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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긴 왔는데 (3) (74/250)


오긴 왔는데 (3)
2022.02.13.


소수로 제한되던 지휘권이 엄청나게 성장한 상황.

‘마석 이식과 관련된 걸까.’

게이트의 몬스터라면 공통적으로 심장에 품고 있는 것이 바로 마석이었다.

분명 연관이 있으리라.

‘주어진 건 뭐든 써먹어야겠지.’

주민성은 당당한 얼굴로 폐건물을 빠져나왔다.

“취익! 로드를 다시 뵙습니다!”

“로드! 로드!”

불과 몇 십 분 전까지만 해도 주민성이 받았던 취급은 기형 오크였다.

위대하긴 했지만 결국 기형은 기형.

썩 좋지 않은 어감이었지만, 이제는 형편이 달라졌다.

무려 오크 로드였다.

주민성은 수많은 오크 중에서 범상치 않아 보이는 오크에게 말했다.

“너가 대표지?”

“예!”

주민성은 그동안 많은 오크들을 겪어 봤다.

그리고 취익 소리를 내지 않을수록 수양이 깊은 오크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눈앞의 오크가 그런 케이스였다.

“카르파크라고 합니다.”

“아, 추적자?”

“……저의 칭호까지 알고 계셨다니! 칠흑 숲을 대표해서 감사를!”

추적자는 이전에 메시지가 알려 준 정보였다.

[지휘 가능한 오크: 추적자 카르파크 외 490]

‘칭호에 뭔가 특별한 의미라도 있는 걸까.’

하위차원은 여태까지의 상식과는 다른 미지의 세계.

칭호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말하는 낌새로 봐선 다른 오크들과는 다른 특별한 능력을 가진 모양이다.

심지어 카르파크는 보통의 능력자들이 보기에도 중간보스, 혹은 보스급이라고 봐도 될 정도의 범상치 않은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유능한 부하라면 명령하기도 좋지.’

생각을 마친 주민성은 카르파크를 보며 말했다.

“오크 하나만 찾자.”

“저희와 다른 지역 출신입니까?”

“그래. 아마도 황무지 마을?”

“……황무지 마을이라. 처음 듣습니다만.”

“그래? 걔네도 다크울프 타고 다니던데.”

“……이 아이들을 다룰 수 있는 전사는 흔치 않을 텐데……. 일단 알겠습니다. 로드.”

“응.”

제르취의 출신 지역인 황무지 마을은 이전에 다른 이름이었을 가능성이 컸다.

태양의 순례지라는 과거의 성지.

움집 몇 개만 남은 황량한 땅, 그에 반해 범상치 않았던 조상들과 고대의 영혼들이 그 증거였다.

‘성지를 볼 수 있는 안대부터 시작해서 온갖 능력자 오크들까지 있었으니 보통의 마을은 아니었겠지.’

주민성은 제르취의 이름, 복장과 생김새를 최대한 성의껏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생긴 텐트도 두르고 있어. 게이트 어딘가에 있을 가능성이 크니까 찾아봐 줘.”

“제르취! 확실히 기억했습니다!”

아쉽게도 주민성은 제르취에게 건네줬던 텐트의 번호는 기억하고 있지 않았다.

단순히 정이 들어서 호의로 건네준 선물이었으니까.

물론 가르취와 차크취를 상대론 방심할 수 없었기에 기억하기 쉬운 텐트의 번호를 넘겼지만.

“전부 모여라! 추적을 시작하겠다!”

“취익! 추적 재밌겠다!”

“취취취!”

심지어 추적에는 가르취와 차크취까지 흥미를 느낀 모양.

나머지는 전부 카르파크가 알아서 처리하는 간편한 방식이었다.

그렇게 오크 라이더 무리와 배불뚝이 오크 형제는 순식간에 주민성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휴. 그보다 내가 문제네.”

주민성에겐 제르취가 우선이 아니었다.

F급 게이트로 귀환할 방법을 찾는 것이 우선이었다.

“몬스터들이 나를 로드로 인식하는 거로 봐선 마석이 원인인 모양인데.”

주민성은 지금도 느끼고 있었다.

가슴팍에 이질적인 느낌이 들고 있다는 것을.

“별다른 효능은 없는 걸까? 컨디션이 더 좋아진 것 같기도 하고.”

항상 두르고 있는 텐트의 부가효과 덕분에 컨디션은 언제나 최상.

그 이상이 존재할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주민성은 온몸에 활력이 가득하다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안 되겠다. 테스트해 보자.”

테스트는 간단했다.

게이트의 끝까지 달려 보는 것이었다.

적어도 경비실이 있는 위치만 아니라면 어디든 가도 괜찮을 테니까.

“흐읍!”

그렇게 삼십 분 후.

“…….”

주민성은 변화에 경악하고 있었다.

“뭐야. 하나도 안 힘들잖아.”

FFF급 능력자로 각성한 이후, 급격한 신체 능력 저하로 고생하던 주민성이었다.

그 수준은 100미터 달리기도 힘겨웠을 정도.

그런데 지금은 아니었다.

“흐읍!”

주민성은 곧장 제자리에서 팔굽혀펴기를 시작했다.

“……99! ……100! 맙소사.”

팔굽혀펴기 100회로도 지치지 않았고.

“흐읍!”

폐건물 잔해를 타고 올라갔다가 뛰어내려도 멀쩡했다.

심지어 조금의 통증도 느껴지지 않았다.

“근력, 지구력 차원의 문제가 아닌데?”

모든 신체 능력 면에서 더 강해지고, 튼튼해진 상황.

원인은 한 가지였다.

“마석 때문이네. 이거 해롭진 않은 건가?”

조금의 걱정은 있었다.

마석을 몸에 이식하는 사람은 지구상에 아무도 없었으니까.

물론 의족이나 의수에 마석을 포함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그것은 부속품과 비슷한 개념이었다.

“그래도…….”

주민성의 입가는 끊임없이 씰룩이고 있었다.

일차원적인 강함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것이었으니까.

“좋아! 이대로 쭉 달려 보자!”

주민성은 게이트의 끝이 보일 때까지 계속 달렸다.

끝에 도달한 시점은 달리기를 시작하고 두 시간 뒤.

“드디어 끝인가.”

주민성은 거대한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한 균열 앞에 서 있었다.

한때는 끔찍한 재앙이었던 균열은 지금에 와선 게이트와 일반 지역을 나누는 경계가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균열 덕분에 게이트 밖이 더욱 안전해지기도 했고.

“게이트가 상당히 크네. 역시 F급과는 다른 걸까.”

게이트가 넓다는 것은, 주민성에겐 희망을 의미했다.

경비가 허술한 지역이 있을 가능성도 동시에 커지기 때문이다.

“저 균열을 곧장 뛰어넘을 수 있다면 그게 베스트일 텐데.”

균열의 폭은 어림잡아도 100미터는 가볍게 넘길 수준.

설령 공중부양 관련 능력이 존재해 뛰어넘을 수 있다 하더라도 이곳을 뛰어넘는 건 불가능했다.

당연히 균열을 뛰어넘기 위한 시도를 했던 사람들이 존재했었기 때문이다.

-절대 따라하지 마십시오. 균열 위에선 아무런 능력도 쓸 수 없으니까.

-아아! 드론마저도 이곳을 지날 수 없었습니다!

-S급 이상의 게이트를 지나갈 땐 특히 조심해야 합니다. 항공기조차 무력화됩니다. 반드시 우회해 주십시오.

-슈퍼점프 TV 편집자입니다. 슈퍼점프님은 금일 콘텐츠 진행 도중 큰 사고를 당하셔서 더 이상 방송을 진행할 수 없게 되셨습니다.

즉, 균열은 지나갈 수 없는 곳이라는 사실.

이는 상식이었다.

“후우. 곤란하군. 근데 몽룡이는 아직도 연락이 없네.”

주민성은 잠시 휴식 겸 휴대폰을 살폈다.

최선아의 번호는 특별이 알림 음을 설정했음에도 연락이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 다른 사람들의 많은 문자가 도착해 있었다.

그중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사람은 신우빈.

심지어 부재중 통화는 30회가 넘어있었다.

-신우빈이다. 어떻게 된 건지 설명해.

-여긴 어디냐고.

-야. 전화 받아라.

대충 이런 내용으로 시작했다가.

-전화 받으라고 했다.

-아니. 됐다.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알아서 체념하는 내용이었다.

“의외로 한결같지가 않군. 이쪽이 더 좋긴 하지만.”

알아서 잘.

이것은 주민성이 가장 사랑하는 말이었다.

때문에 송몽룡이 더욱 기특하기도 했고.

“어차피 그쪽은 신성에서 지원할 테니 걱정 없겠지.”

내심 신성에서 인천 게이트 쪽으로도 파견 오길 바랐지만, 이쪽 게이트는 기본적으로 경비의 스펙이 엄청났다.

여기서 대놓고 협회를 공격하면 상대에게 명분을 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기에 이것만큼은 어쩔 수 없는 일.

알아서 잘은 주민성에게도 적용되는 말이었다.

“대충 균열을 따라 걸으며 빈틈을 찾아야겠군.”

말은 이렇게 했지만, 상황은 너무나 막막했다.

게이트가 너무 거대했으니까.

“커피 한 잔만 마시고 출발할까…….”

다행히 가르취와 차크취는 커피를 건드리지 않았다.

물론 조금 맛본 흔적은 있었지만, 입맛에는 맞지 않았던 모양.

주민성은 평소처럼 인벤토리를 개방했다.

그리고 커피를 꺼내려는 순간.

쿠구구구구!

거대한 지진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뭐, 뭐야! 미친!”

지진은 정확히 주민성을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땅이 갈라질 것 같은 수준의 진동!

그런 와중에도 주민성의 향상된 신체 능력은 어마어마한 균형 감각을 발휘하고 있었다.

“우와.”

사람은 적응하는 동물이라고 했던가.

그 말은 주민성에게 해당하지 않았다.

주민성은 적응하는 괴물이었다.

“뭔가……. 뭔가 재밌어…….”

능력자가 된 이후 무기력한 신체에 익숙해져 있다가, 갑작스레 압도적인 신체 능력을 보유하게 된 덕분이었다.

“아, 그래도 죽으면 곤란하지.”

지금의 위치는 균열과 너무 가까웠다.

조금만 발을 헛디뎌도 바닥이 어디인지 모를 깊숙한 균열에 떨어질 정도였다.

“오오오…….”

주민성은 몸이 기울어지는 반대 방향으로 중심을 잡으며 균열에서 천천히 멀어졌다.

그리고 어느 정도 안전거리를 확보한 순간.

콰지지직!

땅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것도 균열 너머로.

“맙소사.”

그뿐이라면 다행이었다.

주민성에겐 더욱 식겁할 만한 상황이 들이닥치고 있었다.

쿠구구!

땅이 솟구쳤기 때문이다.

“갑자기 왜 땅이 솟아!”

말 그대로였다.

땅이 솟구치며 근처의 균열을 메워 가기 시작했다.

여기서 더욱 놀라운 사실은, 땅만 솟구친 게 아니었다는 것.

“이게 다 뭐야…….”

솟구친 땅에는 온갖 괴생명체의 알로 보이는 무언가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알에 대한 분석은 필요 없었다.

반투명한 알 너머엔 몬스터가 잠들어 있었으니까.

쿵!

주민성은 건물 잔해를 떨궈 알을 전부 짓뭉갰다.

[건물주 등급이 상승합니다.]

[건물 기둥의 내구력이 상승합니다.]

[건물주 등급이 상승합니다.]

[건물에 침투한 미세먼지 일부가 산소로 전환됩니다.]

깨알 같은 건물주 등급 상승.

“두 등급이나?”

이것은 심상치 않은 결과였다.

몬스터 수백 마리쯤은 잡아야 건물주 등급이 상승하는 게 최근의 요구량이었으니까.

“가성비 장난 아닌데?”

몬스터였으면 모를까.

몬스터 알은 주민성에게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았다.

즉, 이것은 날로 먹을 찬스.

쿵! 쿵!

빠그작!

주민성은 한창 지진이 일어나는 와중에도 정신없이 몬스터 알을 파괴했다.

[건물주 등급이 상승합니다.]

[건물주 등급이 상승합니다.]

……

이젠 하나하나 셀 수 없을 정도로 건물주 등급이 상승하기 시작했다.

지진이 멈춘 시점은 눈에 보이는 알이 전부 으깨질 즈음.

“편안하군.”

주민성은 통쾌한 기분을 만끽하며 솟구친 땅을 살폈다.

그리고 잠시 후.

통쾌한 기분은 황당한 기분으로 변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놀랍게도 균열의 위치는 주민성을 중심으로 변해 있었다.

“균열이 옮겨졌다고?”

게이트를 중심으로 원형으로 펼쳐져 있던 균열의 패턴이 기묘하게 변해 있었다.

정확히는 주민성이 있던 주변만 툭 튀어나왔다고 봐야 할 정도.

“나 때문인가? 아니, 나 때문인데?”

균열은 누가 봐도 주민성을 중심으로 펼쳐진 모양새였다.

“계기가 뭐지.”

주민성은 지진이 일어나기 직전의 상황을 떠올렸다.

그리고 한 가지 사실을 알아냈다.

“커피를 마시려고 했었는데…….”

커피를 마시기 위해선 인벤토리를 띄워야 했다.

그리고 인벤토리는 능력이었다.

“설마…….”

주민성은 새로 생긴 균열로 걸어가 인벤토리를 띄웠다.

쿠구구구……!

“진짜냐.”

이번에는 몬스터 알을 파괴했을 당시보다 미약한 수준의 지진이었다.

“생각해 보니 건물 잔해를 떨굴 때 유독 지진이 강했던 것 같기도…….”

주민성은 이제 진동 속에서도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경지에 도달했다.

호로록!

“일단 지켜보자.”

그리고 잠시 후.

균열의 위치가 다시 변했다.

내려앉은 땅은 다시 솟구쳤고, 멀쩡한 땅이 내려앉은 것.

“눈사람 모양이네. 하…….”

황당했지만,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게이트 안에선 괜찮은데. 게이트 가장자리에서 능력을 쓰면 균열의 위치가 바뀌는 건가.”

원인은 이제 생각해 볼 필요도 없었다.

마석 때문이었다.

증거는 주민성의 뒤편에도 있었다.

마석의 힘에 이끌려서 온 오크 라이더들이.

“로드! 벌써 정복을 시작하시는 겁니까!”

“갑자기? 아니 그보다 제르취는?”

“아직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근데 왜 왔어?”

“……워낙 강대한 기운이 느껴져서 그만!”

“다시 가. 제르취 찾아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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