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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긴 왔는데 (1) (72/250)


오긴 왔는데 (1)
2022.02.11.


주민성의 질문에 오크가 답했다.

“취익! 형제들이 일궈 놓은 기회의 땅이다!”

“그런가.”

안타깝게도 도시명을 정확히 아는 개체는 보스급에 한정되는 모양.

하지만 방금의 발언으로 주민성은 오크들의 목적지가 어디인지 순식간에 파악해냈다.

‘인천이군.’

이쯤이면 거의 확실했다.

인천의 게이트는 세계에서도 유일하게 다크울프와 오크가 협력하는 기묘한 장소였으니까.

동시에, 징검문에서 뿜어지는 빛이 기세를 더해 가고 있었다.

“취익! 이제 조금 남았다! 위대한 기형 오크! 우리와 함께 가자!”

“음…….”

주민성은 고민했다.

인천이라면 아지트가 있는 F급 게이트와 나름대로 가까운 거리였기 때문이다.

‘거리는 괜찮지. 인적도 드물고.’

인천 게이트는 C급에서 A급으로 상향 조정된 특이 케이스에 속했다.

이것은 난이도에 해당했고, 그곳에서 얻을 수 있는 마석은 하급이 대부분.

따라서 인적 또한 드물 것이 확실했다.

하지만 주민성은 망설이고 있었다.

중간 검문이 문제였기 때문이다.

‘거기서도 경비실을 거쳐야 한단 말이지.’

인천 게이트는 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게이트였기 때문에 특별 관리 구역에 해당한다.

따라서 다른 게이트와 마찬가지로 경비실을 거쳐야 하는 것은 물론, A급 게이트에 걸맞은 고등급 능력을 갖춘 경비원의 검문을 거쳐야만 했다.

그리고 F급 게이트에 모여든 협회 간부들을 생각하면 지금의 주민성은 협회의 블랙리스트에 올라가 있을 확률이 100%에 가까웠다.

‘미치겠군.’

주민성에겐 되돌아가는 선택지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도박이었다.

고블린과 데빌도그가 모여 있는 징검문 방을 찾아간다 하더라도 그랬다.

‘고블린과 데빌도그는 너무 흔해. 게다가 목적지도 모를 가능성이 크다.’

징검문은 활성화를 앞두고 있었다.

결국은 선택해야 하는 상황.

“취익! 기형 오크! 함께 가자! 우리와 함께 약탈하자!”

“약탈하자! 약탈!”

“…….”

그리고 결정의 시간이 찾아왔다.

“취익! 문이 열렸다!”

동시에, 주민성은 그동안 얻은 능력들을 되짚으며 협회와의 전면전 승률을 계산하고 있었다.

‘휘말렸다곤 하나, 나는 분명 강해졌다.’

물론 태양의 순례지에 머물고 있는 보스급 몬스터에 비한다면 부족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단신으로 이들을 상대할 수 있는 능력자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협회 간부도 마찬가지.

예외라면 협회장 정도였다.

‘협회장은 아니지. 그는 누구보다 바쁜 사람이니까.’

현실적으로 당장 주민성이 상대할 사람들은 협회 간부들이 전부였다.

혹시라도 협회장이 주민성에게 관심을 가져온다?

그것은 간부들이 패배하고 난 직후일 것이 확실했다.

‘시간은 내 편이야. 대비할 시간은 있다.’

유일하게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다면, 최선아를 비롯해 게이트에 남아 있는 사람들에 대한 걱정이었다.

‘그래도 분명 버틸 수는 있을 거야.’

폐허 도시엔 주민성 휘하의 고블린 라이더 부대와 포섭에 성공한 몬스터, 그리고 교육 과정을 통해 하루가 다르게 강해지는 판자촌 능력자들과 송몽룡이 있었다.

때문에 주민성은 자신의 동료들을 믿고 당장의 역할에 충실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래. 바로 출발하자.”

“취익! 기형 오크가 합류했다!”

“취이익! 위대한 기형 오크!”

주민성은 오크들의 환호를 받으며 앞장섰다.

징검문 체험은 처음이 아니었을 뿐더러 건물을 소유해서인지 거부감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나 먼저 들어가도 괜찮지?”

“취익! 강자가 먼저 들어가는 것은 당연한 일!”

“오케이.”

주민성은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는 제르취를 뒤로하고 징검문에 몸을 맡겼다.

우우웅-.

징검문에 들어가자 기묘한 소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주변의 모든 풍경이 지워지며 메시지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상위 차원으로 이동합니다.]

[이용료를 소모하는 시설입니다.]

[축적한 태양 빛이 소모됩니다.]

[해당 건물 소유주입니다.]

[설정된 규칙에 따라 모든 이용료를 소모합니다.]

[태양 빛을 마석으로 전환합니다.]

[마석이 심장에 이식됩니다.]

[투혼갑옷과 제르취의 영혼석이 연동된 상태입니다.]

[소모되는 이용료가 영혼석에 분배됩니다.]

[이식되는 마석 등급이 하향 조정됩니다.]

[극상 마석이 이식됩니다.]

[건물주 등급이 상승합니다.]

[건물주 등급이 상승합니다.]

……

메시지를 파악할 틈도 없었다.

이미 차원 이동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

주민성은 당장이라도 메시지를 분석하고 싶었지만, 지금은 도착한 장소가 인천이 맞는지 확인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후우. 진정하자. 진정.”

주민성은 심호흡하며 공기를 들이마셨다.

“맛이 조금 다른데?”

이곳에서 들이마신 공기는 F급 게이트보다 이질적인 느낌이 부족했다.

몇 번 더 숨을 크게 들이마신 주민성은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폈다.

“다행히 건물은 있네.”

주민성은 곧장 근처 폐건물로 향했다.

“다행이다. 일단 한국은 맞네.”

반쯤 부서진 건물 간판에 명확히 한글이 적혀 있었다.

-불꽃반점

주민성이 도착한 건물은 게이트가 되기 전에 중식당이었던 모양.

“혹시 몰라. 이곳이 예전에 한인 타운일 가능성도 있으니까.”

협회에서 뒤통수를 맞은 이후, 주민성에겐 처음 보는 돌다리는 두드려보고, 한 번 더 두드려보고 막대기로 찔러봐야만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 형성되어 있었다.

[소유자가 없는 건물에 입장하였습니다.]

[소유권을 주민성 님으로 변경합니다.]

[보유 건물 목록에 중식당(반파)이 추가됩니다.]

[건물의 상태가 양호하지 않아 부가 능력이 발현되지 않습니다.]

“아아…….”

주민성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 건물이 최하급 건물이라는 것을.

그래서 더욱 감동했다.

“이게 대체 얼마 만에 얻어 보는 최하급 건물이냐!”

주민성은 기쁜 마음으로 중식당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반쯤 마모된 매장 홍보용 스티커 발견에 성공했다.

“032!”

인천의 지역 번호였다.

“인천이 맞구나.”

주민성은 자신의 추측이 정확했음에 안도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또 다른 메시지가 떠올랐다.

[임시 권한 종료까지 남은 시간: 5분]

“…….”

정상인으로 돌아왔다는 해방감, 그리고 안전장치가 풀린다는 압박감이 동시에 찾아왔다.

“5분이라……. 일단은 대비부터 해야겠지.”

오크와 말이 통한다 하더라도 이곳의 오크가 주민성에게 호의적이라는 보장은 없었다.

물론 주민성은 오크 라이더를 제압한 경력이 있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나타날 오크 라이더는 폐허 도시에서와 달리 능력자를 상대로 수많은 전투 경험을 쌓은 닳고 닳은 고인물 집단.

방심해선 절대 안 되는 상대였다.

따라서 이번에도 최우선은 안전이었다.

주민성은 곧장 제르취를 불렀다.

“제르취?”

언제나 뒤에서 나타나던 제르취가 보이지 않았다.

“분명 따라왔을 텐데.”

메시지엔 이런 내용도 있었다.

[투혼 갑옷과 제르취의 영혼석이 연동된 상태입니다.]

[소모되는 이용료가 영혼석에 분배됩니다.]

비율은 알 수 없었지만, 주민성이 징검문을 사용하면서 소모한 건물 이용료는 전부.

재화를 지불하면 반드시 결과를 내놓는 건물주 능력 특성상 제르취는 주민성을 따라왔을 것이 확실했다.

“제르취한테 씌웠던 텐트가 몇 번이었더라…….”

불러낼 방법은 있었다.

주민성에겐 여왕벌의 권능이 있으니까.

“…….”

왜인지 인벤토리는 감감무소식.

주민성은 더욱 집중해서 인벤토리에 들어 있는 벌집을 떠올렸다.

“벌집. 나와라. 벌집. 벌집?”

익숙하면서도 불안한 감각이 주민성을 스쳐갔다.

몬스터 때문이었다.

그것도 인벤토리 안에 들어있는 몬스터.

“……텐트 112. 119.”

이번에는 곧장 반응이 나왔다.

“취이이!”

“맛있취!”

텐트를 뒤집어쓴 배불뚝이 오크 둘이 식량을 마구 축내고 있던 도중이었다.

“아니 무슨…….”

콩이처럼 실질적인 수입원인 마석을 먹지 않는 건 고마웠지만, 식량 또한 엄연히 생존 수단 중 하나였다.

“취익! 음식이 사라졌다!”

“당황취!”

“……내가 더 당황취다. 나쁜 놈들아.”

든든한, 실제로 뱃살도 든든한 경호원이 생긴 것은 다행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대신해 식량난이 찾아왔다는 사실을 직감할 수 있었다.

“…….”

주민성은 집중력을 극한으로 끌어올려 인벤토리에 들어 있는 물건들을 점검했다.

“제길.”

보통은 인벤토리를 조회할 때 어지러움이 동반되는 게 정상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어지러움이 없었다.

물건이 너무나도 많이 줄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인벤토리 내용물 중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던 식량이 오크 형제의 배 속에 들어간 상태였다.

“얘들이 강제로 초심을 찾아 주네.”

이제 남은 식량이라곤 평범한 맛의 식빵뿐.

다행히 성수로도 활용 가능한 물은 넉넉하게 있었다.

“이것만으론 일주일이 한계려나…….”

주민성은 허탈하게 웃으며 가르취와 차크취를 노려봤다.

“……너희는 나가서 망 봐.”

“취익! 대장 말! 듣는다!”

“밥값취!”

태양의 순례지에서 만난 보스급 몬스터들에게 잔뜩 쫄아 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배불뚝이 형제들은 자신감 가득한 모습이었다.

‘이 정도면 밥값은 하겠지.’

생각을 마친 주민성은 이제 본격적으로 메시지를 분석하기로 마음먹었다.

“일단은 차원 이동부터.”

[상위 차원으로 이동합니다.]

[이용료를 소모하는 시설입니다.]

[축적한 태양 빛이 소모됩니다.]

여기까진 징검문이 조금 특별할 뿐, 보통의 메시지였다고 할 수 있었다.

재화를 지불한 대가로 차원 이동을 했으니까.

“여기서 변수는 내가 건물의 소유주가 되었다는 것.”

[해당 건물 소유주입니다.]

[설정된 규칙에 따라 모든 이용료를 소모합니다.]

“그리고 이용료는 마석으로 전환됐어.”

[태양 빛을 마석으로 전환합니다.]

다행히 이용료가 마석으로 전환되었다는 말은 상당히 고무적인 소식이었다.

마석은 곧 돈이었으니까.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마석이 심장에 이식됩니다.]

[투혼갑옷과 제르취의 영혼석이 연동된 상태입니다.]

[소모되는 이용료가 영혼석에 분배됩니다.]

[이식되는 마석 등급이 하향 조정됩니다.]

[극상 마석이 이식됩니다.]

이용료가 제르취에게 분배되면서 하향 조정되었음에도 마석의 등급은 극상급.

하나만 팔아도 평생 돈 걱정할 필요가 없을 수준의 가치를 지닌 마석이었다.

“왜 하필 심장이야. 내가 몬스터도 아니고.”

문제는 마석이 심장에 이식되었다는 사실이었다.

주민성은 심장이 위치한 가슴 부근을 매만지며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이겠지. 다른 오크들이 쫓아오지 못한 걸 보면.”

이용료가 전부 소모되어서인지 차원 이동에 성공한 건 주민성과 게이트 어딘가에 있을 제르취뿐.

징검문 방에서 대기하던 오크와 다크울프는 아무도 따라오지 못한 상황이었다.

“당분간 태양의 순례지는 사용할 수 없는 걸까.”

이는 나름대로 괜찮은 결과였다.

인류의 입장에선 수많은 몬스터가 지구로 쏟아지는 현상을 지연시켰다고 볼 수 있으니까.

“물론 징검문이 있는 전설급 건물이 태양의 순례지 하나가 아니라는 것이 문제지만.”

주민성은 확실히 기억하고 있었다.

하위차원에 있는 전설급 건물이 총 다섯 개라는 사실을.

“엄청났었지…….”

주민성은 태양의 순례지에서 저마다 치프틴이며 일존이며 떠들던 보스급 몬스터들의 목적지를 상기했다.

“이스탄불, 청두, 이라클리오라고 했던가.”

이라클리오가 목적이었던 보스급 몬스터는 다른 보스급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한 축에 속했었다.

문제는 나머지였다.

“청두와 이스탄불은 대도시 아닌가?”

청두와 이스탄불은 서울과 마찬가지로 정상적으로 유지되고 있는 대도시였다.

물론 어디에나 자잘한 게이트는 있었지만, 지금까지 충분히 능력자의 힘으로 억제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 몬스터들이 다시 나타난다라…….”

먼 나라인 터키의 상황은 잘 알 수 없었지만, 가까운 나라인 중국의 소식은 주민성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중국은 지금도 엄청 힘든 상황이잖아.”

한국보다 훨씬 많은 능력자를 보유한 중국이었지만, 사정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나쁜 상황이었다.

특히 드넓은 땅을 잠식하고 있는 SSS급 게이트 때문이었다.

“평범한 게이트도 아니고, 세계 3대 재앙으로 지정된 게이트가 있으니까.”

그런 상황에 일존을 자칭하던 보스급 몬스터까지 합류하게 된다면, 중국은 회생조차 할 수 없을 정도의 타격을 입을 것이 자명했다.

물론 피해는 그 주변국에까지 미치리라.

“……미래를 준비해야 해.”

이것은 수많은 몬스터와 새로운 보스급 몬스터의 침공까지 대비할 수 있는 중요한 정보였다.

메시지 분석을 나름대로 정리한 주민성은 메모를 몇 번 고치고는 건물 밖으로 빠져나왔다.

“…….”

“취익! 새로운 로드를 뵙습니다!”

건물 밖에는 수많은 오크 라이더들이 도열해 있었다.

“……로드? 나?”

“그렇습니다! 새로운 지배자시여!”

동시에, 오크들이 주민성을 향해 절도 있는 동작으로 고개를 숙이기 시작했다.

그 악명 높은 인천의 오크 라이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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