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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긴 왔는데 (2) (73/250)


오긴 왔는데 (2)
2022.02.12.


주민성이 지구에 복귀하기 30분 전.

F급 게이트 경비실 근처엔 거대한 구덩이가 만들어져 있었다.

“헉! 헉!”

구덩이 깊숙한 곳에서 거친 숨소리를 내뱉는, 초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한 소년이 있었다.

“오늘이!”

소년의 정체는 송몽룡.

왜인지 송몽룡은 하루가 다르게 어려지고 있었다.

“오늘이 마지막이니까!”

송몽룡의 시간 정지 능력은 사용할수록 노화가 진행되는 반면, 게이트에 한정된 시간 정지 현상은 오로지 송몽룡의 신체 나이를 과거로 되돌리고 있었다.

게이트에 이상 현상이 벌어진 직후 생겨난 새로운 부작용이었다.

“허억! 헉!”

송몽룡은 매일 한계치 수준의 능력을 사용해 가며 버텼지만, 그것만으론 역부족이었다.

이상 현상은 며칠째 끊김 없이 유지되고 있었고, 송몽룡의 능력은 한 시간만 지속해도 급격한 탈진 증상이 오는 수준이었으니까.

“취익!”

“5분만 쉴까?”

“췩.”

그런 송몽룡을 위로하는 것은 호위 서비스로 송몽룡을 따르는 오크뿐이었다.

물론 오크 또한 송몽룡처럼 시간 정지 능력을 사용해가며 함께 버티고 있었다.

털썩.

잠시 휴식하기로 한 송몽룡은 거대한 구덩이 벽면에서 등을 기대며 씁쓸하게 말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쉽게 빠져나오지 못할 거야…….”

구덩이 안에는 또 다른 사람들이 있었다.

전부 협회 간부들이었다.

“대장님이 이걸 보면 칭찬해 줄까…….”

송몽룡과 협회의 계약은 절대적이었지만, 완벽한 계약은 아니었다.

이는 신우빈을 포박하면서 알게 된 힌트이기도 했다.

“이건 적대가 아니라 단순히 땅을 파는 거니까.”

송몽룡은 아무렇지도 않게 괴팍한 행동을 망설임 없이 해대는 주민성을 본받아 삽질을 시작했다.

놀랍게도 결과는 대성공.

협회의 간부들에게 직접적인 해를 끼치진 않았지만, 땅을 팜으로써 협회 간부들을 매장할 수 있었다.

은연중에 협회 간부들에게 흙을 잔뜩 퍼먹였던 것은 덤.

치지직!

“이런, 대장님 생각만 해야지.”

물론 조금이라도 협회인에 대한 적개심을 품으면 지금처럼 스파크가 튀며 고통을 동반했다.

“오늘로 마지막이지만.”

송몽룡은 쓸쓸한 표정으로 하늘을 바라봤다.

“그래도 할 만큼은 했어.”

송몽룡은 오늘이 마지막임을 직감하고 있었다.

계산상으로 오늘 저녁쯤이면 송몽룡은 능력 자체를 망각할 수준으로 어려지기 때문이었다.

즉, 아기가 될 예정이었다.

“괜찮아. 신성에도 잘 말해 뒀으니까.”

계약에 해당하지 않는 최선아와 운전기사의 휴대폰을 사용할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덕분에 신성 측에 연락도 됐고, 도움도 요청했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불가능이었다.

-진정해 주시고 도련님을 안전한 장소에 모셔 주십시오.

-접근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고등급 직원이 빠르게 가는 중입니다.

-죄송합니다. 마찬가지로 접근할 수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지하를 통한 접근도 불가능합니다.

-업무 보고는 저희 측 인원이 대신 처리했고, 주변 차량 통제도 확실하게 진행 중입니다.

-부작용이요……?

-최대한……. 최대한 버텨 주십시오…….

-……반드시 주민성 님께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신성 측에서 협회의 이목을 속이고 있다는 점.

이것만으로도 주민성에게 큰 도움이 되리라.

“후우. 이제 슬슬 마무리 작업을 해 볼까.”

“취익.”

“괜찮아. 이제 올라가도 돼.”

오크는 송몽룡에 비해 괜찮은 상황이었다.

아기 오크가 되어도 본능적으로 능력을 사용해 신체 나이를 유지하는 데다, 능력의 출력 자체가 달라 송몽룡보다 훨씬 장시간의 시간 정지를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정말 서비스 정신 하나는 대단하네.”

“취익.”

이미 구덩이는 적당히 깊게 파 둔 상황.

남은 작업은 흙을 덮는 과정이었다.

여기서 한 가지 문제가 있었는데, 이 과정만큼은 계약에 위반하는 행동으로 판정된다는 점이었다.

직접 구덩이를 메우는 것도, 오크에게 구덩이를 메울 것을 명령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진짜로……. 괜찮아.”

“취익…….”

다행히 송몽룡에겐 계약을 회피하면서 협회 간부를 처리할 방법이 한 가지 있었다.

바로 협회 간부들과 함께 파묻히는 것이었다.

“묻히기 딱 좋은 날이네.”

“취익?”

“…….”

이번에도 스파크는 튀지 않았다.

같은 말이었지만, 계약은 구덩이 안에서 하려는 행동과 구덩이 밖에서 하려는 행동을 구분하고 있었다.

잔인하게도 협회는 자살과 관련해 아무런 조항도 걸지 않았던 모양.

“이제 올라가.”

“취익…….”

오크는 복잡한 눈빛으로 송몽룡을 바라봤다.

“너는 올라가서 구덩이 지켜야지.”

지금의 명령은 구덩이에서 솟구쳐 나올 협회 간부들을 상대하라는 명령이었다.

누구를 상대하라고 말하진 않았지만, 이해했으리라.

“취익.”

오크가 구덩이를 벗어나고, 마지막 불꽃을 태우려는 순간.

띠리링!

최선아의 휴대폰 벨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아, 이걸 가지고 와 버렸네.”

갈 땐 가더라도, 다른 사람의 물건까지 휘말리게 할 수는 없었다.

송몽룡은 허탈한 표정으로 마지막을 잠시 미루며 휴대폰을 확인했다.

“…….”

휴대폰 화면에 띄워져 있는 이름과 메모에 송몽룡은 충격을 감출 수가 없었다.

-발신자: 갓물주 민성 씨★

-메모: 빌린 돈 5000만 원으로 갚기! (꼭!)

* * *

갑자기 자신을 따르는 오크 라이더 군단에 충격을 받은 주민성은 다시 건물 안으로 되돌아왔다.

원래 계획하던 미래에 오크 라이더는 없었으니까.

게다가 임시 권한도 종료되었으니 모든 행동엔 신중함이 필수였다.

“넌 못 지나간다! 취익!”

“꺼져취!”

“……취익. 심상치 않은 경호원이군.”

건물 입구는 가르취와 차크취가 통제를 맡겼다.

폐건물 틈새로 쏟아지는 시선은 어쩔 수 없었지만.

띠리리리.

주민성이 건물로 되돌아와 가장 먼저 한 행동은, 인벤토리에 모셔 뒀던 휴대폰으로 최선아에게 연락해 보는 것.

“핸드폰은 켜져 있는데…….”

방금의 전화로 위치가 노출될 위험이 컸지만, 최악의 경우가 찾아온다 하더라도 대책은 있었다.

주변의 살기등등한 오크 라이더라면 협회를 상대로 충분히 시간을 끌어 줄 수 있을 테니까.

여러 사정을 고려한 나름대로 용기 있는 행동이었다.

“제발 아무 일 없어야 할 텐데.”

주민성에겐 지금의 협회와도 협상할 만한, 귀중한 정보가 있었다.

협회도 결국은 사람들이 모인 조직.

인류를 위협하는 커다란 재앙이 찾아온다면, 협회와 손은 못 잡더라도 각자 막아내기 위해 노력은 할 수 있을 터였다.

“통할 거야. 반드시.”

태양의 순례지에서 봤던 보스급 몬스터들이 각지의 게이트로 쏟아진다면, 능력자들이 만들어낸 지금의 평화를 다시금 위협해 올 것이 분명했다.

적어도 확실한 건, 겨우 FFF급 능력자를 상대로 협회 간부를 또다시 투입할 정도로 협회는 그렇게 한가하지 않다는 점.

띠링.

그 순간, 발신음이 멈췄다.

주민성은 발신이 길어져 안내음이 나오진 않을까 걱정하며 침묵했다.

“…….”

그리고 이어지는 목소리.

-여, 여보세요?

일단 최선아는 아니었다.

앳되어 보이는, 긴장한 남자의 목소리였다.

주민성은 안타까움을 감추며 최대한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주민성입니다.”

-대, 대장님?

“……어라?”

판자촌 능력자들에 대해서라면 주민성도 잘 알고 있었다.

적어도 모르는 목소리는 없었다.

하지만 휴대폰 너머의 목소리는 낯익은 듯하면서도 처음 듣는 목소리였다.

“……주민성입니다. 그쪽은 누구십니까. 그 폰, 최선아 씨 휴대폰인데요.”

-…….

잠시간의 침묵.

괜히 불안해져 주변을 살펴본 주민성은 흉흉한 오크 라이더의 시선에 더욱 큰 불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저 송몽룡인데요…….

“그럼 능력자 협회 망하라고 소리 질러 보세요.”

-능력자 협회……! 끄아아아!

“헐.”

판자촌 능력자들이 공통적으로 체결한 계약.

협회에 대한 적대 금지가 발동한 모양.

“진짜 송몽룡……. 씨예요?”

-그냥 몽룡이라고 해 주세요! 저 진짜 송몽룡 맞아요!

황당했지만 어떻게든 대화를 이어가려는 찰나.

휴대폰 건너에서 송몽룡의 다급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헉! 움직인다!

“음?”

띠리링.

통화가 그대로 종료되고, 주민성의 휴대폰에 문자가 쏟아졌다.

-저 몽룡이 맞아요.

-사진이 전송되었습니다.

얼굴에 흙이 잔뜩 붙어 있는 소년의 사진.

확실히 이전의 노인 송몽룡이 어려진다면 이렇게 될 것 같은 얼굴이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수많은 메시지.

-협회 간부들을 제가 땅에 파묻었거든요.

-갑자기 깨어났어요.

-아, 대장님 게이트 아니죠?

-여기 이상 현상이 발생했거든요.

-게이트만 시간이 멈춰 있어요. 제 능력처럼.

-거기다 게이트를 경계로 무서운 장벽이 펼쳐졌어요.

-신성에 도움 요청도 했는데 접근 못 한대요.

-그런데 갑자기 풀렸어요. 협회 간부들이 움직여요.

-급한 대로 능력을 쓰긴 했는데, 오래 못 버텨요.

-매일 능력을 쥐어짜지 않으면 저 아기가 되거든요.

-여기 경비실 근처예요. 대장님 텐트 있던 자리.

-저 능력 오래 못 써요.

-도와주세요. 일단 학교에 숨을게요.

이것으로 최선아의 휴대폰을 가진 사람이 송몽룡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아무리 손이 빨라도, 가속 능력까지 쓴다 하더라도 이렇게 상세한 메시지와 사진을 보내진 못할 테니까.

“……허 참.”

메시지를 빠르게 읽는 데 익숙해진 덕분인지 문자는 금방 이해할 수 있었다.

몇몇 내용이 빠져 있긴 하지만, 확실한 점은 송몽룡이 위험하다는 사실.

그리고 왜인지 여태껏 게이트의 시간이 멈춰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당장 내가 그쪽으로 건너갈 수는 없고…….”

주민성은 송몽룡의 문자를 다시금 살피며 활로를 모색했다.

여기서 알게 된 사실은, 멈춰 있던 게이트와 멈춰있던 임시 권한의 시간의 연관성.

게이트에선 송몽룡을 제외하고 주민성이 하위 차원으로 떠나기 직전의 상황이 유지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상황이 희망적인 건 이뿐만이 아니었다.

“나름 신성에서 도와주고 있었네. 그보다 시간 정지 능력 사용 중에 답장도 확인할 수 있나?”

주민성은 곧장 송몽룡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혹시 이상 현상은 아직도 진행 중?

띠링!

-헉. 아뇨.

-장벽이 사라졌어요!

-그러면 밖에서도 여기 올 수 있는 걸까요?

-대박!

-저 그러면 아기도 되지 않을 거예요!

답장이 오기까지 0.1초도 걸리지 않았다.

문자를 보냄과 동시에 답장이 도착하는 상황.

다행히 상황은 송몽룡에게 압도적으로 유리했다.

“역시 시간 정지는 사기야.”

이런 와중에도 주민성은 모르고 있었다.

자신이 이런 기괴한 대화를 아무렇지 않게 이어갈 수 있을 정도로 상황 판단력과 이해력이 상승해 있었음을.

-여기 인천인데요…….

주민성은 잠시 멈칫하곤, 문자 내용을 수정했다.

-여기 인천이거든; 자세한 대화는 만나서 하자.

-거기 이상 현상 풀렸다며. 나머지 다른 사람들은?

작은 변화였지만, 이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워낙 오랜만에 해 보는 사람과의 대화였으니까.

“이제 어려 보이니까 확실히 말하기 편해지네. 그보다 아기가 되는 건 또 뭐람.”

응애거리며 시간을 멈추고 화려하게 활약하는 송몽룡은 도저히 상상되지 않았다.

그리고 답장은 이미 도착해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대장님 아지트랑 학교에 숨겼어요.

주민성은 감탄했다.

신우빈이나 고블린 라이더들이 아무것도 못 하는 상황에서의 활약이었기 때문에 송몽룡이 더욱 빛나 보이는 느낌이었다.

“사진상 피부도 확실히 빛났던 것 같기도 하고…….”

그런 와중에도 주민성의 손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일단은 신성 쪽에 지원 요청하고 최대한 요란하게 시간 끌어줘. 언론에서 관심 가져 주면 더 좋고. 특히 해외 언론.

-네!

답장은 오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신성에 지원을 요청하려면 시간 정지부터 풀어야 할 테니까.

“후우. 다들 안전하구나. 다행이다. 언론에서 한번 제대로 물어 줘야 할 텐데.”

주민성은 누구보다 언론의 무서움을 아는 사람이었다.

동시에, 겁내기보단 언론 특유의 매운맛을 다른 이들에게도 보여 주고 싶은 사람이었다.

“나만 당할 수 없지. 개자식들.”

얼핏 보면 자폭으로도 보일 수 있는 행동이었지만, 여차하면 주민성에겐 하위 차원이라는 탈출구가 있었다.

물론 그 열쇠는 제르취에게 있었지만.

“…….”

“취익!”

밖에선 여전히 오크 라이더들이 흉악한 표정으로 주민성을 바라보고 있었다.

“……너희들 내 부하 맞지?”

“취익! 그렇습니다! 로드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칠흑 숲 오크 구제에 성공했습니다.]

[칠흑 숲 오크 종족 일부의 지휘권이 활성화됩니다.]

[지휘 가능한 오크: 추적자 카르파크 외 490]

“……부하 맞네.”

메시지가 검증해 준 이상, 망설일 필요는 없었다.

“그럼 명령부터 좀 하자.”

“취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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