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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는 길 (1) (75/250)


돌아가는 길 (1)
2022.02.14.


“취, 취익……. 정복을 시작하셨는데…….”

“너희는 여기서 살아. 나는 갈 거야.”

주민성은 단호했다.

요란하긴 하지만, 게이트를 탈출할 수단이 생겼다고 해서 오크들과 동행하는 것은 절대 상책이 아니었으니까.

“임무가 우선입니까. 알겠습니다…….”

다행히 오크들은 주민성의 말을 따랐다.

게다가 집단을 이끄는 카르파크와 가르취, 차크취가 없는 것으로 보아 지금의 오크 집단은 갑작스레 모인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

오크들이 물러나고, 주민성은 휴대폰으로 현재 위치를 확인했다.

다행히 위치상으론 안산과 멀지 않은 편이었다.

“예전 동막역 근처였나. 역 하나가 통째로 주저앉았었구나.”

주민성은 솟아오른 균열의 모습을 예전 위성 사진과도 비교했다.

“이 정도면 솟아오르는 균열은 점 수준으로 보일 테고.”

직접 보기에나 넓었지, 두 번째 솟아오른 균열은 반경 100미터도 되지 않는, 아담한 사이즈였다.

균열이 솟아오르는 데엔 일정한 규칙이 있었기 때문이다.

“능력을 많이 쓸수록 크기가 커진다라.”

이것은 기회라고 볼 수 있었다.

신성의 도움을 받지 않고 자력으로 귀환할 수 있는.

“커피를 꺼내는 데 이 정도 크기. 사이즈를 어떻게 더 줄여야 하나…….”

주민성이 원하는 크기는 정확히 걷는 데만 지장 없는 수준이었다.

지름이라면 3미터, 혹시 모를 추락을 대비한다면 5미터까지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크기가 작을수록 소음도 적고, 알아차리는 사람도 줄어들 테니까.

“좋아. 한번 해 보자.”

주민성은 능력을 조절해 보기로 했다.

예전엔 항상 전력으로 능력을 사용했다면, 지금은 능력의 출력 자체를 줄이는 훈련이었다.

“일단 꺼낼 물건의 크기는 아까보단 작아야겠지.”

보온병, 그리고 머그컵보다 작은 물건.

조건에 부합하는 물건은 의외로 적었다.

심지어 식음료 중에 머그컵보다 작은 물건은 없었다고 봐야 했다.

“에휴.”

가르취와 차크취가 전부 먹어치웠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선택지가 없어진 건 아니었다.

머그컵보다 작은 물건은 만들면 그만이니까.

주민성은 곧장 뒤로 돌아갔다.

“균열 근처만 아니라면 괜찮겠지.”

주민성의 손엔 어느새 인벤토리에서 나온 과자 박스와 가위가 들려 있었다.

사각사각.

“최대한 작게. 하지만 인식할 수는 있게.”

물론 물건 자체의 크기를 따진다면 미세먼지가 최고였다.

하지만 미세먼지를 떠올리는 것, 그리고 미세먼지 한 개만을 인벤토리를 꺼내는 것은 탈진을 동반하는 위험한 작업이었다.

소모되는 집중력에서 차이가 생기기 때문이다.

슥슥.

주민성은 손톱 크기로 잘려진 과자 박스에 숫자 1을 적어 넣었다.

“1번 과자 박스. 1번 과자 박스.”

이렇게 잠시 인식을 위한 훈련을 반복하고.

[1번 과자 박스(파손)가 수납됩니다.]

“좋아.”

인벤토리에 인식시키는 데 성공했다.

다음은 균열 근처에서의 테스트였다.

쿠르르……!

이전과 마찬가지로 땅이 솟구치게 하는 것은 성공.

다음으로 중요한 건 소음과 확장된 균열의 범위였다.

“소음은 이 정도면 괜찮아.”

어찌나 깊숙이 가라앉았는지 땅이 솟구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상당했다.

그리고 1분 뒤.

주민성은 만족스런 표정으로 균열을 바라볼 수 있었다.

“대략 4미터쯤 되겠네.”

이동하기엔 충분한 넓이였다.

[1번 과자 박스(파손)가 수납됩니다.]

쿠르르……!

주민성은 아까의 작업을 반복하며 천천히 걸었다.

“이대론 며칠은 걸리겠지만 어쩔 수 없지.”

마석이 이식되고 강해졌다고 해서 성격까지 바뀐 것은 아니었다.

주민성이 여태 싸워 온 상대는 오로지 몬스터뿐.

그것도 상대를 죽일 생각으로 싸워 본 경험은 단 한 번도 없는 상태였다.

“지금 경비들과 마주치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야.”

경비원이라면 게이트를 통제하는 확실한 임무가 주어져 있었다.

그리고 게이트의 몬스터들은 주민성을 자신들을 다스리는 로드로 인식하고 있었다.

여기서 주민성은 경비원들이 주민성을 몬스터로 인식하는 경우를 가정했다.

“분명 다르겠지…….”

심지어 주민성은 평범한 몬스터로 인식되는 것이 아니었다.

오크 로드라는 보스급 몬스터로 인식되고 있었다.

이 말은 즉, 전투가 레이드의 양상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었다.

“무조건 까다로울 거야.”

인천 게이트는 협회에서도 위험군으로 분류한 장소.

게이트에서 벌어질 온갖 사고에 대처하는 가이드가 정해져 있을 터였다.

“아마도 서로를 보완하는 능력을 갖췄겠지.”

협회가 끔찍이도 싫은 주민성이었지만, 그것이 상대의 역량을 저평가할 이유는 아니었다.

급조된 신성 측 능력자들과 정예로 구성된 경비원은 엄연히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조만간, 복수할 시간이 찾아올 거야.”

이미 주민성의 지시를 받은 송몽룡이 움직이고 있었고, 이상 현상에서 벗어난 신우빈도 알아서 행동하기 시작했다.

거기다 판자촌 능력자들의 교육 과정도 재개될 터.

“최우선은 안전 귀환이다. 힘내자.”

여기서 주민성이 해야 할 것은 F급 게이트로 돌아가 미래를 대비하는 것.

그리고 협회에게, 게이트를 습격해 온 협회 간부들에게 그동안의 고생을 갚아 주는 것이었다.

* * *

한편, F급 게이트엔 엄청난 수의 차량이 진입하고 있었다.

“화, 확인했습니다! 입장하셔도 좋습니다!”

경비원이 다급하게 통과시키는 차량은 전부 신성 측 소속이었다.

차량의 대열은 폐허 도시까지 이어진 상황.

대열의 종착지엔 신우빈이 있었다.

“도련님!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정말 다행입니다!”

“……나 멀쩡하다고.”

신우빈의 말은 사실이었다.

단지 주변 상황이 어이없게 바뀌어 있었을 뿐.

‘주민성이 경비실을 나가고 눈 한 번 깜빡였는데 일주일이 지나 있다라.’

믿기지 않을 정도로 황당한 일이었다.

하지만 눈앞에서 울고 있는 직원들이 있었다.

그동안 일어났던 일들까지 전부 들었다.

“아, 송몽룡이라는 분은 어디에 있는지요. 선물 세트를 챙겨 왔습니다만…….”

“하하……. 저희도 지금 상황 파악이 안 되고 있어서요…….”

신우빈을 대신해 대답한 사람은 최선아였다.

최선아도 당황하긴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신우빈보다 훨씬 바쁘게 움직이기도 했다.

있던 장소가 바뀐 것은 물론, 갑작스레 몰려든 사람들 때문에 몬스터를 숨기느라 정신없이 뛰어다녔기 때문이다.

“아, 그렇군요! 그럼 제가 직접 통화하도록 하겠습니다!”

“어? 연락돼요?”

“예. 번호를 전달받아 뒀습니다.”

최선아는 고개를 빼꼼 내밀어 팀장급으로 보이는 남자의 메모를 살폈다.

“그 번호…….”

“예?”

“제 번호인데요.”

“…….”

최선아는 그제야 자신의 휴대폰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헉!”

그 모습에 신우빈이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확실히 시간 정지 능력자는 이상 현상에 면역이었나보군.”

“아, 그 할아버지…….”

그리고 운전기사도 합세했다.

“제 휴대폰도 사라진 상태입니다.”

“그렇군. 알아서 대처는 한 모양이네. 그래서 협회 놈들 위치는?”

“아직 파악되지 않습니다. 확실한 건 놈들이 게이트를 빠져나가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좋아. 실무팀은 전부 수색조에 투입해.”

“예.”

신우빈은 나름대로 송몽룡을 기특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나까지 그놈과 똑같아질 수는 없지. 김 팀장.”

“예! 도련님!”

“특수계약팀은 언제 도착하지?”

“멕시코에서 오는 중이라 좀 걸릴 겁니다. 더 시키실 일이라도 있으신지요.”

“있으니까 물어보는 거 아냐.”

“……크흠.”

특수계약팀은 계약의 강제적인 파기, 그리고 계약의 강제적인 체결을 위해 존재하는 부서였다.

당연히 법과는 거리가 먼 업무 내용 덕분에 음지에서만 활약하는 은밀한 팀이기도 했다.

세계 최고의 기업이라면 뒤통수를 지킬 힘은 필수였다.

“걔들 도착하는 대로 계약 파기 진행 시켜. 최우선은 송몽룡이다.”

“예! 도련님!”

빠득!

신우빈은 명백히 분노하고 있었다.

모든 것들이 협회 간부의 급습으로 일어난 일이었기 때문이다.

“나를 물로 봤겠다?”

협회엔 협회장이라는 상식에서 벗어날 정도로 강력한 인물이 버티고 있었지만, 상황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송몽룡의 요청으로 협회의 눈과 귀를 가려 뒀기 때문이었다.

이는 협회에 한 방 먹이기 딱 좋은 판이었다.

“문 팀장.”

“예. 도련님.”

“전략팀, 정보팀 도착하는 대로 연락해.”

“알겠습니다. 그동안 도련님은 조금 쉬시지요.”

“그래.”

신우빈이 있는 장소는 주민성의 아지트였다.

그리고 팀장들을 맞이한 장소는 건물의 입구.

아무리 휘하 직원들이었지만, 기괴한 미로 같은 내부까지 보여 줘선 안 된다는 사실을 신우빈은 알고 있었다.

“먹잇감을 줄 수는 없지.”

“키익?”

“……들어가라.”

아지트 안에는 고블린들이 숨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게이트에 방문한 직원들은 신우빈의 직속 부하가 아니었다.

“아버지도 너무하시는군. 일부러 동생들 휘하 직원까지 보낼 줄이야.”

신성의 후계자는 마냥 편한 위치가 아니었다.

견제해야 할 상대는 지금도 여전히 잔뜩 있었다.

* * *

같은 시각, 임진석은 F급 게이트 어딘가에 위치한 폐건물에 다른 간부들과 함께 숨어 있었다.

“제기랄. 또 함정이라니.”

“……또? 이런 경우가 또?”

“그래. 너희도 이제 알았겠지. 주민성은 FFF급이 아니야.”

임진석은 싸늘한 표정으로 다른 간부들을 바라봤다.

“캬악! 퉤!”

“…….”

“나는 인정 못 해! 그 개자식!”

거칠게 입에 있는 흙을 뱉은 남자는 황태범.

마지막으로 주민성과 대치했던 인물이었다.

“황태범. 안일한 생각은 접어 두는 게 좋아.”

“실수였다! 유물을 먼저 터뜨렸어야 했으니까!”

“그 실수 때문에 우리가 이 꼴이 됐지.”

“크으!”

황태범을 지적하는 건 다른 간부들도 마찬가지였다.

동시에, 잠자코 있던 간부 한 명이 말했다.

“대체 무슨 능력이었지? 눈 깜짝할 사이에 생매장시키는 능력이라니.”

“거기다 대책까지 준비해 뒀더군.”

간부들이 임진석의 요청에 동행한 건, 협회장의 입김 때문이었다.

그리고 지금의 임무는 은밀한 임무.

제3자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이 정상이었다.

“구덩이에서 빠져나오자마자 소속을 알 수 없는 능력자들이 공격해 왔어.”

“……신성일 거다. 신우빈이 준비해 뒀겠지.”

“가증스러운 놈! 어쩐지 협조적이더라니!”

당시에 상황을 떠올리는 것도 잠시.

탐지 관련 능력을 갖춘 간부 한 명이 입을 열었다.

“5분 후. 아까 그놈들이 이곳을 발견한다.”

“제기랄!”

협회 간부들은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시 숨을 곳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황태범이 불만을 표시했다.

“우리가 이렇게까지 도망을 다녀야 하냐고!”

“어쩔 수 없다. 놈들의 준비가 너무 완벽하다.”

아까의 간부는 이전의 상황을 다시금 떠올리며 말했다.

“전부 촬영되고 있어. 그것도 해외 언론사에게. 얼굴이라도 보이는 순간 끝장이다.”

“제기랄.”

“그뿐만이 아니다. 게이트 전체에 방해 전파가 깔렸어. 지원 요청도 불가능하다.”

“제기라알!”

이번에도 건물을 가장 먼저 빠져나가는 사람은 임진석이었다.

“……빨리 움직이도록 하지. 임무는 언제든 재개하면 그만이다. 우리가 피해야 할 건 회장님의 분노다.”

“…….”

이는 협회 간부들의 공통적인 생각이었다.

“회장님이 휠체어라도 타는 순간, 우리 중 반절은 죽을 테니까.”

“……쯧.”

협회 간부들은 협회장의 대국민 사과를 상상하며 진저리쳤다.

협회장의 휠체어는 평범한 휠체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특히 휠체어를 밀어야 하는 사람은 지옥이 생각보다 가깝다는 사실도 알게 되겠지.”

협회장의 휠체어는 흉기 그 자체였다.

“알아들었으면 바로 움직이도록 하지.”

“…….”

다른 이들이 당장을 생각하는 와중에도, 임진석은 그 이후를 생각하고 있었다.

모습을 보이지 않는 주민성도 함께.

‘놈은 반드시 나타난다. 그것도 가장 방심하는 순간에.’

임진석은 SSS급 능력자조차 암살해 낸 전적이 있었다.

‘그때도 이렇게까지 긴장하진 않았던 것 같은데.’

긴장한 사람은 임진석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간부는 거기에 더해 위화감까지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아? 왜 몬스터가 안보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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