더에게 포위되었다는 사실을.

“컹!”

“크룩!”

16548853235536.jpg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