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는 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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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는 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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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는 길 (2)
2022.02.15.
협회 간부들은 임진석의 말에 동감했다.
F급 게이트.
그것도 인기가 없는 하급 게이트의 몬스터 개체 수는 조절될 리가 없었으니까.
“설마 겁이라도 먹은 건가?”
“아니. 하급 몬스터는 본능이 앞선다.”
“오. 역시 경북 담당.”
“이제 하급 몬스터라면 지긋지긋하다.”
이곳에 모인 간부들은 하나같이 S급 이상의 엘리트.
개중엔 하급 몬스터를 아예 본적도 없는 간부도 존재했다.
물론 파견지에 따라 하급 몬스터를 강제로 겪어야 하는 사람도 존재했지만.
“하지만 이상하단 말이지. 그 사람 많은 가산산성조차 이 정도는 아닌데.”
“노다지가 괜히 노다지는 아니니까.”
결국 간부들의 시선은 임진석에게 쏠릴 수밖에 없었다.
그는 여기서 유일하게 이 게이트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이곳은 고블린과 데빌도그가 출몰한다.”
“뭐야. 평범하잖아. 변종이라도 있는 줄 알았구만.”
하지만 임진석에게서 동의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음?”
“…….”
임진석은 한숨을 지으며 설명을 이어갔다.
“협회장님 명령이라 많은 것을 알려줄 수는 없지만. 변종이라고 생각해두는 게 좋다.”
“…말도 안 돼. F급인데.”
그 순간, 한 간부가 황당한 표정으로 물었다.
“고블린과 데빌도그라고…?”
명백한 의문을 담은 목소리였다.
“…5분 후. 특이한 차림의 오크와 조우.”
“…….”
동시에, 임진석에게 불신의 눈빛이 쏟아졌다.
“…얘기가 다르잖수.”
“그러게.”
한 사람의 불만을 시작으로 추궁이 이어지려는 찰나.
탐지 능력을 갖춘 간부가 당황했다.
“방금 말한 오크…. 흐릿해졌다.”
“…뭐?”
탐지 능력을 갖춘 간부의 이름은 이사후.
그는 SS급 능력자이자 유사 예언까지 가능한 협회의 특급 에이스 중 한 명이었다.
“흐릿해졌다고?”
이사후의 존재는 협회의 모두가 알 정도로 유명했다.
그리고 협회 간부들은 이사후의 능력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래. 흐릿해졌다.”
이사후의 탐지 능력은 5분 뒤에 일어날 일을 미리 볼 수 있는 능력.
그리고 능력으로 본 5분 뒤의 미래가 흐릿해진다는 말은 급변하는 미래를 암시했다.
“…바로 이동하지.”
임진석의 선택은 회피.
“그래봐야 오크잖아? 기껏 해봐야 변종이고. 오크가 도망치는 미래라고 보는 게 맞을 텐데?”
그에 반해 황태범을 비롯한 다른 간부들의 선택은 호기심이었다.
“혹시 알아? 혼합 마석이라도 나올지.”
“혼합 마석이라면 확실히 면죄부가 될 수 있지.”
“그러면 우리가 쫓아야 하나?”
흐릿해진 오크를 경계하는 인물은 이사후와 임진석뿐.
하지만 이곳의 모인 인물들은 임진석조차 함부로 할 수 없는, 같은 위치의 협회 간부들이었다.
즉, 직책으로 찍어누를 수 없는 상대라는 말이었다.
“다수결로 합시다?”
“보험 하나쯤은 괜찮잖아요?”
“…….”
하루의 실패로 그동안 쌓여온 협회 간부들의 자신감을 없애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것도 상대가 몬스터라면 더더욱.
말리는 건 불가능.
이 사실은 임진석과 이사후도 알고 있었다.
“…5분 이내. 또 다른 변수가 없다면 함께하지. 우리의 목적을 잊지 마라. 이곳을 빠져나가는 게 우선이니까.”
“당연한 소리.”
이번에도 앞장선 인물은 황태범이었다.
물론 목표 사살에 실패했다는 책임감보다는 타고난 성품이 그를 앞장서게끔 했다.
“생명체라면 확킬이지.”
이에 다른 간부도 합세해 버프 능력을 더했다.
“나는 그럼 숟가락을 걸쳐볼까.”
“오. 좋아. 오랜만에 느껴보는 이 충만감!”
“크크….”
잠시간의 정비.
이후 협회 간부들은 방향을 유지한 채 오크와 조우하는 미래로 향했다.
“…….”
임진석은 불안한 표정으로 이사후와 함께 뒷줄에서 걸으며 조용히 말했다.
“다른 변수는?”
“여전히 흐릿해.”
“흠.”
임진석도 처음엔 주민성의 위험성을 알리고 싶었다.
하지만 자존심이 그것을 허락지 않았다.
임진석이 비록 협회 서열 2위라곤 하나, 이들은 잠정적 경쟁자였지 동료가 아니었으니까.
‘어떻게 한다….’
이번 작전은 실패였다.
변종 오크의 사냥으로 혼합 마석을 얻는다 해도 그 사실은 변치 않았다.
그리고 임진석은 협회장에 대해 알고 있었다.
‘혼합 마석 정도로 회장님이 나를 용서할 리 없다. 차라리 놈들이 여기서 죽어주는 게 나을지도….’
임진석은 다른 생각을 품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정면으로 붙으면 안 돼.’
임진석은 SSS급 능력자조차 암살해낸 경력이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 통한다고 자신할 수는 없었다.
SS급 능력자 다수와 정면대결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순수 파괴력으로만 따진다면 임진석보다 출력이 뛰어난 간부는 셋 이상.
그리고 더럽게 죽지 않는 놈도 섞여 있었다.
‘이렇게 된 이상, 변수에 기대보자.’
임진석은 주먹을 쥐었다 피길 반복하며 전방을 주시했다.
“벌써 5분인가?”
황태범은 멀찍이 보이는 무언가를 향해 비웃고 있었다.
“변수는 없었네? 크크.”
황태범의 시선 끝.
그곳에는 한 오크가 있었다.
“확실히 보통 오크는 아니군. 풋.”
“고블린하고 데빌도그는 개뿔.”
일부 간부는 임진석을 비웃었다.
하지만 임진석은 이사후를 바라보고 있었다.
“너는 봤겠지?”
“…….”
임진석은 이미 계획을 실천할 준비가 되어있었다.
그렇다면 이사후도 임진석의 계획을 알고 있을 터.
“…당신도 흐릿해졌습니다.”
“…봤군.”
이사후의 말투는 어느새 존칭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는 나름의 목숨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리라.
“그보다 나까지 흐릿해질 줄이야. 100%는 아닌가.”
임진석의 계획은 간단했다.
오크가 변수를 일으키며 빈틈을 만들면, 임진석은 이에 호응해 다른 간부들까지 전부 썰어낼 심산이었다.
“100%가 아니라는 건 어쩔 수 없지. 하지만, 입은 다물어주면 좋겠어.”
“…그러죠.”
최면 능력은 여기서 통하지 않았다.
등급 차이가 크게 나질 않았으니까.
하지만 임진석에겐 이사후가 협조적으로 나설 수 있게 만들 미끼가 있었다.
“서울을 빠져나갈 수 있게 도와주지.”
“…좋습니다.”
두 사람이 자유롭게 대화를 나눌 수 있을 정도로, 협회 간부들은 오크에게 접근해 있었다.
***
한편, 주민성은 한국에 작은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었다.
쿠구구구…!
주민성은 걷고 있는 장소는 바다였던 곳.
물에 잠겨있다가 솟구친 땅을 걷고 있었다.
아무나 경험하지 못할 진귀한 경험이었다.
하지만 걸음이 길어질수록 주민성의 표정은 복잡해졌다.
“이거 점점 난감해지는데.”
[소유자가 없는 건물에 입장했습니다.]
[소유권을 주민성님으로 변경합니다.]
[보유 건물목록에 벨로키랍토르의 둥지가 추가됩니다.]
본의 아니게 새로운 건물을 파밍했기 때문이다.
[고대 등급 고유 효과가 발현됩니다.]
[주변을 떠도는 고대의 영혼이 건물에 깃듭니다.]
그것도 고대 등급 건물을.
“쿠워어어억!”
“…….”
어느새 주민성의 곁엔 처음 보는 공룡이 괴성을 지르고 있었다.
“아오.”
“키야악!”
정확히는 공룡들이었다.
새로 파밍한 건물은 하나가 아니었다.
“하…. 무슨 공룡까지….”
“키야악!”
“쿠워억!”
주민성은 압도적인 소음공해 속에 노출되어 있었다.
이는 만물소통 능력을 활용해 공룡들의 언어를 해석해도 마찬가지.
“쿠워억! 운석이 떨어진다!”
“키야악! 추워! 춥다고!”
본의 아니게 지구의 역사까지 공부할 수 있는 순간.
이는 고고학계에 엄청난 파란을 불러올 만한 위대한 발견이기도 했다.
하지만 주민성은 조금도 기뻐할 수 없었다.
“시끄러워. 여기 운석도 없고 춥지도 않아.”
“헐.”
“대박.”
만물소통의 단점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하….”
말이 통하는 것은 분명 이득이었다.
문법도 나름대로 들어맞았다.
“이게 바로 초월번역이구나.”
문제는 번역의 수준이었다.
공룡들, 정확히는 공룡 영혼들이 말하는 것을 그대로 듣고 있자니 그동안 마음속에 품었던 무언가가 산산이 깨지는 느낌이었다.
“개꿀! 이제 운석 안 떨어진다!”
“으헤헤헷! 너무 좋당.”
공룡은 로봇과 함께 주민성의 어린 시절 로망이었으니까.
“키야악과 쿠워억이 어째서….”
주민성은 허망한 표정으로 걷고 또 걸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소유하는 건물은 늘어만 갔다.
“아, 안돼….”
[보유 건물목록에 데이노니쿠스의 둥지가 추가됩니다.]
[보유 건물목록에 이구아노돈의 둥지가 추가됩니다.]
심지어 파밍되는 건물도 일부러 얻은 게 아니었다.
퇴적층에서 알아서 건물이 튀어나오는 기현상 때문이었다.
“끼야악!”
“꾸어억!”
주민성은 반쯤은 혼이 나간 표정으로 고대 공룡들의 둥지를 뒤로한 채 계속 걸었다.
그렇게 한참 뒤.
“드, 드디어….”
바라고 바라던 F급 게이트과 마주할 수 있었다.
“드디어 도망칠 수 있어!”
주민성의 뒤엔 수백 마리의 고대 공룡들의 영혼이 느린 속도로 따라오고 있었다.
락 페스티벌을 방불케 하는 소음과 함께.
“끼야악!”
주민성은 괴성을 내지르며 균열이 차오르길 기다렸다.
쿠르르!
게이트와 게이트가 이어지는 장엄한 순간이었다.
물론 주민성에겐 공룡들을 치우기 위한 다급한 순간이었지만.
“됐다!”
인천의 C급, 지금은 A급인 게이트와 안산의 보잘것없는 F급 게이트가 이어지고.
동시에 수많은 메시지가 쏟아졌다.
[서로 다른 게이트가 연동되었습니다.]
[최초로 서로 다른 게이트 연동에 성공합니다.]
[고대의 영혼들이 전율합니다.]
[관련 권한이 해금됩니다.]
[영혼 재배치 권한이 부여됩니다.]
[고대의 영혼을 소유 중인 건물에 귀속시킵니다.]
“…오?”
이번에도 최초 관련 보상은 있었다.
심지어 고대의 영혼이 보상과 관련된 보상이었다.
“살았다….”
이번만큼은 주민성도 다른 능력을 바라지 않았다.
원시의 락 페스티벌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으니까.
뒤이어 다음 메시지가 쏟아졌다.
[두 개 이상의 게이트를 점령했습니다.]
[다른 게이트와의 소통 창구가 해금됩니다.]
[게이트 거래소 권한이 해금됩니다.]
[다른 게이트 지배자와 거래할 수 있습니다.]
[분할통치되고 있는 게이트입니다.]
[게이트 지배력 조회 권한이 해금됩니다.]
[게이트에 끼치는 지배력 순위를 확인합니다.]
“…뭔 소리야. 왕 비슷한 건가? 확실히 오크들은 나를 로드라고 부르긴 했는데.”
백문이 불여일견.
자신에게 피해 주고 남에게 피해 주는 능력이 아닌 이상, 능력 사용을 망설일 이유는 없었다.
“써보면 알겠지. 게이트 지배력 조회.”
능력을 사용하자 새로운 메시지가 떠올랐다.
[현재 소유 중인 게이트의 점유율]
[1위. FFF급 건물주 주민성]
[2위. 죽음에서 돌아온 오크 로드 제르취]
[3위. 칠흑 숲의 추적자 카르파크]
[4위. 고블린 첩보 대장 크룩스]
[5위. 폭식 마수 콩이]
“전부 아는 이름이구먼.”
놀랍게도 메시지가 나타내는 순위엔 주민성과 연관된 몬스터들의 이름이 떠올라 있었다.
“그리고 전부 내 부하 맞네.”
메시지에 있는 이름은 전부 절대을, 오크 종족에 대한 지휘권을 통해 엮여있는 몬스터들이었다.
“제르취가 좀 신경쓰이네. 얘는 왜 오크 로드야.”
제르취만큼은 몇 번 반항한 전적이 있었기에 주민성은 경계심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잠시뿐이었지만.
“그래도 뭐. 게이트는 내꺼인 모양인데. 천천히 알아봐야겠다.”
주민성은 곧장 새로운 능력을 사용했다.
“영혼 재배치. 태양의 순례지.”
[재배치할 영혼을 지정해야 합니다.]
능력이 실패할 경우엔 지금처럼 설명이 추가된다.
이는 건물 탐색과 마찬가지였기에 주민성은 자연스럽게 능력을 운용했다.
“고대의 공룡들 전부. 태양의 순례지로.”
“끼야악!”
“꾸워억!”
[영혼이 재배치됩니다.]
팟!
뒤에서 들려오던 소음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후후후후….”
고대의 영혼을 태양의 순례지로 보낸 것은, 나름대로 회심의 일격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 건물에 있는 몬스터들은 언젠가 지구로 건너올 몬스터들이었으니까.
“나름대로 경지가 높으신 몬스터들이니 영혼쯤은 볼 수 있길 바래야지.”
주민성은 개운한 표정으로 휴대폰을 꺼냈다.
이제 신우빈이나 송몽룡에게 합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일단은 송몽룡쪽인가.”
생각을 정리한 주민성은 그대로 휴대폰을 조작했다.
그러던 순간, 새로운 메시지가 또 떠올랐다.
[죽음에서 돌아온 오크 로드 제르취가 사망했습니다.]
[서열 2위의 사망입니다.]
[서열 1위는 2위의 사망 장소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제르취가 아니라 개복치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